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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로터리에 서 있는 파초 보이지,
형이 물었다
아니,
형한테만 보이나 봐
파초가 다가오면
풍선 묶인 실을 손목에 감고
보자기를 어깨에 두르고
우산을 쓰고 뛰어내릴 거야
형은 결심한 듯
옥상 구석에 오줌을 누고
지퍼를 올렸다
봐,
저기 저 웅크린 나팔꽃
혼자 있으면 저것이 내 주위를 맴돌아
내 방을 거닐어
종일 나를 지켜보고 있지
아무 문제 없을 거예요, 형
난 발밑의 풍경을 밟으며
한없이 날아오를 거야
형은 울음을 참으며
아가씨 모양의 방석을 꼭 끌어안았다
행운을 빌어, 형
형이 날아오르자
죄책감이 눈물처럼 떨어졌다
나는 개쓰레기야
욕하지 말아요, 형
우리 마음껏 파괴되면서 살아요
<시작 노트>
어릴 적 작은 바위 위에서 보자기를 두르면 황금박쥐가 되었고, 우산을 펼치면 낙하산이 된 줄 알았습니다. 그때의 비행은 설레는 놀이였습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마주한 옥상 위의 비행은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택한 처절한 몸짓입니다.
스스로를 부정하는 이에게 건넬 수 있는 최선의 위로는 가벼운 낙관이 아닙니다. 차라리 함께 부서지며 고통의 무게를 나누고 싶다는 연대감입니다. 유년의 비상을 꿈꾸던 보자기와 우산이, 위태로운 누군가에게 잠시라도 따스한 날개가 되길 바랍니다.
ㆍ2016년 계간지 『사이펀』으로 등단
ㆍ시집 『어떤 것은 밑이 희고 어떤 것은 밑이 붉었다』, 『장미와 나르시스와 전지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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