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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택

음택풍수의 발복원리에 관한 이론(朱子로부터 시작된다).

작성자靑峨|작성시간26.06.23|조회수1 목록 댓글 0

음택풍수의 발복원리에 관한 이론(朱子로부터 시작된다).

1.풍수들의 화두(話頭)

풍수의 약효는 발복에 있으니 자연히 발복의 작동원리는 어떠한가라는데에 관심이 가게되고 작동원리를 알면 현실적인 문제 예컨대 화장을 해도 명당발복을 받는가양자도 발복을 받는가의리장도 발복이 있는가손톱 머리카락을 명당에 묻어도 발복이 있는가몇 대까지 발복받는가” 하는 등등의 문제에 대하여 해답을 얻을 수 있다이 문제는 자기나름의 주관을 가져야 무식한 반풍수를 면할 수 있고 풍수인의 자산이 된다.

그러므로 풍수는 항상 이 문제를 화두로 삼아야 되는데 여러 갈래의 논의가 있고 간단치 않다깊이 있는 사유(思惟)는 각자의 몫이지만 상식적인 수준에서 본다면 실타래는 주자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본다.

 

2. 공자의 사상

공자(BC551~BC479)는 현실주의자이었다정치는 인()으로 다스려야 하고 사람들은 예의바르게 행동해야 된다는 것이 기본철학이었다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남녀칠세부동석과 같은 말씀은 공중변소에 낙서하지 마라는 것과 같은 공중도덕을 말하는 것이다김장생이퇴계송시열등 성리학자(중세 유교)가 주장한 예학이라는 것은 가정의례준칙과 같은 것으로 학문이라 할 수 없다일년상으로 할 것인가 2년상으로 해야 되는가를 두고 명운을 걸었으니 웃기는 일이고 망국의 기초를 쌓는 일이었다심지어 임란 때 풍신수길이 조선을 침범할 것인가를 염탐하려고 사신을 보내면서 예법을 잘 타이르면 교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 되었다.

공자가 괴력난신(怪力亂神)은 믿지마라고 말씀함에 따라 눈에 보이지 않는 사후세계는 외면(外面)해 왔던 탓으로 민속적으로 널리 퍼진 음택풍수를 수용하지 않았다사실 풍수는 사후세계를 상정(想定)하지 않고는 생각할 수 없는데 이 부분은 종교와 민속신앙이 담당할 부분이다그런데 문명의 중추국이었다는 중국에서 종교가 발생하지 않은 이유는 이상한 일이다.

 

3. 주자의 혼백이론

주자(이름은 朱熹, 1130~1200, 중세 儒敎=성리학=신 유교)는 불교와 도교를 섭렵하고 사후세계를 외면하는 옛 유교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고 혼백(魂魄)이론을 주창하였다즉 사람은 죽어서 혼(魂靈)은 공중으로 흩으지고 백(體魄)은 땅에 묻힌다는 것이다물론 단편적으로 혼이나 백이란 개념이 없던 것은 아니겠지만 주자가 강력한 영향력이 있는 학자로서 체계적으로 주장하였던 것이다.

주자 이후에 음택풍수가 만발하였다.

주자 이후에 혼령을 중시하는 계열은 혼령 유일설--- 제사(祭祀)를 지내고 향불을 밝히는 제사주재자 집에 혼령이 머물면서 복을 준다(의룡경양균송875~884 황소의 난 때 사람). 체백과는 무관하다혼령주도의 혼백 결합설--- 유해가 온전하면 신령이 편안하여 후손에게 복을 준다(주자의 산릉議狀체백과 관련있다.

체백을 중시하는 계열은 체백 유일설---체백이 산천의 정기를 받아 동기(同氣현대 과학에서 말하는 DNA)를 가진 친생(親生)후손에게 기운을 보내준다. 1400도가 넘는 온도로 화장하면 DNA가 소멸되므로 음택발복과 무관하게 된다유골이 삭지않고 땅속에 있는 한 몇 백년이 경과하여도 발복이 있다혼령과도 무관하다동기감응론으로 다수 견해이다체백주도의 혼백결합설---체백이 명당생기를 받고 혼령을 통하여 동기를 가진 친생후손에게 생기를 보내어 발복받게한다.

 

발복원리에 관한 대표적인 이론은 위와 같으나 세부적으로는 상당히 복잡하다사견(私見)은 혼령이 생전에 자기와 가장 인연이 깊은 유체친생 후손(동일한 DNA) 양자 기타의 인연 있는 자에게 찾아와서 발복을 부여하는 것이다체백이 있는 묘소는 혼령에게 가장 인연 깊은 장소이고 체백이 명당기운을 받으면 혼령이 즐겨 찾을 것이고 혼령은 체백의 명당 기운을 습득하여 인연있는 자를 선별하여 발복을 준다친생자에게 한정하지 않고양자(양자 발복사례는 무수히 많다서자는 과거를 볼 수 없어서 양자가 양부의 후광을 업고 출세하는 영향도 있었다), 前夫人 후손(의령에 있는 이병철 회장의 증조모 광산김씨 묘는 복호형의 명당인데 후처로서 자식이 없다물론 양택이 부자 터로 소문 났지만 증조모 묘도 전부인 진양강씨의 후손에게 발복처가 되었다산 높은 곳에 있는 이 묘에 대하여 임도가 없었던 예전에 많은 풍수들이 산 밑 동네를 찾아와서 동네 사람들에게 수고비를 주고 묘소를 안내 받았고 동네사람들은 수고비로 짭짤한 재미를 보았다고 한다), 외조부모(경주 최부자보성 강골마을 이부자는 모두 2대에 걸쳐 외동딸에게 장가들어 처가재산을 상속받았다태조의 차녀 경선공주는 청송심씨에게 시집가서 외동 딸을 두고 졸하였다외동 딸은 덕수이씨 이명신과 결혼하여 이추를 낳았는데 공주부부가 후사가 없는 바람에 공주의 외손자인 이추가 공주부부의 재산을 물러 받고 번성하였다심씨문중과 덕수이씨문중은 비문에 이추의 후손은 외손 발복이라고 새겼다)

보통 4대까지 발복에 영향을 주지만 영력이 높고 명혈에 묻힌다면 발복기간이 오래 갈 것이다.

 

4. 민속적 관념

기독교 계열은 죽으면 천사의 인도로 하늘 나라에 가고 묘소는 추모외에는 의미가 없다우리나라 불교는 포교의 편의상 민속(民俗예컨대 산신각 칠성각 용왕각)을 상당부분 흡수하여 음택풍수를 인정한다.

 

우리 민속은 조상의 혼령이 체백의 묘소 영향을 받아 후손에게 발복을 주는 것이고 조상혼은 4대까지 제사주재자 집에 머물다가 사라진다고 본다그러므로 혼령 주도의 혼백 결합설에 가깝다동기감응설은 우리의 관행에 부합되는 것처럼 주장하나 49()를 지내고 기(忌日)제사(祭祀)와 명절제사를 모시는 점을 생각하면 혼령의 존재와 역할을 인정하는 혼령 주도의 혼백결합설이라 생각된다.(202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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