양심적인 신앙(1)(행23:1~10) 2026.6.14(주일설교)
Ⅰ. 들어가는 말
천부 장은 바울의 결박을 풀어준 후 사건의 진상을 다시 규명하기 위해 제사장들과 공회를 소집합니다. 당시 산헤드린 공회는 로마 총독부가 인정해 주는 유대인 자치 기구로서, 오늘날로 따지자면 이스라엘의 국회이자, 최고 법정입니다. 산헤드린 법정에 선 바울은 공회원들을 상대로 아주 담대하게 변론을 시작합니다.
본문 23장 1절에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공회원들을 주목하여 바울은 “범사에 선한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여기서 ‘주목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 ‘아테니조’는 ‘응시하다, 뚫어지게 바라보다’는 뜻입니다. “지금 이 순간까지 평생을 하나님 앞에서 깨끗한 양심으로 살아왔음”을 당당하게 밝힙니다. 오늘은 [양심적인 신앙]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 나누겠습니다.
Ⅱ. 내 용
1. 두 종류의 신앙이 있습니다.
1) 타락한 종교인이 있습니다.
(1) 행23:2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 명하니”
(2) 렘20:2 “이에 바스훌이 선지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베냐민 문 위층에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으로 채워 두었더니”
❶세상에 무서운 것이 많지만, 타락한 종교인만큼 무서운 것은 없습니다. 인간의 생명과 정의를 귀하게 여기고 나아가 인간의 구원을 위해 헌신해야 할 신앙인이 인간의 생명과 정의를 망각한 채 탐욕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종교인이 있습니다.
❷그는 ’신앙인‘이 아니라 종교를 등에 업고 이를 추구하는 ’종교 사기꾼‘에 불과할 따름입니다.
❸이스라엘의 정의와 진리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산헤드린 공의회 내에 그와 같은 종교인들이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❹산헤드린 회의 의장을 맞고 있는 대제사장이 복음을 위해 헌신한 사도 바울의 선한(아가데) 양심(쉬네이데세이)에서 우러나온 고백을 듣기도 전에 ‘그 입을 치라’고 고함을 질러댔습니다.
❺대제사장 아나니아는 10여 년 동안 군림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세금을 수탈하고,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로마의 정권과 결탁한 권세 자였습니다.
❻렘 20장의 바스훌 역시 성전의 제사장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보호하고 도와주어야 할 그가 탐욕에 눈이 멀어, 앞장서서 예레미야를 핍박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그들은 왜 타락한 종교인이 되었을까요?
❶산헤드린 공회에 모인 무리들은 소위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라고 하지만, 속은 이미 부패한 ‘회칠한 담’이었습니다.
❷물욕과 권세욕에 사로잡히면 마음이 부패하고, 마음이 부패하면, 양심이 작동할 수 없게 됩니다. 예레미야를 박해한 바스훌이나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타락한 종교인의 대표적인 부류라 할 수 있습니다.
❸오늘 날에도 삶의 일 순위가 예수 그리스도가 되지 않고, 하나님 보다 재물이나 세상에서 출세가 먼저라면, 타락한 종교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❹공산주의자들은 하나님을 부정하고, 교회를 잔해하고, 그리스도인들을 그들의 적으로 생각하고 죽이는 자들입니다.
❺그런 공산주의자들을 추종하고, 지지하고, 비호하는 일에 앞장선다면, 그가 목사, 장로라 할지라도 그는 필시 타락한 종교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❻이 시대의 대한민국의 가장 심각한 위기와 비극은 기독교인들의 타락입니다. 회개하고 거기서 나와야 하나님의 진노에서 피할 수 있습니다(계18:4)
2) 양심(쉬네이데세이)적인 신앙입니다.
(1) 행23:1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❶“오늘까지 나는 범사(판세)에 (선한(아가데)) 양심(쉬네이데세이)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이 부분을 다시 번역하면, “항상 나는 범사에 선한 양심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았다”입니다.
❷아가데가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아가데(ἀγαθῇ)는 선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쉬네이데세이(συνειδήσει)는 ‘쉬(함께)’와 ‘에이도(알다)’의 합성어입니다. 양심이라 번역된 것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❸따라서 양심적인 신앙은 ‘하나님을 영으로 앎으로 함께하는 신앙’입니다. 도덕적 차원의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긴 것 이상으로, 하나님을 영으로 알고 함께 하는 삶을 살았다(임마누엘)는 것입니다.
❹다시 번역하면, “항상 나는 범사에 선한 양심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았다”입니다. 즉 바울은 하늘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은 것입니다.
❺바울이 복음을 알지 못하고 율법주의에 빠져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가두는 일에 몰두하는 날도 있었지만, 회개한 후에는 그는 신앙생활에 있어서 선한(아가데, 토브) 양심 안에서 하나님을 알고 섬기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❻바울이 하나님을 ‘범사에 선한 양심을 따라 섬겼노라’ 여기서 ‘섬겼노라’ 헬라어 ‘페폴리튜마이’는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 자로써 ‘하나님나라의 원리나 규칙대로 살았다’라는 의미입니다.
❼바울이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했음과 또 복음의 원리에 따라 생활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❽‘하나님을 영으로 경험하여 알고, 하나님의 기뻐하신 뜻 안에서 주의 계명을 따라 의무를 다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범사에 선한 양심을 따라 사는 신앙’입니다.
3) 우리가 선한 양심을 따라 신앙생활을 하려면?
(1) 행23:2~3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바울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그 입을 치라 명하니 바울이 이르되(에이페넨) 회칠한 담(토이케 케코니아메네)이여 하나님이 너를 치시리로다 네가 나를 율법대로 심판한다고 앉아서 율법을 어기고 나를 치라 하느냐 하니”
❶대제사장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으로부터 성전의 일을 맡도록 허락되었는데, 바울은 왜 회칠한 담이라고 말하는가? 회칠한 담은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말한 회칠한 무덤과 같은 의미입니다.
❷무덤의 겉은 희게 칠해졌지만 속은 썩은 시체가 있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나 대제사장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을 하면서도 마음으로는 이권을 챙기거나 돈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했던 것입니다.
❸즉 탐욕(플레오넥시아스)으로 물든 마음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종교인이 된 원인으로 ‘탐심’을 물리치지 못한데 있습니다. ‘플레오넥시아스’는 몹시 탐내는, 즉 ‘욕심이 한이 없는 마음’을 말합니다.
❹“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눅12:15) 예수님이 한 부자를 비유로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❺탐심을 물리치기 위해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해야 합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탐심을 물리쳐야 합니다.
❻성령(불)세례를 통해서 옛사람(굳은 마음)을 제거해야 합니다. 의의 말씀으로 새 마을을 가져야 합니다.
❼성령의 풍성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의(디카이오쉬네)가 된 말씀, 즉 진리가 자유하게 합니다.
Ⅲ. 적 용
1. 나는 종교인이가, 양심적인 신앙인인가?
1)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사는가?
(1) 주의 말씀보다 인간적인 관계, 감정이나 이권이 우선이라면 타락한 종교인이 되는 것입니다.
(2) “경건(유세베이아스)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돌아 서라”(딤후3:5) 말씀합니다.
2) 영을 따라 성령으로 사는가?
(1) 어떤 경우에도 진리의 편에 선 성도입니다.
❶어떤 경우에도 말씀을 보존하는 마음입니다. 손해를 보고, 핍박이 있어도 주의 말씀을 지키고 증거 하는 성도가 진리 편에 선, 즉 양심적인 신앙의 사람입니다.
❷‘낙심하지 않다’의 원어 ‘욱 엔카쿠멘’은 어떤 유혹과 박해가 가해져도 ‘진리의 말씀에 대한 꺾기지 않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보존하고 고수하고, 말씀그대로를 증거 하는 마음입니다.
❸한 예로, ‘차별금지법’은 인권이란 미명하에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악법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원리를 무너뜨리는 적그리스도의 법입니다.
❹이런 법을 막아야 합니다. 이런 법을 만드는 입법자들을 물리쳐야 합니다. 그런데 묵인하거나 비호한다면, 이미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사는 타락한 종교인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❺양심적인 신앙인은 그리스도를 부정하거나 교회를 해하는 정사와 권세 자들과 그 누구라도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Ⅳ. 결 론
행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 복음송 주 나의 모습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