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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에세이

[광역에세이]빨간 마후라의 영웅

작성자광역매일|작성시간26.06.12|조회수29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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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산의 가을은 유난히 깊다. 산허리에서 물든 단풍들이 불 붙은 듯 내려오고 있다. 돌계단 옆으로 흐르는 시냇물이 맑은 소리를 내며 흐른다. 그 물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천 년의 고찰 해인사가 나타난다.

 

경내는 고요하다. 은행나무 가지를 스치는 바람에 황금빛 잎들이 우수수 쌓여

 

간다. 돌담 사이로 스미는 가을 햇살이 따뜻하고 부드럽다. 

 

장경판전 앞에 선다. 겉모습은 소박한 목조건물이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천 년의 숨결이 고스란히 전해 온다. 두꺼운 기둥에는 세월이 켜켜이 쌓여 있다. 건물에는 창문이 없다. 대신 바람길을 따라 난 좁은 틈과 마루 아래의 배수구가 있어서 경판은 습기가 찬 여름에도 썩지 않는다. 가야산 칼바람 겨울에도 나무 결이 갈라지지 않는다. 

 

문틈 사이로 보이는 팔만대장경은 자체만으로도 장관이다. 두껍고 검은 경판이 책장처럼 빼곡히 들어서 있다. 그 나무 결 사이로 칼끝으로 새긴 글자가 반짝인다. 8만 1,258자 의 경판 하나하나에 고려시대의 숨결과 나라를 지키고자 염원했던 백성들의 기도가 새겨져 있다. 이 목판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정신이고 혼이다.

 

팔만대장경은 장마철 등 습한 날씨에 경판이나 인경 책에 습기가 차며 곰팡이의 손상을 막기 위해 일 년에 한 번씩 먼지를 털고, 바람을 씌우는 작업을 한다. 어느 봄날 친정어머니의 부탁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해인사로 온 적이 있다. 1박2일 하룻밤은 사찰에서 기도를 하시고, 다음날 경전의 묵은 먼지를 털고, 경판을 머리에 이고 사찰을 한 바퀴 도신다고 하셨다. 모셔만 드리고 온 것이 못내 마음 아프다. 그날 함께 하였다면 어머니에게도 나에게도 귀한 추억이 되었을 것인데. 

 

위대한 문화유산인 팔만대장경과 장경판은 지난 세월 앞에서 수없이 위태로웠다. 과거 몽골의 침입, 임진왜란, 병자호란. 한국전쟁, 그중에서도 1951년 겨울 팔만대장경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였다. 7공군 제10 전투비행단장이었던 김영환 대령은 미군으로부터 해인사 폭격 명령을 받았다. 사찰을 거점으로 한 빨치산을 소탕하기 위해서가 이유였다. 군인에게 명령은 절대적이다. 특히 전시에서의 불복종은 총살을 의미한다. 

 

소령은 작전명령서를 손에 들고 잠시 눈을 감았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해인사의 풍경을 떠올리며, 단풍 속에 잠긴 사찰, 목조건물 속에 숨 쉬는 경판들 팔만대장경은 우리 민족의 혼이자 정신이다. 그걸 날려버리느니 차라리 명령 불복종을 하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크게 숨을 쉬었다.

 

그는 폭탄을 싣지 않은 전투기를 몰고 해인사 상공을 낮게 선회했다. 적의 동향을 살피며 기관포만 쏘았다. 산 아래는 고요했다.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은 김영환 대령의 명령 불복종으로 살아남았다. 명령 불복종으로 감옥에 갇힌 그를 미군 소령이 불러 이유를 물었다. 그는 “미군이 교토를 폭격하지 않은 건 그곳이 일본 역사의 중심이었기 때문입니다. 팔만대장경 역시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영국 사람들은 대문호 세익스피어를 인도와 바꿀 수 없다고 합니다. 팔만대장경은 세익스피어와 인도를 다 준다고 해도 바꿀 수 없는 우리나라의 보물 중 보물입니다”

 

조사를 마친 미군 소령이 벌떡 일어나 경례를 올리며 “김 대령님 같은 훌륭한 상관을 모시는 대한민국 공군 장병들이 부럽습니다“ 라고 하였다. 

 

김영환 장군은 우리나라 공군 창설 7인의 한 사람이다. 그의 형은 초대 공군참모총장이었다. 그는 1차 대전 당시 붉은색을 칠한 독일 공군 조종사인 폰 리히토벤을 흠모했고, 그런 김영환 대령을 위해 형수인 이희재 여사가 그녀의 붉은 치마로 빨간 마후라를 만들어 줬고 김 대령이 이를 목에 두름으로써 빨간 마후라는 한국 공군 조종사의 상징이 되었다. 

 

김 장군은 1954년 제10전투비행단 창설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사천기지를 이륙하던 중 기상악화로 실종되었다. 

 

불멸의 위업을 남기고 영원히 살아남은 빨간 마후라의 사나이. 그의 생을 건   찰나의 판단이 팔만대장경을 세계문화유산 대한민국 등록 1호로 남아있게 했다. 그러나 그의 결단은 오래도록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가 떠난 지 70여년 오늘 가야산 자락 추모비 앞에서 영웅을 만난다. 늦게 찾아 뵙지만 영웅의 이야기를 들은 내내 흠모했다. 바람이 옷깃을 살짝 적신다. 마치 영웅의 손길처럼 느껴진다. 당신이 지켜낸 것은 과거가 아니라 우리의 미래였음을 추모비 앞에서 되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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