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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에세이

[광역論壇]역사의 시계, 윤동주를 향한 기만적 소급을 멈춰라 (상)

작성자광역매일|작성시간26.06.05|조회수22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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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줄의 시(詩)가 국경을 넘고 시대를 관통해 영혼을 흔들 때, 우리는 그것을 문화적 유산이자 민족의 영혼이라 부른다. 일제강점기라는 전대미문의 어둠 속에서 밤하늘의 별을 노래하며 부끄럽지 않은 삶을 갈구했던 시인 윤동주. 그의 시는 8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 겨레의 가슴속에 살아 숨 쉬는 정신적 지표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이거룩한 영혼의 국적과 민족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기이한 역사 왜곡은 우리를 깊은 우려와 분노에 휩싸이게 한다.

 

중국 당국은 자국 영토 내에서 발생한 모든 역사를 자국사로 편입하려는 거대한 `역사 공정`의 일환으로, 지린성 룡정시에 위치한 윤동주 생가 표지석에 그를 `중화인민공화국 조선족`이자 `중국 조선족 애국시인`으로 명시해 놓았다. 대중 포털 사이트인 바이두를 비롯한 관변 매체들 역시 이 왜곡된 서사를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일견 출생지라는 공간적 표상에 기대어 그럴싸한 외피를 두른 듯 보이지만, 실상 역사적 사실과 법적 근거, 그리고 시공간적 인과관계를 철저히 무시한 오만하고도 거친 `소급적 오류`에 불과하다. 째깍이는 역사의 시계를 조금만 뒤로 돌려 냉정하게 대조해 본다면, 윤동주가 중화인민공화국의 조선족이 될 수 없는 명백한 모순들이 백일하에 드러난다.

 

먼저, 국가의 성립 연대와 윤동주 시인의 생몰 연대를 냉정하게 비교해 보아야 한다. 오늘날 우리가 인지하는 중국, 즉 중화인민공화국(PRC)이라는 국호와 국가 체제가 공식적으로 이 지구상에 출현한 것은 1949년 10월 1일이다. 마오쩌둥이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후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신중국 건국을 선포하면서 비로소 이 국호가 발효되었다. 반면, 윤동주 시인의 생몰 연대는 1917년 12월 30일 출생, 1945년 2월 16일 서거다. 시인이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의 차디찬 마룻바닥에서 원인 모를 주사를 맞아가며, 조국의 광복을 불과 반년 앞두고 숨을 거둔 그 시점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시인이 태어나고, 고뇌하고, 숨을 거둔 모든 시공간 속에서 중국대륙은 중화민국(대륙 시기) 혹은 군벌들의 활거지였으며, 시인의 출생지인 북간도는 일제가 세운 괴뢰국 `만주국`의 통치 하에 있었다. 사후 4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탄생한 국가가, 미래에 태어날 자신들의 국적법과 통치권을 소급하여 4년 전 사망한 이국(異國)의 시인에게 적용하는 것은 현대 국제법과 역사학의 근간인 `소급효 금지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폭거다. 시인은 생전에 중화인민공화국의 여권을 구경해 본 적도, 그 나라의 공민으로서 권리와 의무를 행한 적도 없다.

 

중국 측이 윤동주를 자국의 소수민족으로 규정하는 또 다른 명분은 그가 태어난 연변 지역이 오늘날 `조선족 자치주`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 역시 행정학적ㆍ법률적 시차를 교묘하게 가린 눈속임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이 자국 내 소수민족을 체계화하고 `조선족`이라는 법적 카테고리를 정립한 것은 1949년 건국 이후, 고도의 정치적ㆍ통치적 목적에 의해서였다. 건국 직후 중국 전역에는 자신들을 별도의 민족이라 주장하는 집단이 400여 개에 달했다. 사회주의 정권의 안정적 유지를 위해 중국 정부는 스탈린의 민족 정의를 기반으로 이들을 분류하는 민족식별공작(民族識別工作)을 전개했다.

 

1950년부터 시작된 이 공작은 1953년에 이르러서야 조선족을 포함한 주요 소수민족의 명칭을 공식 등록했고, 최종적으로 1979년 윈난성의 지눠족을 끝으로 확정되면서 오늘날의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이라는 56개 체제가 완성되었다. 

 

이를 뒷받침하는 법적 근거 역시 철저하게 윤동주 사후의 산물이다. 1949년의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공동강령`을 시작으로, 1952년 `중화인민공화국 민족구역자치실시강요`가 공포되면서 비로소 소수민족의 자치구역 설정이 법제화되었다. 윤동주의 고향인 연변에 연변조선족 자치구(이후 자치주로 개칭)가 설립된 것은 1952년 9월이며, 이를 국가의 기본 제도로 확정한 최초의 헌법(54헌법)은 1954년에 제정되었다. 결국, 북간도 명동촌 지역이 행정학적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의 성격을 띤 조선족 자치주가 된 것은 시인이 사망한 지 최소 7년에서 9년이 지난 뒤의 일이다. 사후에 개편된 행정 구역과 법적 명칭을 들이대며 고인을 소수 민족이라 부르는 것은 역사에 대한 모독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러한 역사 왜곡이 학술적 논쟁에만 머물지 않고, 시인의 체취가 남아있는 물리적 공간마저 삼켜버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룡정시 명동촌의 윤동주 생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중국화 진척`은 해가 다르게 노골적이고 가속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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