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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문의 메시지

한 사람이 한 영혼을!(행 8:26-40)

작성자야베스|작성시간19.07.02|조회수1,290 목록 댓글 0

한 사람이 한 영혼을!(8:26-40)

 

먼저 오래 전에 보았던 쉰들러 리스트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지금부터 약 1세기 전인 20세기 초에, 히틀러와 그의 추종자들이 유태인을 마구 학살하고 있을 때, 독일에 한 사업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남부러울 것 없는 중견사업가로서 편안한 생활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우연히 유태인 학살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 사업가는 그 장면을 목격하기 전까지만 해도 유태인은 마땅히 죽어야 할 민족으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는 노인, 아이, 남자, 여자, 부모와 자식 가릴 것 없이 가스실로 들어가 울부짖으며 죽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습니다. 말이 600만 명이지, 김해시 인구의 12배가 죽어갔던 것입니다. 독일인들은 유태인의 시체를 태우기 위해 시체 태우는 큰 공장을 몇 채씩 지어놓고, 그 공장을 24시간 풀가동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태인들은 감옥에서 가스실로 들어가 죽기 위해 1, 2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독일인들이 온 유태인 가족을 벌거벗겨 가스실에 넣어 죽입니다.

 

그는, 유태인 어머니와 어린아이가 꼭 껴안고 죽어가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 참으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 비참한 장면을 보고 유태인을 구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그 당시 독일인 관리들이 타락해 있었기 때문에, 돈을 주면 가스실로 갈 유태인들을 구해 내어 다른 곳으로 피신시킬 수 있었습니다. 몇 년 동안 그가 구해낸 유태인 숫자만 해도 수백 명이 넘습니다. 그러나 그 수백 명을 구해낸 후, 그는 마침내 무일푼이 됩니다.

 

그들을 구하기 위해 그의 모든 재산을 다 써버렸기 때문입니다. 그의 마지막 돈을 다 털어 유태인을 안전한 곳으로 보내기 위해 기차를 태워서 떠나 보낸 후, 그는 선로에 앉아 하염없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선로를 터벅터벅 걸어오다가 무심코 자기의 손가락에 끼어진 금반지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소리칩니다. "내가 이것을 왜 끼고 있지? 이 금반지를 팔았더라면 한 사람의 생명을 더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이것을 내가 왜 끼고 있지?" 하며 앉아서 통곡합니다. 이 사람이 바로 쉰들러(Schindler)입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Schindler's List)'는 이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로 만든 것입니다. 쉰들러가 구해준 유태인들이 현재 폴란드에서 약 6000명이 되어서, 자신들을 'Schindler's Jews(쉰들러의 유태인들)이라고 부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감격적인 이야기입니까? 한 사람의 헌신이 수백 수천의 목숨을 구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중요한 사명을 주셨다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죄로 말미암아 죽어가는 저 영혼들을 멸망의 길에서 구원해 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는 평화스런 민주 사회입니다. 그 누구도 학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보는 시각일 뿐, 한 분만은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지금도 그분은 우리가 사는 이 사회를 바라보며, 히틀러 당시에 죽어갔던 유태인처럼 사망의 길로 다가가고 있는 이들을 안타까이 여기십니다.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먼저 사망의 길에서 벗어난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은 그들을 살리는 일을 부탁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이 시대의 쉰들러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쉰들러 리스트'를 가지고 있는가? 나의 쉰들러리스트를 가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먼저 구원하신 이유는 전에 나와 같은 사람을 전도하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쉰들러처럼 내가 대가를 지불하고 구해낸 영혼의 명단을 가지고 계십니까?

 

쉰들러는 자기 재산을 다 없애며 구해낸 수백 명의 명단을 가지고 있었고, 그래서 그 후손들은 수천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생명의 리스트가 있습니까? 그 리스트에 과연 누가 쓰여 있습니까? 여러분들로 인해 하나님을 만나 새 삶을 시작한 사람이 얼마나 되십니까?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어떻게 영혼을 구원하는 사람이 되어 쉰들러처럼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해 낼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오늘 본문의 나오는 빌립을 통하여 우리에게 몇 가지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먼저 죽어져 가는 영혼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1.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우리 능력이 아닙니다. 빌립집사가 어떻게 사마리아에 갔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이후에 저들을 인도하는 분은 바로 성령님이셨습니다. 물론 환경적으로는 환란과 핍박을 통해 어쩔수 없이 예루살렘에서 피난을 가야 했지만 영적으로 보면 성령님이 저들을 흩어지게 만들어서 흩어진 곳에서 구원의 방주를 만들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빌립집사는 예루살렘을 떠나서 저 사마리아로 가게 되었고 거기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복음을 증거한 것입니다. 거기서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복음을 증거할 때에 많은 표적과 기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들의 영적인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던 마술사 시몬도 세례를 받고 개종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온 베드로와 요한을 통해서 성령세례를 받았습니다. 성령충만은 예수님의 마지막 설교의 핵심주제입니다.

 

내가 하늘로 올라가면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가 와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의 가르침이 실제로 온 세상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교회는 성령충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오늘도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서는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교회의 모습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에도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지고 그 말씀이 인격이 되고 삶이 될 때 비로소 우리가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빌립이 한참 사마리아 땅에 전도의 열심을 내고 많은 성과를 내고 있을 때, 하나님의 사자가 빌립에게 또다른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것은 '사마리아를 떠나 가사로 가는 광야 길로 가라'는 명령을 합니다. 그 길은 광야 길입니다. 빌립이 순종하여 달려갔더니 '에디오피아'의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큰 권세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가는데 병거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우리 마음가운데 역사할 때 그 감동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이처럼 성령의 소리를 듣는 것이 바로 영적으로 깨어 있는 것입니다.

 

2.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빌립이 에디오피아 사람 내시를 구원할 수 있었던 것은 영적으로 깨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즉각 순종합니다.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은 영혼의 필요를 볼 줄 압니다.

 

26-27"주의 사자가 빌립에게 말하여 이르되 일어나서 남쪽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27]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관리인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 빌립은 지금 사마리아 성에서 대단한 성공을 이루었습니다. 빌립을 따르는 사람도 많아졌고, 표적과 능력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그 때 빌립에게 하나님의 성령을 통하여 말씀하시기를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지금 빌립이 가야할 그 곳은 사람이 살지 않는 광야입니다. 상식과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인간의 경험에 맞지 않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전도를 하려면 사람이 많은 곳으로 가야 하는데 하나님이 가라고 하신 곳은 사람이 없는 광야입니다. 그곳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빌립은 이런 성령의 음성을 들었을 뿐 아니라 우리가 볼 때 도저히 이해되지 않고 이유도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셨지만 순종했습니다.

 

영적으로 깨어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빌립은 주저하거나 머뭇거리지 않았고, 곧바로 일어나 갔습니다. 영어 성경에는 뛰어갔다고 했습니다. 이런 빌립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참으로 진실한 주의 일꾼의 모습을 봅니다. 빌립은 천사의 지시를 받고 요나처럼 도망치지도 않았고, 모세처럼 가지 않겠다고 뱅글뱅글 맴돌지도 않았습니다. 빌립은 성령의 명령을 전적으로 아멘하고 순종한 사람이었습니다.

 

빌립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아무도 없는 것 같은 광야인 가사로 내려갔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있는 내시를 만나게 됩니다. 당시 에디오피아에서 예루살렘까지 거리는 7천리입니다. 애굽을 지나야 하고 험한 준령도 넘어야 하고 황망한 사막길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이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 것입니다. 요즘 우리들은 교회가 조금만 멀어도 핑계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늘 내시는 7천리를 마차타고 달려왔습니다. 이렇게 예배를 소중히 여기고 그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하나님앞에 나와서 절기를 지키는 이 에디오피아 내시의 중심을 아시는 하나님은 바로 빌립을 통해 복음을 증거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 때 성령께서 또 빌립에게 말씀합니다. "바로 이 사람이다. 이 병거로 가까이 가라" 빌립이 달려가서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증거하여 이 사람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바로 이 한 사람에게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한 사람을 구원시키기 위해 빌립으로 하여금 한창 부흥하고 있고, 성공하고 있는 사마리아라는 사역지를 떠나게 하였고, 아무 것도 없는 광야인 가사로 가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에디오피아 내시는 구원받고 세례받아 빌립과 헤어지고 난 후 자기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이후로 성경에 그 내시는 다시 언급되지 않지만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에디오피아 내시가 구원을 받고 고국에 돌아가서 자기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파함으로서 에디오피아가 하나님을 알게 되었으며 놀라운 것은 이로 인해 시편 68:31절의 예언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시편 68:31절은 예언적인 구절인데 에디오피아의 복음전파에 대한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고관들은 애굽에서 나오고 구스인은 하나님을 향하여 그 손을 신속히 들리로다."

 

만약 빌립이 하나님께 순종하는데 늦장을 부렸다면 이 전도의 기회는 잡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시편에 예언된 말씀이 자신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축복의 기회를 놓쳤을 것입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에 쓰임받기를 원하십니까? 그 사람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는데 쓰임받는 축복을 누리고 싶지 않습니까? 영적으로 깨어있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시편 119:60절에서 다윗은 고백합니다. "주의 계명들을 지키기에 신속히 하고 지체하지 아니하였나이다." 한 사람의 영혼이 얼마나 귀중한지 우리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 얼마나 놀라운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있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함으로 한 영혼이 구원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이룰 수는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마리아로 흘러간 복음의 물결은 아프리카의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전달됩니다. 이 사건은 초대교회의 선교활동의 새로운 면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기독교가 이제 이스라엘의 변방을 넘어서 세계를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한 영혼이지만 이 사건은 최초의 아프리카 선교가 이루어진 사건인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에디오피아가 최초의 기독교국가가 되는 시작이 된 것입니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3. 한 영혼을 향한 진정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 빌립은 한 사람을 만납니다. 28돌아가는데 수레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더라 '수레'란 마차 중에도 전쟁에 쓰는 아주 고급 마차입니다. 그가 읽은 성경은 53:7-8절입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한 말씀입니다. 사람이 피곤하고 지치면 모든 것이 귀찮아집니다. 그러나 에디오피아 내시는 먼 여행을 하면서도 병거 위에서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편안한 소파에서 읽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조용한 서재에서 읽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덜컹거리며 흔들리는 병거 위에서 그는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바쁘다는 이유로, 피곤하다는 이유 때문에 말씀을 멀리하고 있지 않습니까? 여기 에디오피아 내시는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신앙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 내시의 모습을 보십시요! 얼마나 겸손합니까? 하나님을 찾는 사람, 진리를 찾는 사람은 겸손해야 합니다. 뒤에 나옵니다만 빌립이 '읽은 것을 깨달았느냐?'고 물었을 때,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냐?'고 하면서 빌립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당시 이사야성경은 유대인들이 구하기가 힘들 때인데 이방인이며 내시가 이사야성경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그만큼 그는 성경을 사모해서 얻어진 것입니다.

 

그는 또 사모한 성경을 길에 가면서도 읽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성경을 읽기는 읽는데 깨닫지는 못해서 답답해하고 있는 중이니 얼른 올라타서 가면서 좀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내시는 겸손하고 솔직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체면 때문에 거절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시는 체면이고 뭐고 우선 하나님의 말씀에 갈급함을 풀어야겠다는 심령이었습니다.

 

이 심령이 가난한 심령입니다. 하나님은 가난한 심령을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 사람 그것도 이방인인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난 빌립은 그의 사모하는 심령을 보고 그 영혼을 사랑했습니다. 그 영혼에게 복음을 전해주고 싶은 열망이 간절했습니다. 전도는 영혼사랑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 마음을 가지면 그 증거가 바로 이웃사랑입니다. 이웃사랑에 있어서 가장 적극적인 사랑은 그 영혼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충만하면 성령의 열매가 맺어지는 데 그 첫째가 사랑입니다. 성령의 은사중에 가장 큰 은사가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충만하면 당연하게 이웃을 사랑합니다. 비록 나와 피부색이 다르고 민족이 다르지만 빌립은 그 영혼을 사랑했습니다.

 

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수레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주님의 마음으로 그 영혼을 바라보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내가 체험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35"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 빌립은 고난의 종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가르쳤습니다. 아마도 53:4-5절의 말씀을 가르치지 않았겠는가? 추측이 됩니다.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예수님은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안고, 십자가를 지셨다'고 말씀합니다.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예수님이 가시관에 찔리시고 창과 못에 찔리셨습니다. 그 다음 우리의 죄악 때문에 그분이 상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악을 예수님께 담당시키셨습니다. 53:6"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빌립은 내시에게 그분이 우리의 메시아임을 자세하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이 있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내시가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성경은 예수를 증거하는 책입니다. 예수께서 유대인들에게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책입니다. 그래서 복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몸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 사랑을 증거하는 책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입니다. 예수님이 길입니다. 예수님이 진리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고 사망에서 생명을 옮겨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적극적인 표현이 바로 전도인 것입니다.

 

빌립집사는 예전같으면 에디오피아 사람을 만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한 빌립은 그누구에게라도 그 사랑을 증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에도 가고 광야에 지나가는 에디오피아 내시에게도 가서 이 생명의 복음을 증거한 것입니다. 빌립집사의 마음은 마치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는 것처럼 그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영혼을 향한 적극적이고도 열정적인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예전에 카터 전 미국대통령이 쓴 Why not the best?(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라는 글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그는 수십 년 전에 자기 교회의 전도집회를 10년동안 참가했었다고 합니다. 매년마다 전도집회가 열렸는데 매년마다 14가정을 꼭 책임지고 찾아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10년 동안 그 전도집회에 참석했으니까 140가정을 전도한 것입니다.

 

매우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나는 10년 동안 140가정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예수 믿은 사람도 있다.'라는 은근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66년도에 주지사로 출마를 하여 선거운동을 하였는데, 3개월 동안 30만 명이 넘는 사람들과 악수를 했다는 것입니다. 주지사에 당선된 뒤 그의 마음에는 부끄러운 가책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그의 글을 그대로 인용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를 위해서는 3개월에 30만 명을 만나보면서 하나님을 위하여서는 14년 동안 겨우 140가정에게 복음을 전하였다니... 이것은 보통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이것이 카터 전 대통령이 느낀 가책이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가책을 받아야 할 부분은 없을까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온갖 정성과 열정을 다 쏟아 붓고, 없는 시간도 억지로라도 만들고, 돈도 아낌없이 쓰며 전력을 다 기울이면서, 하나님이 찾고 계시는 잃은 양, 기회 놓치면 영원히 망할 수 밖에 없는 그 불쌍한 영혼을 위해서는 시간도 별로 안 드리고, 돈도 안 쓰려고 하고 관심도 별로 기울이지 않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사랑"이라는 말을 하기에는 참으로 부끄러운 사람들일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위한 희생을 각오해야만 합니다.

 

사랑이라는 나무는 희생을 먹고 자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혼의 가치가 천하보다 귀하고 하나님의 관심이 이것이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열심을 가지고 전도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슈테른베르크가 그린 유명한 예수님의 그림이 있습니다.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빌라도와 유대인들 앞에서 조롱을 받으면서 서 있는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그 그림의 제목은 이 사람을 보라입니다. 그리고 그 그림 밑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습니다. "나는 너를 위해 이렇게 하였다. 너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하였느냐?“ 이 그림을 보고 감동을 받은 하버겔이 쓴 찬송가가 311장입니다.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길을 주었다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 주느냐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무엇 주느냐

 

주님의 은혜에 감동된 사람은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같이 구원을 받도록 조그마한 수고로부터 큰 희생에 이르기까지 값을 치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바울처럼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는 사랑과 열정이 있습니다. (20:23-24)"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이처럼 자기 자신 전부를 불태울 수 있는 열정을 가지고 사람들을 만날 때, 사람들은 그 사람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구주의 사랑을 보게 됩니다. 그 사랑이 사람들로 하여금 어두움에서 깨어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즐겁게 적극적이고 열정적으로 희생할 수 있는 사람되기를 바랍니다.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이렇게 적극적이고, 열정적이고, 희생적일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리라 믿습니다.

 

빌립집사님은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하여 이렇게 적극적으로 다가갔습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깨어있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해야 하고, 한 영혼을 진정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오스왈드 수니프는 "언제 교회가 부흥하는가?"하는 문제에 대해 담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성도들로 인해 교회는 진정한 발전이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4:12절에 말씀했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어떻게 우리를 통하여 영혼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누군가 전하는 자가 있어야 듣지 않겠습니까? 들어야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1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우리와 사람들이 무슨 대화를 하든지 거기서 예수님을 전하는 것을 훈련하여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우리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빌립을 통하여 세 가지로 보았습니다. 첫째는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둘째는 영적으로 깨어 있어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세째는 한 영혼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여러분 주위에 전도해야 할 영혼이 있습니까? 구원받아야 할 영혼이 있습니까? 빌립의 마음처럼 그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진정으로 그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적극적이고, 열정적으로 대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분명한 복음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이 일을 해야 합니다.

 

185710월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의 닝뽀(Ningpo)에서 일을 시작하여 니(Nyi)라는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기쁨에 넘쳐서 자기의 믿음을 남에게 나누어 주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래서 허드슨 테일러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영국 사람들은 이 기쁜 소식을 얼마 전부터 알고 있었죠?" 영국은 수백년 전에 복음을 알았다는 것을 테일러는 고백하였다. 그러자 그는 "저의 아버지는 진리를 찾다가 돌아가셨어요. 좀 더 일찍 오시지 그랬어요!"라고 말했다.

 

허드슨 테일러는 가슴을 찌르는 그 질문에 대답할 말이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복음을 안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그 복음을 개인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 주었습니까? 처음 예화를 통하여 말씀드린 것처럼 쉰들러에게는 쉰들러 리스트가 있었습니다. 그를 통하여 생명을 얻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여러분을 통하여 구원받은 영혼들의 리스트가 있습니까? 지금부터 늦지 않습니다. 우리의 태신자리스트를 만듭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깨어야 합니다. 그 영혼을 진정으로 사랑하여 적극적이고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귀한 영혼을 위해 힘서 기도하고 그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임받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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