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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문의 메시지

사도바울의 고별사(행 20:25-31)

작성자야베스|작성시간21.08.22|조회수807 목록 댓글 0

사도바울의 고별사(행 20:25-31)

 

요즘 묵상하는 출애굽기를 보면서 많은 은혜를 받습니다. 위대한 지도자 모세, 기적의 사람 모세, 하나님의 대언자 모세라고 말하지만 실질적으로 모세에게는 아무런 능력도 아무런 힘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만을 절대 신뢰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입으로 선포합니다. 그 다음에 그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아무 것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면 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문제가 있어도 기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전부이니까 환경을 바라보고 사람을 보고 원망하고 불평하기에 바쁩니다. 또 자꾸 욕심을 부리고 교만하여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살면서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자기 자신만을 믿기 때문에 불신하고 불순종하고 자기 고집대로 자기 욕심대로 행동합니다. 그것을 성경은 죄악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바울이 에베소에서 성공적인 사역을 하게 된 원인을 세 가지 요인을 살펴보았습니다. 참 어렵고 힘든 전도자의 삶을 살면서 어떻게 교회를 섬겼습니까?

 

세 가지였습니다. 1)모든 겸손, 2)눈물, 3)인내입니다. 이 세 가지 자세는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는 사람에게 나오는 신앙적 자세입니다. 모든 겸손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기에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눈물은 하나님 나라를 생각하며 애통하는 것입니다. 어두운 세상을 하나님의 심정으로 바라볼 때 눈물이 나옵니다. 그래서 눈물의 기도가 힘이 있습니다. 그다음 인내입니다. 결국 믿음의 역사는 인내입니다.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이 행하시는 구원을 믿기 때문에 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저는 코로나 재앙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세 가지의 요소를 요구하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오늘까지 교회를 섬겨오면서 모든 겸손, 눈물, 인내가 얼마나 있었습니까?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주권 앞에 자신의 생명조차 다 맡긴 바울은 위대한 사역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연약함은 바로 이러한 신앙자세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저도 생각해보면 코로나 펜데믹을 지나면서 마음이 꽤 메마른 것을 느낍니다. 날마다 주여주여 하면서도 내가 주인노릇하는 모습을 발견할 때 머리를 숙일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사도행전 말씀을 살펴보면서 오늘 우리에게 사도행전의 역사가 동일하게 나타나기를 갈망하는 마음입니다. 사모하는 마음이 저에게 있습니다. 그런 성령님의 역사가 우리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나타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 힘입니까? 아닙니다. 오직 우리안에 역사하시는 보혜사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십니다. 믿습니까?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이 소아시아 선교를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떠나면서 밀레도에서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을 불러서 마지막 권면(고별사)을 한 내용입니다. 지난 시간에 이어서 오늘도 고별사의 내용을 보면 그가 얼마나 자기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1.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깨끗함을 권면하였습니다(25-27).

25절, “보라 내가 여러분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이제는 여러분이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 줄 아노라·”고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정들었던 사람들과 이별한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그렇게 어려운 환란과 핍박가운데서 서로 아껴주고 서로 사랑하면서 한 형제같이 지내다가 이제 다시 만나지 못할 것같고 순교자의 길을 간다고 생각하면 슬픔이 얼마나 크게습니까? 사도 바울은 그동안 3년간 에베소에 머물면서 복음을 전파하고 날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고 가르쳤습니다.

 

그 결과 아데미 신을 섬기는 우상의 도시였던 에베소가 주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믿음의 도시로 변했습니다. 31절에서 말씀하는 바대로 3년이나 밤낮 쉬지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그 정든 곳을 떠나야 하는 사도 바울의 마음이 얼마나 아쉬움으로 가득 찼겠습니까? 더군다나 예루살렘에는 결박과 환난이 자기를 기다리고 있기때문에 지금 헤어지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깊은 정이 들었던 에베소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이 슬픈 일이고, 다시는 보지 못할 줄을 알고 헤어지는 것이 더욱 슬프게 하는 일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다시 만나지 못하고 헤어지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서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다 말해 주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 성도들에게 한 말이 무엇입니까?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다"는 것입니다.

 

26-27절에서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에게 증언하거니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27]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음이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다는 것은 사도 바울이 간직하고 있는 자부심입니다. 그런 말과 자부심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아무나 느낄 수 있는 자부심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만 느낄 수 있는 자부심이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그가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다고 담대히 말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27절에서 말씀한 바대로 "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여러분에게 전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뜻을 다 전하지 않았으면 그들의 피에 대하여 깨끗할 수가 없습니다. 3년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눈물로 하나님의 뜻을 전파하고 가르쳤기 때문에 그가 할 일을 충분히 다 감당했습니다. 더 이상 그에게는 책임이 없습니다.

 

그렇게 전파하고 가르치고 권면했는데도 믿지 않는 것은 그들의 책임입니다. 만일 사도 바울이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말해주지 않았다면 그들의 피값에 대해서 책임을 면할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 구약의 에스겔서 3:17-21사이의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17-18절) “[17]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18]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이 말씀은 악인이 죄를 범하면 당연히 자기의 죄값으로 죽는 것이지만 그 악인을 깨우치고 전도하지 않은 책임을 너에게 묻겠다는 말입니다. 파수꾼의 사명입니다.

 

(19-21절)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의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20] 또 의인이 그의 공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의 공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내가 그 앞에 거치는 것을 두면 그가 죽을지니 이는 네가 그를 깨우치지 않음이니라 그는 그의 죄 중에서 죽으려니와 그의 피 값은 내가 네 손에서 찾으리라 [21] 그러나 네가 그 의인을 깨우쳐 범죄하지 아니하게 함으로 그가 범죄하지 아니하면 정녕 살리니 이는 깨우침을 받음이며 너도 네 영혼을 보존하리라”

 

의인이 실수를 해서 죄를 범했습니다. 죄를 범한 것을 네가 경고하거나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그는 그의 죄중에 죽으려니와 그의 피값은 내가 그손에서 찾으리라. 그리고 네가 경고했는데 그 사람이 고치고 안고치고는 그 사람의 문제입니다. 내가 전도해서 그 사람이 믿거나 안믿거나 그것은 그사람 책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전도하지 않아서 그 사람이 지옥 갔다면 그 책임을 너에게 묻겠다는 겁니다.

 

다시말하면 전도하지 않으면 그 피값을 내게서 찾으시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만난 사람은 누구나 다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믿고 안믿고는 그 사람의 문제입니다. 내가 만나지 못하였다면 하나님이 그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만난 사람가운데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그 피값을 네손에서 찾겠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뭐라고 말했습니까? 나는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해서 깨끗하다 그랬습니다. 굉장한 이야기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와 만난 사람에게는 다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책임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이 가졌던 그 자부심을 우리도 가질 수 있어야 하고 우리 교회도 그 자부심을 가진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를 이 지역에 파수꾼으로 세우셨습니다.이것이 보통 말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김해시민의 피값에 대해서 깨끗하십니까? 여러분의 집안의 피값에 대해서 깨끗하십니까?

 

어떻게 하면 이 지역 사람들의 피에 대하여 깨끗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다 말하고 전도해야 합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우리 주변을 돌아보시고 나에게 붙혀준 영혼, 이웃사람들을 헤아리며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기도하면서 기회를 찾아 내가 만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여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임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처럼 모든 사람들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다는 자부심을 가지는 사명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2.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하라고 권면하였습니다(28)

28절,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이제 사도 바울이 그곳을 떠나면 다른 사역자들이 사도 바울을 대신하여 교회와 성도들을 돌아보고 그들의 신앙을 지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사역자들에게 어떻게 교회와 성도들을 지도해야 할 것인지를 일러 주고 있습니다.

 

나라가 제대로 되려면 대통령이 제대로 해야 하고, 회사가 제대로 되려면 사장님이 제대로 해야 하고, 가정이 제대로 되려면 가장이 제대로 해야 하고, 교회가 제대로 되려면 목회자와 섬기는 사역자들이 제대로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그곳을 떠난 후에도 에베소교회가 제대로 유지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감독자, 즉 사역자들을 세우고 그들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일러 주고 있습니다.

 

첫째, 자기를 위하여 삼가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삼가하라'는 말은 헬라 원어로 ‘프로세코’라고 하는데, '무엇에 대하여 주의를 집중하라', '전력하라', '조심하라'는 뜻입니다. 다시말하면 지도자가 자기를 성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목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영적인 지도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양떼를 잘 돌보기 위해서는 네 자신과 양떼들을 위해서 먼저 자신을 절제하고 자신을 관리하고 자신을 훈련시키고 자신을 삼가는 일이 절대적으로 먼저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문제는 교인들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 지도자들의 문제입니다. 장로님들이나 목사님이 제 위치나 제 역할을 하지 못하기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오늘 우리교회의 문제인 것입니다. 양떼는 잘 돌보는 첫 번째 원칙 비결은 무엇인가? 목자들이 자기를 돌아보고 절제하는 것입니다.

 

절제란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자기를 조절할 수 있어야 진정한 지도자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또한 내 자신의 영적 생활을 바로 해야 합니다.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거룩함을 지키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못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내가 성령충만하지 못하면 어떻게 남에게 성령충만을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먼저 성경적 지도자는 무엇보다 성령충만해야 합니다. 교회자체가 성령이 다스리시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한마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일하려면 반드시 성령충만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충만하지 않으면 반대로 자기충만입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이 교만입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것입니다.

 

(고전 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목자 하나가 넘어지면 양떼들 다 넘어집니다. 목자는 목원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열심을 내고 성령충만한 가운데 목원들을 돌보는 데는 안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도 하지 않고 자기 영적인 상태를 점검하지 않고 자기 충만으로 서 있다면 아무리 다른 방법을 써도 목원들이 영양실조에 걸리고 시험에 들어서 갈등하게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27에 보면 사도 바울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마귀는 틈만 보이면 우리에게 들어와서 우리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지도자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여기서 그 중요성을 볼 수가 있습니다. 사회 속의 여러 가지 문제는 결국 그 사회 지도층의 문제입니다. 학생들과 학교의 문제는 결국 교사들의 문제입니다. 가정과 자녀의 문제는 결국 그부모의 문제요 가장이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교회와 성도들의 문제는 결국 교회지도자들이 온전치 못한 때문입니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했습니다. 사회가 잘못되고 가정이 잘못되고 회사가 잘못되어도 교회만큼은 바로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바로 되려면 목회자가 바로 서고 교회중직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목자는 양떼들을 위해서 때로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말아야 할 때도 있고, 또는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양떼들의 유익을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국민들의 유익을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는 지도자가 진정한 지도자입니다. 종업원들의 유익을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는 기업주가 진정한 사장입니다. 가족의 유익을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는 가장이 진정한 가장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교회와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는 목사가 진정한 목회자입니다. 교회의 유익과 양 떼들의 유익을 위해서 일하지 않고 자기 유익만을 추구하고 자기 배만 위해서 일하는 목사는 삯꾼 목자입니다. 20절에서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유익한 것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전하여 가르쳤다고 했습니다. 그는 참 목자입니다. 저도 그런 목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감독자가 왜 자기를 위하여 삼가고, 양 떼들을 위하여 삼가야 합니까?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감독의 직분을 하나님께서 맡겨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감독의 직분은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서 세우신 교회를 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주신 직분보다 더 귀한 직분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직은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 가운데서 뽑아서 세우신 직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교회보다 더 귀한 기관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중직자들은 먼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앞에 서면 깨끗한가? 부끄러움이 없을까? 결국 할 일은 더 많이 기도해야 합니다. 더 많이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고 주신 직분을 잘 감당하여서 교회를 교회되게 하고 우리 교회에 주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여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충성된 교회와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할 것을 권면하였습니다(29-31)

29,30절, "내가 떠난 후에 사나운 이리가 여러분에게 들어와서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 또한 여러분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를 떠나면서 가장 걱정되고 염려되는 것은, 거짓 선지자들이 들어와서 성도들의 신앙을 미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생각할 때 너무나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바울은 거짓선지자들을 '사나운 이리'들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마 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노략질하는 이리라는 말은 무엇입니까? 양의 옷을 입고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사나운 이리는 절대로 자기의 본질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사탄은 처음부터 자기의 본질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아주 그럴듯하게 비슷하게 말씀을 가지고 능력을 가지고 찾아오는 것입니다.

 

(고후 11:14)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5]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사탄도 빛이 환하게 비치는 광명의 천사로 가장해서 모든 사람이 다 속는 것입니다. 이 흉악한 이리떼들이 들어오면 그들이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사나운 이리는 가만히 몰래 다가와서 양 떼를 아끼지 않고 그의 영혼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킵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성도들을 그렇게 할 것을 바울은 알고 있었습니다. 30절에서 거짓 선지자들의 흉계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도들을 끌어서 자기를 따르게 합니다. 자기를 추종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바라보고 따라가야 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그분은 선한 목자이십니다. (요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양들을 위하여 목숨까지 버리신 예수님을 따라가면 우리의 모든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그러나 몰래 들어온 거짓 선지자를 추종하고 따라가면 결국 영혼이 늑탈당하고 한숨과 눈물과 후회만 남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는 자기를 좇게 하는 흉악한 이리와 같은 거짓 선지자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들의 미혹의 손길이 언제 우리에게 뻗쳐올지 알 수 없습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거짓 선지자들의 흉계가 어떤 것입니까? '어그러진 말을 하는 것' 입니다. 어그러진 말을 한다는 말은 왜곡된 말을 하고 구부러진 말을 한다는 뜻입니다. 진리를 왜곡시키고 옳은 것을 구부러지게 만듭니다. 복음을 교묘한 논리로 표현하고 주장해서 사람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계 2:1-7에 보면 사도 바울이 떠난 후에 에베소교회에는 정말 니골라당이 들어와서 성도들의 신앙을 극도의 부도덕과 방종에 빠지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우리의 영혼을 노리고 있습니다. 왜곡된 교리를 가르쳐서 주님을 떠나게 하고 교회를 떠나게 하고 자기를 따르도록 하고 있습니다. 영적 분별력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을 받지 않고 이단에 미혹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31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 방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고 말씀합니다. 미혹되지 않으려면 우선 "너희가 일깨어"있어야 합니다. 방심하지 말고 계속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긴장이 필요합니다. 동물의 왕국을 보셨습니까? 어떤 동물이 사자나 호랑이의 먹이가 됩니까?

 

긴장을 풀고 무리에서 이탈한 동물이 여지없이 표적이 됩니다. 여러분이 거짓 선지자의 표적이되지 않으려면 영적으로 항상 긴장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사도 바울은 우리가 거짓 선지자의 미혹을 받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라고 말씀합니까?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동안 배운 말씀을 기억하면 미혹을 받지 않습니다.

 

말씀을 기억하라는 말씀속에는 "말씀을 배우라", "말씀 위에 든든히 서라", "말씀으로 무장하라"는 의미가 함축적으로 들어 있습니다. 이단이나 거짓 선지자들이 성도들을 미혹할 때는 반드시 말씀을 가지고 접근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혹되지 않으려면 말씀을 배우고 말씀으로 단단히 무장해야 합니다. 우리는 전도를 하러 나갈 때 교회 다니는 사람이나 교패가 붙어 있는 집은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단자들과 거짓 선지자들은 교회 다니는 사람을 만나면 더 끈질지게 붙들고 늘어집니다. 대문에 교패가 붙어있는 집은 더 초인종을 누릅니다. 그 이유 중에 하나가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녀도 말씀으로 제대로 무장되지 않은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보다는 예수를 믿기는 믿되 말씀으로 무장되지 못한 사람이 훨씬 더 접근하기가 쉽고 미혹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어찌하든지 말씀으로 무장하셔서 한 사람도 미혹당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나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맡겨주신 달란트가 있고 그 달란트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생명을 살리라고 복음을 맡겨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깨끗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우리 친구, 우리가 만나 모든 사람들에게 우리는 빚진 자의 심정으로 이 생명의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 우리에게는 직분에 부끄러움없는 충성된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를 삼가야 합니다. 육신의 욕심에 삼가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하며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직분은 명예가 아닙니다. 사명입니다. 그러므로 목사, 장로, 안수집사, 권사, 집사, 교사 모든 직분에는 하나님이 맡겨주신 사명에 충성을 다하여 모든 사람의 피에 깨끗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영혼을 흔드는 거짓선지자들의 미혹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을 흔드는 환경, 여러 가지 시험, 그리고 이단들, 영적으로 깨어있어 믿음을 지키고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기까지 달려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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