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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문의 메시지

말이 온전한 사람(약 3:1-12)

작성자야베스|작성시간20.08.02|조회수704 목록 댓글 1

말이 온전한 사람(3:1-12)

 

우리는 지금 야고보서를 통해 어떻게 하면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는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1장에서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시련과 유혹에서 승리하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2장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란 말씀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하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3장에서는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 무엇보다도 말과 생각을 주의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의 생각 속에 저장되어 있습니다.

 

그 생각은 말을 통해서 표현되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사람일수록 말이 많고 생각을 자기 밖에 모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성숙의 정도는 말을 어떻게 하느냐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사람은 마음의 생각을 말로써 나타냅니다. 말이라는 것이 그 사람의 생각을 밖으로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려면 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역으로 내가 하는 말은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한 말을 분석해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 수 있다는 말입니다. 성경도 우리 언어생활의 중요성을 매우 자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의 언어는 우리의 믿음의 표현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말대로 되어버립니다. 말대로 이루어집니다. 말대로 삽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말을 잘해야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오늘 야고보사도는 그런 의미에서 말을 많이 하는 선생이라 칭함을 좋아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1,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유대인들의 뜨거운 열망 중의 하나는 랍비라 불리는 선생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랍비를 대단히 존경하였습니다. 랍비가 되는 것은 유대인들의 선망이었고, 존경의 대상이었습니다. 랍비라는 말 자체가 "큰 사람", "위대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음으로 그리스도인이 되자 그들은 그들의 랍비를 존경하듯 교회의 선생들을 존경하였습니다. 그 존경심은 올바른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랍비가 되기를 원하였습니다. 이러한 일이 이제 초대교회 안에 많은 갈등과 문제를 빚어내게 된 것입니다. 말을 잘하는데 그래서 남에 대해서 판단은 잘하는 데 정작 자신의 참모습을 보지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사도는 "선생된다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선생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책임이 커지는 것이고 책임이 크다는 사실은 하나님 앞에서 받을 심판도 크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랍비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23:6-8)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7]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8]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선생이 되는 것은 특권입니다. 그러나 특권인 동시에 책임이 수반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건강한 교회는 선생이 많은 교회가 아니라 섬기는 사람이 많은 교회입니다. 다시말하면 주장하고 말만 하는 사람이 많은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아니라 겸손한 자세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섬기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야말로 건강한 교회인 것입니다.

 

2절은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말을 많이 합니까? 잠을 자고 일어나면 말이 시작됩니다. 하루종일 말속에서 삽니다. 그러니 말의 실수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말할 때 우리의 생각을 절제하지 않고 그저 나오는대로 하면 실수투성이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에 대한 교훈이 가득합니다. 특별히 엡4:29 말씀을 저는 강조합니다.

 

(4:29)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말에 세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1)더러운 말을 입밖에도 내지 말라- 더러운 말은 지저분한 말, 듣기에 거북한 말, 저급하고 속된 말을 의미합니다. 이런 말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말이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 더럽게 하기 때문입니다.

 

2)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선한 말을 하라- 덕을 세운다는 것은 상대방의 믿음을 세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을 살리는 말입니다.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말하면 실수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 말을 듣는 상대방의 믿음을 세우기 위한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3)듣는 자에게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하라고 했습니다. 은혜를 끼친다는 말은 듣는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기쁨을 주고 용기를 주는 말, 믿음을 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온전하다는 말은 완전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성숙하다는 말입니다. 말의 실수가 적으면 적을수록 그 사람은 그만큼 성숙된 인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말은 대단한 힘이 있습니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희망을 갖게도 하고, 절망을 갖게도 합니다. 우리가 설교를 매번 듣지만 한 마디의 말씀이 우리의 인생을 바꾸기도 하고 우리의 문제의 해답이 되기도 한 것입니다. 그만큼 말은 힘이 있습니다.

 

이 말의 힘에 대해 야고보 사도는 두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말의 굴레와 제갈을 비유하였습니다. 2절하반절에서는 말이 능히 온몸을 굴레를 씌운다고 하였습니다. 이 굴레는 재갈과 함께 말()을 통제하는 것입니다. 어떤 야생마에게도 재갈을 입에 물고 굴레를 씌우면 잘 길들일 수가 있습니다. 야생마에 관하여 생각해 보십시다. 만일 야생마에게 재갈을 물지 않고 굴레를 씌우지 않았다면 어떻게 말을 통제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3절에서는 "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말에 실수가 없을 때 우리의 온몸은 성숙한 신앙 가운데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말의 실수는 우리의 전인적인 행동이 중대한 오류를 범하도록 만듭니다.

 

둘째는 배의 작은 키에 비유하였습니다. 4절에는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바다 위의 거대한 배가 작은 키 하나에 의하여 움직입니다. 굴레는 말을 제어하며, 키는 배를 조종하듯, 혀는 우리의 모든 행동을 다스리며 지배할 수 있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온전하게 되어지려면 하나님의 사랑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십자가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사랑이 깊이 체험하게 되면 하나님의 사랑이 내 속에서 충만해집니다. 그 사랑의 힘이 어떤가 하는 것은 고전13: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여러분 믿음의 진정한 내용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회복되어지면 이웃을 볼 때 사랑의 눈이 열리면 부정적인 면보다 긍정적인 면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누구나 장점과 단점이 있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면 칭찬하고 인정하고 격려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면 고전 137절에 있는 말씀처럼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속에 사랑이 충만해야 말이 달라집니다. 말이 우리의 생애를 이끌어 갑니다. 말을 은혜스럽게 하고 덕스럽게 하면 그 사람의 말이 다른 사람을 살리고 격려하고 희망을 주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참으로 어려운 일을 말 몇 마디로 문제없이 해결하는가 하면 해결할 능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말 몇 마디를 못해서 해결못하는 그런 사람도 참 많습니다. 그처럼 말의 영향력은 큽니다. 그래서 5절은, 이와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에이브라함 링컨이 노예전쟁을 승리로 이끌 때 그의 연설은 북군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링컨의 연설없이 남북 전쟁이 승리를 할 수 있었겠느냐는 의문이 듭니다.

 

2차 대전 당시에 그렇게 미약했던 영국이 그 강력한 독일의 히틀러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이 처어칠의 연설 능력이었다고 말합니다. 또 독일사람들을 그처럼 단합되게 만든 것은 바로 히틀러의 연설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말의 힘은 큽니다. 말이 나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것은 꼭 불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우기가 계속되는 한 달 동안 온 들녘에 엉겅퀴와 가시나무, 풀들이 사람 키보다 크게 자랍니다. 그런데 비가 그치면 마르기 시작하는데 한 달만에 싹 마릅니다.

 

거기에 성냥 한 개피를 갖다 붙이면 그 전체가 순식간에 타 버립니다. 불이 한번 일어났다 하면 마치 파도가 출렁거리는 것처럼 온 산을 다 태우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의 말이 그러한 불의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삶의 바퀴를 사르는 불입니다.

 

5-6,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6]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어떤 사람에게 무심코 던진 한마디 말이 박혀서 미움과 악으로 평생을 증오하며 살아갑니다.

 

그 부정적인 말 한마디가 불씨가 되어 그 생애가 흘러가는 동안 꺼지지 않고 계속 미움의 불이 타오르게 된다는 말입니다. 우리 부모들이 자녀를 향해서 무심코 너는 쓸모없는 놈이라는 한마디의 던진 말이 그 아이의 마음속을 평생 불사릅니다. 나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내 아들이 타격을 받습니다. 내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의 말이 어떤 한 형제의 가슴 속에 깊은 고통을 줍니다.

 

우리가 한 번 토한 말은 다시는 회수할 길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인격에 관하여 이야기한 것은 그 사람의 인격과 생애에 다시는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남깁니다. 혀의 영향력은 이처럼 무섭습니다. 6절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고 되었는데, 온갖 불의는 혀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혀는 인생의 삶 전체를 망가뜨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혀로써 한 사람을 쓰러뜨리는 일은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성경은 혀가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오는 것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잠언의 기자는 다음과 같은 경고를 하였습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18:21). 그래서 예수님은 말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2:34-37)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이사야선지자는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주의 성전에 들어가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에 자기 모습을 발견하였습니다. 죄인된 자신의 모습에서도 특히 입술의 부정함을 깨닫게 되자 이렇게 외칩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우리의 혀가 범한 수많은 죄악을 발견할 때, 이 언어가 지닌 무서운 힘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7절에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라고 말씀하였듯이, 모든 짐승은 어느 정도까지 길들이는 것이 가능합니다. 사나운 짐승을 잘 길들여 놓으면 효용성이 높습니다. 가축들은 잘 길들여지면 생산적인 목적을 위해서 부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길들여지지 않는 짐승들은 파괴적이며 난폭한 행동을 합니다. 그런데 혀는 이 짐승들보다도 더 길들이기 어렵습니다.

 

이 혀에 대하여 잠언 1218절에서는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는 자가 있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과 같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이 한 말로 인하여 상처받아 본 일이 있습니까? 때로 어떤 사람이 던진 말 한마디가 비수처럼 우리의 심장부를 찔러서 상처를 남길 수가 있습니다. 성경은 악인의 혀가 그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반면에 지혜로운 자의 혀는 상처를 덮어 싸매는 양약과 같은 것이라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혀는 상처를 싸매 주고 위로하는 지혜로운 자의 혀입니까? 아니면 휘젓고 쪼개어 상처를 드러내는 혀입니까? 저는 오늘 이 시간 여러분 모두가 복있는 자로서 무릇 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결론 부분에서 야고보는 혀의 생산적인 능력에 대해서 두 가지 비유를 이야기합니다. 9,10절을 보면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하나는 샘이고 또 하나는 나무입니다. 샘과 나무는 아름다우며, 신선합니다. 샘은 우리에게 마실 물을 제공합니다.

 

예전에는 샘에서 물을 길어다 요리를 하고 세탁도 하며, 이 물이 농수로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성경에는 샘과 말을 연관지어 기록한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10:11)"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샘에서 생수가 솟아나듯 의인의 입에서는 생명의 언어가 나옵니다.

 

또 야고보서는 혀와 나무의 관계를 비교할 때에, 한 나무가 두 가지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한 혀를 가지고 축복된 언어와 저주의 언어를 사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한 입으로 두 가지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을 찬양도 하고 그런가 하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인간을 저주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세요, 여러분! 아무리 밉고 싫은 사람이 있다고 하여도 그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이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구속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사람을 저주하는 것은 그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 그사람을 구원하신 예수님을 저주하는 결과가 됩니다. 제가 어떤 작품을 정성들여 만들었다고 생각합시다.

 

그런데 그 작품을 여러분이 우습게 여기면, 그것은 저를 우습게 여기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을 외면한다는 사실은 그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을 외면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아무리 미운 사람일지라도, 그는 하나님이 만드신 작품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는 얼마나 존귀한 가치가 부여되어 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면 그 사람을 향한 생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입은 하나님을 찬양하다가도 곧잘 사람을 저주합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은 계속하여 말씀하십니다. 11,12,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이렇게 두 가지가 동시에 나오는 우리의 입술을 어떻게 하면 거룩한 생각을 품고 거룩한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지난 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참 믿음에 두 가지가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와 부활신앙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말에도 이 두 가지 포함되어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에 부활입니다. 십자가속에 하나님의 엄청난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십자가속에 나의 옛사람, 죄의 몸이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내안에 예수가 사시고 그 예수님의 가슴으로 말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신앙입니다. 희망입니다. 생명입니다. 능력입니다.

 

권세있는 말이 되려면 그 말속에 믿음이 담기고 그 말속에 부활을 담아야 합니다. 그 사람을 살리고 그 사람을 고치고 그 사람을 세우는 생명의 언어가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안에 예수 생명이 충만하면 말속에 생명을 살리고 생명을 고치고 생명을 세우는 생명사역이 이 말을 통해서 이루어 진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의 말속에 십자가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말속에 부활이 있습니다. 그것이 구원받은 성도의 믿음언어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님께서는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네가 참으로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기를 원한다면 네 말의 내용이 어떤가 보라는 것입니다. 말이 그 사람의 믿음입니다. 그 사람의 미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을 잘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낼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말을 듣고 계십니다. (14:28)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말대로 미래가 결정되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눈앞에 두고 원망하며 불평하던 저들은 저들의 말대로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다 죽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말이 이처럼 중요한데 어떻게 하면 말을 거룩하게 하고 믿음으로 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성숙한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첫째, 주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주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워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제가 기도해야 할 제목입니다. "주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워 주소서, 할 말과 안할 말을 구분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그렇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 대해 말을 조심하지 않고 입에 나오는 대로 하다가는 먼저 내가 그 올무에 걸리고 그 사람과 관계가 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루를 시작하면서 내 입술에 파수꾼을 세워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항상 하나님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하나님을 닮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딤전 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누구와 만나서 어떤 말씨를 배우느냐에 따라서 내 말의 습관이 달라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내 말속에 하나님의 마음이 담기는 것입니다.

 

세째, 성령충만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혀는 길들여지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혀가 길들여졌습니다. 언제입니까? 오순절 다락방에 성령이 임하실 때였습니다.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 그 입술이 열려져서 하나님을 찬미합니다. 그 입술이 열려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그 일을 이 땅에 힘차게 전파하는 입술로 바뀌었습니다. 이제까지는 자랑만하던 입술이었습니다.

 

이제까지 뽐내던 입술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험담했던 입술이었습니다. 그 입술이 변하여 하나님을 찬미하는 입술이 되었습니다. 그 입술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는 입술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성령 충만할 때입니다. 내 입술이 바뀌어졌습니다. 길들일 수 없던 과거는 다 지나가고 이제 새로운 천국언어를 말하는 입술로 바뀐 것입니다. 우리가 가끔 사용하는 반고감사라는 말을 기억하십니까?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말은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우리의 말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그러므로 말을 절제해야 합니다. 말에 권세가 있습니다. 말대로 됩니다. 말대로 삽니다. 말대로 행동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말을 잘할 수 있겠습니까? 말을 위해서 주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더러운 말을 입 밖에도 내지 말고 거룩한 말, 덕을 세우는 말, 은혜를 끼치는 말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과 기도로 항상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충만하면 말을 바뀝니다. 강퍅하던 말이 부드러워집니다. 부정적인 말이 긍정적인 말을 바뀝니다. 불신앙적인 말이 믿음의 말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덕을 세우는 말, 은혜를 끼치는 말, 생명을 살리는 말을 하는 성숙한 성도로 쓰임받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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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상목 | 작성시간 20.08.07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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