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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문의 메시지

가진 자에게 주는 경고(약 5:1-6)

작성자야베스|작성시간20.08.30|조회수500 목록 댓글 0

가진 자에게 주는 경고(5:1-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요즈음 야고보서를 연속적으로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는 4장 마지막 부분을 통해 인생의 본질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내일 일을 모르는 어리석은 인생, 잠깐 보이다가 없어진 안개와 같은 짧은 인생이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탄한 자랑에 빠져 교만한 자기자신을 드러내고 바벨탑을 끝없이 쌓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과 함께 적당하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무엇을 하든지 먼저 주의 뜻을 찾고 그 뜻대로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선을 행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을 가지고 하나님 뜻대로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선이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바로 선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바로 선입니다. 선을 행할 줄 알면서도 행하지 않으면 죄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지난 한 주간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적용하면서 살았습니까? 우리의 영은 말씀을 들어야 산다는 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저는 한 주간동안 생명의 샘가에서 바울의 마지막 여정을 살펴보면서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유라굴로 광풍을 만난 배, 멜리데섬에서의 사역, 그리고 로마에 도착해서의 사역, 그 어려운 환경가운데도 믿음의 형제들이 마중 나와서 함께 교제를 나누며 바울은 큰 위로를 얻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담대함을 얻었다고 하였습니다.

 

지금의 어려운 코로나환경가운데서도 믿음의 형제들이 교회안에서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리고 함께 위로하고 격려하고 마음을 나누는 것을 주님이 원하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사명을 다합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속에서 나에게 주시는 그 말씀을 깊이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대로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선을 행할 여력을 갖추고도 선을 행치 않은 가진 자에게 임할 재난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1,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부한 사람은 고생과는 상관없고 울고 통곡하는 일과도 거리가 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에게 임할 고생으로 인하여 울고 통곡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문제가 없는 것처럼 큰 소리치며 산다고 할지라도 반드시 울며 통곡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고통이란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한 재앙입니다. 어쩌면 코로나와 같은 재앙앞에 인간은 울고 통곡하는 것같습니다. 지금은 편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쌓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사람이 돈에 사로잡히면 돈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다시말하면 악을 행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한 자들에게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슬퍼하며 통곡하는 날이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성경에 나오는 부자들이 많습니다. 아브라함도 부자였습니다. 이삭도 거부가 되었습니다. 야곱도 부자였습니다. 다윗이나 솔로몬, 욥은 당대의 최고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의 부에 대하여 악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복이라고 말씀합니다. 부자가 되어 사는 것도 복받은 인생중의 하나입니다. 성경은 돈 자체를 죄라고 말하지 않지만 돈을 사랑하는 것이 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6:10) 여기서 사랑이라는 말의 원어의 뜻은 탐욕을 말하고 있습니다. 결코 돈 자체를 악의 뿌리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돈을 정당하게 벌지 않고 탐욕으로 접근하는 것을 악의 뿌리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돈을 하나님의 자리에 가져다 놓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것을 지적하여 재물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돈은 소중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돈이 우상이 되고 돈이 목적이 되어 하나님을 떠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왔다가 근심하고 돌아갔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자가 하나님의 복이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돈이 많아져서 교만해집니다. (73:12)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들이라도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도다"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불어나지만 악인들이라고 합니다. 그 부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돈을 사용하고 돈을 좇아갑니다. 그러면 돈이 하나님을 멀어지게 하는 원천이 됩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이런 부자는 축복의 대상이 아니라 저주의 대상이라고 회개하라고 외칩니다.

 

그러면 가난하게 사는 것이 반드시 저주받은 것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도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고 무덤도 남의 무덤에서 장사지내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거지 나사로에 대하여 예수님은 저주받았다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15: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네가 반드시 복을 받으리니 너희 중에 가난한 자가 없으리라" 하나님을 잘 믿는 백성에게 축복해 주시면 부자가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돈 자체, 재물 자체는 악한 것도 선한 것도 아닙니다. 부와 가난은 지극히 상대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넓은 의미에서는 그리스도인 모두를 향한 경고입니다. 물질 만능주의 시대를 사는 우리들이 귀담아 들을 경고입니다. 더 많은 돈을 모으려고 기를 쓰는 사람들을 향한 경고입니다. 사는 목적을 부의 축적에 둔 성도들을 향한 경고입니다. 지금 가진 재물이 영원할 줄로 착각하는 이들을 향한 엄중한 경고입니다. 마지막 심판의 날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곧 재난의 날, 재앙의 시간이 덮쳐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저기 모든 것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장로는 부한 자들이 재앙을 당하는 이유를 몇 가지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1. 주신 물질을 바르게 사용하지 않고 쌓아두려고 하는 죄입니다(2-3).

2-3,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3]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여기서 말하는 재물은 당시 부의 척도가 되었던 곡식과 옷, 금은을 의미합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당시의 재산을 대표합니다. 그런데 이런 재산이 모두 상해서 쓸모없게 되었다는 것은 그들이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데 급급해서 자신들의 눈앞에서 추위에 떨며 굶주린 자들을 돌보지 않았음을 말해줍니다.

 

(2:15-16)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16]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물질도 재능도 하나님이 맡겨주신 달란트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로 먹고사는 청지기입니다. 맡은이라는 말입니다. 이 땅에 올 때 빈손으로 온것처럼 마지막 갈 때도 빈손으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빈손으로 온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많은 것을 맡겨주셨습니다.

 

그런 모든 것들을 우리에게 맡겨주셨을 때는 거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자기자신과 이웃을 위해 사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그것을 자기 창고에 쌓아놓려고만 한다면 그것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의 본래의 목적에 벗어나는 것입니다. 또한 사용하기 위해서 있는 금과 은을 소유하고만 있다면 그것은 금과 은을 아무런 가치가 없는 돌덩이로 만드는 지극히 어리석은 행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6:19)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재물을 청지기적인 자세로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사용함으로써 우리의 보물을 하늘에 쌓아야 두어야할 것입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끝없는 욕심으로 재물을 모으려고만 했지 모아둔 재산은 쓰지않으면 반드시 썩고 좀먹고 녹슬어 버린다는 분명한 진리마저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의 재난 선포를 들어보십시오. 우선 너희 모든 식물은 썩었다고 선포합니다. 뿐만 아니라 비싸게 구입해 놓은 의복 역시 입지 못한 채로 좀 먹어 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부의 상징이요 자랑으로 여기던 귀한 의복이 못입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게다가 마지막 희망을 걸었던 은과 금마저 다 녹슬어버렸다는 선언입니다. 그저 더 많이 모으려고만 했지, 모은 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모으기 바빠서, 움켜지면 손가락 하나도 펴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이 살아온 결과가 다 썩고 좀먹고 녹슬었다는 것입니다. 온통 세상 것을 축적하는데 정신이 빠져 살았는데 그 모든 것이 무가치해져 버렸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그 다음입니다. 은과 금에 쓴 녹이 하나님이 맡겨주신 부를 바르게 쓰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살을 먹는 불같이 고통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선고입니다.

 

식량은 쌓아두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용하도록 주신 것이지 쌓아두도록 주신 것은 아닙니다. 먹는 것이든, 입는 것이든, 은이든 금이든 쌓아두는 것은 마지막 심판 날 받을 재앙을 쌓는 것과 같다고 본문은 말합니다. 인간의 삶을 편리하도록 인생의 삶에 적절히 사용되도록 통용시켜야 할 돈을 녹슬도록 쌓아놓는 것은 불과 같이 제 살을 태우게 될 재료를 쌓는 일에 불과합니다. 삶 전부를 걸고 쌓아놓은 그 재산이 마지막에는 우리를 고통스럽게 할 땔감처럼 될 것이라는 선고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물질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여분으로 있는 것이면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나누는 것을 배우라는 것입니다. 말세에 쌓아둔 재물은 심판 날 받을 재앙을 쌓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이든지 여분의 것은 선을 행할 기회입니다. 선을 행할 기회를 주셨는데 행치 않는 것은 죄악입니다. 남의 것을 훔치거나 폭력으로 빼앗는 강도질만 나쁜 죄가 아닙니다.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나누지 않는 것도 똑같은 죄입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속에 부자가 왜 지옥에 들어가 고통했습니까? 자기는 호화롭게 먹고 마시면서 정작 가난하고 병든 나사로를 돌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쌓아두어 썩게 하고 좀먹게 하고 녹슬게 하는 것은 심판 날 받을 형벌을 축적하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바르게 사용되지 않는 재물은 재앙의 원천입니다.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2. 가진 자들의 또 다른 죄는 불의한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죄입니다(4).

4, “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지르며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주신 물질을 잘못 사용하는 죄뿐만 아니라 돈을 버는 방법도 잘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추수한 품꾼들의 품삯을 정당하게 지불하지 않고 쌓아놓았다고 지적합니다.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욕심으로 가득한 부자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 수 있지만 만유의 심판자이신 하나님의 귀에 들렸다는 것입니다. 착취당한 노동자의 억울해서 우는 소리를 하나님은 들으십니다. 기독교는 결코 죽음 저편의 낙원의 환상으로 사람을 마취시키는 종교가 아닙니다. 내세만 부각시키고 현세의 고통을 외면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성경은 결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정당한 임금지불을 하지 않고, 정당한 세금납부를 기피하는 것이 부를 축척하고 사업체를 키우는 길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죄악에 침묵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난하고 연약한 자라고 부당하게 착취해도 아무도 변호해 줄 이가 없다고 착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을 돌보시는 분은, 그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4절에서 하나님을 만군의 주라고 부릅니다. 모든 군대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의 뜻은 전능하신 분이라는 말입니다. 억울한 이의 한을 읽으시며 눈물을 씻길 수 있는 전능자이십니다. 비록 세상에는 가난한 사람의 편이 없을지 몰라도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그들의 보호자라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주신 달란트라는 사실을 잊지마십시오. 이 모든 것의 진정한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관리인이요, 맡은 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이 가졌다고 교만하지 말고 적게 가졌다고 열등감에 빠질 필요가 없습니다. 있는 것은 족할 줄로 알고 자족할 줄 아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뿐 만 아니라 청지기로서 주인이 왜 내게 물질을 주셨냐는 것입니다. 주인이신 하나님의 목적에 합당하게 물질을 사용하는 충성된 청지기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사치와 방종에 사용하는 죄입니다(5).

5,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부를 축적한 다음 사치와 방종, 죄악된 쾌락을 위해 탕진하는 죄악을 지적합니다. 그들은 돈을 맡기신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육체적 욕망이 원하는 것을 찾아 나섭니다. 무엇이겠습니까? 육체적 쾌락을 찾는 것입니다. 돈이 많으면 사람들을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돈은 우리를 유익하기는 하지만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의 한 신문에 이런 기사가 실린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돈으로 어디든지 다 갈 수 있다. 단 천국을 빼놓고, 우리는 돈으로 무엇이든지 다 살 수가 있다. 단 행복을 제외하고."

"우리는 돈으로 침대를 살 수 있으나 돈으로 잠을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음식을 살수 있으나 돈으로 식욕을 사지 못합니다.

돈으로 집은 살 수 있을지 모르나 참된 가정은 사지 못합니다.

 

돈으로 약은 살 수 있으나 돈으로 건강을 살 수는 없습니다.

돈으로 사치를 살 수 있으나 돈으로 문화는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쾌락은 살 수 있을지 모르나 돈으로 행복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십자가 아니 금 십자가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으로 그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살 수가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물질에 대해 이런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딤전 6: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부자들에게 명령하시기를 마음을 높이지 말고 교만하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오직 소망을 둔다면 그 물질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어야 합니다.

 

이 모든 물질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물질에 소망을 두어서는 안됩니다. 물질은 달란트비유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반드시 결산할 날이 올 것입니다. 어리석게 열심히 돈, ! 하면서 돈만 따라다니면 "오늘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이 모든 것인 뉘 것이 되겠느냐?"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우리는 들어야 됩니다. 야고보의 경고를 모두 들어보십시오.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잔칫날 살찐 짐승을 골라잡듯이 사치와 방탕으로 그 마음이 살찐 이들은 최후의 심판을 위해 스스로 준비하는 것입니다. 집에서 키우는 짐승들이 그들의 마지막을 모르고 열심히 먹으려 드는 것처럼 사치와 방탕에 빠져 사는 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쾌락의 최후는 허무요, 슬픔입니다. 사치의 종국은 파멸이요 심판입니다.

 

얼마 전에 유투브를 통해 제가 아는 젊은 형제의 간증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사업을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벌어진 돈으로 고통받는 외국의 아이들을 위해 많은 돈을 기부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모두가 하나같이 재산을 모으는데 혈안이 되어있는 현실속에서 이 세상을 거슬러 올라가는 거꾸로 사는 형제의 고백이었습니다.

 

저는 그 친구를 보면서 하늘에 속한 멋진 삶을 살고 있다고 감히 소개하고 싶습니다. 돈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그런데 그 형제는 그돈으로 마음껏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곳에 쓰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나에게 물질을 주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멋진 그리스도인입니다.

 

4. 부를 이용해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만드는 죄입니다(6).

6, “너희는 의인을 정죄하고 죽였으나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마지막으로 가진 것을 사치와 방종에 사용할 뿐만 아니라 가진 자의 힘으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것을 지적합니다. 부를 추구하는 과정에 있어서 부자들은 다른 이들의 생명조차 개의치 않습니다. 탐욕은 탈취를 하게 하고 방종에 빠진 삶은 결국 살인까지 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야고보서 2장에서 부자들이 가난한 자를 법정으로 끌고 가는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지금 5장에서는 그들을 죽이는 죄까지 범한 것으로 고발되고 있습니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직접 혹은 간접으로 스스로를 지킬 능력이 없는 이들의 생명을 빼앗기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루하루를 땀흘려 일해서 살아가는 일용직 노동자에게 그날그날 품삯을 지불하지 않습니다. 가진 자의 입장에서는 심각하지 않지만 가난한 자에게 그날 품삯을 주지 않는 것은 생명줄을 끊는 죄악입니다.

 

여기 본문에 정죄하였도다. 또 죽였도다.”라는 말이 나온 것으로 보아 부를 잘못 사용하면 가난한 자를 죽이는 것도 어렵지 않다는 것입니다. “악한 자를 대항하지 않는가난한 자의 무고한 생명을 끊는 것으로 부자의 죄를 극대화시키고, 그것과는 대조적인 가난한 자의 모습을 서술하고 본문은 끝납니다.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느니라.” 하지만 그의 소리없는 부르짖음은 하늘 보좌에 울려 퍼집니다. 이 모든 죄악은 최후의 심판을 불러옵니다.

 

(6:10)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꼭 기억하십시오! 최후의 심판이 없는 것처럼 강포를 행하며 살던 모든 이들은 그날 심판 아래 빠져들 것입니다.

 

이제 말씀 맺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물질은 정말 중요한 모두의 관심사입니다. 물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실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질은 소중한 것이지만 탐욕을 부리면 죄를 범합니다. 그러므로 최선을 다해서 땀흘려 벌되 주신 것은 어떤 것이든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대로 사용해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여 이웃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사명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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