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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문의 메시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권위(롬13:1-7)

작성자야베스|작성시간11.07.20|조회수353 목록 댓글 0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권위(롬13:1-7)

   우리가 지금까지 로마서를 공부하였는데 12장이후부터 구원받은 크리스천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실제적인 삶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12장은 개인적인 삶에 대해서 말씀하셨다면 13장에서는 사회적인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1절,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라" 오늘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이슈 중의 하나는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권위, 선생님의 권위, 지도자의 권위가 무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탈권위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권위가 무너지고 있다는 것은 질서가 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를 인정하고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어쩌면 아주 듣기에 거북한 명령인지도 모릅니다. 내가 전부인 시대에 위에 있는 권위에 복종하라는 것은 궤변이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문제는 권위가 떨어지면 질서가 무너지고 관계가 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인간의 본질문제이기도 한 것입니다.

   가장 먼저 아버지의 권위, 선생님의 권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결국 이런 기본적인 권위가 무시되면 사회전체가 혼란에 빠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위에 있는 권위가 맘에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좋은 권위라면 복종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좋은 권위라면 목숨을 걸고 따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힘으로 밀어 부치는 권위주의로만 가득 차 있고 독재자적인 지배욕이 강한 지도자에게는 굴복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에서는 네 위에 있는 권위자에게 복종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개혁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은 질식할 것 같은 말씀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는 잘못된 권위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말씀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깊이가 있는 말씀입니다.

   베드로전서 2:18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좋은 주인에게만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떠나고 싶고, 보기 싫은 정도로 완악한, 억지가 많은 주인에게도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만 사랑하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내가 싫어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을 때 이것이 진짜 크리스천의 삶의 태도입니다.

   싫은 사람을 섬기고 까다로운 사람도 섬겨라. 네 위에 있는 권위에 복종하라. 이는 지난  2천년 동안 이 성경말씀은 오해도 많이 받았고 잘못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정치인들이 이 말씀을 이용했습니다. 정부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독재를 합리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 성경구절을 많이 이용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는 이 말씀에 깊은 뜻을 묵상해 보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권위와 질서가 무너진다면 이 세상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루아침에 엉망이 될 것입니다. 교통질서를 지키지 않는다면 도시는 하루아침에 마비가 될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살고 있는 가정의 권위, 아버지의 권위, 사장의 권위, 정치하는 사람들의 권위가 못마땅해서 모두 거부해 버린다면 이 세상은 큰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국민이 대통령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요즘 탈권위주의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개성을 강조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특별히 지방자치를 하면서 집단이기주의가 팽배하면서 많은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좋은 점도 없지 않아 많이 있습니다. 개인의 개성을 존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다른 면에서 문제점은 하나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저 자기만 편하면 되고 자기만 유익하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팽배하면서 오늘 우리 사회는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고민은 따를 만한 지도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따를만한 지도자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순종할 만한 지도자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순종할만한 지도자가 아니라서 권위를 거부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전개될까요? 갈등과 분열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나쁜 권위도 없는 권위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만일 지도자가 없어서 통제가 되지 않는다면 이 나라는 혼란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예를 들면 북한의 권력이 패역하지만 만일 이 북한의 권력이 아무 대책없이 무너졌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을 누가 책임지겠습니까? 더 무서운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사거리에서 분주한 출근길에 교통신호가 고장났습니다. 그런데 교통순경이 없습니다. 어떻게 되겠습니까? 서로 먼저 가겠다고 아우성치면서 교통이 마비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이만큼 질서라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권위가 무너지면 질서도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세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 권위와 성경에 대한 절대 권위가 무너지면 우리의 신앙은 송두리째 무너집니다. 많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성경의 권위를 마구 흔들었습니다. 성경이 무슨 하나님의 말씀이냐 이스라엘의 역사책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편집한 책이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지만 오류도 있을 수 있다. 사람들은 그렇게 성경을 공격해 왔습니다. 성경의 권위가 땅바닥까지 떨어졌을 때 교회의 세속화는 급속도로 전개될 것입니다.

   성경의 권위가 높아지면 하나님의 권위가 높아지지만 성경이 무시를 당하면 하나님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세상은 혼란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최종의 권위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자체가 권위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시고 우주를 만드실 때 질서와 권위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늘의 태양이나 별들을 보십시오. 만약 이 우주와 태양계에 자연의 질서와 원리가 없다면, 이 지구가 제멋대로 운행한다면 얼마나 불안하겠습니까? 언제 어느 때 다른 위성이 충돌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창조이래로 한 번도 우주계는 사고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질서대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질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최종권위를 가지신 하나님이 이 세계와 우주를 다스리시기 때문에 이 세상은 사고없이 움직였던 것입니다.

   자연계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인간계에도 질서를 주셔서 질서와 권위를 가지고 세상을 살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정에 남자를 권위자로 주셨습니다. 모든 영역에 이 질서와 권위의 원칙을 주셨습니다. 자연계는 지금까지 하나님이 주신 그 질서와 법칙에 따라 잘 진행해 왔지만 인간만은 이 권위를 무시하고 제멋대로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범죄한 이후 인간은 하나님을 등지고 하나님의 법칙과 권위를 무시해버렸습니다.

   전쟁과 죽음과 싸움, 시기와 미움과 질투와 아수라장을 만든 것은 자연이 아니라 인간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질서와 권위를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민주화된 상황이 아닌 독재권력 밑에서 사도바울은 담대하게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합니다. "너희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위에 복종하라" 이것이 세상을 행복한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은 교회의 머리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고, 가정에는 남편을 그 가정의 머리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남편이 존경받을 만하든 하지 않든 간에 그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 권위를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남편을 영적지도자로 만드십시오. 그때 여러분의 가정이 바로 서게 될 것이며 교회도 바로 서게 될 것입니다. 또한 남자들은 힘있게 일어서서 가정의 제사장일 뿐 만 아니라 교회의 영적 지도자로 세워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왜 우리는 각 사람위에 있는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해야 합니까? 그 이유는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타락해서 권위를 잘못 사용한 책임이 있지만 그 권위 자체는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어떤 조직이든지 거기에는 반드시 책임자가 있습니다. 책임자에게 권위가 주어진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최종 권위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권위를 가지고 세상을 통치하시고 다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이 질서가 무너지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권위는 하나님이 정해 주셨습니다. 가정에서는 남편에게 권위를 주었고, 교회에서는 목회자에게 목회를 하도록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직장에도, 학교에도 권위가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죄인인 인간은 누가 자기 위에 있는 것을 아주 불편해 합니다. 그래서 자꾸 대들고 반항하고 냉소적으로 상대를 끌어내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잘되는 것 같지만 망하게 되는 원인입니다.

   2절, "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르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름이니 거스르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 좀 심할 정도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위에 있는 권위를 무너뜨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스르는 자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심판을 자취하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사탄은 이것을 압니다. 그래서 사탄은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공격해옵니다. 먼저 가정을 공격합니다. 이혼을 하면 부부만 불행한 것이 아니라 자녀도 불행해집니다. 그 자녀는 평생 그 부모에게 한을 품고 살아갑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이 모두 불행하게 됩니다. 마귀는 어떤 방법이든지 여러분의 가정을 파괴하려고 할 것입니다. 두번째로 교회를 파괴하려고 합니다. 말씀의 권위를 무시하고 관계를 깨트려서 불신하게 만듭니다. 교만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공동체가 깨어지면 교회는 힘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또 마귀가 하는 일은 권위를 깎아내리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대통령의 권위를, 아버지의 권위를 무너뜨리려 합니다. 권위만 무너뜨리면 마귀세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영적권위, 의로운 권위가 있는 사회에는 마귀가 들어오지 못합니다. 군대에는 상사의 권위가 있어야 합니다. 명령에 권위가 있어야 합니다. 군대에서 명령의 체계가 흔들리면 모두가 흔들리는 것입니다. 그만큼 권위는 한 조직과 사회를 지켜 가는데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성경은 당신의 권위자가 누구이든지 간에 그 권위자체를 존경하라고 말합니다. 그때에만 조직은 하나님이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듣는 메시지의 초점입니다.

   3절, "다스리는 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결국 권위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며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신 것입니다. 대개 그 사람이 미우면 권위를 거부합니다. 그 사람이 맘에 들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권위라고 하는 그 자체를 거부하면 안됩니다.

   그래서 마귀는 권위대신에 권위주의를 만들었습니다. 권위는 아름다운 것이지만 권위주의는 천한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두 가지 일을 합니다. 첫째는 권위를 가진 사람에게 가서 속삭입니다. 너는 권력을 쓸 수 있고 돈이 있지 않느냐, 이 권력을 적당히 써라, 반은 백성을 위해 쓰고, 반은 너 자신을 위해 써라. 권력을 유지하는데 써라. 정보를 독점해라. 마귀가 끊임없이 속삭입니다. 아주 합리적으로 설득을 합니다.

   또 권위 밑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갑니다. "너는 바보냐 왜 이렇게 당하기만 하느냐 데모도 할 수 있고 화염병을 던질 수 있다. 이건 말도 안된다. 끌어내려라. 사람들을 선동해라" 하면서 권위에 대해 냉소주의적인 태도를 가지게 합니다. 권위를 존경하거나 받들거나 권위를 세워 주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을 권위에 순종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말들은 굉장한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렇게 사람들의 마음을 흥분을 시켜서 권위에 항거하도록 유도해 감으로 이 세상을 무정부형태로, 누구도 책임지지 못하는, 소리지르는 사람이 이기고, 숫자가 많은 사람이 이기도록 만들려고 합니다. 4절, "그는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네게 선을 베푸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역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따라 보응하는 자니라"

   여기서 권위자를 하나님의 사역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권위 앞에 순복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여러분, 패역한 권위 앞에 아부하고 적당히 타협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크리스챤은 진리를 떠나서는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모든 일의 결정적인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당한 권위가 바로 세워졌을 때 하나님의 나라와 통치가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5절,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양심이 먼저 입니다. 여기서 양심은 구원받은 양심입니다. 선한 양심입니다. 성령의 역사하는 양심입니다. 이 선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잘 믿고 섬길 뿐 만 아니라 국가의 법과 질서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권력에 대한 두려움이나 형벌 때문이 아니라 우리 속에 있는 양심이 감동하기 때문입니다. 일찌기 사도들이 산헤드린 공의회앞에서 선언했던 양심선언이 바로 그것입니다.

   (행 5: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여기에 크리스챤의 복종의 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일찌기 독일의 본회퍼는 누구보다도 자기 조국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 히틀러 정권에 대한 저항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는 히틀러암살 조직에까지 끼어 들게 되었습니다. 그는 히틀러가 이기고 기독교가 말살될 것인지 아니면 히틀러가 패배하고 교회를 살릴 것인지의 갈림길에서 분명히 후자의 길을 선택하고 항거의 정신을 나타낸 것입니다.

   크리스챤은 이 땅의 권력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도록 바른 것을 깨우치고 하나님앞에 기도하고 양심에 복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딤전 2:1,2)에서 기도할 것을 권면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크리스챤이 양심을 거부하고 권위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불순종하면서 세상의 권력을 추종하는 것은 불의와 타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챤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위에 서서 정의를 지키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양심에 거리낌이 없도록 법을 지켜야 합니다.  

   6,7절, "너희가 조세를 바치는 것도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 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조세를 받을 자에게 조세를 바치고 관세를 받을 자에게 관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한 나라의 백성으로 조세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로마제국이 유럽과 중동 세계를 지배하던 때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의무를 다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을 통해 두 가지 결론을 내리고 싶습니다. 첫째는 권위의 원천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버지에게 아버지의 권위를 주셨고 어머니에게 어머니의 권위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장에서 사장의 권위, 책임자의 권위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권위를 선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권위를 잘못 사용하면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고 불행해집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권위를 맡겨 주셨습니다. 부모가 부모의 권위를 잘 사용하면 가정이 평화롭습니다. 사장이 사장의 권위를 주장하는 자세가 아니라 섬기는 자세로 잘 사용하면 여러분의 삶의 현장이 천국이 되어질 것입니다. 지배하는 권위가 아니라 섬기는 권위, 소유하는 권위가 아니라 나누는 권위, 이것이 권위를 잘 사용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섬김의 공동체입니다. 권위의 원천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께서 왕이시지만 종의 모습으로 삶을 사셨습니다. 선생이시지만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 예수님의 제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든 섬김의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진정한 권위는 섬김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주장하고 명령하면 사람들이 따라가지 않지만 발을 씻어주고 따라가면 그 사람앞에 고개를 숙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성도의 권위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권위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여러분의 권위를 어떻게 사용하셨습니다. 그 권위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까? 그 권위가 권위주의가 되어 자기를 높이고 억지로 따라오게 하지는 않았습니까?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권면하였습니다. (벧전 5:2,3)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이것이 진정한 권위자의 모습니다. 삶으로 본을 보여주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복하고 삶으로 본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주장하는 자세가 아니라 예수님처럼 섬김의 자세로 돌아서야 합니다. 그런 권위를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그를 높여 주실 것입니다.

   두번째는 위에 있는 권위를 인정하고 순복해야 합니다. 혹 못마땅하고 불편하고 따르고 싶지 않을지라도 불의가 아니라면 복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위에 있는 권위를 비난하고 거부하고 단절하면 자유로울 것 같지만 아닙니다. 질서가 깨어지면 관계가 깨어지고 관계가 깨어지면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감사를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언젠가 나의 권위가 무시되고 멸시받을 때가 다가온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권위에 순복해야 합니다. 그것이 국가의 권위이든 직장의 권위이든 가정의 권위이든 순복하고 하나님의 질서에 순복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섬기는 자가 주인되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는 왕이시지만 종의 삶을 사셨습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영적인 권위였습니다. 내면에 담겨있는 그 인격이 권세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와 여러분도 영적인 권위를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의 내면에 담겨있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삶을 통해 진정한 섬김의 이루어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권위가 맘에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순복하면 반드시 하나님이 보상해주실 것입니다. 가정의 권위, 학교의 권위, 직장의 권위, 사회의 권위, 국가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권위 복종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권위를 가졌습니까? 잘 사용하십시오. 권위 밑에 계십니까? 순종하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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