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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문의 메시지

이방인도 구원받을 수 있는가?(행11:1-18)

작성자야베스|작성시간19.07.02|조회수618 목록 댓글 0

이방인도 구원받을 수 있는가?(11:1-18)

 

이방인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이것은 초대교회 교인들 특별히 할례를 받은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이 된 그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과연 이방인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영접은 했지만 아직 그들은 구약의 전통과 율법 속에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유대인으로서는 비록 그들이 예수를 메시야로 믿었지만 모세의 율법 속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이방인들에도 구원과 성령이 임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아주 충격입니다. 그래서 소문만 듣고 있었는데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들어가서 밥을 먹고 교제를 하고 그들에게 세례를 주었다는 이 소식을 듣고 그들은 분개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베드로지만 어떻게 구약의 전통과 하나님의 율법을 그렇게 무시할 수 있는가? 그래서 그들은 베드로가 가이샤라에서 예루살렘를 올라왔을 때 만나자마자 베드로를 비판하였습니다. 그 내용이 1-3절까지의 내용입니다.

 

1-3,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2]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비난하여 [3] 이르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믿음의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얼마나 기쁜 소식입니까? 복음이 예수님의 지상명령대로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는데 함께 축하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아닙니다. 저들은 노발대발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이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서 어떻게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비판의 요지는 율법의 계명을 무시하고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서 함께 밥을 먹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비판과 갈등은 베드로 자신도 얼마 전에 겪었던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자신을 비판하는 할례자들에게 화를 내지 않습니다. 차분하게 자신이 겪었던 체험을 저들에게 설명하였습니다

 

4-10,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 일을 차례로 설명하여 이르되 내가 욥바 시에서 기도할 때에 황홀한 중에 환상을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이 네 귀에 매어 하늘로부터 내리어 내 앞에까지 드리워지거늘 [6] 이것을 주목하여 보니 땅에 네 발 가진 것과 들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보이더라 [7] 또 들으니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8] 내가 이르되 주님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하지 아니한 것은 결코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 하니 [9] 또 하늘로부터 두 번째 소리 있어 내게 이르되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 하더라 [10]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에 모든 것이 다시 하늘로 끌려 올라가더라

자신이 욥바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환상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 환상의 내용은 흰 보자기 안에 구약에서 먹지 말라고 하는 불결한 짐승들과 곤충들과 새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보여지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 왔습니다. 이것을 잡아 먹으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충격적인 일입니까? 어려서부터 배워왔고 지켜왔던 전통에 반하는 명령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세상을 살아나가면서 가끔 이런 일에 부딪힙니다.

 

나는 이런 일을 하지 않았는데 이것은 내가 정말 할 수 없는 것인데, 이것은 내 인생 철학이요, 이것은 네 자존심이요, 이것은 내 삶의 스타일인데, 그것을 무너뜨리라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세 번씩 부인한 것을 보면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문제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신앙적으로 일대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세 가지 말씀을 통해 베드로를 깨우쳐 주시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것이 지난 10장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환상을 통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으며 누구나 복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음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이 환상으로 인하여 베드로는 지금까지 유대인들이나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전도를 해 왔으나 이제 이방인을 향한 선교의 당위성과 그 사명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의 초청을 받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고넬료의 집에서 복음을 증거할 때에 저들위에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

 

저들 위에 임하는 성령강림을 직접 체험하면서 드디어 민족주의 안에 갇혀있었던, 자기의 전통속에 갇혀있었던 베드로는 눈을 뜨고 마음의 문을 열고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서 두 가지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첫째, 하나님의 생각은 내 생각과 다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55:8에 보면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하는 것이 다 옳아 보이고, 자기가 경험한 것이 진리이고, 전통적이며, 가장 성경적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막상 하나님 앞에 서면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특별히 예수를 오래 믿으신 분들 교회에 대해서 관심이 많으신 분들은 대개 더 그렇습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쌓아온 신앙의 연륜들을 통해 자기 사고와 자기 가치관이 형성됩니다. 그것이 날마다 새로워지지 않으면 굳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내 생각이 가장 옳다고 주장합니다. 내 신앙이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조금 다른 생각을 말하거나 조금 다른 생각이 들어오면 일단 거부합니다. 그것이 좀 더 굳어지면 예수님 당시에 바리새인들처럼 완고해지고 교만해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과 다르면 틀렸다고 단정하고 정죄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날마다 새롭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적용하는 데 있어서는 날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면 내가 지금까지 섬기고 주장해 왔던 그 모든 신앙의 모습이 얼마나 초라한 것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수록 겸손과 온유가 필요합니다. 성경을 읽을수록 내가 가졌던 기존의 생각에서부터 탈출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별히 목사인 저에게 있어서는 그런 일이 참 많습니다. 설교를 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저의 전문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나님앞에 나아가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내 모습을 보면 얼마나 초라하고 부족한지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나를 내세울 수 없습니다. 나를 자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잘못되었다고 판단될 때에 서슴치 않고 수정해야 합니다.

 

신구약성경을 다 읽어보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만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저들을 제사장 나라로 삼아 전 세계를 구원하시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가 선택된 그 기쁨과 자만심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만을 위한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교회 안에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교회 처음 나올 때는 다 겸손하고 온유합니다.

 

교회 봉사 좀 오래하고 교회에서 직분을 맡고 교회에서 잔뼈가 굵으면 그 생각이 다 없어집니다. 나를 위해 교회가 있는 것처럼 생각을 합니다. 내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나를 중심으로 보든 일들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내가 모르면 안됩니다. 내가 관여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내 주장이 통과 안되면 다 시험이 드는 것입니다. 어느 사이에 하나님이 주인이 아니라 내가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논리를 그렇게 바꾸어 갑니다. 그것이 인간입니다.

 

바로 그것이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택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지금 이스라엘은 이방인들이 예수믿는다고 하는 것, 구원받는다고 하는 것, 성령받는다는 이 사실앞에 그들이 그렇게 마음의 문을 열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요,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선택을 받기 전에는 어떤 족속이었을까요?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들이라고 별 수 있습니까? 그들도 이방인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서 믿음의 조상이 되었는데 그럼 아브라함이 부름을 받기 전에는 누구였습니까? 갈대아우르에 살면서 우상을 숭배한 이방인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하나님이 그를 선택하셔서 부르시고 그의 죄악을 용서해주시고 믿음을 주셔서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 주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은혜가 아닙니까? 우리가 언제부터 예수를 믿었습니까? 우리가 예수를 믿게된 것이 은혜 아닙니까? 구원받게 된 것이 은혜가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가 너무 할 말이 많습니다. 주장하는 것이 많고 따지는 것이 많고 자기 권리를 너무 많이 주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우리가 조금 잘 먹게 되었다고, 조금 내가 능력이 있게 되었다고, 내가 좀 말할 자리에 있게 되었다고 너무 큰 소리치면 안됩니다.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 믿음으로 살아가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습니다. 그러면 왜 우리를 먼저 이렇게 은혜로 불러주셨습니까? 그것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전에 이방인이었던 나를 구원하신 것처럼 우리도 저 믿지않는 이방인들에게 이 생명의 복음을 증거하여 그들을 살리는 것입니다.

 

이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생명을 살리고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자기 만족에 빠져있고 자기 하나도 믿음을 지키기에 힘에 겹다고 힘들어 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유대인들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자기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끈질긴 죄성입니다.

 

여기서 벗어나야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나라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말씀, 또 다시 반복해봅니다.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이것이 정답입니다. 여러분 자신을 부인하지 않고는 여러분에게 주신 십자가를 지시지 않고는 여러분도 자기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저는 끊임없이 이 갈등과 반목을 거듭하면서 깨닫습니다. 이 한계를 벗어나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은 여전히 생명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역사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금요일 다니엘 기도회 강사인 임은미선교사님도 그렇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하나님께 자리를 내어준 사람이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오늘 경험하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께 여러분의 주권을 내어 드리십시오.

 

이미 주님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결단하면 주님이 역사하시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주님, 내 속에 주권을 주님께 내어 드립니다. 내뜻대로 마옵시고 주님의 뜻대로 하옵소서. 이것이 기도요, 이것이 헌신이요. 이것이 결단인 것입니다.

 

두번째, 1-3절 사이에서 보면 하나님의 생각과 내 생각이 다를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여기서 볼 수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즉시 태도를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에게 이런 결단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내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판단이 되었을 때 주저할 필요가 없습니다. 변명하거나 핑계하고 따질 것이 없습니다. 그냥 솔직히 인정하시고 하나님 앞에 내어 드리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변화입니다. 그것이 생명을 얻는 길입니다.

 

17,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막겠느냐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누가 막겠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한계에 갇혀 있을 때가 많습니다. 이제 눈을 열어 하나님의 세계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뜻앞에 순복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베드로는 17절에 보니까 이방인들에게도 똑같은 선물을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1)구원의 선물이고, (2)성령의 선물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분명히 이방인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자기의 자존심을 꺾어야 합니다. 자기의 전통과 기존적인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것이 정도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생각과 내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창세기에서부터 계시록까지 통독을 해서 전체 줄거리를 읽는 것입니다. 그리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말씀 앞에 엎드려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오늘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명령과 지시, 책망과 바르게함을 통해서 거룩한 성도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말씀해 주십니다. 놀라운 사실들을 가르쳐 주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입니다.

 

따라서 성경에는 하나님의 뜻이 가득차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생각이 가득차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그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가진 생각이 맞나 아닌가 다 드러납니다. 성경을 안 읽으면 자기의 생각이 제일 옳다고 주장을 합니다. 아무튼 자기 주장이 제일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물어보면 성경을 안읽고 있습니다. 틀림이 없습니다. 말이 많고 따지는 사람 있습니다. 다 성경 안읽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경을 읽으십시오. 눈이 밝은 때 성경을 많이 읽어놓으세요. 언젠가 읽고 싶어도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눈이 어두워질 때가 옵니다.

 

둘째, 성령을 사모하시면서 기도하셔야 합니다. 지난 주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은혜는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이 여전히 자기 생각대로 살고 자기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대로 살려고 합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환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너의 생각을 깨트려라. 너의 한계를 넘어서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다 성령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분이 나를 깨우쳐주시고 그분이 나를 변화시켜주시고 그분이 나를 온전히 지배하여 성령충만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와의 대화입니다. 그저 자기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과 마음을 열어 대화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하나님의 마음을 품게 됩니다. 성령이 역사하셔서 마음에 새로운 생각, 하나님의 생각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성령이 내속에 충만하게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솔직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면 내가 얼마나 초라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 제가 죄인입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이런 말밖에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나는 부족합니다. 주십시요. 병들었습니다. 고쳐주십시요. 나는 이렇게 내 마음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헤메고 있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나는 고개를 들 수 없는 자입니다.

 

나는 문제가 많이 있는 사람입니다. 나는 고민이 많습니다. 하나님, 나 이런 사람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정직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정직한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훌륭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우리가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가운데 은혜를 주시면 깨달아집니다. 하나님의 뜻을 압니다. 그래야 겸손하게 됩니다.

1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이 말을 듣고 첫째, 이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할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잠잠하여. 여러분도 잠잠하기를 바랍니다. 쓸데없는 오만과 편견과 비판과 냉소주위 적인 그래서 부정적인 것을 보는 것이 지성이라고 착각하는 그런 오만에 빠지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두번째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여러분의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요? 여러분에게는 황금같은 시간을 주었고 젊음을 주었고 건강을 주었고 능력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열등감에 빠져 있을 시간이 어디있습니까? 못생겼으면 못생긴 대로 살지. 뭐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절대 그런 쪽에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요. 자학하고 열등감에 빠지고 그것도 일종의 사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름받은 백성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창작품입니다. 75억 인구가운데 나는 나혼자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만드신 이유를 깨닫고 하나님이 구원하신 목적을 알고 그 뜻앞에 순복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우리에게 기회입니다. 오늘을 하나님께 영광을 위하여 우리의 시간을 써야하며, 주어진 능력들을 활용해야 하며, 기회를 활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미워할 시간이 따로 없습니다. 사랑하는 시간만을 써도 부족한 것입니다. 복음을 가진 자들은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우리는 내게 주어진 시간을 잘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에 그들의 간증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방인에게도 생명얻는 회개를 주셨다그렇습니다. 오늘 메시지의 초점은 하나님이 이방인을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자기한계를 넘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한계를 넘어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깨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이 시대를 보라는 것입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세상에 메여있는 나를 깨트려서 내안에 계신 하나님이 역사하실 수 있도록 나를 드리는 것입니다. 나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하실 일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일어서십시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결국 이방인도 구원받아야 합니다. 지금은 믿지않고 있지만 저들이 구원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이 증거되어야 합니다. 베드로가 자기 한계를 넘어선 것처럼 예루살렘 교회가 자기 한계를 넘어서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생명을 받쳤고 순교를 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3차례나 전도여행을 다녔습니다. 강의 위험과 도적의 위험과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맞고 살소망까지 끊어지고 마음에 사형선고를 받고 그는 정말 말할 수 없는 고난과 고난의 연속속에서 이방인들을 전도하기 위해서 그렇게 세월을 보냈습니다.

 

우리에게 사명이 있습니다. 나에게 이방인은 누구입니까?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은 이제 나를 통해서 저 사람, 내 주변에 있는 믿지않는 저 사람, 그가 내 가족일 수 있습니다. 내 형제일수 있습니다. 나를 만나는 그 사람에게 이 생명의 복음을 증거하여 생명을 살리고 생명을 고치고 생명을 세우는 생명사역에 힘을 기울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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