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이 다음에 커서 어른이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잡초처럼 키워야지."
내 속에 막연한 다짐을 해왔던거 같아요.
원인은 할머니가 동기부여를 해주신거 같습니다.
우리 할머니는 맏이인 오빠를 귀하게 여기시고 둘째인 저, 다음에 여동생.
이렇게 줄줄이 손녀가 태어나자 실망하셨습니다.
어머니 말씀은 제가 아기 터를 잘못 팔아서 손자가 안생기고 또 손녀가 태어났다고 할머니가 저를 구박하셨다고 합니다.
물론 어머니도 연이어 두번 딸을 낳아서
할머니가 시집살이 시키고 안좋아하셨다고 합니다.
어린마음에 할머니의 쌀쌀맞음.
잠잘때는 젤 춥고 바람들어오는 유리로된 미닫이 방문앞이 제 요 이부자리를 까는 자리였습니다.
몸을 오그리면서 슬프고 스산한 겨울밤이었습니다.
여동생은 아기 터를 잘 팔아서 남동생 둘이 태어났지요.
여동생 잠자리는 젤 따뜻한 구들막 자리에 이불을 깔고자고 복판 자리는 할머니, 저는 맨 추운 냉돌에서 매일 잠을 잤습니다.
이해가 안됐습니다.
할머니는 저에게 매일 잔소리를 하셨습니다.
이거하면 안된다.
이불 밟지 마라.
문지방 밟지 마라.
매일 혼나면서 결심했습니다.
다 하지마라 하시니
도대체 할 수 있는게 뭐지?
나는 크면 절대 아이에게 잔소리 안해야지.
그리고 제가 원하는 것이 분명히 있는걸 확실히 알고있는 어린 저로서는...
... 내 아이는 잡초처럼 키울거야!
라고 결심하였습니다.
희망님의 잡초 라는
시를 보니
문득 어린날의 제가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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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포도송이 이옥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1 오지랖님
맞습니다
잡초가 강인하지요
어린아이 때부터 할매에게
맨날 쿠사리먹고 저도 강해졌습니다ㅎ
지금도 기억나는데요
6~7살 때쯤 실컷놀고 배고파서 저녁밥 더 달라하면 밥 많이 먹는다고..
반찬도 조금씩 먹어라하시고
제 생각엔 ...
저만 혼난거 같아요...
결혼해서 우리 아이들 데리고 가서는... 노쇄하시고... 애 잘봐주셔서
그걸로 퉁쳤습니다ㅎㅎ -
작성자희망 작성시간 26.06.11 글 잘 읽었습니다. 포도송이님 어린 시절 아픔을 담담하게 글로 잘 표현하였네요. 저도 어린 시절 외갓집에 놀러 가면 왕할머니에게 왠지 정이 가지 않았습니다. 60년 세월이 지나 이모님으로 부터 그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가 외갓집에 장녀이지만 왕할머니로 부터 출가외인으로 취급받았고, 저도 그에 따라 왕할머니로 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어릴 때는 전후 사정을 잘 몰라지만, 60년후에 그 때 사정을 알게 되어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그때의 경험은 나로 하여금 저의 외손자에게 조그만 더 따뜻한 시선을 주게 합니다. 손주가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내가 이세상을 떠난 한참후에 할아버지의 사랑을 기억해 줄 것으로 믿습니다. 저를 비롯하여 여러사람으로 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손주는 이러한 사랑의 힘으로 향후 어려움이 발생하더라도 잘 헤쳐 나아갈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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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푸른하늘 은하수 작성시간 26.06.11 포도송이님의 글은 언제나 푸근하고 정겹고 추억이 떠오르게 합니다.
마음의 빗장을 열개하는 마법의 글~~♡ -
작성자포도송이 이옥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2 희망님 댓글 감사합니다
저도 장녀로 집안일 많이하고 제딴엔 열심히 공부했는데 왜 그러실까?
결혼하고나서 어머니께 물어봤더니...
터를 잘 못팔아서 그렇다고..ㅎ
할머니도 형제 중에 남자가 없고 전부 딸이어서 할머니가 맏딸로 책임감이 강하시고...
사촌 동생을 양자로 삼았다는 내력을 듣고 할머니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
작성자포도송이 이옥선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12 푸른하늘은하수님 오랜만입니다
요즘 연이은 행사로 피곤해서
우리집이 오르막에 있거든요
길 가 벤취에서 쉬면서..
노변정담 가벼운 신변잡기를 올려봤습니다
집에와서 딸에게 글 올린거 자랑했더니
아~네~
퇴근하고 피곤한지 시큰둥하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