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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곡자(哭子) 허난설헌

작성자두레박|작성시간09.12.28|조회수3,491 목록 댓글 0

곡자(哭子)

 

허초희 난설헌(許楚姬蘭雪軒)

 

 

去年喪愛女 今年喪愛子(거년상애녀 금년상애자)

哀哀廣陵土 雙墳相對起(애애광능토 쌍분상대기)

蕭蕭白楊風 鬼火明松楸(소소백양풍 귀화명송추)

紙錢招汝魄 玄酒尊汝丘(지전초여백 현주존여구)

應知弟兄魂 夜夜相追遊(응지제형혼 야야상추유)

縱有腹中孩 安可冀長成(종유복중해 안가기장성)

浪吟黃臺詞 血泣悲呑聲(랑음황대사 혈읍비탄성)

 

아들의 죽음에 곡하다.

 

지난해에는 사랑하는 딸을 여의고

올해에는 사랑하는 아들까지 잃었네.

슬프디 슬픈 광릉 땅에

두 무덤이 나란히 마주보고 서 있구나.

사시나무 가지에는 쓸쓸히 바람 불고

솔숲에선 도깨비불 반짝이는데,

지전을 날리며 너의 혼을 부르고

네 무덤 앞에다 술잔을 붓는다.

너희들 남매의 가여운 혼은

밤마다 서로 따르며 놀고 있을 테지.

비록 뱃속에 아이가 있다지만

어찌 제대로 자라나기를 바라랴.

하염없이 슬픈 노래를 부르며

피눈물 슬픈 울음을 속으로 삼킨다.

 

[주]

- 지전(紙錢): 무당이 비손할 때에 쓰는 할 때 쓰는, 돈 모양으로 잇대어 둥글게 오려 만든 긴 종이 오리. (비손: 두 손을 싹싹 비비면서 신에게 소원을 비는 일)

- 무술: 제사 때 술 대신으로 쓰는 찬물. 현주(玄酒)

- 황대사: 당의 장회태자(章懷太子) 현(賢)이 지은 노래.

황대과사(黃臺瓜辭)라고도 한다

 

. 

 

■ 핵심정리

✴갈래 : 한시, 오언시

✴주제 : 자식을 잃은 슬픔

✴출전 : <난설헌집>

✴작가 : 허난설헌

✴연대 : 조선 명종 때

✴성격 : 독백적, 서정적, 애상적

'

 

   

 

■ 작가 허난설헌(1563-1589)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으로서 본관은 양천(陽川)이며 호는 난설헌이다. 그리고 별호는 경번(景樊)이며 본명은 초희(楚姬)이다. 강릉(江陵) 출생으로 엽(曄)의 딸이고, 봉()의 여동생이며, 허균의 누이로 이달(李達)에게 시를 배워 천재적인 시재(詩才)를 발휘했다.

아버지 허엽(1517 - 1580)은 호가 초당(草堂)으로 후에 경상감사를 역임하였고 동서분당 때 동인의 영수가 된 인물이다. 난설헌의 어머니는 허엽의 둘째 부인이었으며 허엽은 첫째 부인인 한씨 부인과의 사이에 두 딸과 아들 성(筬)을 두었고 김씨부인과의 사이에는 봉(), 난설헌(許蘭雪軒), 허균(許筠)의 2남 1녀를 두었다.

  1577년(선조 10) 안동 김씨 김성립(난설헌의 부 허봉과 김성립의 부 김첨은 호당의 고우로 친구지간에 혼사가 성립되었음)에게 출가 후 아버지 초당은 경상감사 벼슬 마치고 상경 길에 객사하고 난설헌이 제일 좋아하던 둘째 오라비 하곡은 당파에 몰려 귀양으로 질병에 죽고 사랑하는 자식 남매 마저 죽은 뒤 뱃속의 아이조차 사산되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남편은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으나 기방을 드나들며 풍류를 즐겼고, 시어머니는 시기와 질투로 그녀를 학대했다. 게다가 어린 남매를 잃고 뱃속의 아이마저 유산했다. 친정집에는 옥사(獄事)가 있었고, 동생 허균도 귀양가버리자 삶의 의욕을 잃고 시를 지으며 나날을 보내다가 27세로 요절했다. 이처럼 불행한 자신의 처지를 시작(詩作)으로 달래어 섬세한 필치와 여인의 독특한 감상을 노래했으며, 애상적 시풍의 특유한 시세계를 이룩하였다. 작품 일부를 동생 균이 명나라 시인 주지번(朱之蕃)에게 주어 중국에서 시집 《난설헌집》이 간행되어 격찬을 받았고 1711년 분다이야 지로[文台屋次郞]에 의해 일본에서도 간행, 애송되었다. 작품으로는 시에 《유선시(遊仙詩)》 《빈녀음(貧女吟)》 《곡자(哭子)》 《망선요(望仙謠)》 《동선요(洞仙謠)》 《견흥(遣興)》 등 총 142수가 있고, 가사(歌辭)에 《원부사(怨婦辭)》 《봉선화가》 등이 있다.

 

 

 

■ 이해와 감상 1

  지정무문(至情無文)이라 한다. 지극히 가까운 정분의, 지극히 절박한 감정에서는 글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뜻이다. 어린 두 자녀를 작금 양년 사이에 다 잃고 만, 모정의 아픔이야 실로어떻다 하랴. 그런 극한 상황에서도 통곡을 삼키고 심서를 가다듬어, 이런 한편의 시를 이루었음이 우선 대견스럽다.

고시체인지라 비록 엄격한 율격을 요하는 것은 아니나, 여기서는 몇차례의 환운에 의한 압운이 되어 있을 뿐, 기타는 거의 배려되어 있지않은 채, 조탁(彫琢)도 퇴고(推敲)도 안 거친 대로, 낙서하듯 그적거려 던져버린 것 같이 거칠다.

  그런데도 이 시가 우리의 마음을 이처럼 크게 울리는 것은 어째서일까?

흐트러진 심사에서는 해조(諧調: 잘 조화됨)보다 오히려 난조가 제격으로, 독자의 심금을 또한 같은 난조로 뒤흔들어 놓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는 필경, 시란 형식이나 기교보다는 심충(深衷)에서 솟구쳐 오르는 그대로의 가식없는 목소리여야 할 것임을 일깨워 주는 것이기도 하다.

끝구의 '황대사' 운운은, '내 황대사의 어미처럼 덕이 없고 사랑이 모자라, 제 자식을 스스로 연달아 죽인 것이나 다름없다.'는 자책(自責)이요자형(自刑)이다.

황대사는 다음과 같다.

 

種瓜黃臺下 瓜熟子離離

一摘使瓜好 再摘令瓜稀

三摘尙云可 四摘抱蔓歸

황대 아래 외 심으니

주렁주렁 외가 익네.

첫 번째는 외 좋으라 외 따내고

두 번째는 아직 배다 솎아내고

세 번째는 맛이 좋다 또 따내고

네 번째는 덩굴채로 걷어 가네.

  

* 당 고종(高宗)의 아들이 여덟인데, 위로 넷은 천후(天后)의 소생이다. 맏인 홍(弘)을 태자로 삼았으나, 계후(繼后: 두 번째 왕비)가 시기하여 독살하게 되자, 둘째인 현(賢)을 태자로 세웠다. 그러나 현은 수심에 가득차말이 없고, 이 노래를 지어 악공에 주어 부르게 하여, 상(임금)과 후(왕비)의 깨달음을 얻으려 했으나, 그도 결국 쫓겨나 죽고 말았다는 내용이다.

출처: "옛 詩情(시정)을 더듬어: 한국(韓國)역대명한시(名漢詩)평설", 손종섭, 1992

 

 

 

✴ 이해와 감상2

허난설헌이가 두 자식을 잃고 쓴 작품으로 세상을 떠난 자식에 대한 피눈물나는 슬픔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으로, 젊어서 딸과 아들을 연이어 잃고 난 후, 자식의 무덤 앞에서 그 슬픔을 곡진하게(자세하고 간곡하다) 노래하고 있는 시이다. 감정 이입의 방법을 사용하여 자연물을 바탕으로 정서가 표출되고 있으며, 의지할 데 없는 마음을 뱃속의 아기까지 거론하며 진솔하게 표출하고 있다. 마지막에 '황대노래를 부질없이 부르며/ 피눈물로 울다가 목이 메이도다'라는 표현에서 자식을 잃은 어미의 응축된 슬픔의 마음을 강하게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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