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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문의 메시지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에베소교회(계 2:1-7)

작성자야베스|작성시간20.09.20|조회수433 목록 댓글 0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2:1-7)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은 소아시아 7교회에 보내는 편지인데 이 소아시아 7교회는 모든 지상의 교회들의 대표가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교회, 버가모교회, 서머나교회, 두아디라교회, 사데교회, 빌라델비아교회, 라오디게아교회 이렇게 7교회인데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지상에 있는 교회는 완벽하지는 못합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구성원인 사람이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미완성된 상태라 공사중이라고 말합니다. 교회를 하나하나 살펴보면 칭찬받는 좋은 점도 있고 책망받는 나쁜 점도 있습니다. 우리가 일곱교회에 주신 말씀을 살펴보면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비쳐보고 좋은 점은 더 발전시키고 나쁜 점은 회개하고 새롭게 하는 것이 이 교훈을 주신 목적입니다.

 

사실 요한계시록은 고난받는 일곱교회에 주신 예언이기도 합니다. 오늘 이 시간은 일곱 교회 중에서 가장 먼저 에베소 교회에 주신 말씀,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에베소교회는 사도바울이 가장 심혈을 기울려 개척한 교회이기 때문에 소아시아 교회 중에서 가장 비중있는 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 19,20장에 보면 바울이 에베소지역을 개척할 때에 무려 3년동안 모든 겸손과 눈물로섬겼다고 했습니다. 특히 두란노서원에서 밤낮 쉬지 않고 각 사람을 붙들고 씨름하며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해서 에베소 교회는 큰 성령의 역사가 있었고 많은 성도들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2,3절에 보면 에베소교회는 여러 가지 장점들이 있었습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복음역사를 위해서 많은 수고를 하였습니다. 예배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석하였고, 식당봉사도 열심히 하고 전도도 열심히 하였습니다. 그들 중에는 게으른 자들이 없었습니다. 뒤에 숨어서 적당히 하는 자들이 없었습니다. 특히 그들은 말씀중심의 신앙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교회 내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뒤에 나오는 버가모 교회나 두아디라 교회는 자칭 사도라 하는 거짓 선지자들을 용납함으로 많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에베소 교회는 복음의 진리 위에 굳게 서 있었기 때문에 이단들이 절대로 발붙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음행과 우상숭배를 조장하는 니골라당도 철저하게 경계하였습니다. 이것은 아주 잘한 일입니다.

 

에베소서 5:5,6에 보면 사도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이렇게 썼습니다.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6]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고 하였습니다.

 

6:11절에서는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아주 전투적으로 권면하였습니다. 그래서 에베소 교회는 진리 수호를 위해서는 아주 철저하고 깨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점에서는 에베소 교회가 칭찬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면서 에베소교회에도 큰 문제점이 하나 생겼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4,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주님께서 보실 때에 에베소교회의 문제는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것이었습니다. 처음 사랑은 어설프기는 하지만 순수한 것입니다. 세련되지는 않지만 꾸밈이 없고 진솔한 것입니다. 왠지 가슴이 설레이고 보고 싶고, 가까이 하고 싶고, 목소리가 듣고 싶고 그렇치 않습니까? 설레이는 마음, 뭐든지 처음은 좋은 것입니다. 처음 여행갈 때, 처음 비행기 탈 때에 얼마나 설레입니까?

 

처음에 에베소 성도들이 복음을 영접했을 때는 정말 뜨겁게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에 감동하여 자발적으로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습니다. 그들은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감격을 가지고 복음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래서 병도 낫고 마귀도 떠나고 마술하던 자들이 은 오만이나 되는 마술책을 스스로 불태우고 결단할 정도로 열심히 대단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게 되니까 우선순위가 분명했습니다. 그들은 매일 모여서 성경을 읽고, 말씀을 공부하고, 눈물로 사랑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교회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유럽을 선교하러 떠난 바울사도를 위해서 목이 터져라 기도했을 것입니다. 또한 에베소 교회는 성도들 간에 사랑의 교제도 뜨거웠습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성도들 간에 끈끈함이 있었습니다.

 

정말 서로를 위해 주고, 관심을 갖고 기도해 주고, 아끼고 귀하게 여기는 사랑의 공동체였습니다. 사도행전 2036절에서 38절을 보면, 바울사도가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면서 밀레도 섬에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그리고 헤어질 때 장로들과 바울이 해변가에서 하나님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은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눈물의 이별을 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성도들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에서 보면 사랑이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때로부터 40년이 지난 후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렇게 사랑이 충만했던 에베소 교회가 40년이 지나서는 사랑이 식어버리고 냉냉해졌습니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진리를 사수하고, 믿음으로 행동하고, 순교적인 헌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랑을 망각해 버린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촛대를 옮겨 버린다는 것은 축복의 터전을 다른 곳으로 옮겨버린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무서운 말씀입니다. 에베소교회는 지난 40년동안 소아시아의 중심교회로서 주변 교회의 본이 되는 장자교회였습니다. 모든 교회들이 우러러 보고 닮고싶어하는 교회였습니다. 본인들 스스로도 그런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영향력을 점점 상실해가고 있었습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무섭게 책망하십니다. 돌이키지 않으면 더 이상 그런 축복이 그들과 함께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말씀을 새겨들어야 합니다. 첫사랑을 잃어버린 것을 회개하고 처음 행위를 회복하도록 애를 써야 합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주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가 오랜신앙생활을 통해서 어떤 직분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십자가의 그 사랑을 잃어버렸다면 자신을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환경의 문제가 아닙니다. 본질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처음 예수님을 만나 신앙생활을 출발하던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죄와 어두움가운데 있던 우리를 예수님께서 십자가 보혈로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신 은혜에 감사해서 몇 날 며칠을 눈물로 보내던 때가 있었습니다. 성경책만 봐도 가슴이 설레이고, 지나가다가 십자가만 봐도 눈물이 나던 때가 있었습니다. 예배시간이 기다려지고 성경공부시간이 그렇게 기다려지고, 예배시간에 일찍 와서 예배를 준비하고 교회당을 함께 청소하고 매일 저녁마다 기도회를 가졌습니다. 예배시간마다 은혜를 사모하고 한 말씀이라도 놓칠세라 메모를 해가면서 메시지를 듣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렀습니다.

 

점점 타성에 젖어 적당히 하면서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양은 변함이 없는 것같은데 내용이 없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그대로 있는데 경건의 능력을 상실하였다는 것입니다. 처음 사랑을 다시 회복해야 합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려면,



1. 어디서 떨어졌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로마의 황제가 그리스도인이 자꾸 늘어나는 것에 위협을 느끼고 신하들을 불러 그리스도인들을 없앨 방법을 논의했습니다. 황제가 먼저 로마의 법을 강화시켜 그리스도인들을 무조건 죽이는 법을 만들자고 제의했습니다. 그랬더니 한 신하가 황제의 의견에 반대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믿는 자들을 죽여 순교자로 만들면 그리스도인들이 더욱 순교자들을 추앙하기 때문에 역효과가 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신하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찾아내어 죽이지 말고 잔인하게 고문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대안을 내놓았습니다. 그러자 다른 신하가 예수쟁이들은 고문을 받기만 하면 십자가 고난에 동참한다고 좋아합니다. 또 고난을 받으면 받을수록 하늘의 상급이 더 많아진다고 기뻐하며 오히려 고문의 흔적을 자랑하고 다닙니다. 그 방법으로는 그리스도인들을 없앨 수 없습니다라며 반대했습니다.

 

그때 구석에 있던 한 신하가 조용히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편안하게 즐기고 놀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놓으면 간단합니다. 그들은 그런 환경 속에서 죄를 지을 것이고 그러면 기독교는 있어도 아무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을 없애는 가장 무서운 요인은 외부의 박해가 아니라 내부의 타락과 부패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대상이 생기면 사랑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 대상이 물질이 될 수 있고 명예, 권세, 세상 쾌락일 수 있습니다.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하나님과의 사랑을 멀어지게 하는 요소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에 대한 처음 사랑이 식어지고 점점 둔해지기 시작합니다. 나태하게 되고 결국 하나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기도에 힘을 쏟지 않습니다. 영적으로 감각을 상실하고 남은 것이라고는 자기 욕심입니다.

 

자기 아집과 편견에 사로잡혀 하나님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딤후 3장에서 마지막 때를 예언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딤후 3: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그렇습니다.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많은 문제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 시대같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제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영적으로 진단해 보아야 합니다. 왜 오늘 우리 시대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렀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 우리가 자기사랑에 빠져있습니다. 돈을 사랑하고 자랑하고 교만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사도요한은 권면합니다. 본문 5절입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여기의 생각하라는 원어로 므네모뉴에이며 현재 명령형입니다. ‘마음에 간직하다, 기억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일시적으로 생각하고 그칠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멀어져 있는 자신의 상태를 겸허하게 인정하고 본래의 자리가 어디쯤인지 생각하여야 합니다. 무엇이 문제이고,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왜 사랑이 식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현재의 각박한 상황과 처음의 뜨거웠던 사랑의 모습을 비교해야 합니다. 무슨 까닭에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의 형편과 영적생활의 현주소를 찾아야 합니다.

 

정확한 진단이 있으면 정확한 처방을 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거듭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어디서 처음사랑을 잃어버렸는지 진단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전에는 찬송만 불러도 가슴이 뭉클해지고 눈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그 감격이 다 사라지고, 우리의 신앙과 봉사가 기름이 떨어진 등불처럼 희미해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입술이 원망과 불평으로 점점 채워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형식적이요 외식적이요 습관화된 신앙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처음 사랑의 감격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이 보시기에 거룩함과 처음 사랑이 있는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있는가? 혹 나만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자랑하고 교만하지는 않는지? 오늘의 내 믿음이 습관화되고 형식화된 것을 돌아보고 나의 참모습이 무엇이었는가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나에게 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처럼 (7:24)“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이렇게 내 몸이 사망의 몸인 것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를 내려놓을 때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생기지 않는 한 처음 사랑을 다시 찾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2. 진심으로 회개하여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변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율법적인 신앙으로 굳어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은혜로 시작했고, 감사로 시작했습니다. 기도도 열심히 하고, 봉사도 열심히 하고, 그래서 교회에서 인정을 받아 직분도 받고, 그렇게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이 표준이 되어 버립니다.

 

자기가 제일 잘 믿는 것처럼 착각을 하게 되고, 봉사도 자기가 가장 많이 하고, 잘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이렇게 자신이 의가 되고 표준이 되면 그때부터는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과소평가하게 되면서 교만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자연히 어지간한 일에 감격을 하지 않게 되어서, 설교를 들어도 은혜가 되지 않고, 기도도 뜨겁게 하지 않고, 교회에 참여하는 열정도 식어집니다.

 

주님은 이러한 상태에 있는 에베소 교회에 회개를 촉구하시면서 회개의 방법도 구체적으로 제시하십니다.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여기서 '떨어진' 이란 단어를 주목해야 합니다. 주님은 오른손으로 교회를 붙잡으신 분입니다. 그런데 에베소교회는 그 은혜에서 떨어진 교회가 되었습니다. 즉 주님의 소유권과 선택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내것입니다. 어리석은 교만입니다. 에스겔이 진단한 것처럼 뻔뻔한 얼굴입니다. 마음이 굳었습니다. 이러한 죄악을 구체적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는 마음의 변화이기도 하지만 행위의 변화입니다.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는 말이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처음 행위가 칭찬꺼리였지만, 지금의 행위는 회개 꺼리입니다. 주님은 지금 에베소 교회에 행위의 변화를 촉구하십니다.

 

생각과 회개, 행위의 변화로 이어지는 진정한 회개가 없으면 촛대를 옮긴다고 하십니다. 촛대란 바로 성령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성도는 성령이 떠난 성도가 되게 한다는 말입니다. 회개도 성령의 역사입니다. 회개하기 위해서는 말씀 앞에 조용히 나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가 지금 가는 길이 바른 길인지, 나는 정말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로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고 있는지, 내 속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는 세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1)죄를 인정해야 합니다.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필요함을 구해야 합니다.

2)죄를 슬퍼해야 합니다. 죄에 대해 철저히 탄식하고 가슴을 치며 울어야 합니다.

3)죄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아무리 죄를 인정하고 죄를 슬퍼해도 죄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진정한 회개를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3:8)으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아주 구체적으로 권면했습니다. 2:38-39,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회개하면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홍같은 죄를 범했을지라도 하나님앞에 우리 죄를 자백하면 우리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주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성령이 임재를 느끼지 못하는 성도는 진정한 성도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우리가 회개할 때 하나님의 용서와 함께 성령이 임하시는 것입니다. 어디서 떨어졌는지 생각하고 진실로 회개하라. 그리하면 천국이 여러분가운데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3.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마귀는 분리자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분리시키고 인간과 인간관계를 분리시키며 결국에는 인간의 영과 몸까지 분리시켜 버립니다. 마귀는 이 목적을 달성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인간을 속이고 유혹하여 죄를 범하게 하였습니다. 죄는 모든 관계를 깨트립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트리는 것입니다. 이 본질적 관계가 깨어지면 인간은 철저히 자기 중심으로 변질되어 모든 관계를 깨트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모든 관계를 회복시키셨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회복시키며 인간의 영혼과 육체를 온전히 치료하여 처음 창조된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시켜 영생을 주시고 회복된 인간을 통하여 영광과 찬양을 받으시려 하십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들 가운데 믿음이 식어지고, 율법적인 신앙인이 되어서 탈진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교제가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자기일에 바뻐서 하나님을 만나서 교제하는 시간이 줄어듭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잃어버림으로 하나님과의 거리가 멀어지게 되고, 세상과 사람 소리만 들려지게 됩니다. 이제부터는 나를 유혹하는 세상과 사람의 소리로부터 나를 회복시키려는 하나님의 음성에만 귀를 기울이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본문은 회개하여 처음 행위로 돌아가라고 말씀합니다. 처음 행위가 무엇입니까? 성령이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이같이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하는 축복을 얻게 됩니다.

 

생명나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그 분이 주는 천국의 삶은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는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생활입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지는 자에게 주시는 소망입니다. 생명은 사랑에서 나옵니다.

 

이제 주님께 대한 우리의 처음 사랑이 회복되는 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있는 촛대를 옮겨가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를 통해서 당신의 놀라운 계획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에서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는 것과 같은 풍성한 삶을 살게 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잃어버린 처음 사랑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 십자가의 사랑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내가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를 점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앞에 자기를 다 내려놓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드리십시오.

 

그 사랑이 여러분속에 충만하면 오늘 내 죄악을 다 회개하고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회복하게 됩니다. 그리고 타성에 젖은 습관적 신앙의 삶이 아닌, 매일 매일의 삶에 구원의 기쁨과 감격과 축복이 넘치는 삶을 회복하게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면 잃어버렸던 모든 은혜가 회복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제 처음 사랑으로 돌아갑시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처음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언제나 하나님께 칭찬받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어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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