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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에세이

[해외기고]<해외기획…미 LA> 우리 가락과의 조우

작성자광역매일|작성시간26.06.10|조회수25 목록 댓글 0

https://www.kyilbo.com/sub_read.html?uid=369687&section=sc30&section2=

은연중 목말랐던가 보다. 산호세에 살고 있는 아들네를 가려면 자동차로 편도 다섯 시간이 걸린다. 산호세로 통하는 5번 도로는 경치가 비교적 단조롭다. 집을 떠나면서 오가며 들을 음악과 설교 테이프를 챙기다가 어디서 생겼는지도 모르는, 포장을 뜯지도 않은 채 두었던 민요 모음집을 발견했다. 

 

가는 길에 남편에게 민요를 듣겠느냐고 물었더니 자꾸 나중에 듣자고 했다. 그런데 갈 때 마음과 올 때 마음이 달랐는지 오는 길에 느닷없이 민요 모음집을 듣자고 했다. 

 

"정선 아리랑 먼저 틀어봐" 여러 곡을 다 듣지 않고 선별해서 듣겠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시작했는데 CD 두 개에 들어 있는 스물일곱 곡을 다 듣고도 정선 아리랑은 나중에 다시 한번 더 들었다.

 

`태산준령 험한 고개~/ 칡넝쿨 얼크러진~/ 가시덤불 헤치고~/ 시냇물 굽이치는~/ 골짜기를 휘돌아서~….` 험준한 태백산맥을 힘겹게 넘어, 강원도 금강산 일만 이천 봉 팔만 구 암자를 바라보며 정선으로 갔다. 다음, 장산곶 마루에서는 임도 만나보고, 울산에서는 잣나무 그늘에서 실백자 얹어서 전복쌈을 먹는다. 경치 좋은 잣나무 그늘에서 울산 아가씨를 만나 실백자 얹은 전복쌈도 먹고,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라는 밀양으로 간다.

 

`칭칭 늘어진 능수나 봄버들이 제멋에 겨워 흥흥` 대는 천안 삼거리로 갔다가 `봄버들에 무정세월 한 허리를 칭칭 동여서 매어나 볼까` 지금의 노량진, 노들나루에서, 많고 풍상 비바람에 씻긴 빛나는 흰 모래를 밟아본다. 

 

이렇게 신명나게 종횡무진 돌다 보니 날개 달린 발걸음엔 절로 신이 났다. 나는 얼마 전에 배운 장구 장단에 맞추어 세마치장단과 굿거리장단으로 무릎을 치고 남편은 간간이 `얼 쑤우``좋오타`를 후렴으로 곁들였다. 

 

어느 날, 신나게 드럼 치는 공연을 보면서 `아! 나도 한번 저렇게 신명 나게 드럼을 두들겨봤으면` 하는 마음이 일었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음악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1인 5역의 삶을 살아내느라 음악과 별로 친숙하지 못하며 살아왔고, 더구나 드럼과 관계있는 젊은 음악은 더더욱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어느 날, 동네 신문에 실린 국악학원 광고에 내 눈이 머물고 드럼 대신 장구를 배워볼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 

 

내가 한국에서 자라던 50년대나 60년대 시절에는 세간에 국악은 배울 기회도 없었고, 또 좀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나는 자연스레 국악에 대해 무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서너 달만 배우면 장구를 꽤 칠 수 있으려니 가볍게 생각했다. 

 

장구의 왼쪽은 궁편, 오른쪽은 열편이다. 왼쪽을 치는 궁채와 오른쪽을 때리는 열채를 들고 장단을 맞춘다. 가장 쉽고 우리에게 친숙한 느린 장단인 세마치장단부터 배웠다. 그다음 굿거리,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단모리장단으로 점점 빠르고 복잡한 장단으로 나갔다. 

 

세마치장단은 3/4박자, 굿거리는 12/8박자다. 굿거리는 옛날 악보 없이 입소리로 구전되던 구음으로 하면 `덩 덩따 쿵따, 덩 덩따 쿵따, 덩 덩 따, 덩 덩따 쿵따`. 쿵은 궁채 소리, 따는 열채 소리, 덩은 열채와 궁채를 같이 치는 소리다. 네 마디 한 소절 중에 셋째 마디는 변조를 주어 단조로움을 피했다. 

 

이 간단한 3박자를 치는 것도 강약을 조절하고 타점을 정확히 때려가면서 장단이 몸에 밸 때까지 반복 연습이 꽤 필요했다. 조금 알고 보니 한국음악의 장단이 수학적으로 정확한 서양음악의 장단보다 훨씬 복잡하고 변조가 많아 미묘한 차이를 터득하고 익히기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드럼은 3개월만 열심히 배우면 어느 정도 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장구는 3년을 배워도 어느 경지에 들어가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무용도 그랬다. 서양 춤은 힘 있는 직선이 강조되고 발뒤꿈치를 들고 발끝으로 중심을 잡는다. 그에 비해 고전무용은 발뒤꿈치에 중심을 두고 되도록 땅에 붙인다. 특히 우리 고전은 부드럽게 흐르는 선이 정(靜), 중(重), 동(動)을 따라 유연하게 표현되어야 하는데 보기에는 참 쉬워 보이나 그 맛을 먼저 알기 전에는 흉내 내어 배우기가 꽤 힘들었다. 

 

탁발승이 집집이 시주를 얻으러 다니던 시절 이야기다. 어느 날 탁발승이 대문 앞에서 염불을 하기 시작했다. 어린 내가 얼른 쌀독에서 쌀을 담아 내오자 마루에서 바느질하던 어머니가 돋보기 너머로 잠시 중지하라는 눈짓을 했다. 영문을 몰라 한참 서 있었는데, 나중에야 알아챘다. 어머니는 그 탁발승이 부르는 회심곡의 청이 듣기 좋으셨던 거다. 라디오도 없던 시절의 먼 얘기다. 

 

엉뚱한 발상으로 시작했지만 그래도 어설프나마 조금 맛을 들였더니 내가 직접 표현해 내지는 못해도 국악을 들으면 전에 느끼지 못했던 마음속의 묵은 체증이 봄바람에 얼음 녹듯 풀어지는 후련한 느낌을 맛본다.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때문일까, 서양음악에 없는 엇박자나 토속적인 창법에서 가슴속에 눌어붙은 향수의 앙금을 긁어내는 시원함과 서정의 진솔한 멋을 느낀다. 

 

무엇이든 애정 어린 관심을 두고 가까이하면 속속들이 진면목을 알게 된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우리 가락과 조우하면서 그리운 고향 산천을 휘돌아 흙 내음을 맡고, 토속 정서의 갈증을 해소했다. 볼거리가 없어 밋밋한 Fwy 5를 지루한 줄 모르고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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