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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에세이

[광역에세이]볕뉘

작성자광역매일|작성시간26.06.16|조회수15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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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나무 사이로 햇살이 든다. 잔잔한 호수를 둘레 한 산길을 오르락내리락 구불거리며 돌고 돈다. 봄을 시샘하던 바람이 꼬리를 감아 사라진 고즈넉한 오후, 그늘로 얼룩진 땅을 밟는다. 햇살이 발등을 감싸니 흐리던 마음에 빛이 스민다.

 

십여 년 전이었다. 문학에 대한 열망은 있었지만 길이 보이지 않았다. 몇 년을 벼르다 가까스로 용기 내어 평생교육원에 등록하게 되었다. 첫 수업이 있던 날 자기소개를 하는데 수강생들의 전직이 예사롭지 않았다. 교사 출신이면서 이미 등단한 사람도 있었고 약사와 기자 출신도 있었다. 그에 비해 기가 죽은 나는 과연 ‘해 낼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으로 첫 시간을 보냈다.

 

볕이 들지 않은 지하공간에서 창작 수업을 받았다. 이년쯤 지났을까. 교수님께서 문학 계간지에 글을 넣어보라 추천해 주셨다. 감격하는 마음으로 동의했지만 고민스러웠다. 허술한 구석이 아직 많은데 등단만 한다고 대수일까. 오락가락하는 마음으로 갈피를 잡지 못할 때 교수님께서 도와주셨다. 아직은 더 배워야 하는 어설픈 문인이지만 작가라는 자격으로 마음만은 뿌듯했다.

 

등단은 했는데 문학 활동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경로를 알지 못해 외기러기처럼 아득한 곳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신세였다. 함께 공부하는 사람들도 타지 사람들이라 지역 내에서의 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인터넷으로 지역 문인들의 활동처를 찾아보았으나 검색 단어가 적당하지 않았는지 정보가 뜨지 않았다. 

 

그러던 찰나, 도서관 강좌에서 L을 만났다. 잠깐 나누던 대화에서 글쓰기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안 그녀가 시민대학이라는 문예 창작 교실을 소개해 주었다. 자신도 수강 신청했다면서 곧 있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화번호를 전달받아 곧바로 신청해서 함께 공부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여러 문학단체를 접하게 되었다. 지역 문학 활동이 이루어지는 단체에 가입하는 행운도 가졌다. 선배들과 작품을 공유하고 합평하며 첨삭 받는 기회와 소재 발굴을 위한 문학탐방도 가게 되었다. 창작에 대한 열의를 지피고 지지하는 그룹에 발을 디디니 앞으로의 삶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려주는, 그늘진 길에 햇살 한 줌 비치는 듯했다. 

 

영화 ‘노보 케인’의 주인공 네이선은 무통 감각증을 앓고 있는 청년이다. 몸 자체가 마취제나 마찬가지다. 남과 다른 특별한 존재로서의 그의 삶은 일상이 위태로운 살얼음판 같다. 먹는 것과 일하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신경 쓰지 못한다. 혀가 잘리는 줄도 모르고 음식을 씹을까 봐 유동식 외에는 먹지 않는다. 

 

그런 네이선에게 셰리가 나타난다. 그녀는 두려움이라는 그늘에 햇살로 내려와 그에게 용기를 준다. 첫 데이트를 하는 날, 셰리는 자신이 먹는 체리파이를 네이선에게 먹어보라고 권한다. 그는 고체 음식을 먹지 않았기에 몇 번을 거부하다 그녀 눈빛에 마음이 열리면서 먹게 된다. 처음 먹어보는 파이 맛은 달콤하고 환상적이다. 네이선은 셰리에게 자신의 햇살이라고 말한다. 상처 입고 불완전한 그들은 서로의 그늘에 스며드는 작은 볕뉘였다.

 

모든 것에는 명암이 존재하는 것 같다. 내 삶의 빛살이라고 생각하던 글쓰기가 호락호락 하지만은 않다. 창작 과정에서 느끼는 자괴감과 작품에 대한 해체의 아픔을 감당하기엔 심지가 너무 여리다. 때로는 너덜거리는 자존심 부여잡고 붉으락푸르락 거친 숨을 몇 번이나 토한다. 그러면서도 버릴 수 없는 것은 글 속에서 참나와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쭙잖은 나를 글 마당으로 초대해 준 그들이 어찌 고맙지 않을 수 있겠는가. 

 

누구에게나 그늘은 있을 성싶다. 태어나고 자라고 살아가면서 털어놓고 싶지 않은 아픔과 약점을 지닌 완벽하지 않은 우리, 망설이고 주저하는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그렇지만 누군가와 함께한다면 따뜻한 기운으로 용기 낼 수 있지 않을까. 

 

마음의 이랑을 따라 버스킹의 소리가 심연으로 젖어 든다. 호수 둘레길을 내려서는데 볕뉘가 앞서 가려 한다. 생각해 보면 빛 같은 그들이 있어 나의 문학에도 조금은 힘이 생긴 것 같다. 언뜻 글감 하나 떠올라 발걸음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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