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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문의 메시지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23:26-31)

작성자야베스|작성시간20.05.03|조회수4,379 목록 댓글 0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23:26-31)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천국의 모형은 바로 우리의 가정입니다. 가정에서 행복을 찾지못하면 어디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가정에 주신 하나님의 기업은 바로 우리 자녀들입니다. 본문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가시면서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전하셨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십니다. 예수님은 지쳐 몇번이고 쓰러지셨습니다. 결국 구레네 시몬에게 십자가를 대신 지게 했습니다. 뒤에는 슬피 울면서 따르는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침묵으로 십자가 길을 가시던 예수님께서 가슴을 치며 슬프게 울던 여인들을 바라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라.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28). 우는 여인들에게 예수님은 왜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먼저 너희를 위하여 울라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진정으로 슬퍼할 대상이 누구인지를 알려 주신 것입니다. 먼저 누구를 위하여 울라고 했습니까? 너희와 너희 자녀들입니다. 정말 울어야 할 대상은 십자가를 지고가시는 예수님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과 우리 자녀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고난을 당하는 일은 사명이었습니다.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뜻을 따른 순종의 길이며,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의 한 부분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길을 가는 예수님을 위해서 울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여인들이 우는 것은 당연합니다. 여인들은 눈앞에 보이는 사랑하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시고 가시니 어찌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었습니까? 통곡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진짜 눈물을 흘려야 할 대상은 예수님이 아니라 너희와 너희 자녀들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우리를 위한 십자가이기 때문입니다.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람들은 당장 눈에 보이는 것에 관심을 집중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어둠을 보지 못합니다. 내게 있는 죄악은 감추어 두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나의 내면을 보십시오. (7:19,24)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이러한 나입니다. 그런데 나같은 죄인을 위해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님을 위해 우는 것은 그저 감정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울어야 할 대상은 바로 나입니다. 나의 완악함과 나의 연약함을 위해 울어야 합니다. 모든 것이 나로부터 시작됩니다. 나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없으면 다른 사람의 문제를 고치고 치료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입니다. 나를 향한 눈물이 없이는 진정한 미래도 없습니다. 나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있어야 구원도 있고 미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앞에 서기 전에 먼저 나자신의 죄악과 연약함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나의 연약함과 나의 죄성을 볼 수 있어야 십자가의 구원이 나를 위한 구원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무리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였다 할지라도 내가 하나님앞에서 정확하게 나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고 하나님앞에 나아가지 않으면 하나님의 구원은 내게 임하지 않습니다. 왜 사도바울이 자신을 죄인중에 괴수라고 고백하였습니까? 이렇게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알아야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가 깨달아지고 그 은혜를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앞에서 우리는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나의 모순을 찾고 나의 연약함을 보아야 합니다. 내가 아무리 신앙의 경륜이 쌓였다 할지라도 오늘 하나님앞에서 내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내게 아무리 선을 행하고자 하는 선한 마음이 있다 할지라도 정작 삶의 현장에 가서 선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죄악의 열매를 맺는다면 아직 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가슴을 치며 울어야 할 일은 바로 나자신의 죄때문입니다.

 

그 죄악의 결과로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이 왔는데도 그들을 몰랐습니다. 그들은 지금 닥친 예수님의 십자가앞에 울고 있지만 정작 나 자신과 내 자녀들의 미래에 대해서는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를 위해 울지말고 너와 너의 자녀들을 위해 울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을 아셨습니다. 그렇게 자랑하고 믿었던 예루살렘 성전이 돌 하나도 돌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지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다가오는 환란을 대비하여 울라고 하신 것입니다. 30,31,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이 위기를 만났을 때 쓰는 말입니다.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덮으라는 말은 산이 무너져 죽게 해달라는 의미입니다. 다가올 재앙이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운가를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인류사에 거대한 재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 작은 예루살렘에서 죽은 사람만 110만명이었습니다. 맞아죽고 던져죽고 굶어죽고 칼과 창으로 죽고 붙잡힌 포로는 97천명이나 되었는데 이들은 이집트의 공사장으로 끌려가서 평생 노예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 때가 AD.70년이었습니다. 그로부터 2천년동안 살아남은 유대인들은 전세계로 흩어져서 주권을 잃어버리고 유랑자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이 곧 다가올 것을 아셨던 예수님은 나를 위해 울지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을 위해 울라고 권고하신 것입니다.

 

그로부터 2천년이 지난 지금 온 세상은 물질이 최고가 되는 시대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물질은 죄가 되고 사람들에게 위기입니다. 사람들이 돈이면 뭐든지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이렇게 변화되는 때를 바라보고 주님이 오늘 우리에게 주신 레에마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너 자신을 위해 울라.” 우리도 우리들 자신을 위하여 울어야 할 때입니다. 나의 미래를 위해 울어야 합니다.

 

또한 내게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울어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언제 죄를 지을지도 모르는 아주 약한 사람들입니다. 죄를 짓고 나서 울지 말고 죄짓기 전에 울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닥쳐온 코로나처럼 갑자기 다가오는 재앙앞에 인간은 무력합니다. 앞으로 어떤 사고를 당할 지, 어떤 일이 닥칠지, 그리고 어떤 사람을 만날지 그것들은 우리가 대비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갑자기 닥칠 때 당황스럽습니다. 우리를 절망과 두려움에 빠지게 합니다.

 

심지어 죽음으로 몰고 갈 것입니다. 큰 불행을 겪지 않은 사람들은 불행의 고통을 알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 본 일이 없는 사람은 이별의 아픔을 알지 못합니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는 전쟁의 처참함을 알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서 죽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시한부 인생들입니다. 사도바울은 마지막 시대를 예고하면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딤후 3:1-5)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지금 바로 말세가 아닙니까?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아버지께 울면서 기도하는 방법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만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지금 내 앞에 무엇이 있는지 모릅니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평강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어떻게 평강을 잃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평강은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나 자신의 연약함과 패역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앞에 나아와 울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를 믿을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이신 예수를 바라보고 하나님앞에 나아와 울면서 기도하여야 합니다. 시편 1266절에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고 했습니다.

 

마음을 찢어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와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이 예비하신 것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2: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불순종하는 나 때문에 울어야 합니다. 사랑없는 나 때문에 울어야 합니다. 믿음없는 나 때문에 울어야 합니다. 은혜에서 멀어진 나 때문에 울어야 합니다. 죽은 믿음을 가진 나 때문에 울어야 합니다. 죽어가는 영혼에 무관심했던 나 때문에 울어야 합니다. 그렇게 주여주여 하면서도 주님뜻대로 살지않고 내뜻대로 살아가는 나를 보고 울어야 합니다. 예수님보다, 말씀보다 내가 더 중요한 나 때문에 울어야 합니다. 예수를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나 때문에 회개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세상은 슬픔의 눈물, 한탄의 눈물, 고통의 눈물, 서러움의 눈물, 섭섭함의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성도는 회개의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5:4,“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회개의 눈물을 주님이 닦아 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용서해 주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우리 자신을 위해 하나님앞에 나아와 울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합니다.

정작 울어야 할 것은 우리와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죄악된 길로 가면 예수의 십자가보다 더 험악한 고통이 있을 것을 알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녀들을 위하여 울어야 합니다. 그러면 자녀의 무엇을 위해서 울어야 합니까?

 

1. 자녀의 영혼 구원을 위하여 울어야 합니다

미국의 라이언 화이트라는 소년의 이야기입니다. 라이언 화이트가 열세살 때에 혈우병 수술을 받았는데 수혈이 잘못되어 후천성 면역 결핍증인 AIDS에 걸렸습니다. 속수무책으로 죽음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화이트는 자신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부모도 형제도, 의사들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밝은 웃음을 보였고 모두에게 친절했습니다.

 

오히려 염려하는 부모를 위로하며 밝게 지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방송매체를 통하여 전 미국에 전해지자 많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켰고 많은 이들이 화이트를 위해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유명인사들이 앞을 다투어서 찾아와 방문했습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레이건도 방문했고, 유명한 팝 가수인 마이클 잭슨도 찾아와 위로했습니다. 결국 5년을 더 살고 18세에 이 소년은 죽었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나눈 대화의 내용이 많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아버지는 죽어가는 아들에게 말합니다. "아들아, 미안하다. 나는 아무 것도 너에게 해줄 것이 없구나. 아빠가 더 이상 어떤 것도 줄 수 없음을 용서해 다오." 아들은 대답합니다. "아니예요. 전 지금 많은 것을 받았습니다. 아무도 아빠가 제게 준 것을 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빠는 내게 천국 열쇠를 주었잖아요. 예수님을 소개해 주었고, 예수를 믿게 해 주었고, 말씀을 통하여 영생을 얻도록 해주었습니다. 이보다 더 위대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자녀의 영혼 구원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다윗에게는 늘 괴롭히는 가시가 있었습니다. 아들 압살롬입니다. 압삽롬은 불효하며 반역을 하였습니다. 아버지 다윗의 왕위를 빼앗으려고 전쟁을 일으키다 죽고 말았습니다. 그 때 다윗의 심정이 어찌했겠습니까? 사무엘하 18:33절에 "내 아들 압살롬아,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이라며 애통합니다. "차라리 내가 대신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다. 이렇게 된 것은 모두가 내 잘못이다. 내 탓이다. 내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아" 하고 통곡합니다. 그러나 백 번 통곡하고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잠언 22:6절은 말합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다윗은 골리앗을 넘어뜨린 영웅이요 이스라엘을 가장 위대한 나라로 만든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녀의 신앙교육에 실패하였습니다. 넷째 아들 아도니야도 다윗에게 반역을 하게 됩니다. 그는 자녀들의 영혼구원에 실패함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면서도 늘 마음 한편에 고통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부모의 역할은 하나입니다. "자녀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영혼구원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자녀들이 하나님 만나는 일에 눈물로 권면해야 합니다. 자녀의 영혼구원을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며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2. 자녀의 영적 성장을 위하여 울어야 합니다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순교하신 주기철 목사가 감옥에 수감되었을 때 일입니다. 일본 검사는 주 목사에게 80이 넘은 어머니가 아들을 타이르면 마음이 바뀌어져서 신사참배를 하게 되리라 생각하고 주기철 목사를 집으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주목사님이 집에 돌아오자 어머니는 놀라며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 내 아들이 일제에 항복하고 나올 리가 없다. 네가 나의 아들이라면 발길을 돌려라". 주목사님은 어머니의 말씀을 깨닫고 다시 감옥으로 갔습니다.

 

그것을 안 일본 검사들도 그 어머니의 신앙에 크게 놀랐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배들은 이토록 믿음으로 자녀를 양육했는데, 우리들은 자녀를 향한 신앙교육이 과연 어떠합니까? 적당하게 양육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주기철목사님 어머니와 같은 믿음으로 철저하게 신앙교육을 시켜 신앙의 성숙을 꾀하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들의 자녀들의 영적인 모습은 어떻습니까? 성경은 아브라함, 이삭, 그리고 야곱 이렇게 3대를 말하면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소개합니다. 3대가 신앙의 조상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앙의 3대를 이어갈 수 있도록 자녀를 위하여 울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부모의 눈물없이 자녀들을 신앙으로 양육하기가 어려운 시대임을 또한 알아야 합니다. 특히 성도들은 자녀들을 신앙적으로 바르게 키워야 합니다.

 

사무엘의 어머니는 한나는 사사시대 말기의 사람입니다. 감정 영적으로 어두울 때 기도로 하나님앞에 엎드려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어린아들을 젖을 떼자 하나님앞에 드렸습니다. 사무엘은 어려서부터 성전에서 자랐습니다. 어린 사무엘에게 하나님 앞에서 세마포 에봇을 입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아이가 얼마나 불편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는 예복을 입어야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사무엘은 어릴 때부터 성전에서 기도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며 사랑가는 기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기도가 습관이 된 것입니다. 그 까닭에 그는 후에 말하기를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자식은 하나님의 기업이요, 하나님의 상급임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부모들은 영적으로 그들을 성장시켜야 할 책임이 있음을 분명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자신을 신앙적으로 절제할 수 있는 자녀들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의 영적 성장을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는 부모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자녀의 신앙 상속을 위하여 울어야 합니다

미국의 석유재벌 록펠러(J.Rockefeller)는 백만 평 대지에 12개의 대학을 세워 미국사회에 헌납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시카고 대학입니다. 시카고 대학은 설립한지 100여년 기간에 52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으며 노벨상을 수상한 교수가 29명이나 재직하는 학교입니다. 그 후 록펠러는 시카고 대학을 비롯해서 12개의 종합대학과 4,928개의 교회를 지어서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이 모든 일을 십일조만으로 이루었다고 하니 그가 소유했던 부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만합니다. 한번은 교회에 참석한 그에게 기자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26년 동안 세계 제일의 부를 누리시는데 그 비결이 무엇입니까?" 록펠러는 대답합니다. "나는 어머니로부터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았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친아버지로 섬겨라. 둘째로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라. 셋째 주일예배는 본 교회에서 드려라. 넷째 오른쪽 주머니는 항상 십일조 주머니로 하라. 다섯째 아무도 원수를 만들지 말라. 여섯째 아침에 목표를 세우고 기도하라. 일곱째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반성하고 기도하라. 여덟째 아침에 꼭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라. 아홉째 남을 힘껏 도우라. 열째 예배시간에 맨 앞자리에 앉아라.

 

내가 부자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어머니가 유형의 재산보다 더 풍부한 믿음의 재산을 물려주심으로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사사기 2:7에 보면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10절에 보면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조상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라고 했습니다.

 

사사시대의 가장 큰 비극이 무엇입니까? 신앙이 후손들에게 제대로 전수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가문을 계속해서 이어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대가 끊어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에게 가장 큰 불행이었습니다. 여러분! 우리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면 아무리 풍요롭게 잘 살아도 영적으로는 실패한 자녀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자녀들을 말씀으로 잘 양육하시기 바랍니다. 특히 자녀들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어거스틴 어머니 모니카는 방탕한 아들 어거스틴을 위해서 30년을 기도했습니다. 모니카가 방탕한 아들 때문에 기도하다 지쳐 실망하고 있을 때 암부로시우스목사님이 해 준 말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부모가 있는 자식은 결코 망하지 않는다!" 모니카는 포기하지 않고 눈물로 기도합니다. "나의 아들아, 나는 세상의 아무 것에 대해서도 기쁨을 느낄 수가 없다. 내게 한 가지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죽기 전에 네가 진정한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다.“

 

어거스틴이 33세에 회심하고 하나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자식을 위하여 울며 기도하던 모니카의 기도는 세상에서 가장 큰 위력을 가진 기도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실 자녀교육에 대해서는 아무도 큰소리를 칠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결국 우리의 자녀들을 변화시키는 길은 오직 기도밖에 없습니다. 부모가 기도의 줄을 놓치 않는 한 우리의 자녀들은 반드시 하나님께로 돌아올 줄로 믿습니다. 그들의 영적인 성장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아이들이 키가 자라고, 지식이 자라고, 지혜가 자라는 것처럼 영적인 면도 자라야 하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하고 가장 우선적인 것이 바로 영적인 면입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많은 부모들이 이 점에 대해서 너무 무지합니다.

 

우선 건강해야 되고,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을 바꾸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먼저 바르게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나서 건강도 중요하고 공부도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삼서에 보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 되기를 기도하라고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진정 내 자녀의 미래를 걱정하십니까? 그렇다면 자녀들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눈물의 기도가 있는 한은 우리 자녀가 절대로 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부모에게 주신 가장 큰 사명은 자녀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하나님앞에서 울어야 합니다. 하나님앞에서 울면 세상에서 울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앞에 울지못하면 어느땐가 가슴을 치며 울 때가 온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 자녀들의 영혼구원을 위해서 기도합시다. 그리고 자녀들의 신앙교육과 영적 성장에 최선을 다하기 바랍니다.

 

무엇보다 영적 유산을 물려주기 위하여 애통하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자녀양육은 세상의 교육이 아닌 무릎의 힘으로 하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기도 이상의 비결은 없습니다. 부모의 기도가 자녀를 위대하게 만듭니다. 기도는 부모가 죽은 뒤에도 여전히 효력이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부모의 기도 소리가 들리게 해야 합니다.

 

부모의 기도소리가 평생 귓전에 울리게 해야 합니다. 아무쪼록 우리 자신과 우리 자녀들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는 부모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자녀들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하나님앞에 우뚝 서는 그날을 바라보며 오늘 눈물로 씨를 뿌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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