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사람 갈렙(민13:25-33)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를 통과하고 이제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앞으로 들어가게 될 가나안 땅이 어떤 땅인지 매우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에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내 그 땅이 과연 하나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기름진 땅인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또 과연 그 땅을 우리 힘으로 정복할 수 있을지? 그 땅에 살고있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과연 그들과 싸워서 승리할 수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이런 사실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열두 지파의 대표자 12명을 선발해서 가나안땅에 보냅니다. 40일 동안 샅샅이 가나안 땅을 돌아다니면서 정탐을 했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을 정탐한 열두 명이 돌아와서 정탐보고를 하게 됩니다. 먼저 열 명이 보고합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불가능하다고 보고합니다. 그 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사람이 살 곳이 못된다고 악평을 합니다.
그리고 그 곳 사람들에 대해 말하기를, 그들은 신장이 장대하고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으니 우리가 그들 앞에서는 메뚜기같아 도저히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다 성은 높고 견고해서 그 누구도 쳐들어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머지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은 달랐습니다. 그중에 갈렙이 이런 보고를 하였습니다. 30절,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두 사람이 보고 온 땅 역시 저들이 보고 온 땅과 같습니다. 그런데 해석이 달랐습니다. 그 땅은 하나님이 주신 아름답고 귀한 땅이라는 것입니다. 해석이 긍정적입니다. 믿음은 해석을 달리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아무리 세고 강해도 그들은 우리의 밥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충분히 이길 수 있다는 신앙적인 해석입니다. 지금까지 출애굽사건과 광야생활의 훈련을 통해 그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았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그들이 어떤 사람이라 할지라도 능히 정복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갈렙은 어떤 사람입니까? 갈렙이라는 뜻은 세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1)공격자, 2)개 3)종입니다. 이름의 의미가 좀 그렇지만 하나님앞에 개처럼 충성된 종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갈렙은 그니스 사람으로서 유다 지파 여분네의 아들입니다.
그는 유다지파 대표로 뽑힌 사람입니다. 유다지파는 육신적으로는 넷째였지만 하나님의 약속인 측면에서는 장자지파였습니다. 그런 지파의 지도자인 갈렙의 믿음을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1. 갈렙은 문제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신앙인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출애굽한 목적이 무엇입니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셨기 때문에 그 땅에 들어가기 위한 것입니다. 그 약속 때문에 지금까지 저들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가나안땅을 정탐한 것도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순종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들은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없이 말씀하시고 언약하셨던 하나님의 약속을 믿어야 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 어떤 분이십니까? 애굽에서 종되었던 저들을 구원하신 구원자이십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왕이십니다. 통치자요 주권자이십니다.
그렇다면 백성들의 누구를 믿어야 합니까? 당연히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12명의 정탐꾼들은 각지파의 족장들입니다. 적어도 하나님의 백성들의 지도자로서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려면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에 대한 절대 믿음입니다. 그것은 말씀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롬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러므로 무엇보다 믿음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들을 뿐만 아니라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 말씀을 영혼의 양식으로 먹어야 내 인격이 되고 내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10명의 정탐꾼을 들어 보십시오. 저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았습니다. 단지 냉정하게 지식적으로 평가한 것입니다. 12정탐군들은 똑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똑같이 가나안 땅을 가서 보았습니다. 기름진 땅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원주민들의 몸집이 거인같이 크다는 것도 보았습니다. 똑같은 것을 보았으나 보는 관점이 달랐습니다. 시선을 두는 곳이 달랐습니다. 열명의 정탐꾼들은 시선을 사람에게 두었습니다.
덩치 큰 가나안부족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네피림”은 “대장부”라는 뜻이고, “아낙”이란 “거인”이라는 뜻입니다. 그 눈으로 자기를 보니까? 꼭 메뚜기같았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은 시선을 하나님에게 두었습니다. 그 기름진 땅을 보면서 하나님이 약속을 떠올립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14:9입니다.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세계입니다. 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보이는 세계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입니다. 물질계와 영계가 있습니다. 물질계는 영계의 지배를 받는다. 몸은 마음의 지배를 받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문제를 푸는 방법은 영적으로 풀어야 합니다.
영적인 문제가 꼬이면 삶이 꼬인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문제가 풀리면 인생의 문제가 풀린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문제는 기도로 풀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문제를 만나면 문제를 묵상합니다. 문제를 묵상하면 좌절합니다. 질병, 부도, 자녀문제, 부부문제 등 문제를 생각하면 힘만 더 듭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혼란스럽습니다. 성실한 사람보다 수완이 좋은 사람이 잘 되는 것 같습니다. 착한 사람은 고만고만하게 사는데 악한 사람은 떵떵거리며 삽니다.
불공평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보면 혼란스럽습니다. 나를 묵상하면 어떻습니까? 내가 가진 것, 내 능력이 보잘 것 없어 보입니다. 낙심이 됩니다. 기가 죽습니다. 실망이 됩니다. 방울뱀이 다람쥐를 잡는 법이 참 흥미롭습니다. 다람쥐가 노는 나무 밑에 가서 따락 따락 따르륵 소리를 내며 꼬리를 흔듭니다. 다람쥐는 무슨 소린가 궁금하여 호기심이 발동합니다.
호기심에 고개를 내밀고 나무 아래로 내려옵니다. 내려오다가 방울뱀의 독기어린 눈과 마주칩니다. 그 순간 다람쥐는 오금이 저려 벌벌 떱니다. 방울뱀의 눈을 쳐다보지 않으면 될텐데 오금이 저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습니다. 얼마 후, 다람쥐는 그만 나무 아래로 떨어집니다. 방울뱀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다람쥐를 한 입에 삼킵니다. 이때 다람쥐가 사는 길은 방울뱀의 눈에서 눈을 떼는 것입니다. 문제를 바라보면 문제에 먹힙니다.
믿음의 사람은 문제를 보지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나 자신을 보지도 않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하나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습니다. (시42:5)“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복음 성가 중에서 이런 노랫말이 있습니다. “너는 무엇을 보았길래 그렇게도 놀라느냐 너는 무슨 소리 들었길래 근심 속에 빠졌느냐 믿음의 눈을 떠라 믿음의 길을 열어라 세상 모든 풍파를 믿음의 눈으로 보라.”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시기 바랍니다.
문제를 보지 마십시오. 나를 보지도 마십시오. 사람을 보지도 마십시오. 하나님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믿음은 언제나 말씀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붙잡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하시는 이이신 예수를 바라보십시오. 여호수아와 갈렙은 바로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고 고백합니다. 30절 다시 읽겠습니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2. 갈렙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10명 보고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27-29절, “모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그 땅에 젖과 꿀이 흐르는데 이것은 그 땅의 과일이니이다 [28]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29]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더이다”
열 명의 정탐꾼들은 보이는 현상만 보았고 자기 자신의 능력을 보았기 때문에 불신앙적인 결론을 내렸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보았고 과거에 베푸신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으며,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고 약속된 미래를 보면서 오늘과 내일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로지 하나님 말씀에 따라 행동하는 결단을 내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실로 이처럼 본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어떻게 보느냐, 그리고 어떻게 행동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미래가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은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하나님이 일하시고 역사하실 내일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먼저 열 명의 정탐꾼들이 가나안 정복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게 된 원인을 생각해 봅시다.
"가나안 땅을 정복한다구요. 그것은 불가능한 과제입니다. 할 수 없어요. 해볼 만한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저들은 이런 판단을 하였을까요? 우리는 그 원인을 14장 11절에서 발견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이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하나님을 믿지않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들은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들이며, 애굽 땅 바로의 학정 아래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기적적으로 구출되어 이 광야 길에 들어서서 가나안 땅을 향해 행진하고 있는 소위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더군다나 그들이 출애굽할 때, 하나님이 바로의 학정과 애굽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애굽 땅의 모든 처음 난 것들을 치시는 장자재앙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순종하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양을 잡아라. 그리고 양의 피를 자기 집의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라. 그러면 그 집을 심판하지 아니하고 넘어가 그 집 사람은 구원해 주겠다." 그들은 이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이 말씀대로 피를 문설주에 발랐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십자가의 보혈을 믿어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사건으로 저들은 구원의 하나님을 알았고 홍해를 건너 광야의 행진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 믿는 사람들이 광야 길을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에 부딪히니까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을 적용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믿습니다. 마음으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지금 내 눈앞에 어려운 일이 부딪히니까 후퇴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그 환경을 공략하지 못합니다. 신앙을 가지고 그 어려운 장애물을 뛰어넘을 줄 모릅니다. 믿음이 있으나 믿음이 없는 사람들! 이것을 신앙인의 불신앙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의식의 밑바탕에 하나님에 대한 의식이 살아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을 지난 날에 체험하기도 했지만, 지금 내 앞에 부딪혀 온 구체적인 문제앞에서 내가 가진 그 믿음을 실제로 적용할 줄 모른다는 것이 당시 이스라엘 민족의 비극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열 명의 태도와 전혀 다르게 보고 다르게 생각하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지금 흥분해 있습니다.
그들이 보고 온 현실은 열 명이 보고 온 현실과 똑같은데 열 명이 절망하고 열 명이 체념하고 열 명이 실망할 때, 이 두 사람은 왜 그런지 흥분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허락하신 말씀을 붙잡았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여러분, 말씀을 믿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믿음의 증거가 무엇입니까? 그 말씀을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무엇이 저들을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동하게 했습니까? 성경 민수기 14장 4-9절을 보시겠습니다. "[4]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5]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6]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그 옷을 찢고 [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
그들이 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믿음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뢰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의 메시지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정의는 믿음이란 하나님의 눈을 갖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내 눈만 가지고 살았어요. 그러나 하나님을 내 마음속에 모시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와 주님으로 내 마음속에 초청하는 순간, 성령님께서 내 마음속에 거하기 시작하는 날부터 나는 하나님의 눈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눈을 가지고 보니까 달라요. 사람의 눈으로는 사람이 살 만한 땅이 못되어 보이지만, 신앙의 눈으로, 하나님의 눈으로 보니까 참 아름다운 땅입니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의 눈을 갖고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이 두 명의 정탐꾼을 보십시오. 미친 사람같습니다. 세상을 거꾸로 사는 사람들같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현실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의 생각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십자가는 더하기 표입니다. 내 인생 속에 하나님을 더하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눈으로 이 상황을 바라보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불가능한 과제 앞에 부딪힐 때, 어려운 일 앞에 부딪혀 짜증나고 신경질이 날 때, 하나님의 눈으로 다시 보게 됩니다.
(롬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인의 신앙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들이 아무리 힘이 세도, 그들이 아무리 대단해도, 아무 것도 이길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에요"라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바라보니까 담대해졌습니다. 하나님은 신 31:6,7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하고 (7)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에게 이르되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그 땅을 차지하게 하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그 증거가 담대함입니다. 그리고 그 증거가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은 바로 10명의 정탐꾼들의 행동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 말씀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려면 반드시 넘어서야 할 장애가 있습니까? 무엇입니까? 내 생각입니다. 내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선택을 붙잡는 것이 바로 내가 져야 할 십자가인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면 힘들고 어려움이 당장은 눈앞에 있지만 그 다음에 다가오는 것이 부활의 영광인 것입니다. 그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고 십자가의 부끄러움과 고통을 넘어서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갈렙은 하나님만 온전히 따르는 신앙인이었습니다.
민수기 14장 24절,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여기 시작이 무엇입니까? ‘그러나’입니다. 이처럼 믿음의 사람은 ‘그러나’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말하면 거꾸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갈렙을 무엇이라고 부르고 있습니까? “내 종 갈렙”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내종이라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오른 팔처럼 하나님이 쓰시기에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내종이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이 “내 종이라고 부르실 수 있도록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행동하는 신앙인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두 명의 정탐꾼 중 한 사람의 이름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압니다. 그 사람은 누굽니까? 갈렙, 그리고 누구입니까? 모세의 뒤를 이은 지도자는 누구입니까? 여호수아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은 여호수아보다도 누구에게 더 초점을 맞추고 계십니까? 갈렙입니다.
이 갈렙은 대단한 업적을 남긴 사람도 아니고 앞장서 나가던 지도자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갈렙은 대단히 중대한 공헌을 한 사람입니다. 어떤 공헌을 했습니까? 그는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받는 스타는 아닙니다. 그저 조용하게 삶을 살아간 사람이지만, 그 내면에 뜨거움이 있었고, 신앙의 눈으로 삶을 바라볼 줄 알았습니다. 이 사람은 아마도 여호수아의 곁에 그림자처럼 따르며 이 여호수아의 동역자로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통로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14장 24절에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그러나 갈렙은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도시켰습니다. (민 14:9)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나 같은게 뭐…" "감히 우리가 어떻게"라는 식의 메뚜기 콤플렉스를 버려야 합니다.
"나는 작은 자다. 약한 자다. 그러나 주 안에서 큰 자다. 주님과 함께 하는 강한 자다. 주가 나와 함께하시므로 나는 이길 수 있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라는 '갈렙 의식'으로 단단히 무장하여야 합니다. 갈렙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그나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여호와를 온전히 따랐느니라 하시고." 여기 성경은 '온전히'라는 단어를 강조합니다. 갈렙은 온전히 하나님을 따랐느니라,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다시말하면 다 반대하고 부정적으로 해석하고 불신앙적인 태도를 취해도 이 사람 여호수아와갈렙만은 온전히 한 마음으로 마음을 다해서 순종했습니다. 나누어지지 않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여러분은 온 마음을 다해 믿음으로 하나님을 따르고 있습니까? 이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에 서 계시다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하나님은 과연 내 편에 서 계신가? 그러나 그 질문보다 앞서 와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하나님 편에 서 있는가? 아마 갈렙은 마음으로 이 질문을 자신에게 던졌을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서기로 결단하는 것, 그것이 순종의 결단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면, 하나님이 나를 기쁘게 보시면, 그래서 그분이 나와 함께 하시면 뭐가 걱정입니까? 그러나 이 질문을 묻는 사람마다 또 하나의 질문을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시는가?" 그렇다면 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순종의 결단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여기에는 또 하나의 선행해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나는 하나님과 함께 하기를 원합니까? 이것이 우리에게 순종의 결단, 하나님을 따르고 온 마음으로 그분을 따르는 삶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갈렙은 하나님께 마음을 반만 드리는 것으로는 도무지 만족할 수가 없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온전한 마음으로 주를 좇았습니다. 일편단심으로 주님께 순종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신뢰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할 수 있지요." 그러므로 이 불가능해 보이는 난제 앞에서도 "할 수 있어요. 우리 한번 해 보십시다" 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이 갈렙, 하나님께서는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옳았음을 증명하시기 위해서 이제 행동을 시작하십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은 갈렙과 같은 믿음의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불평하며 원망하는 불신앙적인 사람들과는 다르게 살기로 결심한 사람입니다. 하나님만 온전히 좇아가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믿습니까?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담대하게 말하고 믿음의 역사를 이루어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이처럼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셨고 가나안의 축복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할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고 외치며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담대하게 나아가서 여러분의 삶속에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의 기쁨을 누리며 삶의 현장에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