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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에세이

[광역論壇]빨간색, 파란색.. 아니, 파란색, 빨간색

작성자광역매일|작성시간26.06.17|조회수21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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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는 수박을 좋아했다. 더운 날이면 냉장고 안 차갑게 식어 있던 수박 한 조각이 반가웠다. 수박은 참 묘한 과일이다. 겉은 푸르고 속은 붉다. 그런데 누구 하나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겉과 속이 다르다고 따지지도 않았다. 달면 그만이었다.


그 시절, 색은 그저 색이었다. 어떤 색은 계절이 되었고, 어떤 색은 기분이 되었다. 붉은 장미는 아름다웠고, 저녁 하늘 끝에 번지는 빛에 하루를 다독였다. 색은 삶의 풍경이었지, 누군가를 나누는 기준이 아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우리는 색을 보기 전에 의미부터 읽게 되었다.


문득 어린 시절 괴담 하나가 떠오른다.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그 시절 우리는 꽤 진지했다. 무엇을 골라도 어딘가 찜찜했고, 선택하지 않으면 더 큰일이 날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무서웠던 건 귀신보다도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압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른이 된 지금도 우리는 비슷한 질문 앞에 서 있는 듯하다. 질문은 단순하지만 삶은 단순하지 않다. 사람의 마음은 한 가지 색으로 설명되지 않고, 오늘의 생각이 내일도 같으리란 법도 없다. 어떤 문제에서는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또 다른 문제에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세상은 자꾸 편을 묻는 데 익숙하다. 생각해 보면, 가장 가까운 곳에도 그 색은 있다.


우리나라 태극기 안에서다. 붉음과 푸름은 한 원 안에 함께 있다. 어느 하나를 밀어내지 않으면서도 자기 자리를 지킨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다름이 꼭 대립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풍경을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의 풍경은 늘 그처럼 단순하지 않다. 서로 다른 생각이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현실은 자꾸 어느 편인지부터 묻는다. 그리고 그 질문은 선거가 끝난 뒤에도 쉽게 끝나지 않는다.


선거가 끝나면 또 다른 풍경이 시작된다. 누군가는 떠나고 누군가는 들어온다. 이름이 바뀌고 방향이 바뀌며, 익숙했던 정책과 사업들은 멈추거나 사라지기도 한다. 새롭게 시작한다는 말은 늘 희망적이지만, 때로는 누군가 애써 쌓아온 시간이 너무 쉽게 지워지는 듯해 씁쓸할 때도 있다.


물론 변화는 필요하다, 잘못된 것은 바로 잡아야 하고, 낡은 것은 새로워질 필요가 있다. 새로운 사람은 새로운 생각을 가져올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문득 묻게 된다.


변화란 꼭 없애는 일이어야만 할까.


좋은 정책이라면 누가 시작했는지가 아니라 시민에게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를 먼저 봐야 하는 것 아닐까. 아직 뿌리내리지도 못한 사업들이 색이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조용히 사라지는 풍경을, 우리는 왜 늘 바라보고만 있어야 할까.


도시는 한 사람의 생각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군가 심은 나무 위에 다른 누군가가 그늘을 만들고, 또 다른 누군가가 꽃을 피운다. 어제의 시간이 오늘을 만들고,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풍경이 된다. 정치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새로운 것은 오되, 좋은 것은 남고, 잘못된 것은 고쳐가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일.


시민이 바라는 것은 결국 색의 승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무엇이 바뀌든, 우리의 삶이 조금 더 나아지는 것. 어제보다 덜 불안하고, 조금 더 따뜻한 내일을 만드는 것.


색이 바뀌어도 괜찮다. 다만 그 변화 속에서 지켜야 할 가치까지 함께 지워지지 않았으면 한다. 빨간색, 파란색 아니, 파란색, 빨간색. 순서가 바뀌는 동안에도 변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결국 시민의 하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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