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수꾼
이강백
■ 핵심 정리
▶작자 : 이강백
▶갈래 : 희곡
▶성격 : 현실풍자적, 교훈적
▶제재 : ‘늑대와 양치기 소년’의 우화
▶주제 : 진실을 향한 열망주제
체제 유지를 위한 위선적 행위에 대한 비판
■ 줄거리 1
이리 떼의 습격을 미리 알리기 위해 세 명의 파수꾼이 망루에서 들판을 지키도록 되어 있다. 새로 파견된 파수꾼 '다'는 이리 떼가 발견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리 떼가 나타났다.'고 외치는 파수꾼들을 이상스럽게 생각한다. 소년은 이리 떼가 없다는 사실을 알려 마을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마을의 촌장이 나타나 소년을 설득한다. 촌장은 사실은 이리 떼가 없지만, 이리 떼가 나타난다는 거짓 정보도 때로는 가치 있는 일이라고 소년에게 말한다. 소년은 다시금 제자리에서 이리 떼가 나타났다는 신호인 양철북을 두드리는 일을 하게 된다.
■ 줄거리 2
새로 파견된 소년 파수꾼 ‘다’는 실제로 이리 떼를 본 적이 없고, 단지 다른 파수꾼의 신호를 들었을 뿐이다. 어느 날 저녁, 소년은 다른 파수꾼들이 잠을 자고 있는 사이, 망루에 올라가 보고 이리 떼의 정체가 흰구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내고는 그 사실을 촌장에게 알린다. 촌장은 소년을 찾아와 이리 떼가 없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촌장은 이리 떼에 대한 경계심으로 인한 사람들의 긴장이 마을의 질서를 유지시키고, 단결된 역량을 모아 나름대로의 번영을 지속시켰다는 논리로 소년을 설득한다. 촌장의 설득에 소년은 망루에 올라, 이리 떼가 없다는 말을 듣고 흥분해서 몰려온 마을 사람들 앞에서 이리 떼가 분명히 있다고 말 한다.
■ 이해와 감상 1
이리와 소년에 대한 우화(寓話)는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소년은 거짓 소문을 퍼뜨려 마을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골탕먹인다. 마을 사람들은 정작 이리가 나타났을 때에는 소년의 말을 듣지 않아 큰 피해를 입는다. 이 작품은 우화를 빌려 진실의 왜곡이 가져올 수 있는 엄청난 재앙에 대하여 강조하고 있다.
이 작품의 결말에서는 소년이 촌장의 설득을 받아들여 스스로 거짓 보고에 앞장 서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관객들은 이처럼 거짓의 길을 선택한 소년 파수꾼의 처지에 연민과 분노를 느끼고, 진실을 용기 있게 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된다.
진실을 말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진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진실을 말할 수 없는 상황, 진실을 용기 있게 외치는 고통보다는 지배자의 달콤한 유혹을 선택하는 소년의 모습이 극적으로 잘 표현되어 있다.
우화적 기법은 겉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 이상의 깊은 의미나 내용을 상징적으로 함축해 준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 숨겨진 의도를 파악할 수 있어야 올바른 감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이해와 감상 2
이 작품은 ‘늑대와 양치기 소년’이라는 이솝 우화를 변용해 1970년대의 정치 상황을 풍자한 희곡이다. 작가는 반공이라는 안보 논리로 국민에게 진실을 왜곡하는 당시의 정권을 우화적인 수법으로 풍자하고 있다. 존재하지도 않는 이리 떼를 이용해 진실을 왜곡하며 위선적인 행동을 하는 ‘촌장’, 독재 권력의 지배 질서를 합리화하는 데에 이용당하는 ‘파수꾼’들, 순수한 마음을 지니고 있지만 결국 ‘촌장’에게 설득당하는 소년 파수꾼 ‘다’, 이들의 모습은 곧 과거 독재 정권 시대를 살았던 한국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 작품 읽어 보기
등장 인물
해설자, 파수꾼 가, 파수꾼 나(노인), 파수꾼 다(소년)
파수꾼 '나'는 확신 있게 양철북을 두드린다. '다'는 여느 때와는 달리 침착하게 일어선다. 그리고 담요를 벗어 네모 반듯하게 갠 다음 식탁 위에 놓는다. 그는 북을 두드리는 나를 바라보면서 몹시 안타까운 표정이 된다.
가 : 북소리 중지! 이리 떼는 물러갔다.
다 : 정말 이리가 있다구 믿으세요?
나 : 보렴, 방금도 이리 떼가 오질 않았니? 그렇지 않다면 내가 왜 양철북을 치며 평생을 보냈겠느냐? 서운하다. 아무리 아픈 애라지만 너무 심한 말을 하는구나.
다 : 죄송해요. 하지만 어쩜 그 많은 나날을 단 한 번도 의심없이 보내셨어요?
나 : 넌 그렇게도 무섭니, 이리가?
다 : 오히려 이리가 있다고 믿었던 때가 좋아던 것 같아요. 그땐 숨기라도 했으니까요. 땅에 엎드리며 아늑하게 느껴졌어요. 지금은요, 이리가 없으니 땅에 엎드려야 아무 소용없구요, 양철북도 쓸모가 없게 됐어요. 오직 이제는 제가 본 그 사실만을 말하고 싶어요.
해설자, 촌장이 되어 등장. 검은 옷차림. 이해심이 많아 보이는 얼굴과 정중한 태도. 낮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한다.
촌장 : 수고하시는군요, 파수꾼님.
나 : 아, 촌장님. 여긴 웬일이십니까?
촌장 : 추억을 더듬으러 왔습니다. 이 황야는 내가 어린 시절 야생 딸기를 따러오곤 했던 곳이지요. 그땐 이리가 무섭지도 않았나 봐요. 여기저기 덫이 깔려 있고 망루 위의 파수꾼이 외치는데도 어린 난 딸기 따기에만 열중했었으니까요. 그 즐거웠던 옛 추억, 오늘 아침 나는 그 추억을 상기시켜 주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래 이 곳엘 찾아온 거예요.
나 : 잘 오셨습니다, 촌장님.
촌장 : 오래 뵙지 못했더니 그 동안 흰 머리가 더 많아지셨군요.
나 : 촌장님두요, 더 늙으셨어요.
촌장 : 오다 보니까 저쪽 덫에 이리가 치어 있습디다.
나 : 이리요? 어느 쪽이죠?
촌장 : 저쪽요, 저쪽. 찔레 덩쿨 밑이던가요…….
나 : 드디어 잡는군요!
파수꾼 '나' 퇴장. 촌장은 편지를 꺼내 '다'에게 보인다.
촌장 : 이것, 네가 보낸 거니?
다 : 네, 촌장님.
촌장 : 나를 이곳에 오도록 해서 고맙다. 한 가지 유감스러운 건, 이 편지를 가져 온 운반인이 도중에서 읽어 본 모양이더라. '이리 떼는 없구, 흰구름뿐.' 그 수다쟁이가 사람들에게 떠벌리고 있단다. 조금 후엔 모두들 이 곳으로 몰려올거야. 물론 네 탓은 아니다. 넌 나 혼자만을 와달라구 하지 않았니? 몰려오는 사람들은 말하자면 불청객이지. 더구나 어떤 사람은 도까까지 들고 온다더라.
다 : 도끼를 왜 들고 와요?
촌장 : 망루를 분순다고 그런단다. '이리 떼는 없구, 흰구름뿐.' 이것이 구호처럼 외쳐지구 있어. 그 성난 사람들만 오지 않는다면 난 너하구 딸기라도 따러 가고 싶다. 난 어디에 딸기가 많은지 알고 있거든. 이리 떼를 주의하라는 팻말 밑엔 으레히 잘 익은 딸기가 가득하단다.
다 : 촌장님은 이리가 무섭지 않으세요?
촌장 : 없는 걸 왜 무서워하겠니?
다 : 촌장님도 아시는군요?
촌장 : 난 알고 있지.
다 : 아셨으면서 왜 숨기셨죠? 모든 사람들에게, 저 덫을 보러 간 파수꾼에게, 왜 말하지 않는 거예요?
촌장 : 말해 주지 않는 것이 더 좋기 때문이다.
다 : 거짓말 마세요, 촌장님! 일생을 이 쓸쓸한 곳에서 보내는 것이 더 좋아요? 사람들도 그렇죠! '이리 떼가 몰려 온다.' 이 헛된 두려움에 시달리는데 그게 더 좋아요?
촌장 : 얘야, 이리 떼는 처음부터 없었다. 없는 걸 좀 두려워한다는 것이 뭐가 그렇게 나쁘다는 거냐? 지금까지 단 한 사람도 이리에게 물리지 않았단다. 마을은 늘 안전했어. 그리고 사람들은 이리 떼에 대항하기 위해서 단결했다. 그들은 질서를 만든 거야. 질서, 그게 뭔지 넌 알기나 하니? 모를 거야, 너는. 그건 마을을 지켜 주는 거란다. 물론 저 충직한 파수꾼에겐 미안해. 수천개의 쓸모 없는 덫들을 보살피고 양철북을 요란하게 두들겼다. 허나 말이다. 그의 일생이 그저 헛되다고만 할 순 없어. 그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고귀하게 희생한 거야. 난 네가 이러한 것들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만약 네가 새벽에 보았다는 구름만을 고집한다면, 이런 것들은 모두 허사가 된다. 저 파수꾼은 늙도록 헛북이나 친 것이 되구, 마을의 질서는 무너져 버린다. 얘야, 넌 이렇게 모든 걸 헛되게 하고 싶진 않겠지?
다 : 왜 제가 헛된 짓을 해요? 제가 본 흰구름은 아름답고 평화로웠어요. 저는 그걸 보여 주려는 겁니다. 이제 곧 마을 사람들이 온다죠? 잘 됐어요. 저는 망루 위에 올라가서 외치겠어요.
촌장 : 뭐라구? (잠시 동안 침묵을 지킨 후에 웃으며) 사실 우습기도 해. 이리 떼? 그게 뭐냐? 있지도 않는 그걸 이 황야에 가득 길러 놓구, 마을엔 가시 울타리를 둘렀다. 망루도 세웠구, 양철북도 두들기구, 마을 사람들은 무서워서 떨기도 한다. 아하, 언제부터 네가 이런 거짓놀이에 익숙해졌는지 모른다만, 나도 알고는 있지. 이 모든 것이 잘못되어 있다는 걸 말이다.
다 : 그럼 촌장님, 저와 같이 망루 위에 올라가요. 그리구 함께 외치세요.
촌장 : 그래, 외치마.
다 : 아, 이젠 됐어요!
촌장 : (혼자말처럼) …… 그러나 잘 될까? 흰구름, 허공에 뜬 그것만 가지구 마을이 잘 유지될까? 오히려 이리 떼가 더 좋은 건 아닐지 몰라.
다 : 뭘 망설이시죠?
촌장 : 아냐. 아무 것두……난 아직 안심이 안 돼서 그래. (온화한 얼굴에서 혀가 낼름 나왔다가 들어간다.) 지금 사람들은 도끼까지 들구 온다잖니? 망루를 부순 다음엔 속은 것에 더욱 화를 낼 거야! 아마 날 죽이려구 덤빌지도 몰라. 아니 꼭 그럴 거다. 그럼 뭐냐? 지금까진 이리에게 물려 죽은 사람은 단 한명도 없었는데, 흰구름의 첫날 살인이 벌어진다.
다 : 살인이라구요?
촌장 : 그래, 살인이지. (난폭하게) 생각해 보렴, 도끼에 찍힌 내 모습을. 피가 샘솟듯 흘러내릴 거다. 끔직해. 얘, 너는 그런 꼴이 되길 바라고 있지?
다 : 아니에요, 그건!
촌장 : 아니라구? 그렇지만 내가 변명할 시간이 어디 있니? 난 마을 사람들에게 왜 이리 떼를 만들었는지, 그걸 알려 줘야 해. 그럼 그들도 날 이해해 줄거야.
다 : 네 그렇게 말씀하세요.
촌장 : 허나 내가 말할 틈이 없다. 사람들이 오면, 넌 흰구름이라 외칠 거구, 사람들은 분노하여 도끼를 휘두를 테구, 그럼 나는, 나는…… (은밀한 목소리로) 얘, 네가 본 그 흰구름 있잖니, 그건 내일이면 사라지고 없는 거냐?
다 : 아뇨. 그렇지만 난 오늘 외치구 싶어요.
촌장 : 그것 봐. 넌 내 피를 보고 싶은 거야. 더구나 더 나쁜 건, 넌 흰구름을 믿지도 않아. 내일이면 변할 것 같으니까, 오늘 꼭 외치려구 그러는 거지. 아하, 넌 네가 본 그 아름다운 걸 믿지도 않는구나!
다 : (창백해지며) 그건, 그건 아니에요!
촌장 : 그래? 그럼 너는 내일까지 기다려야 해. (괴로워하는 파수꾼 다를 껴안으며) 오늘은 나에게 맡겨라. 그러면 나도 내일은 너를 따라 흰구름이라 외칠테니.
다 : 꼭 약속하시는 거죠?
촌장 : 물론 약속하지.
다 : 정말이죠. 정말?
촌장 : 그럼. 정말 약속한다니까.
파수꾼 나가 들어온다.
나 : 또 헛치었습니다. 이리는 워낙 교활해서요. 친 것 같아도 가 보면 달아나구 없어요.
촌장 : 다음에는 꼭 잡히겠지요.
나 : 미안합니다. 이번에 잡았더라면 그 껍질을 촌장님께 선사하구 싶었는데…….
촌장 : 받은 거나 다름없이 감사합니다.
나 : (촌장에게 안겨 있는 다를 가리키며) 그 앤 지금 몹시 아픕니다.
촌장 : 네, 열이 있는 것 같군요.
나 : 간밤에 담요를 덮지 않아서 병이 났어요.
촌장 : 이만한 나이 때 누구나 한 번씩은 앓는 병이겠지요.
나 : 내 잘못이었어요. 담요를 꼭 덮어 줘야 하는 건데.(다에게) 얘야, 난 널 좋아해. 아픈 것 빨리 좀 나아 주렴.
다 : (힘없이 웃으며)……고마워요.
나 : (관객석 쪽으로 돌아서다가, 흠칫 놀라며) 웬 사람들이 이렇게 몰려오죠?
촌장 : 마을 사람들이지요.
나 : 마을 사람들요?
촌장 : (관객들을 향해) 어서 오십시시오, 주민 여러분. 이 애가 그 말을 꺼낸 파수군입니다. 저기 방긋 웃고 있는 식량 운반인. 이 애가 틀림없지요? 네. 그렇다고 확인했습니다. 이리 떼인지 이니면 흰구름인지, 직접 이 아이의 입을 통하여 들어 봅시다.
파수꾼 다, 쓰러질 것 같은 걸음으로 망루를 향해 걸어간다. 나가 근심스럽게 쫓아간다.
나 : 얘야, 괜찮겠니?
다 : …… 네.
나 : 아무래도 걱정이 되는구나. 넌 이리 떼란 말만 들어도 벌벌 떠는 겁쟁인데. 망루 위에 올라가서 엎드리면 안 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널 보러 오지 않았니? 얼마나 큰 영광이냐. 이 기회에 말이다, 넌 너 자신이 파수꾼이라는 걸 힘껏 자랑해야 한다. 알았지, 응?
촌장 그만 올라가게 하십시오.
파수꾼 다는 망루 위에 올라간다. 긴 침묵. 마침내 부르짖는다.
다 : 이리 떼다! 이리 떼가 몰려온다!
파수꾼 가의 손이 번쩍 들려지며 그도 외친다. 파수꾼 나는 신이 나서 양철북을 두드린다. 북소리, 한동안 계속된다.
가 : 북소리 중지! 이리 떼는 물러갔다.
촌장 : 주민 여러분! 이것으로 진상은 밝혀졌습니다. 흰구름은 없으며 이리 떼 뿐입니다. 이 망루는 영구히 유지되어야겠지요. 양철북도 계속 쳐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다음 이리의 습격 때까진 잠시 시간적 여유가 있습니다. 그 틈을 이용하여 돌아가십시오. 가시거든 마을 광장에 다시 모이시기 바랍니다. 수다쟁이 운반인의 처벌을 논의합시다. 그럼 어서 돌아가십시오. 이리 떼가 여러분을 물어뜯으러 옵니다.
망루 위에서 파수꾼 다가 내려온다.
나 : 난 네가 이렇게 용감해질 줄은 몰랐구나.
촌장 : 고맙다. 정말 잘해 주었다.
나 : 아냐, 난 몰랐던 건 아니었어. 넌 나에게 용감한 사람이 되마구 약속하질 않았니? 난 그 때 이미 알아본거야, 넌 꼭 훌륭한 파수꾼이 될 거라구.
촌장 : 얘, 나 좀 보자. (한갓진 곳으로 데리고 가서) 너한테는 안됐다만, 넌 이 곳에서 일생을 지내야 한다.
다 : …… 네?
촌장 : 마을엔 오지 말아라.
다 : (침묵)
바람 부는 소리가 거칠게 들려온다.
촌장 : 난 저 사람들이 싫어. 내 마음은 너와 함께 딸기 따기에 가 있다. 넌 내 추억이야. 너에게는 내가 늘 그리워하던 것이 있다.
사이.
촌장 : …… 하지만, 여긴 너무 쓸쓸해.
사이.
촌장 ……미안하다.
사이.
촌장 : 그럼 잘 있거라.
나 : 가시려구요, 촌장님?
촌장 :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서요.
나 : 제가 저만큼 바래다 드리지요. 덫도 좀 살펴볼 겸 해서요. (함께 걸어가며) 그런데 말입니다, 양철북을 치던 내 모습이 멋있지 않던가요?
촌장과 파수꾼 나, 퇴장한다. 바람소리만이 더욱 거칠어진다. 잠시 후, 망루 위의 파수꾼이 '이리 떼다!' 외친다. 파수꾼 다는 조용히 양철북을 두드리기 시작한다. ――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