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의 유혹(행 8:18-25)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복음은 예수님의 명령처럼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로, 그리고 사마리아로 확장되었습니다. 예루살렘교회가 스데반의 순교로 인해서 엄청난 핍박이 다가오자 모이기만을 원했던 저들이 전국으로 흩어졌습니다. 흩어지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 흩어지지 않고 모여 있으면 그들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놀라겠지만 하나님은 거기서 머물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로 그리고 사마리아로 땅끝까지 복음을 증거해서 생명을 살리는 것이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었습니다. 우리도 가만히 있으면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평온한 것같지만 영적으로는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오늘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뜻을 실천할 때 거기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고, 거기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교회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은 교회가운데 역사하시면서 순종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제가 오랫동안 성경을 가르치면서 깨달은 성령의 대표적인 역사는 3가지라는 것입니다. 1)깨닫는 역사 2)변화시키는 역사 3)능력을 주시는 역사입니다. 그렇게 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생명을 살려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창조의 목적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고 성령을 사모하십시오. 성령충만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성령의 임재를 믿으며 찬송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의 역사가 여러분가운데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에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제가 지난 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사마리아는 어둠의 지역이었습니다. 아무도 구원받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소외되고 멸시받은 그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해지고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이하를 보면 성령이 임하면 그 증거가 나타납니다. 1)찬송입니다. 찬송으로 서로 화답합니다. 마음으로 영으로 찬송합니다. 2)감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범사에 항상 감사합니다. 3)피차 복종합니다. 모두가 섬김을 기쁨으로 여깁니다. 섬김이 예배입니다. 섬김이 사랑입니다. 섬김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복음을 통해서 사마리아에 놀라운 사건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사마리아 사람의 영혼을 지배하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고 하던 사람 마술사 시몬, 그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주장하며 그들의 영혼을 지배하던 마술사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전심으로 전도자 빌립집사를 따라다니며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마술사 시몬이 회개하고 예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놀라운 복음의 승리의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시몬이 사마리아 사람들 가운데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고 사도들에게 제안을 합니다. 18,19절,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19]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돈을 주고 성령의 능력을 사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언뜻보면 시몬이 성령의 능력을 갈망하는 마음이 큰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성령의 능력을 구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구한 것은 성령을 받게 하는 권능이었습니다. 사도들처럼 자신이 다른 사람을 안수하면 성령을 받게하는 능력을 구했습니다. 시몬은 사도들이 안수했을 때 사마리아 성도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역사를 보고 부러웠던 것 같습니다.
시몬 자신도 이제까지 마술사로 큰 권능을 많이 행했지만 사도들을 통해서 나타나는 그런 권능은 갖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처럼 자신도 사람들에게 안수하면 사람들 가운데 성령이 임하는 곧 사람들에게 성령을 받게하는 그런 권능을 열망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자신도 사도들처럼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영광을 받고 싶었습니다. 시몬은 성령의 능력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덧입고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고, 신령한 은혜를 누리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사도들처럼 자신이 안수했을 때 성령이 임하는 능력, 곧 다른 사람에게 성령을 받게하는 능력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의 중심이 어디에 가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몬은 예전처럼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영광을 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돈을 줄테니 그런 능력을 자신에게 팔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참으로 그는 자기 영광을 위해 돈을 주고 성령의 은사를 사고자 했습니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교회 역사에 나오는 ‘사이모니(simony)’ 곧 교회 안에서 성직을 사고판다는 성직매매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성직매매란 돈으로 교회의 성직을 획득할 수 있다는 개념, 곧 성령과 교회에 속한 일들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시몬의 죄가 무엇입니까? 시몬의 죄는 개인적인 목적을 위해 영적인 권능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었습니다.
곧 자기 인정과 영광과 명예를 얻기 위해 돈으로 성령의 은사를 사고자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건을 통해 교회에 주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모든 바리새주의로부터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교회가 세속화, 인본화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거룩하고 신령한 공동체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몬 사건을 통해 교회 가운데 바리새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시몬과 같은 죄가 용납될 때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세속적이고, 인본적인 공동체로 전락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는 파괴되고, 하나님의 역사는 세속적으로 변질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 가운데도 시몬의 죄가 동일하게 존재합니다. 성직을 돈으로 사고 팝니다. 성직을 자신의 명예와 삶의 수단으로 여깁니다. 교회도 돈으로 사고 팝니다. 이런 것이 시몬의 죄와 동일한 죄입니다.
이런 죄뿐만 아니라 자신을 과시하며, 명성을 얻기 위해 성직을 꿈꾸고 있다면 그 역시 사이모니입니다. 성직은 거룩한 하나님의 직분입니다. 이 직분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영광스러운 직분이지만 세상에서는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취하는 종의 직분입니다. 교회직분은 어떤 이름을 가졌던 그 직분은 섬김을 받는 직분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섬김을 자랑으로 삼는 직분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도가 무엇입니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예수가 사는 길입니다. 내안에 사는 것이 예수라고 고백하고 증거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이 직분을 받았다면 그 직분이 하나님앞에서 어떤 모습으로 섬기고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그직분을 통해서 생명을 살리고 있습니까? 그 직분을 통해서 자기를 희생하고 자기 영광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있습니까?
저는 그런 자세가 되어있지 않으면 직분이 크다고 생각하는 만큼 이 다음에 하나님앞에 서는 날 그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너무 선생되기를 좋아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선생은 먼저 심판을 받습니다. 물론 그 직분은 영광스러운 직분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면 영광입니다. 그러나 자기 그릇에 버거울 정도로 직분을 받으면 첫째는 교회의 걸림돌이 됩니다. 왜냐하면 영적지도자는 신앙생활의 본입니다.
본이 되지않으면 교회의 덕을 세우지 못하는 것입니다. 연약한 신자를 실족시키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 뿐 만 아닙니다. 자기에게도 그 책임이 있기 때문에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하나님께 책망을 들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직분자가 되시기를 원하신다면 더 낮아져야 합니다. 더 깨어져야 합니다. 더 섬김의 도를 실천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말씀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예배생활입니다. 불가피한 이유가 있지않으면 예배생활에 앞장서야 합니다.
예배가 살아있어야 신앙이 살아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살아있어야 일상생활이 빛이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권사님들은 기도생활과 연약한 성도들을 돌아보는 일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엡 4:11,12)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분명하게 직분자를 세운 목적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1)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연약한 자를 온전하게 하는 일을 위해 말씀을 가르치고 중보기도를 하는 일입니다. 2)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교회를 대내외적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봉사하는 일입니다. 나도 봉사의 본을 보이고 그리고 어린 신자들도 함께 봉사하게 하는 일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는 나를 위해서 살아왔다면 이제부터는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삶의 이유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새계명입니다. 3)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바로 교회입니다. 결국 성도를 온전케하는일도 봉사의 일을 하게 하는 일도 무엇을 위해서 합니까?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속한 이 교회가 바로 서서 건강한 교회가 되어 생명을 살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을 할수 있도록 우리가 이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직분을 주신 목적입니다.
왜 우리가 직분자가 되었습니까?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결코 자기 명예, 자기 영광을 위해서 계급처럼 교회직분을 그렇게 여기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이제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 무너진 직분의 책임을 다시 회복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시몬은 이전처럼 자기를 높이고 자기가 큰 사람이 되고 모두에게 존경받는 영적 지도자가 되고 싶은 것입니다. 자기가 이제는 교회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되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은 이전과 이후가 달라진 것이 없는 것입니다. 단지 교회안에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본질이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나는 없습니다.
나는 죽었습니다. 나의 자랑, 나의 영광은 오직 십자가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자랑입니다. 이렇게 본질이 바꾸어지지 않는 한 그는 그리스도인같지만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최후의 만찬을 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의 발을 닦아주시면서 이렇게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요 13:10하)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닌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진정으로 여러분의 주권이 변화하여 예수님이 나의 주되심 고백할 뿐 만 아니라 삶속에서도 그렇게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될 때 그 곳이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인되어 통치하실 때 그곳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이것을 우리는 믿음의 역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의 삶의 현장에서 믿음의 역사가 많이 나타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만일 사람이 어떤 점에서, 또 어떤 방법에서든지 자신을 높이기 위해서 성령의 은사를 구한다면 그는 개인적인 과시와 명예를 위해 영적인 은사를 구했던 시몬의 전철을 되밟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속에 있는 시몬의 죄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죄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시몬과 같은 죄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것처럼 위장해 있기때문에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자기 스스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과 뜻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잘 깨닫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이런 죄는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나게 됩니다. 시몬의 죄는 기독교 역사에 보면 항상 있어 왔습니다. 우리는 많은 이단들의 출현과 사이비 교주들을 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성령의 은사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영광과 명예를 위해서 성령의 은사를 구하였습니다.
사이비 교주 뿐만 아니라 많은 하나님의 종들도 성공 후에 이런 시험에 드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의 교회가 세속화되고, 하나님의 역사가 혼란에 빠지는 경우를 봅니다. 우리 속에는 어떤 시몬과 같은 죄가 있습니까?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고 이 죄에서 돌이키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공동체가 거룩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교회가 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시몬을 향한 베드로의 반응이 어떠하였습니까? 20,21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21]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베드로는 무시무시하게 책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산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이 될 것도 없느니라.”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도 없다’는 말은 복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복음으로 인한 축복도 없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곧 멸망을 의미합니다. 참으로 무시무시한 책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돈 주고 성령의 은사를 사고자 하는 자들은 복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이들이 외적으로 아무리 많은 일을 하고 업적을 남겼다 할지라도, 곧 아무리 큰 교회를 이루고 아무리 선교사업을 많이 했다 할지라도 복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복음으로 인해 누리게 될 구원과 축복이 없습니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과 멸망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책망만 하지 않았습니다. 22-23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23]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 바 되었도다”고 권면했습니다.
베드로는 시몬의 마음에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사로잡혀 있는 것을 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시몬을 사랑하십니다. 그에게도 하나님의 긍휼이 임하였습니다. 비록 악하고 물질에 사로잡혀 자기왕국을 이루고 자기영광을 구하고 있는 시몬이지만 자기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면 용서해 주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요 긍휼인 것입니다. 한없이 사랑하시기에 회개의 문을 열어놓으신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에 오늘 우리가 이렇게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고마운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시몬은 이 말을 듣자마자 다음과 같은 요청을 합니다.
24절,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않게 하소서 하니라” 시몬은 참 단순합니다. 이런 단순함이 여러분에게도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세례가 얼마나 중요한지, 구원받은 사람은 능력을 얻어야 합니다.
구원받은 것으로 다 되었다 생각하지 마십시요. 베드로는 시몬을 불쌍히 여기고 회개를 촉구하고 죄사함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이에 시몬은 베드로에게 나를 위해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자신에게 임하지 말게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24).
그러면 베드로가 어떻게 시몬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을까요?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에게 시몬을 통한 유혹은 아주 교묘하고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말려들기 쉬운 유혹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성령 충만하여 깨어 있었기 때문에 그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사단이 시몬을 통해 교묘히 역사하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안수했기 때문에 성령이 사마리아 사람들 가운데 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몬은 베드로가 안수하여 사람들에게 성령이 내리신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이같은 시몬의 생각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못박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한 것은 성령의 주권적인 역사요,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사도들이 안수했기 때문에, 사도들로 인해서 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사도들과 같이 성령 충만함을 덧입고 늘 깨어 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교묘히 파고드는 사단의 유혹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거룩한 교회로 세워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몬이 성직을 돈으로 사겠다고 제안한 것은 초대 교회가 부딪힌 큰 위험이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 역사를 돌이켜 보면 교회가 항상 이런 유혹을 물리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유혹앞에 힘없이 무너져서 세상과 타협하고 물질과 타협했을 때 당장은 유익한 것처럼 보였지만 결과는 교회의 타락이었습니다. 교회가 빛을 잃어버리고 세상의 지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런 유혹 앞에 거의 공포스러울 정도로 준엄하게 책망하였습니다. 사실 이전에 베드로도 예수님께 이런 책망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정합니다. 절대 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책망하셨습니까?
(마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그렇게 인자하신 예수님께서 영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아주 냉정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그 뜻을 거절하는 것은 사탄의 역사였습니다. 예수님은 속지않았습니다. 무섭게 책망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베드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주 분명하게 책망하고 단호하게 거절한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문제에 대해 성도의 태도가 되어야 합니다. 다른 것은 조금 양보해도 괜찮습니다. 조금 손해보아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문제는 절대로 양보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요늘 본문에 베드로처럼 아주 냉정합니다. 무섭게 책망합니다. 영적인 분노가 충만하여 준엄하게 질책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탄은 아주 교묘하게 성도의 신앙을 공격합니다. 환란과 핍박은 드러난 공격이기 때문에 진정한 성도는 믿음을 지킵니다. 그러나 이처럼 교묘한 사탄의 유혹은 물질로 성령의 능력을 사려고 합니다. 물질로 하나님의 축복을 대신하려고 합니다. 물론 물질 축복이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고 물질에 노예가 되면 물질에 사로잡히면 그의 영혼을 도적질당하고 명하고 영원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처럼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켜 하나님앞에 신앙의 정절을 지키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