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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내려 쌓이는 촛농을 긁어 다시 불을 붙이면
그림자나 뜯어먹는 정자나무 아래 오후처럼
바람의 발바닥이나 가늠하는 낡은 신발처럼
발등에 주검을 쌓아놓는 기억일 뿐인데
불꽃을 키우지도 못하고 아주 꺼지지도 못하는
샛별도 저문 그믐밤 같아서
흘러내리는 것들을 진저리치기에 적당한데
뱀처럼, 매미처럼, 허물 벗어두고
여기를 저기로 옮겨보고 싶어서
밤새 짖어대는 집 없는 개처럼
마음의 곡비 하나 불러내는데
끝없이, 끝없이보다 더 끝없이
흘러내리는 것들은 흐르는 것들을 꿈꾸는데
* 파울로 코엘료 著.
<시작 노트>
'멈춤'과 '진행'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었다. '흐르는' 것들은 지금 여기 없는 것들이고, '흘러내리는' 것들은 지금 여기 없고 싶은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흘러내려 앃이는 촛농은 다시 뭉쳐 불을 붙여도 타오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아주 꺼지지도 못한다. '초'라는 원재료는 변함 없지만 그 형태와 지향점이 전혀 다른 것이다. 사랑도, 삶도 이와 다르지 않아서 흐르거나 흘러내리거나 '여기를 저기로 옮겨'보고 싶어서 타오르지도 못하는 꿈을 긁적이는 것이다.
어쩌면 나는 발등에 쌓이는 촛농에 한사코 불을 붙이며 제자리를 맴도는 중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집 없는 개처럼 캄캄한 밤을 우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여, 언제쯤 흐르는 것이 되어 떠날 수 있을 것인가? '흐르는 강물처럼' 지금 여기 없으나 있는 것처럼 부존재의 나를 존재로 착각하는 부질없슴이라니.
| 박미라 1996년 대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파리가 돌아왔다』 외 다수. 산문집 『유랑의 뼈를 수습하다』 외 다수. 지리산문학상, 서귀포문학상대상, 천안문학상, 대전일보문학상본상, 충남시인협회상본상 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 아르코창작기금(2회), 충남문화관광재단창작지원금(5회)받음. 우수도서선정(2회). 현재 나사렛대학교평생교육원에 출강 중. matarri@hanmail.net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