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으로 잉태되신 예수(마 1:18-25)
지난 주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약속하신 언약의 성취였습니다. 물론 아담의 범죄 이후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인간의 혈통을 통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이 땅에 탄생하셨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신비스러운 동정녀 탄생은 언제나 기독교를 반대하는 비기독교인들로부터 끊임없이 비합리적이고 비현실적이고 비과학적인 사건이라고 이 천년동안 비판받은 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이단의 공격 대상이었던 교리가 바로 동정녀 탄생교리였습니다. 이것을 믿으면 예수가 구세주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니까 그걸 인정하지 않기 위해서 무수하게 공격하였습니다. 그러나 동정녀 탄생은 하나님이 행하신 역사적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바로 그 내용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다(18-20)
우리가 믿고 있는 신앙고백인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하여 태어나셨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이 초자연적인 탄생의 역사는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신앙으로는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마19:26)고 하셨습니다. 본문 18절,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는 이미 요셉과 약혼한 사이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의 약혼은 결혼을 전제로 1년동안 결혼을 위한 준비기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약혼을 하게 되면 남편과 아내로 함께 사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합법적으로는 부부사이였습니다. 그러므로 이혼이 아니고서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폐지할 수 없는 관계입니다. 만약 이 약혼기간에 약혼자가 죽으면 그를 "과부처녀"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이와같은 약혼관계였습니다. 그러므로 약혼 기간인 1년동안 마리아는 합법적으로 요셉의 아내로서 인정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요셉과 마리아가 결혼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실 때 인간의 몸을 실제적으로 입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우리의 진정한 구원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담의 죄성을 유전받으면 우리와 똑같은 죄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죄성이 있으면 자신의 죄를 지고 있기 때문에 죄인이 죄인을 구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다른 사람의 속죄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담의 죄성을 이어받지 않은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성령으로 잉태되셔야 했던 것입니다. 뿐 만 아닙니다. 제가 서두에 말씀드린 것처럼 메시야는 반드시 여자의 후손이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이었습니다. 아담의 범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최초로 복음을 제시합니다.
그것이 바로 창세기 3:15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여자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것은 죄악의 원흉이었던 사탄의 머리를 깨트리겠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승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드시 여자의 후손으로 온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담의 죄성을 이어받지 않아야 흠과 티가 없는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요,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동정녀를 통해서 탄생해야만 하고 성령으로 잉태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따라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사실은 예수님의 신성을 말해주는 것과 동시에 어머니 마리아를 통해서 나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인성도 말해줍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참 인간이시며 참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를 알지 못한 요셉은 자기와 약혼한 마리아가 아무런 육체적 관계도 없이 임신한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분노가 일어났겠습니까? 그리고 그 당시 사회적 관습이나 율법에 따르면 처녀가 임신하였다는 것은 돌에 맞아 죽어야 할 중죄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어떻게 처신하였다고 하였습니까? 19절,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의로운 사람"이었으므로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매사에 요셉과 같이 모든 일을 지혜롭게 처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성도다운 행동입니다. 조그마한 문제만 있으면, 그것을 크게 문제 삼고, 이 사람 저 사람한테 알려서 망신을 주고 이목을 끌게 하는 수가 많습니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 요셉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인간적으로는 큰 충격적인 일입니다. 감정적으로 참을 수 없는 사건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의롭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히 지키는 정직하고 곧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다시말하면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다는 말입니다. 그런 그에게 약혼한 아내가 아이를 잉태했다는 것은 커다란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아마 마리아가 먼저 찾아와서 이 사실을 요셉에게 알려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이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겠습니까? 마리아의 진실성을 믿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영으로 아이를 잉태되었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 들을 수 있었겠습니까?
아마 요셉은 매우 고민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렇다면 성령으로 잉태한 거룩한 여인인 마리아를 어떻게 아내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라는 결론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그래서 가만히 끊고자 하였습니다. 그 때 주의 사자, 곧 천사가 요셉에게 꿈에 나타났습니다. 20절,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요셉은 이 일을 생각했다고 하였습니다. 화가 나면 생각을 해도 바른 판단을 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미 분노가 마음을 꽉 잡고 있기 때문에 다른 각도로 현실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이 사건을 크게 소리쳐 마리아를 어렵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내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에 가만히 끊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의로운 사람의 믿음입니다. 오늘 우리는 너무 조급합니다. 세상이 곧 무너질 듯이 막 화를 내고 분노를 삭이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것의 주권이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 요즘 생명의 샘가에서 민수기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광야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 너무 조급합니다. 지금까지 인도하시고 지켜주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당장 눈에 보이는 현실 때문에 그저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대상으로만 생각합니다. 결국 그들의 원망 섞힌 말이 그들의 미래를 결정하고 말았습니다. 좀 여유를 가지십니다.
오늘 안된다고 당장 하늘이 무너질 것처럼 큰 소리 치지 말고 조금 더 기다립시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마치 홍해 앞에서 모세처럼 이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어떻게 하실지 기다리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십시다. 얼마나 멋집니까? 이렇게 차분하게 기다리는 요셉에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해답을 주십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요셉은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의문을 가지고 해결할 수 없어서 고민하며 엎드려 있던 요셉에게 하나님이 해답을 주십니다. 요셉은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알고 이제 평안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기로 작정한 것입니다.이것이 바로 믿음의 결단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렇게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답답하고 힘들지만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하나님앞에 나아와 엎드리는 신앙적 자세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결단하고 나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21)
21절,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예수님의 이름은 나시기 전에 천사가 지어준 이름입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지어 주신 이름입니다. 왜냐하면 천사는 하나님의 심부름을 맡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란 히브리어 "여호수아"에서 유래하였는데, '구원자'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세상에 나시기 전에 지어진 이름인 "예수"는 이름 그대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당신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소개하시기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실을 믿는 자들은 구원을 받습니다.
사도행전 4:12에서 베드로는 성령 충만하여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에 권세가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을 믿으면 구원의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구원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는 죄로부터 구원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바로 나를 위한 십자가임을 믿고 내가 그 예수님 안에 거하면 죄로부터 우리가 구원을 받습니다. 더 나아가 모든 죄의 저주로부터, 질병으로부터 우리가 구원함을 받습니다.
(사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주님이 당하신 고난과 채찍은 바로 우리를 위한 고난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내 안에 영접하면 주님이 이루신 구원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질병으로 고통받는 자들의 치료자가 되어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이론으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오늘 이 시간 경험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제가 설교가 끝나고 신유기도를 드리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복음은 구원의 복음이자 치료의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님의 십자가의 구원을 믿고 그 안에 거하는 자는 육체의 고통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줄로 믿습니다. 믿음으로 손을 얹으면 즉시 주님의 치료의 역사가 나타나는 줄 믿습니다.
주님의 구원은 과거적 사건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날마다 체험해야 할 현재적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요14: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를 체험합니다.
3.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23-25).
23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이 말은 이미 700여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주셨던 예언이었습니다. 이사야 7:14에 보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예언하였던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이후에 하나님과의 언약을 맺고 나서 하나님이 그들가운데 임재하십니다. 그리고 그들가운데 함께 하십니다. 그 증거가 바로 성막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가운데 계신 증거로 성막위에 구름이 머물러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가운데 거하십니다. 바로 거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왕국입니다. 임마누엘이란 바로 이처럼 우리가운데 거하시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구원의 실제입니다.
옛날 러시아에 지혜롭고 선한 황제가 있었습니다. 그는 백성들을 매우 사랑해서, 과연 이 나라 백성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어 종종 노동자나 거지 차림으로 변장을 하고 가난한 백성들의 집을 찾아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그가 방문한 사람들 중에 아무도 그가 황제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중에 어떤 사람은 황제를 잘 대접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문전박대하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황제가 오두막에 사는 가난한 사람을 찾아가게 되었는데 얼마나 극진히 대접을 잘하는지 음식만 먹고 가려고 했으나 주인이 간곡히 붙잡는 통에 하루 밤을 함께 자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왕궁으로 돌아온 황제는 왕복을 입고 다시 그 사람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이 사람이 얼마나 깜짝 놀랐겠습니까. 아니, 어제 밤에 나와 함께 잔 분이 이 나라의 황제였다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황제는 "그대는 지난밤에 나를 정성껏 대접했노라. 이제 내가 그대의 소원을 들어주겠다. 그대의 소원이 무엇인가 말해보라." 그러자 이 사람은 허리를 굽히고 "황제께서는 궁궐과 그 영광을 떠나 이 어둡고 비천한 장소에 저를 찾아와 주셨습니다. 제가 먹는 초라한 음식을 함께 드셨고, 저와 거처도 함께 하셨습니다. 황제께서 저와 함께 거하셨다는 사실만으로도 저는 만족합니다. 달리 아무런 소원이 없습니다."라고 겸손히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은 이 땅의 황제가 아니라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가 되십니다. 우리 주님은 하루 밤만 주무시고 가시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떠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이 버리지 아니하시고 우리가운데 거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운데 거하시면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부어주시는 우리 아버지이신 것입니다. 우리의 통치자이십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섬길 때 하나님은 우리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고 하나님나라의 기쁨과 은혜와 능력을 체험케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멀리 계시다고 믿는 것이야말로 불신앙인 것입니다. 저도 어렸을 때는 교회당에 가서 만나는 분으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알고부터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시는 분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그냥 머물러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거하시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온갖 것을 구할 때 기도할 때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고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임마누엘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이 얼마나 놀라운 복음입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지 사흘만에 부활하셨을 때, 이 사실을 모르고 낙심이 되어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들과 함께 주거니 받거니 얘기를 나누며 걸어가셨으나 이들은 그분이 예수님이신지 그 당시에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부활하신 주님이 저와 여러분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여주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중에 외로움을 느끼시는 분이 계십니까? 여러분은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홀로 있을 때에도 혼자가 아닙니다. 언제나 주님이 함께 계십니다. 임마누엘,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마지막 하신 약속도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계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지금도 우리가운데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예수님을 믿고 믿음으로 담대하게 설 때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오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거기에 어떤 약속이 들어 있습니다. 구약의 예언의 성취요, 죄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와 사망을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그의 이름은 예수였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를 진정으로 죄에서 구원하실 유일하신 메시야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니시면 결코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임마누엘이십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족하지만 우리가운데 거하시면서 우리를 성전으로 삼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시는 임마누엘 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떠한 시련과 역경이 다가와도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담대하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임마누엘! 임마누엘의 은혜가 여러분가운데 계심을 믿고 담대하게 이 복음을 전하셔서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에 귀하게 쓰임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