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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문의 메시지

겟세마네 기도(마26:36-46)

작성자야베스|작성시간17.10.08|조회수565 목록 댓글 1

겟세마네 기도(26:36-46)

 

예수님의 삶에서 기도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기도로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40일은 금식하시면서 기도하신 예수님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먼저 기도하셨습니다.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는데도 먼저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물론 십자가상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기도로 시작해서 기도로 끝마친 삶을 사셨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의 삶에 기도는 무엇입니까? 기도가 여러분의 삶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결정하는 중요한 결정과 선택보다 기도가 앞서고 있습니까? 기도는 그 사람의 믿음의 표현입니다. 믿음은 기도를 통해서 표현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로부터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제자들도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지켜보면서 예수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까지 우리에게 주기도문이 전해져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오늘 본문을 살펴보시겠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마치고 겟세마네동산으로 자리를 옮기셨습니다. 여덟명의 제자들은 산 아래에 머물게 하고 충성스런 세명의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동산으로 올라가십니다. 왜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네동산에 올라가십니까? 기도하러 가시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기도가 없이는 십자가를 질수 없기 때문입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하나님의 뜻앞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냥 결심만 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그렇게 십자가를 앞두고 결심하지만 한결같이 다 무너졌습니다. 다 도망가고 모른다고 부인하고 주저앉았습니다. 이처럼 인간은 연약합니다. 한 순간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똑바로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로 덧입기 위해서 기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져야 할 십자가에는 자기 포기가 있어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해야 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겟세마네 기도속에 담겨진 의미는 무엇입니까?

1. 겟세마네기도는 십자가 앞에서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기도였습니다.

예수님에게 다가온 가장 큰 시험은 사탄의 시험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 앞에 가장 큰 시험은 예수님 속에 있는 육신을 포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십자가를 지시기 직전에 있었던 예수님의 시험은 사탄의 시험이 아니었습니다. 사탄은 우리를 유혹하고 흔들고 괴롭게 하지만 예수의 이름을 가진 자는 담대하게 싸워서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탄의 시험보다 더 강력한 시험의 대상은 바로 우리 속에 있는 나 자신입니다. 우리를 괴롭게 하고 당황하게 하고 곤궁에 빠지게 하는 것은 바로 우리들 자신입니다. 여러분, 자기 자신보다 더 어렵고 힘든 대상이 어디 있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언제나 외부에서 승리를 합니다. 다른 사람과 싸울 때는 잘 싸웁니다. 외부의 적은 오히려 막기 쉽습니다. 그러나 내부에 있는 자기 자신은 참으로 싸우기 어려운 대상입니다.

 

우리는 늘 외부에서는 승리를 하고 자기에게는 실패하는 연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자신 앞에 좌절하며, 자신 앞에 절망하며, 자신 앞에 패배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었습니까? 다른 사람 앞에서는 거룩하게 나타나고, 다른 사람 앞에서는 능력있게 나타나고, 다른 사람 앞에서는 영웅으로 나타나지만, 자기 자신 앞에서는 무력하고 연약한 우리들이 아닙니까? 예수님은 십자가를 져야 하는 엄청난 현실 앞에서 자기 자신과 싸우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아버지여, 이 십자가를 내가 꼭 져야만 합니까? 십자가를 지지 않고는 갈 길이 없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런 질문을 하나님께 드렸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는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자기와 싸워 이겨야 합니다. 자기를 꺾어야 합니다. 자기를 절망시켜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과정이 없이는 십자가를 지실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무서운 고통과 무거운 짐인 십자가, 인류의 모든 죄의 무게와 같은 십자가를 지기 위하여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기도하신 것입니다.

 

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복음서의 여러 말씀을 종합해 보면 앉아 있으라는 말은 그냥 앉아 있으라는 뜻이 아니라, 깨어 기도하라는 뜻과 연관됩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시는 기도를 보게 됩니다. 예수님의 사역 중간 중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숨은 사역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3중 사역은 다시 말씀드린다면 1)천국복음을 전파하심으로 생명을 살리는 전도사역, 2)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을 세우는 교육사역, 3)모든 연약한 자와 병든 자를 고쳐주시는 치유사역입니다. 이것을 생명사역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생명사역은 보이는 사역입니다. 이 사역은 오늘 우리 교회와 우리들에게 맡겨진 생명사역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보이는 사역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런 사역들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아주 중요한 사역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기도 사역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선포하시고, 기적을 베푸시다가도 조용히 홀로 산에 가십니다. 밤이 늦도록 기도하십니다.

 

새벽 미명에 홀로 기도하십니다. (22:39)”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예수님은 기도하시습관이 있었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이 그렇게 능력이 있고 예수님께서 계속적으로 승리하실 수 있었던 비결은 밤이나 새벽에 홀로 기도하셨다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예수님이 홀로 기도하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고 계십니다.

 

37-38.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처음에는 제자들을 데리고 가서 한 장소에 앉아 기도하도록 시키십니다. 그 다음 예수님은 그 중에서 세 명을 데리고 조금 더 앞으로 나가십니다. '깨어 있으라"고 그 세 제자들에게도 기도를 시키신 후에 좀 더 앞으로 나아가서 기도하십니다. 우리는 여기서 함께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홀로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남모르게 기도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밤에 기도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새벽에 기도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금식하며 기도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중요한 일을 하기 전에 먼저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개인 기도도 중요하지만 성령받은 사람들이 합심해서 기도할 때 기적과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연약한 성도들이 힘을 합해 기도할 때 사탄은 떠날 것이고 모든 악한 세력들은 떠날 것이며,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십자가라 할지라도 능히 질 수 있는 능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제자들을 위해서 특별히 기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40-41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41]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왜 우리는 기도를 해야 합니까?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다시말하면 사탄의 시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사탄은 우리의 믿음을 흔들고 우리의 현실을 두렵게 하고 관계를 깨트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서 기도해야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사탄은 언제나 두 가지 방법을 씁니다. 하나는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습니다. 사납게 환란과 고통을 통해서 시험해 옵니다. 교회사를 보면 이런 외적 시험을 다가오면 참 신앙인과 거짓 신앙인이 드러납니다. 알곡과 쭉정이가 구별됩니다. 그 다음에 알곡은 어떤 시험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더 단단해집니다. 이런 시험을 교회는 수없이 견디어 왔습니다. 그런데 더 무서운 시험은 광명한 천사로 다가오는 사탄의 유혹입니다.

 

이단이 그렇습니다. 대단한 것처럼 광명한 빛을 발하고 자기가 참이라고 주장하며 성도를 유혹합니다. 뿐 만 아닙니다. 우리속에 감추어져 있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자극합니다. 이러한 시험을 성경은 유혹이라고 정의합니다. 유혹의 목적은 무너트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트리는 것입니다. 이런 시험을 이기는 비결은 바로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니다. 기도하면 이길 수 있도록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주십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으면 마귀는 인간적인 이유, 세속적인 이유, 신앙적인 이유와 같이 여러 가지 이유를 만들어 여러분을 올무에 잡아넣습니다. 여러분이 믿음으로 잘 시작했던 것을 그릇되게 마치도록 만듭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마귀가 벌떼같이 달려들 것입니다.

 

시험은 대개 큰 사건에서 오지 않습니다. 시시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도 시험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시험에 들면 신앙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시험에 들면 은혜를 받지 못하게 됩니다. 귀가 막히고, 눈이 덮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적은 무엇입니까?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세력입니다.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세력은 여러 가지로 나타납니다.

 

어떤 때에는 시끄럽게 기도한다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병만 고쳐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이기적이고 기복적이기 때문에 그런 기도를 하느니 차라리 기도를 안 하겠다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가 다 사탄의 시험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동기가 좀 순수하지 못하고 이기적이고 기복적이라 할지라도 기도를 안 하는 사람보다는 하는 사람이 더 낫습니다. 연약한 기도를 하면 어떻습니까? 병 고쳐 달라는 기도를 하면 어떻습니까?

 

인간이기에 다 연약한 기도를 하고 이기적인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기도를 하다가 우리가 변하고 좀 더 새로워져서 언젠가는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게 하옵소서"라는 기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좀 서툴고, 이기적이고 형편없어도 안하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낫습니다. 이처럼 기도에 힘써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그 뜻을 이룰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겟세마네 기도는 예수님이 통곡하는 간구였습니다.

다시 37-38절을 보십시오.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예수님이 십자가 앞에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십자가는 이처럼 육신의 고민과 두려움을 가져 옵니다.

 

통곡하고 고뇌하는 기도를 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고통과 고뇌와 슬픔의 기도를 하셔야만 했을까요? 예수님께서 능력이 없으셔서 그렇게 우셔야만 했습니까? 예수님께서 자기 죄로 말미암아 죄책감에 시달려서 그렇게 고민하셔야 했던 것입니까?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릴 만큼 능력이 있으셨고, 죄가 없으신 하나님 자신이셨습니다. 예수님은 고뇌할 필요가 없었고, 슬퍼할 필요가 없었던 분이십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이 고민하여 죽게 될 정도로 심각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겠습니까?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기에 예수님은 슬퍼하셨고 고민하셨고 죽게 되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5:7에 예수님의 이러한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셨고 통곡을 하셨습니다. 아마 소리도 지르셨을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큰소리로 외치셨습니다. 33세의 젊은 나이에 십자가에서 죽어야 했을 때 인성을 가지신 예수님께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그분은 한 번의 항변도 없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죽어야 했고, 털 깎는 자 앞에서 얌전한 양처럼 순종해야만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런 고통과 고뇌와 슬픔의 기도를 진정으로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것은 내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랑했기 때문에 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치러야 할 대가였습니다. 이와같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이웃을 사랑하고 한 영혼을 사랑하기 때문에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생명을 고치기 위해서 생명을 세우기 위해서 눈물을 흘리며 고통하며 하나님앞에 엎드려 눈물의 기도를 드린 적이 있습니까?

 

사도요한은 예수님에 대해서 (13:1)에서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이러한 사랑이 우리 가운데 있으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통곡의 기도를 하며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힘쓰게 될 줄 믿습니다. 이런 눈물의 기도가 있을 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이루어질 것입니다.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기도할 때 서서 기도하였습니다. 서서 손을 들고 성전을 향해 하루 세 번씩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은 서서 기도할 만큼 그렇게 마음이 한가롭지 않으십니다. 지금 예수님은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하십니다. 구약 시대에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의 선지자로부터 병들어 죽을 것이라는 사형 선고를 받습니다. 이때 히스기야가 어떻게 했습니까? 자기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하나님, 저를 살려 주십시오'"하고 기도했습니다.

 

우리 생애에 이런 절박하고 심각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에 비하면 우리의 기도는 너무나 낭만적이고 감상적일 때가 많습니다. 기도는 감상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것입니다. 영적 전쟁이며 투쟁이며 몸부림이며 생명을 걸고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누가복음 22:41에 보면 예수님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43절에 보면 기도가 얼마나 간절했던지 천사가 나타나서 도왔습니다.

 

그리고 22:44절에는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다고 했습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생명을 거는 기도, 땀이 피가 되는 기도를 할 때가 지금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기도하지 않아도 될 만큼 안일한 상황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자식을 보거나, 우리의 부부 관계를 보거나, 현재의 내 사업을 보거나, 우리나라를 볼 때 우리는 그렇게 감상적으로 기도해도 될 만한 처지에 있지 않습니다. 특별히 우리 민족의 현실을 볼 때 정말 무릎 꿇고 생명을 걸고 기도를 해야 될 줄 믿습니다.

 

3. 겟세마네기도는 자기의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결단의 기도였습니다.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기도는 자기의 뜻과 목적을 이루기 위한 기도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예수님의 기도는 나의 뜻을 이루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기도입니다. 참된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기 전에는 내 뜻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할 때에는 아버지의 뜻이 있습니다. 생각할 때에는 내 계획이 여러 가지로 많습니다. 그러나 눈을 감고 기도하면 아버지의 계획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기도란 내 뜻이 아버지의 뜻에 승복하는 과정입니다.

 

처음에는 내 생각과 의지, 내 계획, 내 방법이 중요하지만 기도하면 할수록 "아버지, 내 뜻은꺾이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인성을 가지신 예수님의 생각은 무엇이었습니까? "아버지여, 이 잔을 내가 꼭 마셔야 합니까? 십자가를 지지 않는 길은 없습니까?"라고 질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완전한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됩니다.

 

우리도 십자가를 피하고 싶다는 기도를 일상 생환에서 많이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여러분이 꼭 져야 할 십자가인 것입니다. 도망가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맡겨 주신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십자가를 지시기로 결심하면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질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질 수 있는 돈도 주십니다. 질 수 있는 모든 영적인 힘을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시는데 제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제자들은 열심히 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기도할 수 없었더냐?" 그런데 이 말씀에는 책망도 책망이지만 그보다는 우리 인간에 대한 예수님의 깊은 이해가 깔려 있습니다.

 

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들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마음의 소원은 간절하지만 육신의 옷을 입고 육신의 종노릇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영적인 열매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노력은 하지만 얻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결론은 육신이 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 인간적인 관점, 인간적인 가치관이 무너지지 않고 내 옛사람이 깨어지지 않는 한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제자들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과 함께 있었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부탁을 받고 체면치레로 기도했기 때문에 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성령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42,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예수님이 기도하고 돌아보니 제자들이 졸고 있었습니다. 그들을 깨워주시고 다시 가셔서 두 번째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한 번 기도하셔서는 결정이 잘 안된 것 같습니다. 또 가서 두 번째로 똑같은 기도를 하시는 것입니다. 자기를 깬다는 것은 이렇게 어렵습니다. 자기를 죽인다는 것, 자기를 포기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두 번째로 기도하고 와서 보니 43절에 어떤 일이 있습니까?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

 

제자들을 깨워 놓았지만 또 잤다는 것입니다. 44,45절에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45]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세 번째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를 하시고 나서 "이제는 자고 쉬라"고 말씀하십니다. 세 번 깨어 있어야 할 때 세 번 잠을 잤던 베드로는 계집종에게 세 번 예수님을 부인하는 실수를 범합니다.

 

세 번 피땀 흘려 기도하신 예수님은 로마 군병들이 잡으러 올 때든, 재판을 받을 때든, 십자가를 져야 할 때든 흔들리거나 원망하거나 분노하지 않고 십자가의 길을 걸으실 수 있었습니다. 46절을 보십시오.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예수님은 이제 승리하신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서의 모든 고민과 슬픔이 사라졌습니다. 조금도 동요함이 없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실 준비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십자가를 앞에 두고 예수님은 기도하러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자기와 싸우셨습니다.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앞에 자기의 뜻을 내려놓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붙잡기로 결단하고 일어섰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피곤해서 졸며 잤습니다. 우리의 삶이 피곤하다고 졸며 자면 베드로처럼 실패합니다. 넘어집니다.

 

한 시간 동안이라도 깨어 있어 기도하면 영적전쟁에서 승리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나갈 때 여러가지 크고 작은 일들이 우리 주위에 계속 일어납니다. 그때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생각하시면서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십자가 있는 삶을 사셔서 삶의 현장에서 영적으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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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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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상목 | 작성시간 17.11.16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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