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칼럼, 에세이

[광역에세이]옥수수를 심다

작성자광역매일|작성시간26.06.10|조회수22 목록 댓글 0

https://www.kyilbo.com/sub_read.html?uid=369690&section=sc30&section2=

햇볕이 오래 머무는 산 중턱에 옥수수를 심었다. 며칠 간격을 두고 두어 차례 더 심을 예정이다. 산을 개간해 보고 싶다는 꿈은 아주 오래전부터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어떤 중국인이 황무지를 개간해 부농이 되는 이야기를 읽은 뒤였다.

 

그는 눈 덮인 겨울 산을 대나무 꼬챙이와 옥수수 씨를 담은 망태기를 메고 산을 오르락내리락 다녔다. 눈 위를 꼬챙이로 깊숙이 찔러 옥수수 씨앗을 넣었다. 꼬챙이는 대나무로 만들어 안이 텅 비어 있어 위에서 씨앗 하나를 툭 밀어 넣으면 땅속으로 들어갔다. 

 

눈 아래 땅속으로 들어간 옥수수 씨앗은 봄을 기다려 훈풍이 불면 순차적으로 깨어났다. 농부는 겨울부터 늦은 가을까지 온 산을 다니면서 옥수수를 심고 수확했다. 나도 어른이 되면 산에 옥수수를 심어 가꾸는 사람이 되어 보겠다는 꿈을 꾸었다.

 

내가 다시 산을 개간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장애 시설에 근무하면서였다.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들은 성년이 되면 홀로 살아가야 했다. 그러나 마땅한 직업도, 안정된 수입도 없이 가난에 내몰리는 경우가 많았다. 끼니조차 걱정해야 하는 모습을 보며 땅은 사람을 굶기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산에 옥수수라도 심어 가꾸면 최소한 먹고는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언젠가 돈을 벌게 되면 산을 사서 먹을거리를 심고, 함께 모여 사는 노인복지시설을 만들고 싶었다.

 

다시 산을 개간해 보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요양원을 설립하고 나서이다. 내 나이 마흔셋에 요양원을 운영하게 되었다. 그때 노인들에게는 돌봄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몸은 쉬고 있었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노인들은 요양원에서도 할 일을 찾았다. 꽃을 가꾸고 정원을 돌보며 콩을 골라내는 작은 일에도 어르신들의 눈빛은 달라졌다. 

 

나이가 들고 질병이 찾아와도 계속할 수 있는 일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노후에는 옥수수를 심고 가꾸는 정도의 단순한 일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나이 오십에 산을 샀다. 산은 나무가 빽빽했다. 나무 그늘에서는 아무것도 자랄 수 없었다. 마음이 성급했다. 전기톱으로 나무 몇 그루를 베었다. 당장 다음날 동사무소에서 나무를 베었다고 조사가 나왔다. 동네 사람이 전기톱 소리를 듣고 신고를 한 것이었다.

 

우리나라는 자기 산이라 해도 나무를 마음대로 벨 수 없다는 것을 몰랐다. 몇 년이 지나고 산림휴양과 치유 기능을 접목한 치유의 숲 조성을 허가받게 되었다. 숲 가꾸기가 시작되었다. 큰 나무들이 수없이 베어져 나갔고, 산 가운데로 도로가 났다. 편백이 심어졌다. 나무를 가꾸기 시작한 지 십여 년이 지났다. 이제는 나무를 베고 심는 일에도 조금씩 요령이 생겼다. 약초와 유실수를 심으며, 오래 꿈꾸던 산의 모습을 천천히 만들어 가고 있다.

 

손자는 옥수수를 좋아한다. 양지바른 곳에 심은 옥수수가 쑥쑥 자라길 바란다. 옥수수는 심은 지 백일 정도 되면 수확할 수 있다. 시간 차이를 두고서 심은 옥수수는 몇 차례 옥수수 파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돌아보면 옥수수는 단순한 작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린 시절의 꿈이었고, 장애인과 노인들을 만나며 품게 된 삶의 질문이었으며, 이제는 내 노후를 지탱하는 작은 희망이 되었다. 

 

언젠가 갓 수확한 옥수수를 손자와 함께 나누어 먹으며 오래전 산에 옥수수를 심고 싶어 했던 할머니의 꿈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