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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에세이

[해외기고]<해외기획…미 텍사스> 놋그릇 이야기

작성자광역매일|작성시간26.06.09|조회수22 목록 댓글 0

https://www.kyilbo.com/sub_read.html?uid=369616&section=sc30&section2=

그들은 본래의 모습을 오래 잊어버리고 낮선 땅에서 방치되었다. 시퍼런 남루로 제 몸을 감싸고 웅크린 채 서로 기대어 오래 침묵했다. 하지만 반세기 전만 해도 어느 고명한 양가집 주인 밥상 위에 군림했었다. 그 이름도 유명한 안성 방짜 유기 놋그릇, 나는 이 병든 식구들을 모셔왔다. 

 

그들을 집에까지 안고 오면서 나눈 이야기들은 이랬다. “잘 왔다. 본래 귀족인 너희들이 누더기 입고 홀대받은 세월을 잘 참아냈구나” “가난한 우리 집에 가자, 너희들의 옛 정기를 회복해 줄께 ”“품위를 지키게 낡은 옷을 벗고 빤짝빤짝 빛나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할게“

 

“이곳은 미국이지만 우리 집에 가면 너의 고향에 돌아온 느낌일 거야“ 

 

요즘 들어 무리하게 사용한 손이 놋그릇을 닦기에는 마음이 쉬 허락하지 않는다, 시퍼런 녹을 뒤집어쓰고 있는 그릇들을 하나하나 녹을 초벌 신문지로 닦아냈다. 미국에도 유기 제품을 엔틱 가게에서 본 것이 기억나 인터넷 검색창에서 찾아보았다. ‘브라소’라는 놋그릇 닦는 제품을 발견해 월마트에서 구했다. 

 

푸른 녹을 닦자 빛바랜 그릇들이 본래의 자기 성정을 조금씩 들어냈다. 잘 닦아 환해지는 아름다운 유기의 광채가 빛나기까지 내 손목이 아리도록 닦았다. 단련된 놋쇠의 구리빛 찬연함, 이 소박한 기쁨에 옛 기억 하나가 점화된다.

 

저문 날 오소소 비를 맞고 들어선 나에게 어머니는 이불 속 놋 주발에 담긴 밥을 꺼내 상을 차려 주셨다. 놋 주발 뚜껑 위에 손이 닿으면 온몸에 전해지는 어머니의 그 따뜻함이 묻어온다. 그 저녁밥 한 그릇의 따스함이 울컥 그리워진다. 

 

유년 시절 명절 무렵 어느 날 풍경이 흑백영화를 보듯 영상이 선명하다. 가을 햇살이 유난히 좋은 날, 어머니는 광에서 놋그릇과 제기를 꺼내어 감나무 그늘 아래 가마니를 깔고 양재기에 물을 담아 짚으로 수세미를 만들어 다 준비해 놓으시고 우리를 부른다. 언니와 나는 설날 제상에 올릴 놋그릇을 닦는 날임을 금방 알아차린다.

 

어머니는 며칠 전부터 기왓장을 구해 와서 바수어 고운 가루를 만들어 놓았다. 철없는 나는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기도 하지만 거절할 수 없는 재미의 유혹이 도사리고 있다. 유혹은 새살 위인 언니가 재미난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이다. 이광수의 ‘흙’ 박화성의 ‘고개를 넘으며’ 등지금은 잘 생각나지 않는 이야기를 언니는 술술 풀어냈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신명이 나고 조금씩 놋그릇을 닦다 보면 어느새 서서히 윤이 나는 광택에 나도 몰래 홀렸다. 9첩 반상 놋그릇 닦는 일이 끝날 쯤이면 언니의 이야기보따리도 끝이 났다. 아직도 내가 소설 읽기를 업으로 하는 것은 어쩌면 언니의 이야기에서 비롯됐는지도 모른다.

 

놋쇠 제품인 유기는 페르시아, 인도, 중국을 통해 신라 초기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중 방짜 유기는 구리 78%와 주석 22%를 합금한 것이다. 우리나라 특유의 금속 기법으로 쇠를 불에 달구어 가공한 제품이다. 방짜가 질이 제일 좋고 통짜는 쇠와 잡금을 썩어 질이 떨어진다.

 

옛날에는 유기그릇을 잘 사는 사대부 집안이나 궁궐에서 많이 사용하였다. 여름에는 시원한 느낌의 사기나 도자기류의 그릇을 쓰고 겨울철은 보온성이 뛰어난 유기가 안성맞춤이었기 때문이다. 유기는 7첩 반상 또는 9첩 반상이 있다. 

 

그런데 안성 유기로 밥상을 받고 노인 대접을 받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가벼운 접시와 플라스틱 제품의 화려한 빛과 일회용이 판치는 세상이다. 플라스틱과 비닐 제품으로 지구가 온난화 몸살을 겪고 북극과 남극의 빙산이 녹아 내리고 있다. 우리의 고유한 생활 문화유산들도 그와 함께 사라져 가고 있다. 

 

놋그릇은 선조들의 지혜로운 삶을 되돌아보게 한다. 일 년에 한두 번 손질하는 번거로움이 있긴 하지만 잘 닦아 놓고 바라보면 온화함과 미덕을 함께 느끼게 한다.

 

‘결세 좋은 안성 유기, 소리 좋은 정주 남천 방짜, 도듬질 좋은 김천 방짜, 떡 맛 좋은 놋 양푼, 장맛 좋은 놋 탕기, 살결 좋은 놋요강, 분 벽 사창에 놋 촛대’ 1960년대 이전 유기 제품들이다. 부엌에는 대접, 주발, 보시기, 종지, 바리, 수저, 놋 접시, 주전자, 그외 화로 적 틀, 부삽, 타구, 왕의 매화틀까지 놋쇠로 만들었다.

 

잘 닦아 눈부시고 차분한 광택으로 내 앞에 뽐내고 있는 유기 놋그릇 바라본다. 옛사람이 뚜벅뚜벅 걸어 나오신다. 살아생전 자연스럽게 늙어 생을 마감하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그립다. 어머니가 부엌에서 할아버지 밥상을 차리며 마지막 가마솥 뚜껑을 열고 뽀얀 쌀밥을

 

놋 주발에 퍼 담으시던 그 모습이 선하다. 

 

놋 주발에 밥을 담았다. 대접에 아욱국을 담고 작은 보시기에 나물을 담고 나만의 밥상을 차렸다. 따뜻한 밥과 국이 오래 따뜻하다, 이 저녁 차디찬 빵 한 조각을 어느 거리 귀퉁이에서 웅크리고 앉아 먹고 있을 노숙자들이 생각난다. 어쩌다 유민이 돼 살아가는지. 따뜻한 밥이 목에 걸린다. 한때는 깨끗하고 반듯한 사람이었을 것을. 누군가 다시 만나 사랑을 나누기엔 너무 멀리 와 버린 그들. 이기적인 세상 앞에 놓인 저들을 오늘 내 앞에 있는 놋그릇처럼 다시 빤짝 빛나는 날로 거두어 주는 이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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