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성품을 품은 자의 신앙(벧후 1:8-11)
우리는 지난 주에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라는 제목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죄악으로 인해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형상'하니까 언뜻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의 본체이신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본체시지만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이는 외모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의 성품입니다. 그분의 인격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을 목표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생각하는 신앙생활의 목표와는 거리가 있지 않습니까? 이를테면 어느 고등학교 동창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중년의 남녀들이 모여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는데 얼마가 지난 후 웬 청년 한 명이 들어섰습니다. 청년은 잘생긴 외모때문에 모두가 그를 바라보았습니다. 지금까지 한번도 본 적이 없었던 얼굴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의 사람들은 그 청년이 아무개의 아들임을 당장 알아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자신의 아버지와 너무나 닮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아들이 그 아버지를 닮듯이 성도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무엇을 닮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성품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권면합니다.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주님의 마음을 품는 것이 신앙생활의 목표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얼만큼 닮은 것 같습니까?
정말 다른 사람들이 아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이 여러분을 보면 예수님을 보는 것같다고 말합니까? 이것이 바로 가장 중요한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여러분, 직분이 무엇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신앙연수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주님을 닮았느냐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의 제자로 예수님과 함께 살면서 분명히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바로 진정한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제자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마음에 품고 보이는 예수가 되어서 다른 사람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사명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자가 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성경을 배우는 것입니까? 아니면 능력을 소유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막 3:14-15)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제자를 부르신 첫번째 목적이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 왜 예수님과 함께 있게 있는 것이 첫번째 목적이었겠습니까? 영성을 전수하시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생각하고 함께 동행하고 함께 뜻을 같이 하고 함께 먹고 마시는 동행입니다. 그것은 같은 마음을 품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을 가까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약 4:8)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께서도 가까이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을 가까이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 모든 역사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닮게 되고 하나님의 성품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주에 살펴본 하나님의 마음은 여덟가지의 성품이었습니다.
다시한번 보겠습니다. 5-7절.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믿음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끝이 맺습니다. 사랑이 율법의 완성입니다. 사랑이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고전12장에서 은사에 대해 설명하시고 맨 마지막절에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말씀하시고 나서 13장에서 사랑을 이야기 하신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중에 가장 큰 은사는 바로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은사가 여러분의 성품속에 충만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은 품은 자의 신앙의 모습은 어떠한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습니다(8).
8절,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새번역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넉넉히 갖춘다면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더욱 풍부해질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이런 것들은 5-7절에서 말씀한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아는 것에 힘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한다고 했습니까? 주님과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주님에 대해서 먼저 지적으로 알고 감정적으로 체험하고 의지적으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체험하면서 몸으로 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머리에서만 맴도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체화되어서 그대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는 일에 게으르다는 것은 썩어져가는 육체의 일에 마음을 빼앗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육체의 일도 소중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장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세상염려는 이방인들이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마6:31-33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처럼 삶의 우선수위를 바로 정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구할 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 속에 무엇보다 하나님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알아가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는 하나님의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오늘의 문제를 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먼저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생각 속에 하나님으로 충만해집니다.
지난 주에 이렇게 하나님으로 충만한 것을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경건"입니다. 경건한 사람은 앉으나 서나 하나님 생각입니다. 누워도 하나님, 일어나도 하나님, 먹어도 하나님이요 걸어도 하나님, 뛰어도 하나님이요 넘어져도 하나님입니다. 그는 목에까지 하나님으로 가득 차서 조금만 배를 누르면 하나님이 입에서 툭 튀어나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삶을 사셨습니다.
(요 8: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예수님은 늘 하나님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삶은 언제나 하나님이 최고였습니다. 뿐 만 아닙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말도 언제나 하나님께서 이르시는 말만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요 12:49-50)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50]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그러니까 예수님은 언제나 하나님께서 말하실 것과 행할 것을 미리 말씀하셨고 그 말씀을 듣고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충만 예수충만, 이것은 교회당 안에서만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그대로 실행해 옮기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경건인 것입니다. 이렇게 경건할 때 경건의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습니다. 본문 8절에 보면 열매없는 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신앙생활하면서 어떤 사람은 열매없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열매는 무엇이겠습니까? 신앙생활의 증거입니다. 예수믿는 증거가 열매입니다. 여러 가지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인격적인 열매입니다.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뿐 만 아닙니다. 전도의 열매입니다. 내가 예수 믿었으면 반드시 생명을 얻게 되었을 것이고 그러면 또 다른 사람을 보면 무엇이 보이겠습니까? 영혼구원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하는 것은 수없이 많이 들어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삶의 전도열매가 얼마나 맺었습니다. 전도의 열매는 바로 내가 얼마만큼 주님을 닮았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다른 것입니다.
(요 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내가 진정으로 예수 안에 있으면 당연히 예수의 열매를 맺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왜 우리가 열매가 없습니까? 예수안에 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은혜가 충만하지 않으니까 증거의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먼저 주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가까이 함으로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열매없는 자라는 말이 얼마나 초라하게 느껴집니까? 저는 여러분 모두가 열매가 풍성하여 믿음의 증거가 많은 그래서 신앙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영적인 눈이 열립니다(9절)
9절,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고 말씀합니다. 누가 맹인이라는 말입니까? 앞에서 말씀한 바와 같이 예수를 아는 지식이 없고 또 열매가 없는 사람은 맹인이라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죄를 깨끗하게 하심을 잊어버린 자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믿음의 눈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믿음은 당장 내 눈에 보이는 것만 보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당장 내 눈에 보이지 않고 내 귀에 들리지 않아도 믿음의 눈을 열어서 하나님의 세계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에 나오는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0]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히11:8-10)
이렇게 믿음의 사람은 멀리 내다봅니다. 근시안적으로 당장 눈앞에 다가오는 것만 보고 쉽게 염려하고 쉽게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고 인내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의 사람으로 회복된 것입니다. 전에는 육신의 욕심을 따라 사는 옛사람이었다면 이제는 예수의 생명이 들어와 새로운 영의 사람이 변화된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를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새사람이 되었다면 영의 눈이 열려 하나님의 세계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뜻을 찿는 것입니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여러분 이제는 죄와 사망의 법에 사로 잡혀 있던 옛사람이 아닙니다. 이제는 생명의 성령의 법으로 거듭난 영의 새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눈을 열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세계를 바라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이미 죄의 종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죄에서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죄로부터 깨끗함을 받았다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로운 피조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것입니다. 새생명입니다. 이 새생명은 육의 사람이 아니라 영의 사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눈을 뜨고 하나님의 세계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뜻을 찾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니고데모를 만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 1: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과의 막힌 담이 허물어지고 이제 새롭게 하나님의 세계에 눈을 뜨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보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욥기에 보면 이전에는 욥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는 반쪽신앙자였습니다. 그런데 시련을 겪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눈으로 보게 되는 온전한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눈을 열고 하나님이 행하시는 놀라운 일을 눈으로 바라보면서 믿음으로 나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더욱 힘써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합니다(10).
10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여기 힘써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신 것과 선택해 주신 것을 확실하게 믿으라는 말입니다. 부르심과 택하심은 신앙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었으면 어떻게 우리가 주님께 나아와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의 택하심이 없었으면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의 지체로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처음 교회나올 때는 내가 교회를 선택하고 내가 내 발로 교회에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깨닫는 것은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이 자리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사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요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찬송가에 있는 것처럼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어떻습니까? 아직도 여러분이 선택한 것처럼 느껴집니까? 주님은 은혜입니다. 믿음은 내게서 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예수를 나의 주로 믿는 것도 주님의 전적인 은혜로 된 것입니다. 이 분명한 말씀이 확신이 되면 결코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실족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초가 튼튼하면 어떠한 시련이 와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의 기초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부분이 분명하였습니다. 얼마나 분명한지 에베소서 1장 4-5절에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모태에 있을 때 하나님은 이미 자기 백성을 선택하시고 불러 주십니다.
이 사실이 믿어지고 확신되어야 믿음이 실족하지 않습니다. 그 소명 의식이 분명하지 않으면 언제 실족하여 넘어질는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인간은 그의 만드신 피조물입니다. 창조자이신 하나님은 인간을 선택할 권리가 있지만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을 선택할 권리가 전혀 없습니다. 만약 그 누구라도 자기가 하나님을 선택하여 믿는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그것은 교만이요 영적 무지를 드러내는 것이 됩니다.
다른 모든 종교는 사람에 의해 고안되고 만들어진 종교이기 때문에 인간이 선택하여 신봉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따라서 베풀어 주신 구원과 생명의 종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선택해 주시고 불러 주신 자만이 믿을 수가 있습니다. 신앙 생활을 하다가 실족하여 넘어진 사람들을 보면 그럴 듯한 이유들이 많습니다.
누구 때문에 못 믿게 되었고 혹은 무엇 때문에 상처를 받거나 시험이 들어서 못 믿게 되었다고 말들을 합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들이 실족하게 된 까닭이 자신속에 있습니다.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에 대한 확신이 없기 대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의 누구의 부르심을 받았습니까?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우리는 누구의 선택함을 받았습니까?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택하심입니다. 그러므로 당당하게 자부심을 갖고 주신 사명 앞에 부끄러움이 없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이 분명합니다(11).
11절,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천국에 들어감을 넉넉히 주시리라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품은 자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당연하게 천국에 대해서 의심이 없습니다. 우리의 돌아갈 고향을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갑니다.
사도바울은 우리의 육체를 장막집이라고 비유했습니다. 맞습니다. 장막집인 것입니다. 언제나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움직여야 할 장막집에 살고 있습니다. 언젠가 부르시면 다 놓고 가야합니다. 지금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을 내가 임시로맡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청지기는 언제나 주인의 뜻이 무엇인가에 주목하고 그 뜻대로 순종하고 그 뜻대로 행하여서 갑절을 남기는 것입니다.
지금 환경이 어떻다 할지라도 주인의 뜻대로 순종하며 마지막 때 하나님앞에 설 것을 잊지 않습니다. 이것이 소위 종말론적인 신앙입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순례자입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40년간 광야를 지나 가나안에 이르른 것처럼 우리는 이땅에서 순례자의 삶을 살다가 마침내 가나안 천국에 이를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천국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까? 지금 죽어도 천국에 들어갈 확신이 있습니까? 천국문앞에서 왜 당신을 이 천국문에 넣어주어야 합니까? 하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내 공로가 아닙니다. 내 업적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내안에 예수의 성품이 잇는 것이 증거입니다. 내 안에 예수님의 심장이 있는 것이 증거입니다. 아니 내 모습속에 예수님의 모습이 있지 않습니까?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얼마나 닮기위해 노력했습니까? 지난 주 바쁘고 힘든 여정이었다 할지락도 얼마나 하나님을 가까이 했습니까? 휴가라 멀리 여행을 다녀왔다 할지라도 거기에계신 하나님을 어떻게 모셨습니까? 하나님을 가까이 했습니까?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성품을 품은 자는 적어도 오늘 본문에 나오는 네가지 현상이 나타납니다. 1)예수님을 알기에 게으르지 않습니다. 2)영적인 눈이 열려 하나님의 세계를 봅니다. 3)부르심과 택하심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부르셨고 하나님이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가 되었습니다. 4)천국에 대한 소망이 분명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확신을 갖고 오늘도 나그네처럼 주님과 동행하면 하나님을 더 가까이 섬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