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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열~전영택

이청준 선학동 나그네

작성자두레박|작성시간11.04.26|조회수1,503 목록 댓글 0

선학동 나그네

이청준

핵심 정리

▪ 갈래 : 단편소설, 순수소설, 액자 소설, 여로형 소설

▪ 성격 : 전통적. 신비적. 애상적

▪ 문체 : 간결체, 낭만적, 암시적 문체. 호남지방의 사투리를 중심으로 한 토속적인 문체

▪ 배경 : 시간적 배경(외부 액자: 현대, 내부 액자: 외부 이야기의 30년 전쯤) 공간적 배경(호남지방의 선학동)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과 관찰자 시점.(현재 이야기는 '나그네', 과거 이야기는 '주막 주인'의 관점을 중심으로 서술되므로 제한적 시점이다.)

▪ 구성 : 시간의 역전적 구성과 추리 소설적 구성. 액자식 구성.

▪ 주제 : 한(恨)의 예술적 승화

 

 

줄거리

남도 땅 장흥에서도 버스로 다시 비좁은 해안 도로를 한 시간 남짓 내리 달린 끝에 회진. 사내가 버스에서 내려 선학동을 찾아든다. 해 안에 만조의 선학동 포구를 보기 위해서다. 그러나 돌고개 기슭과 관음봉의 오른쪽 산자락 끝을 이은 제방이 포구의 물길을 끊어 버려 선학동 포구는 빈 들판으로 변해 있었다.

선학동에는 옛날부터 기이한 이야기가 한 가지 전해 오고 있었다. 그 이야기는 포구 한쪽에 자리잡은 선학동의 뒷산이 법승의 자태를 닮고 있는 데서 연유된 것이다. 그래서 선학동 마을은 그 법승의 장삼자락에 안겨든 형국인데다가, 마을 앞 포구에 물이 차오르면 관음봉 쪽 산심의 어디선가로부터 법승이 북을 울려 대는 듯한 신기한 지령음(地靈音)이 물 건너 돌고개 일대까지 들려 오곤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에게 보다 더 관심이 가는 일은 선대들의 묘자리를 위해 관음봉 산자락 가운데서도 진짜 지령음이 솟아오르는 명당의 줄기를 찾는 일이었다.

한편, 이 마을을 선학동이라 부르게 된 까닭에는 더 깊은 연유가 있었다. 곧, 앞 포구에 물이 차 오르면 그 물에 비친 관음봉의 산 그림자가 영락없는 비상학의 형상을 띠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포구의 물길이 막혀 더 이상 관음봉이 한 마리 선학으로 물 위를 날아오를 수가 없게 되었다.

소리를 하는 여인을 찾아 여기까지 찾아든 사내는 학이 없는 선학동을 보자 그녀를 만날 수 없으리라 생각하여 저으기 실망을 한다. 사내는 날이 어두워지자 잠자리를 찾아 주막을 찾아 나선다. 그런데 주막집 주인은 사내에게 포구물이 말랐다고 학이 아주 날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해 준다. 주인 사내는 한 여자가 이 동네를 찾아들었다 떠난 이후 다시 선학동의 비상하는 학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하면서, 그 자세한 내력까지도 자세히 풀어놓는다.

한 삽십 년 전 주막집 주인이 술 심부름꾼에 불과했던 시절, 소리꾼 부녀가 이 마을에 찾아들었다. 소리꾼 아비는 주막에 머물면서 포구에 물이 차오르고 선학동 뒷산 관음봉이 물을 타고 한 마리 비상학으로 모습을 떠오르면 그 학을 벗삼아 소리를 하곤 하였다. 한 서너 달 소리를 하더니 소리를 하고 지내던 그들은 홀연히 마을을 떠났다.

그 뒤 칠팔 년이 흐른 뒤 소리꾼 여인이 죽은 소리꾼 아비의 유골을 들고 20여년 만에 다시 포구가 사라진 선학동을 찾아 들었다. 그리고 여인은 날마다 밀물 때를 잡아서 소리를 하였는데, 그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주막집 주인은 옛날의 비상학이 다시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여인은 유난히 힘을 들여 소리를 하더니 자정이 넘어서야 소리를 그치고, 아비의 유골을 암장한 후에 다시 선학동을 떠났다.

주막집 주인은 여인이 자신을 찾는 오라비가 찾아오면 더 이상 자기의 종적을 알려하지 말라고 하더라는 말을 전하면서 이야기를 끝맺었다.

다음 날 사내는 주인의 배웅을 받으며 고개를 넘어 선학동을 떠나간다. 사내를 바라보내면서 주막집 주인은 사내가 사라지고 푸르름만 무심히 비껴 흐르고 있는 고갯마루 위로 백학 한 마리가 문득 날개를 펴고 솟아올라 빈 하늘을 하염없이 떠돌고 있는 것을 본다.

 

 

구성 : 역전적 구성(과거와 현재의 역전 교체) - 후일담 형식

▪ 발단 : 선학동을 찾은 나그네

▪ 전개 : 선학동의 내력

▪ 위기 : 주막 주인의 회상 1 - 소리꾼 사내와 계집아이에 대한 기억

▪ 절정 : 주막 주인의 회상 2 - 소리꾼 사내의 죽음과 계집아이의 떠남

▪ 결말 : 나그네의 떠남과 백학의 비상

 

 

등장인물

• 나그네(손): 소리꾼 부녀의 의붓아들이자 의붓오라비. 눈이 먼 어린 누이를 버리고 도망간 일이 한이 되어 누이를 찾아 헤매는 인물. 나이는 50세 정도이고, 행색이 초라함

• 누이: 소리꾼의 딸로 아비 때문에 눈을 잃고, 삶의 한을 소리로 풀며 살아간다. 마음의 눈으로 세계를 바라볼 줄 아는 신비적 인물. 주제를 형상화하는 인물.

• 아버지: 떠돌이 명창. 오로지 소리에 빠져 딸의 눈을 멀게 하고 딸의 가슴에 한을 쌓게 하는 인물이다.

• 주막집 주인: 소리꾼 가족의 삶을 지켜보는 사람으로 이 작품의 내용 중 상당 부분을 이끌어 가고 있는 화자이다. 직접 만나지 못하는 나그네와 여자를 간접적으로 연결시켜주는 매개자 역할을 하는 인물.

 

 

■ 표현상의 특징

회상의 기법→요약과 장면 제시→ 구성의 긴밀성

시치미떼기의 문체, 암시적 표현 → 독자의 흥미 유도

환상적 묘사→자연과 예술의 조화→주제의 강조

▪ 사투리의 적절한 사용 → 현장감, 시실감, 향토적 정서 유발

▪ 비극적 감정을 낭만적으로 처리→감동의 효과

▪ 출전 : 계간 <문학과 지성>(1979년 여름호)

▪ <서편제>, <소리의 빛>, <선학동 나그네> 세 편이 모여 <남도 소리> 연작을 이룸.

 

 

■ 이해와 감상 1

<선학동 나그네>는 <서편제>, <소리의 빛>과 함께 남도의 소리, 즉 남도창을 제재로 삼고 있는 이청준의 연작 소설로,소리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비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오직 소리 하나에 시명을 바치며 떠돌이로 일생을 살아온 아버지, 앞을 보지 못하는 딸, 또 그들을 버리고 떠났으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계속 누이를 찾아 헤매는 오라비 등 모두 가슴에 서린 한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품은 한의 예술적 승화를 표현하기 위해 '비상학'이라는 상징적 형상을 동원하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은, 이 땅 위에서의 인간의 한과 그 한이 자연을 통해 수용되는, 현대한국소설에서는 드물게 보는 자연과 인간의 교통이 아름답게 그려지고 있어, 이청준 소설의 높이를 한 단계 더 높여주는 비상학이 되고 있다. 이청준의 연작 소설에서 그려지고 있는 소리는 도덕적, 인습적, 정치적 한의 표출이며 그 승화이다.

 

 

이해와 감상 2

이 작품은 삶의 한(恨)을 소리라는 예(藝)의 세계로 승화시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음의 세계'를 다룬 비현실적인 이야기이지만, 그렇게만 치부해 버릴 수 없는 묘한 감동을 우리에게 던져 주고 있다.

이 작품은 현재 이야기와 과거 이야기의 중층 구조(重層構造)로 짜여 있다. '눈먼 여자'가 중심이 되는 과거 이야기는 5단 구성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나그네와 주막 주인의 만남과 대화, 이별로 구성되어 있는 현재 이야기는 '위기' 단계가 없이 4단 구성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현재 이야기 속에는 인물(나그네와 주막 주인) 간의 갈등이 없기 때문이다.

한편,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비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예(藝)를 추구하며 떠돌이로 일생을 산 소리꾼 부녀(父女)나 그들을 잊지 못해 회한(悔恨)에 젖어 사는 나그네는 가슴에 한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 한(恨)이 애간장을 끊을 듯한 판소리로 승화되어 나타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이 작품은 한(恨) 서린 삶의 예술적 승화를 이야기로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여자의 소리에 의해 비상학이 재현되는 대목에서 삶의 예술의 절묘한 어우러짐을 목격하게 된다.

따라서, 이 작품은 다분히 신비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 특성을 살리기 위해 작가는 인물의 명명법(命名法)에까지 신경을 썼다. ‘사내, 손, 주인, 여자, 노인’ 등, 인물들은 모두 구체적인 이름이 없는 상태에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홍길동'이니 하는 식으로 구체적인 명명(命名)이 되어 있는 상태라면 어떠했을까? 아마도 이 작품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한(恨)의 예술적 승화(昇華)'를 제대로 구현해 내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대개의 신비적인 이야기들이 현실의 삶과 유리(遊離)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이 작품은 지난날 고달프게 살았던 우리 서민들의 삶과 정서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첨부파일 선학동 나그네(문제,이청준).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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