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kyilbo.com/sub_read.html?uid=369542§ion=sc30§ion2=
프랑스 알자스에 사는 프란츠는 매일 지각하는 학생이다. 오늘도 지각을 했지만 평소와는 달리 야단치지 않는 아멜 선생님. 마을 어른들까지 와 있는 교실. 프란츠의 눈에는 모든 게 의아했다. 1971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패배해 프랑스 영토는 독일군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앞으로는 독일어만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오늘은 마지막 프랑스어 수업이다. 프란츠는 모국어인 프랑스어 배우기에 소홀했던 자신을 반성한다. 아멜 선생님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며 수업을 마무리한다. 12시 정각이 되자 교회탑 종이 울리고 독일군 소리가 들려온다. 알퐁스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은 나라를 잃은 슬픔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민족의식과 애국심으로 가슴 뭉클하게 한 작품이다.
내게도 가슴 뭉클한 마지막 수업이 찾아왔다. 언제 끝날지 모를 아득한 지난날. 시간은 가고 세월은 흘렀다. 그렇게 지난 4년 반의 힘든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오늘은 나의 대학원 박사과정 마지막 수업일. 저마다 준비해 온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발표하는 시간이다. 부모님의 만남부터 시작하여 자신이 태어나 지금까지 겪어온 많은 사건들을 헤쳐 나온 이야기를 하는 학생, 이제 막 결혼한 신혼부부 학생의 신혼여행지가 중학생 시절 엄마와 함께 갔던 이탈리아 로마의 트레비 분수와 겹치면서 예전 추억 사진과 비교한 인상적인 장면, 한 권의 책으로 인생의 명언을 사진과 엮어내어 예술성이 돋보이는 작품 등 자유로운 콘텐츠로 다채롭게 구성되었다.
금요일 저녁 7시에 시작한 수업은 자정을 넘겼다. 모두 소중한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준비해서 나누는 자리인 만큼 늦은 밤이지만 학생들은 흐트러짐 없이 진중했다. 나 또한 그동안의 수많은 굵직한 인생 사건들과 현재의 나 그리고 미래에 되고 싶은 나로 사진과 영상을 알차게 준비하여 거의 1시간을 발표했다.
내 인생의 속도는 대학원을 다니기 전과 후로 나뉘어 질 만큼 다르게 흘렀다. 이전에도 바쁘게 움직이며 살아온 터라 지금껏 살아 온 만큼 충실히 하면 되겠지 생각했으나 큰 오산이었다. 학부 전공과는 전혀 다른 상담심리 전공을 택한 것도 한 몫을 했다. 석사와 박사 필수과목을 동시에 수강해야 했기에 여느 대학원생에 비해 수강과목이 배로 많았다. 그렇게 4배속을 달리는 기분으로 매일을 버텨냈다.
특히 3학기 차에는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 전공 공부 1년이 지나 2년 차로 접어드는데도 갈수록 어려워지는 전공에 공부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특히 학부 때부터 심리학을 전공하여 들어온 동료들은 전문 지식이 탄탄하였고 연구력 또한 따라 잡을 수 없을 만큼 뛰어났다. 늦은 나이에 직장일 해가며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있는 내가 참으로 한심한 생각까지 들었다. 더더욱 전공자에 비해 학사, 석사 합하면 6년이나 뒤쳐진 상담심리 공부를 단시간에 따라 잡겠다고 욕심을 낸 나 자신이 바보 같았다. 그렇게 매주 강도 높은 과제와 발표로 멘탈이 무너지고 있을 즈음 긍정심리학을 접하면서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졌다.
상담심리 전공이 아닌 교육행정 전공을 선택했다면 25년 경력자인 내게는 아주 접근이 수월한 공부였을 것이다. 나는 쉬운 길을 택하지 않고 어려운 길을 택한 것 뿐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조바심도 사라졌다. 이제부터라도 나의 속도로 차분히 해 나가자 마음먹었다. 그렇게 또 한 학기를 보냈다.
수강신청 첫날은 언제나 재빠른 속도로 클릭을 해야 했다. 수강신청 과목이 수강인원 제한으로 마감되어 버릴 경우 필수과목을 꼭 들어야 하는 나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기에 더 신경써서 긴장감을 유지해야 했다. 수강 과목을 놓쳐 자칫 한 학기를 더 다녀야 할 수도 있기에 매 학기 수강신청은 나를 아주 예민한 상태로 만들었다. 초단위까지 나오는 수강신청 시계를 옆에 두는 건 필수였다.
상담실습, 집단상담, 심리검사, 현대심리 세미나와 같은 실습이 병행되는 수업은 나에게는 가장 힘든 시간이었다. 현장 필드에 있지 않은 나에게는 실전 상담 경험이 없었기에 이론만 배우는 과목에 비하여 부족함이 더 두드러졌다.
교수님이 지도해 주시는 대로 매주 과제 제출하고 AI 챗봇 상담 연습하고 동료 학생들에게 피드백 받고 한 학기 과정이 끝날 무렵에는 스스로 조금씩 성장하는 게 눈에 보였다. 그렇게 한 단계씩 밟아가며 학업에 충실히 하며 늦은 밤까지 수업에 집중했다. 자정을 넘긴 귀가는 일상이었다.
하루하루 마음을 다잡고 몰입한 결과 지난 학기 전 과목 4.5 만점 학점을 받았다. 성적 발표가 나는 날 얼마나 놀랐는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내가 잘못 본 게 아닌지 내 눈을 의심하며 다시 보았다. 동료학생들은 연령대가 다양하다. 20대 중반부터 50대까지. 젊은 20대를 제치고 내가 1등을 했다는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 4.5 만점의 자부심의 여운은 아직도 내 가슴에 남아있다. 아마도 평생 남아있을 것 같다. 늦깎이 대학원생으로 고군분투한 지난날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었다.
불타는 학구열 하나로 진학했던 대학원. 결코 쉽지 않았던 박사과정생의 길. 그동안은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수료를 앞둔 지금은 뿌연 안개가 걷히고 선명한 장면이 그려진다. 포기하지 않는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차올랐다.
함께 한 멋진 동료들, 열정적인 교수님들, 넓은 캠퍼스가 벌써 그리워진다. 부서장과 팀원들의 배려와 응원 없이는 혼자서는 결코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강북교육지원청 중등교육지원과 가족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