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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문의 메시지

아들을 드린 한나(삼상 1:21-28)

작성자야베스|작성시간19.07.02|조회수558 목록 댓글 0

아들을 드린 한나(삼1:21-28)

 

오늘은 5월 첫주 어린이주일입니다. 소중한 내 자녀들을 위해서 어떻게 기도해야 하고 어떻게 축복해야 하며 저들을 어떻게 길러야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 앞에 물어보는 시간입니다.

시편 127:3절에 보면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라 그랬습니다.

 

여기 기업이라는 말은 사업체를 연상하기 쉽습니다만 쉬운 말로 번역해 보면 "과제"라는 말입니다. 자식을 교육하고 양육한다는 말은 밀린 숙제처럼 때로 무겁고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자식은 상급이다 라는 말은 자식을 키우면서 얻는 부모의 기쁨과 특권과 축복이 있다는 말입니다. 분명 자식은 한편 무거운 과제요 또 한편 훌륭한 축복이요 상급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은 숙제처럼 과제가 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축복이요 상급이 되고 있습니까? 자녀를 교육한다는 것은 화초에 물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화초에 물을 너무 안주면 말라 죽고 물을 너무 많이 주면 뿌리가 썩어서 죽습니다. 자녀에 대한 사랑도 관심도 너무 적어도 안되고 너무 많아도 안됩니다. 그러면 얼마만큼 관심을 가지고 사랑을 주는 것이 옳은 교육입니까? 여기에 우리의 인생 살아가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 몹시도 아이를 갖고 싶었던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통곡하며 아이를 달라고 기도했던 한 여인이 나옵니다. 한나는 내게 아이를 주시면 이 아이를 훌륭하게 키워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영광을 갖고 싶어 했습니다. 아이가 없던 한나는 몸종 브닌나를 남편에게 주어 아이를 낳게 했습니다. 그런데 몸종인 브닌나는 아이를 낳자마자 기고만장해졌습니다. 주인 한나를 멸시하고 조롱했습니다. 한나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몸부림치며 기도했습니다.

 

"나는 어쩌다 남들 다 낳는 아이 하나를 낳지 못하여 이런 천덕꾸러기가 되어야 합니까? 제게 아이를 주시면 훌륭하게 키워서 하나님 앞에 바치겠습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누워있는 아내에게 8절에 보면 남편이 찾아와 위로합니다. "여보 울긴 왜 울어요. 왜 먹지도 않고 그렇게 슬퍼하고 있는 거요. 내게 당신이 열아들보다 귀하지 않소." 참 신사적이고 착한 남편입니다. 아마 좀 못된 남편 같으면 아내의 이런 고통은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불러오는 첩의 배를 바라보며 희희덕거리고 있었을 겁니다.

 

이 땅의 모든 가정들이 다 갖고 싶어하는 자녀들을 다 갖고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어떤 집에는 여자아이가 셋씩 넷씩 되고, 또 어떤 집에는 남자아이만 몇 씩 됩니다. 또 아이를 갖지 못하는 집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이 모든 것 속에 하나님의 섭리가 숨어있습니다. 사실 주신 것이 얼마나 큰데 불평할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대게 보면 아이를 낳지 못하는 집안의 남자들이 착해요. 그리고 여자아이 셋씩 넷씩 낳고도 행복하게 착하게 살아가는 남편이 대게 착합니다. 물론 여러분들 가운데 저처럼 아들만 셋 데리고 사는 남편이 못된 남편이다! 그렇게까지 비약해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능히 어려움을 감당하고 남음이 있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고통을 하나님께서 때로는 허락하시더라는 얘기입니다. 이렇게 큰 고통을 터널을 지나서 기도해서 얻은 아들이 사무엘이었습니다.

 

한나의 기도를 살펴보면 자신에 대한 자학이 전혀 없었습니다. 자기를 구박하는 브닌나에 대한 원망도 없습니다. 그리고 남편과 하나님을 향하여 불평을 털어놓지 않았습니다. 왜 내가 자식을 가지고 싶은가? 하나님 앞에 드리겠다는 뚜렷한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한나는 기도할 때 서원했던 대로 아들을 나실인으로 바치고 맙니다. 나실인이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께 완전히 바쳤다는 얘기입니다.

 

6:1-21에 보면 나실인의 규례가 나오는데 거기보면 세가지를 금하게 하셨습니다. 첫째는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술취하지 말고 깨어 근신하라는 뜻입니다. 둘째는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외모의 치장에 대한 관심을 버리라는 뜻입니다.

셋째는 그 부모와 형제 자매의 시체라도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의 뜻은 세상의 가족관계라도 초월하고 오직 하나님의 일에 전념하라는 뜻입니다.

 

오로지 하나님을 위하여 바쳐진 사람이 나실인이었습니다. 기도하고 서원한 대로 깨끗이 바치고 맙니다. 사무엘이 네 살이 되었을 때에 제사를 지내러 올라가 엘리 제사장에게 아들을 맡기고 돌아옵니다. 이제부터는 멀리서만 바라봐야만 합니다. 사랑스럽고 소중한 내 아이지만 품에 안을 수도 없습니다. 일년에 한 차례씩 옷을 만들어 올라갑니다만 내 손으로 아이의 옷을 벗기고 입힐 수도 없었습니다. 제사장에게 옷을 맡기고 내려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슬픔을 알았던 이 여인에게 엘리제사장이 축복합니다. "당신이 서원대로 하나님 앞에 바쳤으니 하나님이 당신에게 풍성한 것으로 갚아 주실 것이요." 한나는 한 아들만이라도 족합니다. 하나님 앞에 바칠 수 있는 영광을 내게 주십시오.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 그 이후에 세 아들과 두 딸을 넉넉하게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어지는 본문의 말씀은 어머니 한나가 자신의 남편과 함께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는 헌아식의 한 장면입니다.

 

삼상 1:27-28,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 [28]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소중한 자녀를 가문을 일으키는데 바치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훌륭한 사업가로 만들어서 많은 사람들을 그로하여금 먹고 살게 만드는 사회를 일으키는데 바치는 훌륭한 부모들이 있습니다. 나라와 국가와 민족과 역사를 위하여 바치는 위대한 부모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있다고 하면 우리의 소중한 자녀를 만군의 여호와, 창조주 앞에 드릴 수 있는 기쁨 아니겠습니까?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나님이 원하는 곳에 이 아들을 쓰시옵소서. 아들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그토록 소중한 내 자식들을 어떻게 하나님 앞에 바칠 수 있는 것입니까?

 

1. 이 아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한나의 가족은 매년제와 서원제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매년제는 하나님이 가정에 베푸신 은혜가 너무나 커서 그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제사입니다. 서원제는 하나님 앞에 서원한 것을 지키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약속을 이행하는 제사가 서원제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소중한 아들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얻을만 해서 얻는 아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아들이었습니다. 은혜입니다. 이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 앞에 바친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아들을 기꺼이 바치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한나가 드리는 매년제와 서원제였습니다. 이 아들은 내가 낳은 아들이지만 하나님이 주셨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이 아들을 얻기 위해서 간구했습니까? 이 아들을 얻고 싶어서 얼마나 긴 시간동안 통곡하며 기도했습니까? 눈물섞인 기도와 끈질긴 기도와 씨름 끝에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았던 놀랍고 영광스러운 아들이 바로 사무엘이었습니다. 사무엘의 뜻은 "" 들으셨다, "" 하나님이,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셨다. 기도로 얹은 아들이니만큼 기도를 쉬지 않도록 이 아들에게 기도의 능력을 주시고,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이 응답해 주십시오.

 

이 간절한 소원을 담아서 소중한 아이의 이름을 사무엘이라 지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무엘이란 이름이 보여 주듯이 한나의 가족은 얼마나 절실하게 이 아들을 하나님의 선물을 보았던 것입니까?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이 아들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은혜라는 말과 감사라는 말이 한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은혜를 받은 자가 감사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이 소중한 아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아들임을 알게 될 때에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살 수 있더란 얘기입니다. 묻습니다. 여러분 가정의 소중한 자녀들은 진정 은혜의 선물이었습니까? 그 아들을 주신 하나님 앞에 참으로 감사하고 있습니까? 소중한 내 아이를 볼 때마다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것들이 하나님을 향한 불평과 원망꺼리가 되고 있습니까?

 

저는 하나님 앞에 진지하게 내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해 보기 전까지는 내가 꽤 괜찮은 아버지인줄 알았습니다. 밥 먹여 주지요, 옷 입혀 주지요, 잠재워 주지요, 남들처럼 용돈줘서 학교에 보내지요. 보라, 나는 얼마나 훌륭한 아버지인가? 그러나 어느날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는데 내가 아이들에게 해 주는 것은 참으로 보잘 것 없고 아무 것도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게 주신 자녀들이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하기 위해 나에게 주신 하늘의 천사였습니다.

 

우리 자녀들 때문에 얻었던 인생의 행복이 얼마나 큽니까? 물론 아픔도 있고 고통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녀들때문에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하나님앞에 몸부림쳤습니까? 내 자녀들 때문에 멈추었던 기도의 제목이 펼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지 않습니까? 때로는 절망하고 좌절하고 낙심하는 순간에서 아이들을 기억하고 새로 주먹을 불끈 쥐고 분연히 일어날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자녀들이 축복의 도구였고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었습니다.

 

자녀처럼 위대한 하늘의 상급이 어디에 있습니까? 훌륭한 맥아더 장군은 살아 생전에 많은 훈장을 받았습니다. 미국 버지니아 해안에 가면 맥아더 기념관이 있다고 합니다. 그가 평생받았던 많은 훈장들이 진열되어있는데 그의 자서전에 이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나는 수많은 훈장을 받았지만 내 생애 가장 영광스런 훈장은 하나님께서 내게 자녀를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가장 영광스러운 훈장은 자녀다."

 

당신의 자녀들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선물로 보고 그 선물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그래서 이 선물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니 하나님 뜻대로 길러야지, 하나님께 바치고 살아야지 하는 경건한 마음이 있습니까?

 

2. 어떻게 이 아이를 하나님 앞에 바칠 수 있습니까? 청지기 의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청지기, 내 것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아이의 주인이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이 아이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 분, 분명한 뜻을 가지고 이 아이를 이 땅에 보내 주시고 우리 가정에 허락하신 분, 이 아이의 미래를 영원히 알고 계시는 분, 그분이 계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맡아서 기를 뿐입니다. 내 소유물이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 감정과 내 뜻대로 내 욕심대로 키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아이를 향한 하나님의 분명한 비전을 발견하고 그 비전을 잘 이루어 가도록 도와주는 사람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소유의식을 가진 사람은 그렇게 기를 수가 없습니다. 아이의 개성을 무시합니다. 아이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가치를 무시합니다. 부모의 뜻과 부모의 생각과 부모의 욕망을 아이들에게 강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얘야 내가 이루지 못한 큰 뜻을 네가 이루어야 한다. 우리 집안에 가문의 위대한 뜻을 네가 이루어야 한다." 한 걸음 더 발전하면 "아버지가 억울해서 살 수 없다. 원수를 네가 꼭 갚아다오." 아이를 향한 욕심이 여기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소유의식을 가진 사람은 아이를 절대로 하나님 앞에 내어놓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선물임을 깨닫고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아이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드리고 살아가는 삶이 가장 행복한 삶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나이다. 아버지여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이 이 자녀에게 이루어지게 하시옵소서.” 이 헌신이, 이 기도가, 이 지혜로운 마음이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 23절에 보면 엘가나는 한나에게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오직 여호와께서 그의 말씀대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여러분 자녀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여러분의 자녀를 가장 잘 양육하는 길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나는 최선을 다했다. 우리의 최선이 얼마나 무익한 것인가를 여러분 아십니까? 내가 최선을 다해서 먹이고 최선을 다해서 입히고 최선을 다해서 교육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최선이라는 것이 얼마나 하잘 것 없다는 것을 깨끗하게 인정하지 않고서는 내 아이를 하나님 앞에 내어 놓을 수가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세계 최고의 기업을 만든 애플의 창시자 스티브 잡스를 아십니까? 어린나이에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좋은 양아버지, 양어머니를 만나 양육받으며 자랍니다. 청소년이 되면서 이 사실을 알게 됩니다. 잡스가 양아버지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진짜 내 부모가 나를 버렸나요?” 그때 어머니가 말합니다. “아니다. 하나님이 너를 우리 집에 선물로 보내 주셨단다.” “엄마가 저를 낳지 않았다면서요.” “엄마 아빠는 마음으로 너를 낳았단다.”

 

스티브잡스를 키우는데 컴퓨터에 특별한 관심과 재능이 보였습니다. 이 아이가 이런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아버지 어머니의 꿈이 있고 기도가 있었습니다. 깨끗이 포기하고 네 마음대로 해 보라고 길을 열어 줍니다. 잡스가 어머니께 묻습니다. “어머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내버려 두세요? 엄마의 꿈과 기도가 있었잖아요?” 아니다. 우리 사랑하는 아들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이 너를 만든 그 모습 그대로 너를 축복할 뿐이다. 하나님이 너를 쓰실 것이다.” 그리고 많은 책을 읽혀 인문학적 통찰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세계적인 기업 애플, 세계 최고의 기업을 만든 스티브 잡스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대로, 부모의 욕심 버리고 내 계획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이 그 아들을 만든 그 작품대로 나는 양육하고 키우겠다는 마음이 양아버지 양어머니에게 있었길래 오늘 애플사가 이 땅에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내 자녀를 주님 앞에 드릴 수가 있습니까? 그것은 청지기적 시각을 가질 때에만 가능한 것입니다. "주님, 주의 은혜와 말씀 앞에 이 아이를 맡기나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이 아이를 만들어 주시고 형성시켜 주시옵소서." 오늘 아직도 우리 자녀들을 내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제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처럼 하나님 앞에 우리 자녀들을 다 맡기십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면 평생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3. 사랑하는 내 자녀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받기 원하는 간절한 열망이 있었기에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 앞에 바칠 수 있었던 이유는 보다 큰 목적을 위해서 이 아들이 쓰임받기를 원하는 간절한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내 자녀를 하나님앞에 바칠 수 있음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사랑스러운 내 자녀를 영광스러운 일에 바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사무엘은 하나님앞에 나실인으로 드려졌습니다. 구약시대의 나실인은 하나님앞에 드려진 사람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에만 쓰임받는 사람으로 드려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나실인 제도는 신약시대에 와서 폐지되었습니다. 더 이상 나실인이 필요치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제 어떤 특정한 사람만 하나님 앞에 바쳐질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주님 앞에 바쳐져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신약시대는 목사만 성직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직업이 성직입니다. 주부들이 빨래하고 밥하는 자체가 고상한 성직입니다. 그 거룩한 성직을 나실인으로 받아들이는 거룩하고 경건된 의식이 우리에게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돈을 버십니까? 하나님 그 돈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건강을 주었습니까? 이 건강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죽음의 자리에서 질병의 자리에서 살아나셨습니까? 수많은 내 친구들이 먼저 죽어갔는데 하나님 오늘까지 우리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셨습니까? 거기에 숨어있는 나실인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 가정에 주셨던 온갖 것들을 청지기라고 생각해 보셨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얻었던 자녀를 하나님 앞에 내어놓는 거룩한 결단을 해 보셨습니까?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28) 아이를 그곳에 두고 돌아서는 부모의 발걸음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여러분, 훈련소에 들어가는 아들을 또 외국에 아이를 떨어뜨려 놓고 돌아서 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이 아이가 부모를 그리워하지나 않을는지, 때가 되어 밥이나 챙겨 먹을는지, 몸은 건강하게 잘 견뎌내 줄는지, 이 세상에 어두운 구석으로 인생의 수렁텅이에 빠져들지나 않을는지. 외국에 독자 아들을 떼어놓고 돌아온 부모의 얘기입니다.

 

아침마다 아이에게 전화를 하는데 아이의 목소리가 맑으면 하루종일 기분이 좋답니다. 그러나 아이의 목소리가 어두우면 그날에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그 날이 기쁜 날이 되지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게 부모의 심정입니다. 더더구나 한나가 사무엘을 맡기고 돌아오는데 엘리 제사장이 그 학교의 교장인데 엘리제사장은 훌륭한 사람이 되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잘못된 선생인지도 모릅니다. 같은 반에서 공부하게 될 홉니와 비느하스는 사악하기 짝이 없는 아들들이었습니다. 얼마든지 악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처지였습니다.

 

그 아이를 엘리 집에 맡기고 돌아서는 한나의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겠습니까? 이 땅에 아이를 내어놓고 살아가야 될 부모의 마음이 어떻습니까? 어머니된 마음이 어떻습니까? 유혹많은 이 세상을 한 가운데 집어넣고 살아가야 되는 청소년을 둔 어버이의 마음이 어떻습니까? 무서운 유혹에 빠져들지는 않을는지, 잘못된 영향을 받지는 않을는지, 마약에 오염되지나 않을는지 친구는 제대로 사귀어 줄는지, 공부는 제대로 해 줄는지, 주는 용돈은 정확한 자리에 써줄는지, 이제 부모의 마음 아니었습니까?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 앞에 맡기지 않고서는, 사랑많은 아버지께서 이 아이를 붙들어 주지 아니하고서는, 이 아이의 미래를 알고 계시는 그분께서 이 아이를 소중히 여겨주지 아니하고서는 내가 어떤 노력도 어떤 정성도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우리가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아이를 축복하며 키울 수 밖에 없고 기도로 하나님 앞에 맡길 수 밖에 없는 것 아니었습니까? 아이가 수술대에 올라설 때에 어머니된 여러분은 도대체 무엇을 해줄 수 있었습니까?

 

아이가 입시장에 들어갈 때 아버지된 여러분은 그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도대체 무엇이었습니까? 아이가 훈련소 문으로 들어설 때에 엄마 가라고 손짓하는 아이에게 그 아이를 위하여 여러분들이 해줄 수 있는게 무엇이었습니까? 그토록 소중하지만 이 아이들을 언젠가는 이 땅에 남겨두고 우리는 떠나가야 하는데, 그때 여러분이 아이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 앞에 이 아이를 맡기는 것, 말씀 앞에 이 아이를 맡기는 것, 하나님의 품에 돌려 드리는 것, 이 길 외에 도대체 무엇을 해줄 수 있겠습니까?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들을 하나님의 뜻대로 양육하고 하나님의 계획대로 양육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우리 자녀들을 향한 부모의 심정이요, 바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통해 참 믿음의 삶을 보여주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증거하여 저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물려 주는 것입니다.

 

지금 힘들고 어려운 길을 걸어가고 내가 원하는 길에 서있지 않더라도 더 많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은 부모의 기도를 귀하게 여기십시다. 아브라함의 기도를 들으셔서 이삭을 축복해주시고 야곱의 기도를 들으셔서 12아들을 그 축복한 대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 내맘에 들수는 없지만 우리가 기도하는 한 결코 실패할 수가 없습니다. 기도하는 어버이가 있는 한 결코 그 아들을 실패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자녀를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주께서 선한길로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자녀들이 잠시 잠깐동안 비틀거린다고 안타깝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오늘 내 아이를 바칩니다. 전능하신 손에 하나님 앞에 이 아이를 맡겨 드립니다. 이 아이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의 품안에 이 아이를 바칩니다. 주여 받아 주시옵소서. 내 아이들을 받아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실 때 우리의 자녀를 주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녀를 하나님의 뜻대로 세워주실 것입니다. 그런 주님을 바라보며 믿음의 우리 자녀를 하나님께 맡기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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