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소리
신경림
간밤에 얇은 싸락눈이 내렸다
전깃줄에 걸린 차고 흰바람
교회당 지붕 위에 맑은 구름
어디선가 멀리서 까치 소리
어디선가 들려오는 까치 소리
싸락눈을 밟고 골목을 걷는다
큰길을 건너 산동네에 오른다
습기찬 판장 소란스런 문소리
가난은 좀체 벗어지지 않고
산다는 일의 고통스러운 몸부림
벗어나기 어려운 고통스러운 삶
몸부림 속에서 따뜻한 손들
들판에 팽개쳐진 이웃들을 생각한다
지금쯤 그들도 까치소리를 들을까
소나무숲 잡목숲의 철 이른 봄바람
학교 마당 장터 골목 아직 매운 눈바람
이웃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
싸락눈을 밟고 산길을 걷는다
철조망 팻말 위에 산뜻한 햇살
봄이 온다고 봄이 온다고
어디선가 멀리서 까치 소리
봄이 옴을 알리는 까치 소리
-「바둑」(1978)
■ 핵심 정리
▮주제 : 희망찬 세상에 대한 소망
▮특징 :
①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속신(俗信)을 모티프로 삼고 있다.
② 공간의 이동과 시간의 순서대로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 시의 흐름 읽기
▰[1연]
간밤에 싸락눈이 내린, 아직은 찬바람의 냉기가 느껴지는 늦겨울(혹은 초봄) 아침에 화자는 맑은 구름 사이로 어디선가에서 들려오는 까치 울음소리를 듣고 있다. 자연스럽게 화자는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우리의 속신(俗信)과 같이 반가운 누군가가 찾아 올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다.
▰[2연]
화자는 습기찬 판장과 소란스런 문 소리가 있는, 허름하기 짝이 없는 가난한 산동네를 오르고 있다. 이 곳에 살고 있는 우리 이웃(민중)의 삶은 산다는 일 자체가 살기 위해 몸부림칠 수밖에 없는 고통이리라.
▰[3연]
화자는 들판에 팽개쳐진 고통의 삶을 살면서도 따뜻한 손을 지니고 있는 이웃들의 삶을 생각하면서 그들도 까치 소리를 듣기를 바란다. 여전히 철 이른 봄 바람이, 아직은 매운 눈 바람이 날리고 있는 고통스러운 현실이지만, 까치 소리를 듣고 희망을 갖기를 바란다.
▰[4연]
지금은 싸락눈이 내린 겨울이지만, 철조망 팻말로 상징되는 자유를 억압하는 상황이지만 위에도 산뜻한 봄 햇살이 내리쬐고 있듯이 언젠가는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봄'이 온다고 까치는 울고 있다.
■ 이해와 감상
화자는 늦겨울 간밤에 내린 싸락눈이 쌓인 길을 걷다가 까치 소리를 듣고 가난한 삶을 살고 있는 팽개쳐진 이웃들을 걱정하며 그들이 기다리는 '봄'이 오고 있음을 확신하고 있다. '봄'은 궁핍한 삶을 살고 있는 민중들이 간절히 희망하는, 가난으로 더 이상 고통받지 않는 풍요로운 세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이 쓰인 시기(1978년)와 '철조망 팻말', '가난은 좀체 벗어지지 않고'라는 표현을 고려하면, 화자가 서 있는 싸락눈 내린 '겨울 산길'은 당시의 군사 독재와 분단 상황, 편향된 경제 정책으로 인한 경제적 불평등을 의미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지금 오고 있는, 언젠가는 반드시 오고 말 '봄'은 독재가 무너진 진정한 민주주의 시대이자, 남북 통일의 날, 가난의 굴레를 벗어 던지는 날 등을 의미할 것이다.
■ 신경림(1935∼ )
충북 충주 출생. 동국대 영문과 졸업. 1955∼1956년 『문학 예술』에 「낮달」, 「갈대」, 「석상」 등이 추천되어 등단함. 초기에는 인간 삶의 보편적 쓸쓸함과 고적함 등을 주로 노래함. 건강이 나빠 한때 절필하기도 하였으나 1965년부터 다시 「원격지」(동국시집, 1970), 「산읍기행」(월간다리, 1972), 「시제(詩祭)」(월간중앙, 1972) 등을 발표함. 이때부터 초기 시에서 두드러진 관념적인 세계를 벗어나 막연하고 정체된 농촌이 아니라 핍박받는 농민들의 애환을 노래함. 이후부터 그는 우리 민족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는 농촌 현실을 바탕으로 민중들과 공감대를 이루려는 시도를 꾸준히 하고 있음. 시집에 『새재』(1979), 『달넘세』(1985), 『남한강』(1987), 『우리들의 북』(1988), 『길』(1990) 등이 있음.
출처 : 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