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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흐르는 아침

<이명열> 저녁의 내부

작성자광역매일|작성시간26.06.05|조회수8 목록 댓글 0

https://www.kyilbo.com/serial_read.html?uid=369531&section=sc106

한 끼를 위한 생각들이 가스불 앞에서 바글거린다

기억에 없는 밥을 또박또박 퍼 넣고

 

사과꽃을 소복하게 담아 폴폴 날리는 밥을 먹었고 싸리꽃 붉은 밥으로 꽃그늘을 만들기도 했다 너무 많은 밥을 먹었으므로 허기의 꼬리를 싹뚝 잘라 환절기의 약으로 쓰고 싶었으나 시치미를 뚝 떼고 굴뚝에 불을 지피는 식욕, 삶의 밥그릇이 쩍 쩍 갈라지기 전에는 어림도 없을 

 

밥그릇을 채운다

 

쌀 한 줌의 얼굴을 읽는다 잘 익은 바람이 잔잔하게 웃는다 눈길 주지 못했던 우연들이 몸을 들여 대신해도 되겠냐고 눈을 맞춘다

 

오래 걸어서 도착한 가을에게

당신의 안부를 묻는 저녁

                                     


 

시작노트

 

 일상에서 행위하는 저녁 식사를 해결하려는 과정에서 밥보다 따스한 시 한 편을 접한다. 이는 일상의 사소한 행위가 존재에 대한 성찰로 확장되는 순간을 포착한 장면이다. 바글바글 타오르는 가스불 앞에서 “사과꽃을 소복하게 담아 폴폴 날리는 밥”과 “싸리꽃 붉은 밥”을 기억해 본다. 예전에 밥이 아닌 사과꽃과 싸리꽃 붉은 밥을 먹었다는 표현은 그 이면의 기억 속에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였다는 허기의 아름다운 은유이기도 하다. 하여 화자의 “밥그릇을 채운다”라는 표현은 그 어느 때보다 거룩하고 성스러운 일이다. 쌀 한 줌이 익어가는 풍요로움을 보며 “오래 걸어서 도착한 가을에게” 안부를 묻고 싶어진다. 

 

이명열

한국시인협회와 천안문인협회에서 시를 쓰고 있다.

때때로 시 낭송을 즐겨하다 지금은

‘천안시낭송아카데미’ 대표를 맡고 있다.

『서정시학』으로 등단하여

시집 『양철지붕을 끌고다니는 비』 『맹세의 바깥』(2026, 시산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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