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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문의 메시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는 요나(욘 2:1-10)

작성자야베스|작성시간21.03.14|조회수574 목록 댓글 0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는 요나(욘 2:1-10)

 

요나는 광풍이 불어오는 바다 한가운데서 자기의 참모습을 발견하였습니다. 지금까지 그는 선지자로서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자부하였습니다. 성경도 쉬지 않고 읽었고 남들보다 기도도 많이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환란가운데서 자신의 참 모습을 보게 되었을 때 자신이야말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자기 멋대로 살았던 못된 죄인이었음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아 내가 죄인이었구나, 아 내가 바로 그렇게 증오하며 비판했던 외식주의자였구나'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깨닫는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을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병원에 찾아가는 환자는 한결같이 자신의 몸에 병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입니다. 영적으로도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야 치료가 가능한 것입니다.

 

지금 요나는 거센파도와 광풍속에서 비로소 자신이 누구인가를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가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좇아 그물을 내렸더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예수님앞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눅 5:8절)

 

그도 하나님의 기적의 현장에서 비로소 자기의 참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요나는 자기 죄때문에 배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큰 풍랑을 만나 죽게 되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정직하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자신이 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각오하였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바다에 던지라고 요청했습니다. 이 광풍의 책임이 바로 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내탓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모든 책임을 지고 죽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앞에 자기를 내려놓은 것입니다.

 

광풍앞에서 자기의 욕심도, 자기의 자존심도, 자기의 생명조차 내려놓고 하나님께 드리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 겉 사람이 강합니다. 끈질깁니다. 그래서 그냥 말로 해서는 잘 깨닫지 못할 때가 더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환경의 풍랑을 통해서 우리를 겉사람을 깨트리고 우리 자신의 참모습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요나는 자신이 누구인가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요나는 바다에 던져졌는데 하나님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해놓으셨습니다.

 

욘1:17,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이 일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어렵고 힘듭니까? 그래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고 계십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비로소 하나님앞에 엎드려 진정으로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국민일보 겨자씨란을 보니까 30억원의 자본으로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박집사님이라는 분이 갑자기 췌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병원에 입원하여 방사선치료를 받았습니다. 고통이 너무 심해서 이제 더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체력이 약화되고 미음 한 수저도 넘기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나는 네가 생명처럼 아꼈던 30억 재산을 이 미음 한 수저와 바꿀 수 있다."는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 때 비로소 박집사님은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죄악을 하나하나 깨닫게 되었습니다. 돈을 사랑하다 보니 십일조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고 감사하지도 못하고 그저 돈벌기에만 급급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는 병상에서 비로소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철저하게 회개하였습니다.

 

이렇게 역경이 바로 자신의 참모습을 보게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역경이 비로소 하나님을 찾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요나도 지금까지 기도한다고 했지만 매우 형식적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진지하게 마음을 터놓고 기도한 적이 언제인지 모릅니다. 깊은 기도를 드린 것이 언제인지 까마득합니다. 자신의 죄악을 회개하고 눈물로 기도했던 기억이 아득합니다.

 

그런데 지금 요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기도합니다. 1절,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바로 기도였습니다. 그의 얼굴이 하나님을 향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회복입니다. 비록 물고기 뱃속이지만 요나의 영이 깨어난 것입니다. 비로소 그는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새로운 삶이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도피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여러분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마땅히 감당해야 할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은 오늘 여러분을 위해서도 물고기를 예비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물고기는 내 가정의 풍랑일 수도 있습니다. 그 물고기는 내가 당하는 육체적인 질병일 수도 있습니다.

 

그 물고기는 내 자식들이 당하는 어려움일 수도 있습니다. 캄캄한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은 나로 하여금 내가 마땅히 배워야 할 교훈을 알게 하십니다.

 

2절,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요나는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이처럼 진정한 기도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은 영혼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뿐만 아닙니다. 요나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곧바로 응답하십니다. 하나님과 교통의 통로가 열린 것입니다.

 

주께서 내게 응답하셨고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얼마나 놀라운 사건입니까? 요나의 죽음을 선택했더니 하나님께서 그를 살려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과 대화의 통로가 열린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이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과 교통하는 요나, 여기에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있습니다. 요나와 하나님이 하나가 된 것입니다. 요나에게 엄청난 고난이 왔습니다. 그 고난의 의미를 하나님께로부터 듣는 기회가 된 것입니다.

 

고난이 모두다 징계 때문에 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때로는 하나님께서 징계하시기 위해 고난을 주신다는 사실을 성경은 분명히 가르칩니다. 또한 주께서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를 징계하십니다. 징계에 대하여 성경에 나타나는 세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1)징계는 모든 성도에게 찾아옵니다. 징계가 없으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내가 참으로 하나님의 자녀라면, 내가 그분의 사랑받는 자녀라면,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나를 그대로 내버려 두시지 않고 나를 향해서 사랑의 채찍을 드십니다. 내게 하나님의 채찍이 가해질 때, 하나님의 사랑의 질책이 나를 향해서 찾아올 때 그 때가 하나님을 만날 때입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그 때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깨어졌던 관계가 회복되고 영혼이 깨어난 것입니다.

 

2)징계는 나자신의 한계를 발견합니다.징계 그 자체는 참으로 고통스럽고 괴로운 것입니다. 징계를 통해서 나의 한계를 발견합니다. 하나님앞에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나는 죄덩어리라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이 징계를 통해서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3)징계의 목적을 나를 거룩하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징계는 나의 믿음을 자극시켜서 믿음의 연단을 만들어 냅니다. 여러분 그래서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거룩한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징계를 통해서 무너지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징계를 통해서 하나님앞에 엎드리고 요나처럼 기도하는 사람은 징계가 은혜입니다.

 

징계가 내안에 있는 모든 불순물을 다 제거하고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단련시키는 것입니다. 믿습니다. 징계를 통해서 나의 참모습을 발견하고 나의 교만이 깨어지고 나를 거룩하게 하는 데 절대 필요한 과정입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그가 받는 고난의 의미를 묵상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요나는 지금 자기에게 주어진 상황을 '스올'이라고 불렀습니다. 스올은 죽은 자들의 거처를 말합니다. 죽은 바와 다름없는 곳에서 요나는 하나님을 비로소 찾았습니다. 요나는 죽음의 골짜기에 갇힌 것입니다. 탈출할래야 할 수 없고, 불안하기 짝이 없는 밀폐된 어둠 속에서 기도하였습니다.

 

물고기 뱃속은 죽음의 현장이었습니다. 더러운 냄새로 숨이 막히고 어둠이 가득한 고통의 장소에서 요나는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반드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고통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찾게 되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내 안에 있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기서 부르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영혼이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잃어버렸던 신앙을 찾은 것입니다. 잃어버렸던 자기를 찾은 것입니다. 잃어버렸던 기도를 찾은 것입니다. 평소에 요나는 선지자라고 하면서도 진실한 기도를 하지 못했고, 신앙은 형식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만 그것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기도하지는 않았습니다. 전도하라는 말은 수없이 들었지만 전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것과 내 삶은 너무나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선지자이니까 겉으로는 좋은 신앙인처럼 보였지만 실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분명하지만 그것은 이론이었을 뿐이었습니다. 내 생각과 같았을 때는 순종하는 것 같았지만 내 생각과 다를 때는 여지없이 내 생각대로 살았습니다. 그래도 아무런 마음의 꺼리낌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그의 진정한 주인은 누구였습니까?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도가 메마르고 그의 심령이 메말라 결국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게 되고, 사명을 저버리고 도망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더니 결국 캄캄한 환난의 밤을 만나고, 상상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서 기도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부르짖기 시작했습니다.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요나처럼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지 않고는 기도를 배울 수 없는 "요나"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어려움을 당하지 않고는, 큰 풍랑을 당하지 않고는, 파도를 만나지 않고는 기도를 배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요나는 물고기의 캄캄한 뱃속에서 주님을 향하여 기도하면서 이렇게 외쳤을지 모릅니다. "내가 왜 기도하지 않았을까? 저 평안한 땅에서, 저 아름다운 땅에서, 그렇게 기도할 수 있었을 때, 그렇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었을 때 나는 왜 기도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요나가 이제라도 기도를 배우는 것은 다행한 일입니다. 모든 상황이 절망적일 때, 한계상황에 부딪쳐 앞에 캄캄할 때에도 하나님이 내 곁에 계셔서 내 음성을 듣고 계시다는 사실은 은혜가 아닙니까?

이때 요나는 기도하면서 잃어버렸던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1. 믿음이 회복되었습니다(3-4절).

3,4절,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4]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요나는 이 모든 역경속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였습니다. 주께서 나를 깊음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역사의 주권자가 하나님이십니다.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위에 넘쳤나이다. 그렇습니다. 요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앙망하며 간구합니다. 요나의 기도 속에서 중요한 낱말은 "다시"라는 말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얼마동안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져 있었다는 사실을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고백합니다.

 

"그러나 제가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습니다. 주님, 다시 성경을 펼치겠습니다. 다시 엎드려 기도하겠습니다. 다시 하나님을 섬기겠습니다.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겠습니다."

그는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의 은혜를 사모하기 시작헸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앙망합니다. 지금까지 요나는 하나님의 자리에 자기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하나님과의 교제는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자기가 거기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자기가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의 성전을 향하여 다시 바라보겠다는 것입니다.

 

사40:28-31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합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합니까?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합니까? 하나님과의 교제가 제대로 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자리에 여러분이 앉아 있어 교제가 단절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는 잃어버렸던 믿음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회복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기도가 회복되었습니다(7절).

7절,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요나는 여호와를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우리는 편안할 때 자주 하나님을 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앉아있는 곳이 물고기의 뱃속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삶과 죽음이 오고가는 이 절박한 상황에 던져졌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구세군의 창설자이신 월리엄 부드는 이렇게 충고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기도를 배우시기 바랍니다. 기도할 때는 여러분이 지금 드리는 그 기도에 생사가 달린 것처럼 생각하십시오" 지금이 기도할 때입니다.기도를 멈추지 하십시오. 기도하실 때 지금 드리는 이 기도에 여러분의 생사가 달린 것처럼 하시기 바랍니다. 그때 우리의 기도는 얼마나 절박해지겠습니까? 우리의 기도에 필요없는 수식어는 얼마나 많이 떨어지겠습니까?

 

요나가 물고기의 뱃속에서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고, 높고높은 보좌 위에서‥" 라는 말로 기도를 시작했을까요? 오히려 그는 원색적인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살려 주십시오. 한 번만 봐주십시오. 정신 똑똑히 차리고 다시 출발하겠습니다. 한번만 더 내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그리고 그는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을 생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주님을 묵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요나의 의식 속에서 하나님이 있었습니다. 이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그런데 이제 요나의 의식속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살아있는 신앙은 그 생각속에 하나님이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배시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무엇을 하든지 그 생각속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 중심의 생각을 갖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당연히 먼저 기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고는 무엇도 할 수 없습니다. 이제 내 생각대로 고집하지 않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회복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감사가 회복되었습니다(9절)

9절,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그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가 편안한 삶을 살 때 일찌기 그의 입술에는 감사의 언어가 없었습니다. 그가 마음대로 자기의 삶을 누릴 수 있었던 상황 속에서 그는 감사의 언어를 잊었습니다. 그런데 물고기의 캄캄한 뱃속에서 그는 감사의 언어를, 감사의 노래를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말할 수 없는 인생의 역경 속에서 자기의 삶이 끝날 듯한 고통의 한밤중에 그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니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 은혜를 깨닫고 나면 그저 기도는 감사밖에 할 것이 없습니다. 무엇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배부른 기도입니다. 그저 하나님의 은혜 앞에 감사합니다. 그는 비로소 '감사'라는 단어를 깨닫습니다. 더이상 요나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만 생각하면 그저 감사입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요나는 하나님앞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가서 서원을 갚겠다고 결심합니다. 그의 서원은 무엇이겠습니까?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주신 사명,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이 명하신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라는 사명을 순종하겠다는 다짐과 맹세가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진정한 회개에 이르렀다면 외면했던 사명의 길로 발걸음을 돌리는 것은 필연적인 귀결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일생을 살면서 한 번도 서원을 해보지 못했다는 것도 어딘가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깨달아지고 감사의 고백이 흘러나올 때 "하나님, 제가 나머지 생은 다르게 살겠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제가 이렇게 살아 보겠습니다" 하는 결심도 없이 인생을 산다면 어떻게 구원받은 성도라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앤드류 러코크라는 구약 신학자는 물고기 속에 들어가 있던 요나의 모습을 이와같이 설명했습니다. "이 물고기야말로 요나의 인생을 다시 빚어 만드는 새로운 삶의 모태였다. 마치 어린아이의 생명이 어머니의 태내 어둠 속에서 빚어지며 그 속에서 인생이라는 놀라운 날을 예비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여기 물고기의 뱃속이라는 고난의 한 심연에서 요나에게 새로운 삶을 예비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고난만 예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내가 살아야 할 인생의 빛나는 내일의 새벽까지도 예비하셨음을 깨닫고 주님을 찬양하기 바랍니다. 이제 우리는 시편기자의 고백에 공감할 수 있습니다."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119:67).감사를 배우고 하나님을 향한 결단으로 새로운 삶을 계획하는 요나, 그를 위해서 하나님은 마지막에 어떻게 하십니까?

 

10절,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그 물고기가 요나를 다시 빚기 위해서 주께서 예비하신 교육의 현장이었다면, 이제 요나는 더 이상 그곳에 있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 감사를 배웠고 새로운 미래를 결심했기에 그곳에서 배울 것은 다 배운 셈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물고기로 요나를 토하게 하심으로 고난을 끝내십니다. 스올의 뱃속에서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 요나와 같이 하나님의 임재를 느껴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하나님 아버지앞에서 나의 참 모습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앞에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잃어버린 영적인 은혜를 회복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부르짖는 기도를 드려 보았습니까? 심정을 통하는 깊은 기도를 드려 보았습니까? 지금은 부르짖어 기도할 때입니다. 지금은 잃어버린 은혜를 회복할 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앞에 진정으로 감사하며 서우너을 갚아야 할 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풀어 주신 그 은혜를 깊이 묵상하고 감사함으로 주 앞에 서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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