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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문의 메시지

인생의 마지막 결산(딤후 4:6-8)

작성자야베스|작성시간19.12.29|조회수590 목록 댓글 0

인생의 마지막 결산(딤후 4:6-8)

 

벌써 한해의 마지막 송년주일입니다.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마지막이 있다는 것을 늘 깨닫게 해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시작만큼 중요한 것이 마지막입니다. 마지막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을까? 어떤 사람은 두려움과 절망으로 마지막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감격과 기쁨으로 마지막을 맞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비유속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열처녀 비유에 지혜로운 다섯처녀는 신랑을 맞이하는데 감격과 기쁨 속에서 준비하고 기다립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다섯처녀는 후회하며 땅을 치고 통곡하므로 마지막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그의 마지막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해의 고개턱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설 수 있습니까? 올 한해를 뒤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생각나고 감사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마음이 답답하고 시훤하지 않습니까?

 

오늘 본문에 나타난 바울의 현실은 매우 힘들고 어려운 순간입니다. 마지막이 눈앞에 보입니다. 복음전도자로서의 일생을 살다가 로마정부에 붙잡혀 순교의 날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느끼면서 당신의 삶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진 환란과 핍박 속에서도 결코 굽히지 않고 살아왔던 바울의 힘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복음증거의 사명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달려왔던 바울의 생애도 이제 끝이 보이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자신을 위해 예비하신 면류관을 바라보면서 역경 속에서도 오히려 기뻐하며 끝까지 변함없이 달려갈 길을 다 마치고 하나님앞에 설 그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읽은 본문에는 위대한 전도자 바울이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살아왔던 신앙을 결산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는 길리기아 다소에서 출생하여 당시에 유명한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교육을 받았고,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으로,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으로,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의 바울의 모습은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고,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고 유대인 중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었던 자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위협과 살기가 등등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그의 옛 사람은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고 그리스도를 위한 전도자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는 지칠 줄 모르는 전도 여행을 통하여 여러 교회를 설립하며,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증거하여 기독교회사에 위대한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바울은 이제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어 로마의 네로 황제 통치 때에 로마의 감옥에 재차 투옥이 되었고, 이때 오늘 읽은 디모데후서를 기록하게 되었습니다. 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자신의 현주소를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전제'란 민수기 15장에 보면 제사를 드리면서 마지막으로 포도주나 독주를 제물 위에 부어 드리는 제사를 말한다(29:40-41).

 

그러니까 전제는 주를 위해 생명까지도 기꺼이 내놓을 수 있는 거룩한 희생을 상징합니다. 바울은 순교의 제물로서 자신의 거룩한 죽음을 내다보며 당당히 자신의 삶의 여정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인생의 종착역에 도달하여 자신의 인생을 결산하는 바울의 삶을 생각하면서 올 한 해의 우리의 삶의 결산도 생각해 보는 은혜로운 시간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면 바울은 구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어떻게 결산하였습니까?

 

1. 나는 선한 싸움을 싸웠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본문 7"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바울은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라고 과거를 회고하였습니다. 여기 '싸움'이라는 말은 링 위에서 싸워 승부를 내는 권투시합과 같은 것을 말합니다. 로마시대에는 사람들이 격투기를 즐겼습니다. 요즈음에도 격투기가 세계적인 게임입니다. 당시에는 좀 심할 경우 검투사들이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검투경기도 즐겼습니다. 이 경기들의 특징은 목숨을 내건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이기면 살고 지면 죽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격투기 선수들처럼 자신의 삶을 살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사는 것 자체가 전쟁이며, 어느 때나 전쟁 없는 시대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앞에 부르심을 받은 이유는 바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부름받은 그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영적으로 싸우며 사는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찬송가 4914절에 보면 "험하고 높은 이 길을 싸우며 나아갑니다"라고 했습니다.

 

싸운다는 것은 그 결과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싸움에서 지면 적군의 포로가 되어 노예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영적 싸움은 이겨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영적전쟁에 대해 (6: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우리의 싸움은 육적 생존을 위한 싸움이 아닙니다. 명예를 얻고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싸움도 아닙니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 대한 싸움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싸움을 '선한 싸움'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바울은 예수의 좋은 군사로서 이 선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이 싸움의 대적은 세 가지입니다.

 

1)마귀와 싸우는 것입니다(6:11-12).

마귀는 모든 영적싸움의 주동자입니다. 모든 어둠의 뒤에는 마귀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인 눈을 열어서 마귀가 역사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가룟유다에게 악한 생각을 품게 한 것도 마귀의 역사였습니다. 예수님의 가장 친밀한 제자 베드로를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정하게 한 것도 마귀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의 정체를 알아야 영적 전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유혹하여 넘어트리려고 하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16:23)

 

마귀는 끊임없이 믿음의 사람들을 공격해서 넘어트리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를 이기려면 사람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삶의 우선순위는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지금 하시는 일에 우선순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입니까? 아니면 나자신의 뜻을 이루는 일입니까?

 

무엇이 여러분의 선택의 기준입니까? 하나님의 일입니까? 사람의 일입니까? 마귀를 이기는 것은 바로 우리의 믿음을 지키고 영적으로 승리하는 삶을 사는 비결입니다.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지어서 관계를 깨트리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도 아담이 죄를 지으니까 모든 관계가 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나와 너와의 관계, 나와 자연과의 관계, 모든 관계를 깨트렸습니다. 이처럼 마귀는 관계의 신뢰를 깨트립니다. 의심하게 만들고 시기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마귀를 어떻게 이깁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께는 복종하고 마귀는 예수의 이름으로 대적하는 것입니다. (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예수의 이름의 권세를 가지고 마귀를 대적하고 싸워야 합니다. 그리하면 저가 너희를 피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마귀를 대적하고 영적으로 깨어서 서로를 세워주고 서로를 온전케하는 일에 앞장서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세상과 싸우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상은 창조된 자연세계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난 타락한 세상입니다. 하나님중심이 아니라 물질중심, 자기 중심으로 뿌리는 깊이 내린 바벨탑 세상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힘은 대단합니다. 거대한 홍수와 같이 떠내려갑니다. 그 어느 누구도 자기 힘으로 거스르기에 너무나 강력한 힘이라 힘이 듭니다. 세상에 중심에는 물론 사탄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다가올 때는 물질로 체면으로 권력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분별하기도 어렵고 세상과 싸운다는 것은 어쩌면 큰 희생이 다가올 수도 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과 싸워서 이기는 비결은 거룩함입니다.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17:16,17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우리가 거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진리위에 서야 합니다. 진리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의 선택의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말씀이 아니면 천하가 다 옳다고 해도 아닌 것입니다. 말씀이 가라는 대로 가고, 말씀이 서라는 대로 서는 말씀 중심의 삶을 사는 거룩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자기와의 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장 강력한 싸움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진정한 우리의 적은 우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면 어떻게 마귀와 싸우고 세상과 싸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힘들고 끈질긴 싸움은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예수님은 (16:24)에서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을 따르는데 선제조건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백하기를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하였습니다.

 

욕심으로 가득찬 자신이 날마다 죽는다는 의미입니다. 어떻게 합니까?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듯 자기를 십자가 앞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이 싸움은 내 속에 있는 정욕과 싸우는 싸움입니다. 이생의 자랑과 세상적인 욕심과 싸우는 영적전쟁입니다. 이 싸움은 나 자신의 나태와 안일, 교만과 싸우는 싸움입니다.

 

이 싸움은 자신의 심령 속에 역사하는 죄와 사망의 법에 대한 싸움입니다. 이 싸움은 쾌락주의와 물질만능주의와 과학만능주의와의 싸움입니다. 이 싸움은 성경을 거스르는 비성경적인 사상과의 싸움입니다. 이 싸움은 선으로 악을 이기는 싸움입니다. 영생을 쟁취하는 싸움입니다. 이 싸움에서 사도 바울은 승리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성도로 부름을 받은 그 날부터 영전의 격전지를 통과한 승리자였습니다.

 

그는 수없이 많은 영적인 적들과 싸워 승리한 용사였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선택받아 하나님의 편에 서서 영적전쟁을 하는 그리스도인임을 확신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이런 영적 전투 속에서 승리의 개가를 부를 수 있도록 끊임없이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삶이요, 우리가 결산해야 될 내용입니다.

 

2. 나의 달려갈 길을 마쳤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7절에서 사도 바울은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여기 달려갈 길'이란 마라톤 경기에서 정해진 경주코스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자기에게 주어진 복음의 코스 경주를 마쳤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 마치고는 이미 사명의 코스가 끝나고 완성된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훌륭한 경주자로서 경기의 법과 규율을 어기지 아니하고 다 달려갔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뛰는 경주자였습니다(1).

 

허다한 증인들 앞에서 달리는 경주자였습니다(12:1). 그는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얻기 위하여 인내하며 달렸습니다. 이 달음질은 인내가 없이는 달려갈 수 없는 경주입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름을 받은 이후 로마의 감옥에까지 이르도록 실로 온갖 장애물을 인내로써 통과하면서 달렸습니다. 신앙의 경주는 42.195Km를 달리는 마라톤 경주와도 같습니다. 힘이 든다고 중도에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그 정해진 길을 마칠 때까지 부지런히 달려가야만 합니다. 사도 바울이 달렸던 그 길은 복음 전파의 길이었습니다.

 

본장 17절에서 바울은 (딤후 4: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고 회고하였습니다. 그는 이 복음을 전파하는 데 있어서 자기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아니하고 전력을 기울였던 것입니다. 또한 사도행전 20:24에 보면 그는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고백했습니다.

 

실로 그는 사명자의 길을 가기 위해서 생명조차 내어 맡기는 믿음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허다한 증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달리는 경주자들입니다. 이 경주는 전제로 부음이 될 때까지 달음질해야 하는 경주입니다. 힘이 들어도 포기해서는 안 되는 경주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 달음질을 중도에 포기한 사람이 나옵니다. 바로 데마입니다. 그는 본래 바울을 도와 복음을 전파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로마의 핍박이 거세지자 이 달음질을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그가 세상을 사랑하여 데살로니가로 갔다고 짧게 증언하고 있습니다(10). 우리는 의의 태양이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또한 나에게 주어질 예비된 면류관을 바라보면서 인내하며 경주해야 하는 외로운 경주자들입니다. 우리는 복음 전파의 길을, 사명자의 길을, 순교자의 길을 끝까지 달려 나에게 주어진 이 길을 다 마쳤다고 마지막 순간에 고백할 수 있는 축복된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믿음을 지켰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7절에 '믿음을 지켰으니'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여기 '지키라'라는 말은 군사적으로 군인이 성을 지킬 때 쓰는 용어입니다. 영적인 파수꾼으로서 깨어 있지않으면 나만 죽는 것이 아니라 내 모든 가족들까지 함께 죽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키기 위해서는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처럼 깨어있기위해서는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소통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이 들려와야 합니다. 하나님이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 말씀을 들어야 내 영이 삽니다. 내 영이 가야 할 길을 알 수 있습니다. 뿐 만 아니라 사탄이 어떻게 공격해 오는지 분별할수 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깨어 있다는 것은 우리의 영혼의 생명줄입니다. 그리고 기도로 하나님과 소통해야 합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라고 말합니다. 기도해야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기도해야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심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기도해야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군사인 우리가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교회는 기도하는 교회입니다. 마마기도회, 다니엘기도회, 새벽기도회, 금요기도회, 얼마든지 기도하려고 마음먹으면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가 내 영혼의 생명입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영적인 오만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교회에서 큰 소리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가로막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9:29)고 말씀하신 것입니다.기도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앞에 엎드리면 영적인 눈이 열리고 성령의 능력이 내 능력이 되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말씀고 기도로 깨어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사도는 마지막 고백속에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믿음을 지켰습니까? 사도바울은 자신의 마음속에 영원히 꺼지지 않고 식지 않는 뜨거운 믿음이 그 중심에 불붙고 있었습니다. 이 믿음은 바로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이 믿음이 바로 구원의 빙거요, 보배입니다(벧후 1:1). 이 믿음이 세상을 이기게 합니다. 이 믿음이 죄를 이기게 합니다. 이 믿음이 나를 그리스도 앞에서 의인이라고 증언합니다.

 

바울은 질그릇 속에 있는 이 귀한 보배를 상실하거나 변절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처녀가 그 정조를 지키듯이, 그리스도의 신실한 신부로서 오직 주님만을 위해, 복음과 교회만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또한 그는 군인이 성을 지키듯이 그 믿음을 지켰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자기 생명과 물질을 지키기 위해서 부단히 애를 쓰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명예를 잃지 않으려고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재물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방법들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정작 지켜야 할 보배는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지키는 일에 우리가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한 해동안 노력했습니까?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영적인 생명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에 영적으로 깨어있지 않으면 결코 믿음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의 믿음을 공격해옵니다. 믿음만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은 바로 이 믿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끊임없이 이 믿음을 무너트리려고 합니다. 이 믿음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서 기자는 말하기를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4:23)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은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습니다. 그 믿음의 내용은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말씀을 믿는 것이 바로 믿음을 지키는 비결입니다. 이 믿음이 세상을 이깁니다. 이 믿음이 마귀를 이깁니다. 그러나 믿음을 지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마귀의 집중공격의 핵심은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지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믿는 자라 하면서 믿음을 지키는 일에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내가 삶속에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힘쓰지 못한다면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믿음을 결산하는 날을 맞이하게 됩니다. 성경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일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하였습니다(9:27). 우리는 이 날을 대비해서 믿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어 말씀과 기도로 이 믿음을 지키며 끝까지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바울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키는 삶을 살았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늘 나라에 대한 소망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주실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면서 지칠 줄 모르고 달렸습니다. 이 면류관, 즉 상급은 사도 바울에게만 주어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주어지는 상급입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인생의 마지막에 이런 승리의 개가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이 상급을 받을 수 있기에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한 해를 마감하는 이 시점에서 어떤 삶의 결산을 할 수 있겠습니까? 선한 싸움을 지금까지 싸워 왔습니까? 달려갈 길을 마치기까지 인내하며 달렸습니까? 믿음을 지킴으로 승리의 삶을 살아왔습니까?

 

그랬다면 영광스러운 결산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미치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 시간 잘못된 인생에 대해서는 겸손히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달려온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 아름답게 결산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교만치 말고 주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그 날까지 면류관을 얻도록 선한 싸움에 힘을 다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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