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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문의 메시지

네 부모를 경외하라(레19:1-4)

작성자야베스|작성시간18.05.13|조회수778 목록 댓글 0

네 부모를 경외하라(19:1-4)

 

18세기의 영국의 유명한 문필가 사무엘 존슨이 어느 여름날, 비가 막 쏟아지는데도 복잡한 장터에서 홀로 몇 시간이고 서 있었습니다. 사람이 지나가면서 인사를 해도 인사도 받지 않고, 말을 걸어도 대답도 하지 않고 그냥 서서 눈물만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왜 그렇게 비를 맞고 서 있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내가 어렸을 때에 바로 이 근방에서 아버지께서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님이 몸이 아주 좋지 않으셔서 저에게 하루만 시장을 나가 주기를 바라셨지만, 어릴 적 헌책 장사를 하시는 아버지의 일을 부끄럽게 여겨 간절한 청을 거절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후 아버지께서 아픈 몸을 이끌고 장터에 나가신 것이 무리를 했던 탓인지, 몸이 약해져서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 후 불효한 일이 생각나서 무덤 앞에 꿇어 엎드려 통곡해도 시원치 않아 그 옛날 불효를 범했던 이 자리에 와 벌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효도는 반드시 때가 있습니다. 효도와 불조심은 때가 늦으면 후회막심입니다. 돌아가신 뒤에 황소를 잡아 제사지내는 것은 살아 계실 때 닭 한 마리 잡아 드리는 것만 못합니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에 그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부모에 대한 효심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지닌 최고의 아름다움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구시대의 유물처럼 여겨지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핵가족을 넘어서 나홀로가족, 1인가족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식은 있으나 누구도 부모를 모시려 하지 않는 세상이 됐습니다. 그래서 혼자 사는 독거노인들이 날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부모를 구박하다 못해 구타까지 하는 자식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현대판 고려장까지 지내는 천인공로 할 일들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가르쳐 주는 효의 개념은 무엇입니까? 오늘 말씀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부모님 경외하는 것이 거의 동격에 이르고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첫째, 2,“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너희는 거룩하라너희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에 너희도 거룩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구별된 삶을 살아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라 그런 말씀입니다.

둘째, 3,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하나님은 안식일을 제정하시고 안식일에 예배를 통해 큰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안식일은 인간을 위해 제정하신 날입니다. 일주일에 하루를 쉬고 하나님안에서 안식을 체험하라고 주신 날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엄중한 명령이요, 마땅히 지켜야 할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래서 주일이 되면 성도들이 모든 일을 중지하고 몸과 마음을 단장하고 교회에 나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 아주 놀라운 말씀이 기록돼 있습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전에 먼저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3절 말씀을 보면,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하셨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되 먼저 부모를 경외하고 그리고 안식일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향한 경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먼저 부모를 공경하고, 그리고나서 하나님을 경배하라 하시니, 이 얼마나 파격적인 가르침입니까?

 

성경은 많은 곳에서 "하나님 경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경외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공경하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경외'라는 말이 하나님과 동시에 부모에게까지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너의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그리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께 쓰는 단어를 부모에게까지 사용할 수 있을까요?

 

부모는 하나님의 대리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절대 권한 3가지를 가지고 계십니다. 첫째가 창조요, 둘째가 섭리며, 셋째가 심판입니다. 따라서 이 세 가지 점에서 볼 때, 부모는 분명 하나님의 대리자임에 틀림없습니다.

 

첫째, 부모는 자녀를 낳아 주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창조사역에 동참하는 일입니다.

둘째, 부모는 자녀를 길러 주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섭리사역에 동참하는 일입니다.

셋째, 부모는 자녀를 바르게 기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자녀가 잘못하면 징계의 채찍을 들기도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하나님의 심판사역에 동참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의 어버이는,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와 심판의 권력을 대리하는 존재입니다.

 

요일4:20절에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어찌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느냐?" 했습니다. 다시 말해, '너를 낳아 준 육신의 어버이도 공경하지 못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어찌 공경할 수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어버이를 공경하지 못하는 자가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흔히 부부는 인륜이요, 부모와 자식은 천륜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천륜의 첫째되는 부모, 하나님의 대리자 역할을 하는 어버이를 공경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부모를 경외하고 그리고 나서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주일날이면 어김없이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린다고 다 안식일을 잘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 말씀대로, 부모를 경외하고 그리고 나서 안식일을 잘 지켜야 주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될 수 있고 주일 성수가 된다는 것입니다.

 

신약에 와서, 예수님은 영생을 부모공경과 일치시키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9장에 보면, 한 부자 청년이 예수께 나와 질문을 하기를, "선생님!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했습니다. 이 때 주께서 대답하시기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켜라하셨습니다. 이에 청년이 또 묻습니다. “그러면 어느 계명을 지키면 되겠나이까?”

 

이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십계명의 대인계명을 말씀하시면서 그 가운데 "네 부모를 공경하라"(19:19)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영생의 길에 들어서려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영생과 부모 공경이 무슨 상관이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만 잘 믿으면 되지, 효도와 영생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입니까? 그 설명은 간단합니다. 이웃을 사랑치 않는 자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천륜으로 엮어주신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님은 부모 공경을 철저하게 신앙의 기초로 보셨습니다. 15장에 보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손을 씻지 않고 떡을 먹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고, '너희는 어찌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있느냐?' 하고 엄히 따졌습니다. 제자들이 성경에서 정한 성결의 법도를 어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런 말속에는, 자기들이야말로 그 누구보다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는 자라는 자랑을 하기 위함이요, 자기들보다 더 완벽한 흠이 없는 신앙인이 어디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때 그 광경을 보고 계시던 예수님이 그들의 대화 속에 개입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셨습니다. 그것도 그냥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는 엄청난 말씀을 첨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과 부모 공경이 무슨 관계가 있단 말입니까? 얼핏 들으면 동문서답처럼 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신앙에 관한 한 그 누구보다도 열심이 있다는 바리새인들에게 율법에 관한 한 자기들보다 완벽한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서기관들에게 "부모도 공경하지 못하는 주제에 너희가 무슨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떠드느냐?"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어떻게 이토록 심한 말씀을 하실 수 있었을까요? 저들은 하나님께 헌금도 많이 드리고 헌물도 많이 바치는 자들이요 그 누구보다도 믿음이 좋기로 유명한 바리새인들이요 서기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부모에게는, '나는 하나님께 다 바쳐서, 부모에게 드릴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 우리 어머니 아버지를 책임져 주시옵소서' 라고 말하고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이 외식하는 자들아 네 부모나 잘 섬겨라!" 라고 엄히 책망하신 것입니다. 157절을 보면,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해서,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셨습니다.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으로는 내게서 먼 자들, 겉으로는 믿음이 좋은 것 같은데 중심으로는 헛되이 경배하는 자들, 그런 자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이요 서기관이며, 그런 자들이야말로 부모는 공경하지 않고 하나님만 열심히 섬긴다는 위선적인 자들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주님을 사랑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부모님도 사랑해야 합니다. 주님 앞에 충성을 다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부모에게도 충성을 다하십시오. 온 정성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부모님도 온 정성을 다해 보살펴 드려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효의 도입니다.

 

놀랍게도 성경은 남왕국 유다의 멸망까지도 그 원인을 불효와 일치시키고 있습니다. 에스겔서 22장을 보면, 유다가 왜 바벨론의 공격을 받아 멸망을 당해야 했습니까? 그 이유를 열거하면서 그 죄악들 가운데, 우상숭배 다음으로 큰 죄가 바로 "부모를 업신여긴 죄"였다는 것입니다. 22:7절을 보면, "그들이 네 가운데에서 부모를 업신여겼으며 네 가운데에서 나그네를 학대하였으며 네 가운데에서 고아와 과부를 해하였도다"

 

유다가 바벨론으로부터 멸망을 당하게 된 여러 죄악가운데, "부모에게 불효한 죄"가 크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부모의 권위를 이렇게까지 높이셨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효심은 어떻습니까? 누가 '나는 효자입니다' 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분이 어디 있습니까? 아무리 잘한다 한들, 부모님 떠나시는 영정앞에서는 불효자의 추억밖에는 떠오르는 것이 없습니다.

 

한 성인이 제자들과 함께 길을 떠났습니다. 하루는 사람들의 백골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곳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이 때 누군가가 말하기를, "삶이란 참 무상한 것이로다. 죽으면 한결같이 뼈다귀만 남는 걸" 그 때 성인이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여기서 여자의 뼈를 가려낼 수 있겠느냐?" 아무도 여자의 뼈를 가려내지 못했습니다. 이 때 성인이 새까맣고 가벼운 뼈 하나를 들고 말하기를, "이 뼈가 여자의 것이니라."

 

그러면서 가르쳐 주기를, "여자가 아기를 가지면 온 몸의 양분을 아기에게 주고, 아기를 낳을 때에는 몸속의 많은 피를 아기 위해 흘린단다. 젖을 먹이는 동안 자기의 피와 살을 아기에게 공급해 주고, 살과 피뿐만 아니라 뼈 속의 영양분까지 공급해 주는 것이니라. 그리고 양육하는 동안에도 다칠까 마음 조이고, 나쁜 길로 빠질까 염려하여 속이 타는 법이니, 그런 어머니의 사랑이 이 뼈를 이토록 가볍고 검게 만들었느니라" 했습니다. 이 말에 제자들이 어머니의 사랑을 돌이켜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불효를 범하면 저주를 받기에 두려워서 효도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공경하자는 것입니다. 이 못난 나를 위해 밤중에 열이 나면 들쳐 업고 10리 길을 마다 않고 뛰어가신 부모님 아니십니까? 똥을 싸면 냄새를 맡아가며, 똥 색깔을 보고 기뻐하기도 하고 수심에 차기도 한 분이 우리의 어머니들 아닙니까?

 

당신의 배에서는 쪼르륵 소리가 나도 자식의 입에다 밥알 하나라도 더 먹이려고 눈물을 흘리시던 분들 바로 이런 부모님을 우리가 어찌 공경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3,"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했습니다.

 

너는 나의 안식일을 지켜라. 그러나 먼저 네 부모를 공경하라. 부모를 경외하고, 그리고 나서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먼저 부모님 공경에 앞장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미국의 18대 대통령인 아브라함 링컨에게는 좋은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그는 노동자이며 배우지 못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덕분에 가난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나마 링컨에게 성경을 읽어주며, 신앙을 심어주던 어머니는 안타깝게도 링컨의 나이 9살 때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 때 남긴 어머니의 유언 '아들아! 너는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어야 해!'하신, 어머니 말씀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훗날 대통령이 된 링컨은 그의 자서전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위대한 사람으로 자랄만한 조건을 한 가지도 주시지 않았다. 주신 것이 있다면 가난과 훌륭한 신앙의 어머니이었다" 훌륭한 신앙의 어머니, 그 분이 링컨을 위대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에게 무엇을 우리가 물려 줄 수 있겠습니까? 재벌처럼 돈을 물려 줄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훌륭한 학자로서 지식을 물려줄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권력을 물려줄 수 있겠습니까? 저는 우리 어버이들이 자녀들에게 세상을 이길수 있는 신앙을 물려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저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세워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저들의 아버지가 되면 하나님께서 저들의 평생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좋은 모범을 보이시는 부모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즘 묵상하는 11:4“아벨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아벨은 죽었지만 하나님께서 그 삶을 증거하시고 계십니다. 그는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진정한 믿음의 흔적을 남기는 어버이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저희 아버지 추모예배가 58일입니다. 그 때 모처럼 형제들이 다 모였습니다. 32녀인데 모여서 추모예배를 드리고 지난 날 부모님을 추억하며 이야기를 한가지 나누기로 했습니다.

 

모두가 한결같이 아버지 어머니의 좋은 흔적, 가난한 서민이었지만 참 신앙으로 사셨던 부모님이었다고 증언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저만 기억하는 줄 알았는데 저의 여동생도 남동생도 가난한 친척집에 가서 새옷을 벗어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렇게 이웃을 사랑하고 아낌없이 사랑을 실천하신 아버지가 가끔 생각납니다. 항상 긍정적으로 칭찬해주시고 격려해주시며 기도해주시던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조금 전에 살펴본 링컨의 어머니가 위대했던 것은 링컨에게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다른 재산은 없어도 신앙의 재산을 물려 줄 수 있다면 그 보다 더 좋은 어버이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위대한 어머니는 자녀에 관한 한 포기가 없습니다. 오래오래 참고 기다리는 분이 어머니이십니다. 때문에 위대한 어머니의 사랑은 끝이 없습니다. 언제나 그의 자녀들에게 소망을 갖고 있습니다. 에디슨이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3개월째 되는 어느 날, 학교에서 학부모 면담 요청이 왔습니다. 학교를 찾아 간 에디슨의 어머니에게 담임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오늘 좀 오시라 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에디슨의 성적이 너무 나빠서입니다.

 

도무지 가르치는 것은 배우려 하지 않고, 시간마다 엉뚱한 질문이나 하고,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어제도 '선생님!' 하고 힘차게 부르며 손을 들고 일어서기에, 무엇을 말하려는가 했더니, '둘에다 둘을 합하면 왜 꼭 넷이 되어야 하나요?'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한 번은 '쥐 하나에다 하나를 더하면 몇 마리가 되지요?' 하고 물었더니, 모든 학생이 '선생님, 둘이에요 둘'하고 대답을 하는데, 에디슨만 '하나예요'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왜 하나니?' 하고 물었더니 '고양이가 한 마리를 잡아먹어서요' 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에디슨은 이처럼 학교 수업에 큰 지장을 주고 있는,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능아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죄송하지만 자퇴를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라고 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 에디슨의 어머니는 "저의 아들이 저능아라고요? 그것은 에디슨다운 질문을 한 것뿐입니다. 그러나 다른 학생들에게 지장을 준다니 할 수 없지요. 이제부터 제가 직접 교육을 시키겠습니다" 라고 말한 후,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 후부터 에디슨의 어머니는 그의 특성을 살펴가며 낙심치 않고 열심히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에디슨이 그 후 어떻게 됐습니까? 저능아에서 발명왕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위대한 어머니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위대함'이란 좌절할 수밖에 없는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희망의 불을 끄지 않는 것입니다.

 

로마제국 말기의 종교가요, 초기 기독교 최대의 사상가요, 교부요, 철학자였던 성 어거스틴의 어머니인 모니카는 아들을 위해 끊임없이 눈물로 밤을 새웠습니다. 아들이 18세부터 28세까지 깊은 죄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을 때에도, 어머니 모니카는 결코 아들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결국 그녀의 끈질긴 기도는 어느날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모니카가 아들을 위해 기도한 지 어언 25년째 되는 해, 어거스틴이 밀라노에서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듣던 중,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부모의 사랑은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기다리면 분명히 돌아옵니다. 기다림에 더해 기도하면서 기다리는 부모는 분명,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녀,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녀가 되는 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진정한 효도는 어떤 물질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돌아오는 것입니다. 부모의 품으로 돌아오고,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 아버지도, 육신의 어버이도, 기뻐 환영할 것입니다. "네 부모를 경외하라." 우리 모두 부모를 경외하는 자녀가 되고, 좋은 부모가 되십시다. 진정 부모님을 위해, 나 자신을 위해, 하나님앞에 나와서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헤아리며 감사하고 부모님의 은혜를 헤아리며 부모를 경외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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