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적인 신앙(2)(행24:10~21) 2026.6.21(주일설교)
Ⅰ. 들어가는 말
사람의 언행을 보면 그의 됨됨이를 안다고 합니다. 항상 행동과 말이 일치되지 않는 것은 그 사람의 됨됨이가 변변치 못하며 비뚤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입으로는 달콤한 말을 늘어놓으나 그의 속셈은 다른 곳에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남이 보지 않는 데서는 그 사람을 헐뜯고 막상 그 사람 앞에서는 온갖 아양을 떨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람을 가리켜 우리는 ‘간사하고 교활하다’고 합니다. 사람의 말은 갖은 미사여구를 동원한다고 해서 아름다운 말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소리 높여 말한다고 해서 웅변적인 말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말을 잘 한다고 해서 진실한 말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양심을 좇아 말할 때 그 말이 가장 힘 있고 진실하며 아름다운 말이 될 수 있습니다. 양심을 따라 사는 사람의 말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며 감동시키는 법입니다.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양심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지난 삶을 고백하였습니다.
오늘은 [양심적인 신앙 2] 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 나누겠습니다.
Ⅱ. 내 용
1. 범사에 양심을 따라 사는 신앙인
1) 우리는 양심이 급속하게 퇴색되어 가는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
(1) 행24:1~3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호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발하니라 바울을 부르매 더둘로가 고발하여 이르되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하나이다.”
❶죄를 지으면서도 자신이 죄인인줄 모르고, 악을 행하면서도 양심에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는 경우 ‘화인 맞은 양심’이라고 합니다(딤전4:2).
❷본래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음 받은 인간은 선악을 판단하며 부끄럽지 않는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롬2:15)
❸그러나 아담과 하와의 타락으로 인해 어그러진 인간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하나님을 거부하고 자기중심적인 삶을 추구함으로써 점점 죄인의 모습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❹그러나 인간에게는 ‘양심(쉬네이데씬)’이 남아 있어 부끄러운 자신의 행위를 스스로 고발하며 느낄 수가 있습니다.
❺그런데 이 양심마저 무디게 되어 버러지와 같은 모습으로 변모해가는 것이 오늘의 우리 세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❻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마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은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부끄러워할 일이 아닌 것은 부끄럽게 여기는 경향을 너무 쉽게 경험합니다.
❼하나님께 속한 그리스도인으로써 주의 영광이나 그리스도인으로써의 의무나 책임 등을 아무것도 아닌 것같이 여기는 행위는 모두 양심이 퇴색해가는 이 시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습니다.
2) 사도 바울의 양심(쉬네이데씬) 선언
(1) 행23:1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까지 나는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❶“오늘까지 나는 범사(판세)에 (선한(아가데)) 양심(쉬네이데세이)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이 부분을 다시 번역하면, “항상 나는 범사에 선한 양심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았다”입니다.
❷유대인의 고소로 인해 벨릭스의 법정에 서게 된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항상 거리낌 없이 살아왔노라고 담대히 외쳤습니다.
❸바울은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 오로지 복음을 위해 헌신 된 삶을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살아왔다고 양심을 따라 담대히 고백합니다.
❹특별히 바울은 디모데에게 자신의 신앙을 간증하면서 ‘믿음과 선한 양심을 가지라’(딤전1:19)고 간곡히 당부하였습니다. ‘피스틴 카이 아가덴 쉬네이데씬’ ‘holding faith and a good conscience.
❺그리스도인의 복음전파의 사역은 사단과의 영적 전쟁이며 이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그리고 진실한 믿음과 선한 양심이 선행 되어야 함을 교훈합니다.
❻우리는 여기서 ‘진실한 믿음’은 ‘선한 양심’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피스티스 아뉘포크리토스’, ‘쉬네이데씨스 아가데’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❼선한 양심에선 선한 것이 우러나오고, 악한 양심에서 온갖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등등과 같은 것들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3) 우리가 선한 양심을 갖는 길은 무엇일까요?
(1) 잠8:13 “여호와를 경외(이르아)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2) 잠9:10 “여호와를 경외(포보스)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3) 사66: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해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4) 전12:13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킬지어다.”
❶인간의 도덕이나 법률은 인간으로 하여금 선한 양심을 갖게 하는 최선의 방책이라기보다는 범죄를 방지하고 공공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 사항에 불과합니다.
❷아무리 법이 무섭고 도덕 교육이 강조된다 하여도 여전히 범죄는 끊이질 않으며 인간의 타락상은 날로 심해지기만 합니다.
❸인간으로 하여금 선한 양심을 소유하게 하는 최선의 방책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입니다.
❹)요셉이 애굽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일할 때, 보디발의 아내의 집요한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❺즉 보디발의 아내가 동침하기를 원하였을 때에 그는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창39:9) 라고 고백함으로써 그녀의 유혹을 물리쳤던 것입니다.
❻말세에 죄악이 난무하고 선과 악을 분별하기 어려운 흑암이 가득한 세상에서 승리하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❼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시고, 성령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을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선한 양심을 따라 살아 갈 수가 있습니다. 아멘
Ⅲ. 결 론
행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 복음송 오직 예수뿐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