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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문의 메시지

엘리야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왕상 18:41-46)

작성자야베스|작성시간21.12.05|조회수1,054 목록 댓글 0

엘리야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왕상 18:41-46)

 

엘리야는 구약의 나오는 선지자들 가운데 가장 어두운 시대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한 선지자였습니다. 지난 주에 살펴본 것처럼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선지자 450명과 치열한 영적인 전투를 벌였습니다. 갈멜산의 영적 전투의 내용은 누가 하늘에서 불을 내려 그 제물을 태우느냐의 싸움이었습니다. 먼저 바알을 섬기는 선지자 450명은 송아지를 잡아 제단에 올려놓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큰 소리로 바알을 부르짖었지만 응답이 없었습니다.

 

얼마나 웅장했겠습니까? 얼마나 거창하였겠습니까? 그러나 아무 응답이 없자 나중에는 단 주위를 맴돌면서 칼과 창으로 자기들의 몸을 자해하기까지 하면서 부르짖었습니다. 하지만 아무 응답도 없었습니다. 저들은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녁 소제드릴 때가 되서야 엘리야의 차례가 왔습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무너진 제단을 수축했습니다. 그리고 그위에 송아지를 잡아 올려놓고 그 번제물과 나무 위에 물을 부은 다음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왕상 18:36)“저녁 소제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이어서 엘리야는 이렇게 기도합니다.[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이러한 엘리야의 기도에 하나님이 불로 응답하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까지 다 태우셨습니다. 이 일을 모든 백성들이 보고 엎드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라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들을 한 사람도 도망가지 못하게 하고 그들을 붙잡아 기룐시냇가로 데리고 가서 다 죽였습니다. 얼마나 통쾌한 승리입니까? 악의 씨앗을 제거하였습니다.모두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고 자기 길로 가버렸을 때 엘리야가 이처럼 하나님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온천하 증거하였던 것입니다. 멋지지 않습니까? 이처럼 하나님 나라에서는 하나님만 전적으로 따르는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누가 뭐라해도 나는 하나님의 편에 설거야, 엘리야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입니다. 믿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갈멜산에서의 영적인 전쟁은 단순히 이기고 지는 전쟁의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이기면 살고 지면 죽는 정도의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과의 싸움은 지난 3년 6개월 동안의 가뭄의 재앙이 누구로 인하여, 어떤 신이 내린 재앙인가를 판가름하는 싸움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엘리야를 비롯하여 여호와를 믿는 자들이 바알의 신을 진노케 함으로 바알이 내린 재앙이냐 아니면 바알 숭배에 빠진 아합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진노케 함으로 여호와 하나님이 내리신 재앙이냐 하는 싸움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싸움은 여호와가 참 신이야? 바알이 참 신이야?를 결정하는 중요한 영적전쟁이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싸움에서 엘리야는 멋진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바알 선지자들을 잡아 죽이는 대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제 백성들을 위해 엘리야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들은 말씀을 이루어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늘 문을 열고 비를 내리시므로 가뭄으로 인해 죽어가는 저들을 구원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미 18장 1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왕상 18:1) “많은 날이 지나고 제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하게 들려왔습니다. 이제 그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앞에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이 분명해도 언제나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그 일을 이루어가시는 것입니다.

 

그만큼 기도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이렇게 하나님앞에 기도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다음 세 가지가 준비되었기 때문입니다.

1)무너진 제단을 수축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을 의미합니다(관계회복).

2)하나님이 이 모든 역사의 주권자이신 것을 온 백성들이 알게 되었습니다(믿음 회복)

3)우상숭배자들, 바알선지자 450명을 다 제거하였습니다(거룩함 회복)

 

기도응답의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이제 기도만 하면 응답하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요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제 하나님앞에 엎드려 그 뜻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엘리야의 할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 가장 절박한 문제, 3년 6개월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정말 암울한 시대를 살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중단되었습니다. 아마 수많은 사람들, 짐승들이 굶어 죽었을 것입니다. 모두가 절망속에 주저 앉아있을 때 믿음의 사람 엘리야의 할일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더 분명하게 증거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소낙비를 내리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아합왕을 찾아가 이렇게 말합니다. 41절,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비 소리가 있나이다”‘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곧 큰 비가 와서 오랜 가뭄이 해갈될테니 가뭄에 대한 걱정은 내려놓고 마음껏 음식을 먹으라는 것입니다. 갈멜산사건을 통해서 아합왕 역시 하나님이 참 신이신 것을 분명히 알았을 것입니다.

 

아합왕이 엘리야선지자의 말을 듣고 먹고 마시러 올라가자 엘리야는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엘리야가 하나님앞에 어떻게 기도하였는가를 살펴보면서 은혜를 받고 기도를 배우려고 합니다. 신앙생활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증명됩니다. 기도가 믿음의 증거입니다. 어떻게 내가 기도하느냐가 내가 믿는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신 것을 증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엘리야는 믿음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이 없으면 기도할 수 없습니다. 본문 41절에서 엘리야는 뜨거운 태양빛이 여전히 내리째는 하늘을 바라보면서도 아무도 듣지 못하는 빗소리를 믿음의 귀로 듣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믿음은 기적을 일으키고, 구한 것은 이미 받은 줄로 믿는 믿음의 기도가 위대한 역사를 일으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이미 엘리야에게 지면에 비를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붙잡고 엘리야가 기도할 때 이루어졌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인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수만가지 축복의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도할 때에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한다는 것은 믿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크기가 사람마다 각기 다릅니다. 큰 믿음이 있고, 작은 믿음이 있습니다. 그 믿음에 따라 기도가 달라집니다. 엘리야의 기도가 대단했던 것은 그의 믿음이 큰 믿음이었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이스라엘 왕 중 가장 사악했던 아합왕 시대에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고 가뭄이 계속되다가 엘리야의 기도로 비가 내린 사건의 기록입니다.

 

본문 41절을 다시한번 보시겠습니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이르되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비 소리가 있나이다”엘리야 선지자가 지금 아합 왕에게 뭐라고 선포합니까? 큰 빗소리가 들린다는 겁니다.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았는데 큰비가 온다는 겁니다. 여러분, 아합왕에게 어떻게 이렇게 담대하게 선포할 수 있었습니까? 불로 응답하신 하나님, 엘리야는 가뭄속에서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체험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릿시냇가에서는 까마귀가 먹을 것을 가져다 주어서 먹고 살았습니다. 또 시돈땅 사르밧 과부집에서는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며 먹을 것을 공급받았습니다. 또 죽은 아들을 살렸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며 살았던 엘리야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오직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고 살았습니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믿음으로 하나님이 행하실 일을 바라보며 빗소리를 듣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 소리는 아합왕이나 백성들은 듣지 못하고 엘리야만 들은 소리입니다. 말하자면 영적인 소리 즉 영음이었습니다. 그는 이 소리를 듣고 머지않아 비가 올 것을 확신한 겁니다.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기에 담대하게 선포했고, 정말 그대로 됐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이 과연 어떤 것인지 확인하게 됩니다. 성경에서 믿음을 가장 간명하게 정의해 주는 구절이 히 11:1입니다.“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그러니까 육안에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것처럼 확신하는 게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은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영혼의 눈’으로 봅니다. 믿음의 사람은 남이 듣지 못하는 것을 ‘영혼의 귀’로 듣습니다.

 

출애굽기 14장을 보면, 출애굽 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바다에 가로막혔다가 홍해가 갈라져 육지처럼 건넌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는 것을 허락했다가 변심한 바로 왕이 군대를 급파합니다. 추격하는 애굽 군대가 바짝 뒤따라오는데, 홍해가 앞을 가로막습니다. 얼마나 황당했을까 상상해 봅니다. 백성들이 울고불고 난리가 납니다.

 

그때 모세의 심정이 어땠겠습니까? 그도 인간인데, 덤덤했을까요? 아마 모세도 처음에는 두렵고 떨렸을 겁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마음을 추스르고 담대하게 말합니다.출14: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모세는 백성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게 바로 모세의 믿음입니다.

 

지금은 진퇴양난의 상황이지만, 잠시 후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너고 애굽 군대는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죽을 것을 훤히 내다보고 있는 겁니다. 요즘 말로 하면, 모세에게는 앞으로 전개될 일들이 ‘안 봐도 비디오’였던 겁니다. 이처럼 믿음의 사람은 ‘영적인 감각’을 갖게 됩니다. 이런 예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자연 재해가 있을 때 인간은 전혀 모르고 당하는데, 동물들이 미리 알고 대피합니다. 감각이 다른 겁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듣지 못하는 것을 듣습니다. 기도할 때 막연하게 기도하는 게 아니라, 믿음으로 보면서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서 기도할 때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원수 마귀는 믿음의 기도가 역사하는 힘이 큰 것을 알기에 우리 마음에 자꾸 의심을 불어넣습니다.

 

그런 일이 있을라고? 그런 일은 도저히 불가능할거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안 돼, 이런 생각들을 마음에 불어넣습니다. 이게 의심입니다. 의심은 비유컨대 영혼을 좀먹는 바이러스와 같습니다. 이른바 ‘의심 바이러스’입니다. 마음속에 의심을 품게 되면 기도가 안 됩니다. 기도를 해도 돌아서면 부정적인 생각에 그만 낙심합니다. 결국 기도하나 마나입니다. 그래서 야고보 선생은 의심에 관해 뭐라고 말씀합니까?

 

(약 1:6-7)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의심을 품고 기도하면 헛것이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기도할 때 현실보다 그 배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문제보다 문제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믿음의 눈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이 하실 일을 바라보십시오. 믿음의 귀로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그 믿음대로 될 줄로 믿습니다. 당장 내 눈에 보이지 않고 현실적으로 아무런 변화가 없어도 믿음을 갖고 하나님앞에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면서 믿음의 눈을 크게 뜨십시오. 믿음의 귀를 크게 여십시오. 그래서 흔들리지 말고 믿음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 믿음대로 될 줄로 믿습니다.

 

2.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큰 믿음으로 기도하면 기도에 불이 붙습니다. 기도할 때 그의 마음속에 뜨거움이 있었습니다.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본문 42절,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아합왕은 밥을 먹으러 올라갔습니다. 사실은 자기가 우상숭배하고 악을 행해서 가뭄의 재앙을 당한 건데, 배가 고프다고 밥을 먹고 있는 모습이 밉살스럽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 결투로 인해 얼마나 진을 뺐겠습니까?

 

그래도 그는 하나님앞에 엎드렸습니다. 땅에 꿇어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주로 서서 기도하는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그 마음이 간절했는지 보여줍니다. 그리고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합니다. 더욱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마치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의 모습과 비슷합니다. 눅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얼마나 열심히 기도하셨으면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었겠습니까?

 

이런 기도로 십자가를 넉넉히 지고 인류를 구원할 수 있었던 겁니다. 히스기야의 기도도 열심의 기도였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중병에 걸렸습니다. 절박한 환경입니다. 아직 왕자도 보지 못하고, 나라도 위태로운데,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기도합니다. 어느 정도로 열심히 기도했습니까? 왕하20:2~3 “히스기야가 낯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3]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더라”

 

히스기야는 벽을 향하고 진실로 전심전력해서 통곡하면서 기도합니다. 왕에 위엄은 온데 간데없고 오직 하나님앞에서 어린아이처럼 울부짖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이 응답하셨고, 15년 수명이 연장됩니다. 이게 바로 우리가 실천할 ‘간절한 기도’입니다. 우리가 흔히 오해하는 게 있습니다. 특별한 신앙의 인물들은 그저 한두 번 건성으로 기도하면 척척 이뤄진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이 연약합니다. 때로는 의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씨름하듯이 몸부림치며 열심히 기도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 축복의 역사가 나타나는 겁니다.

 

어느 목사님이 영국에 갔다가 감리교의 창시자인 웨슬리목사님이 살던 집을 방문했답니다. 방을 구경하는데 마루바닥에 구멍이 두 개 나 있습니다. 안내원이 방문객들에게 이게 무슨 구멍이겠느냐고 질문합니다. 얼른 떠오르는 생각에 그때는 아주 어렵던 시절이니까 쥐가 드나드는 곳에서 기도했나보다 생각하고 “아, 그거 쥐구멍 아닌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안내원이 빙그레 웃더니 설명합니다. 웨슬리가 무릎을 꿇고 하도 많이 기도해서 구멍이 났다는 겁니다. 무릎 자국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간절히 기도합니까? 그렇지 않고 우리는 쉽게 낙심합니다. 그리고 원망합니다. 포기합니다. 그러면 지는 겁니다. 간절히 기도하는 자가 하나님의 응답을 체험합니다. 엘리야가 특별한 위인이라 놀라운 기적이 나타났다는 생각을 버리십시오. 큰 믿음을 가지고 그토록 열심히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렇게 간절히 기도해서 응답받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인내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정말 큰 믿음이 있고 정말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은 더 나아가 인내의 기도를 합니다. 엘리야의 기도 세 번째 특징이 바로 ‘인내의 기도’입니다. 다시 말하면 응답받을 때까지, 하나님이 역사하시기까지 끈질기게 기도하는 겁니다. 말하자면 ‘끝장 기도’입니다.

 

본문 43절~44절을 보십시오.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가로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그가 기도하면서 사환에게 바다 쪽을 바라보고 오라고 시킵니다. 번번이 아무 것도 안 보인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합니다. 일곱 번째 어떻게 됩니까? 손만한 작은 구름이 보인다는 겁니다. 그것은 비가 온다는 싸인입니다. 그래서 아합왕에게 비가 곧 쏟아지니까 비에 막히지 않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라고 말합니다. 성경을 보면 7이라는 숫자는 실제로 일곱 번 한 겁니다. 동시에 상징수로 7은 완전수입니다. 그러니까 엘리야가 끝까지 인내하며 기도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자 잠시 후 어떻게 됐습니까?45절.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하여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3년반동안 가뭄이었는데, 놀랍게도 큰비가 쏟아집니다. 기적입니다! 만약 그가 도중에 포기했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하나님이 응답하셨겠습니까? 아닐 겁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당신이 유일한 참 하나님이심을 나타내고 싶었습니다. 바알 신을 숭배하는 패역한 백성들에게 당신을 나타내신 겁니다.

 

우리의 기도 생활을 보면, 그런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조금만 더 기도하면 되는데, 인내하지 못해서 포기합니다. 그러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늘 올라갔다 떨어지고, 다시 올라갔다 또 떨어지고 늘 제자리걸음입니다. 그러니까 10년 신앙생활을 해도 늘 그 모양 그 타령인 경우가 생기는 겁니다.

 

여호수아 6장을 보면 여리고성 함락 사건이 나옵니다. 출애굽 후 광야 40년을 지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첫 성이 바로 여리고였습니다. 그러나 여리고성은 철벽 요새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군사력으로는 정복 불가능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작전 지시를 내립니다. 하루에 한번씩 돌라는 겁니다. 그러다 제7일째는 일곱 번 돌라는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다같이 소리 지르라는 겁니다. 그런데 마지막 날까지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하다못해 벽돌 한 장이라도 떨어져야 희망이 있을 텐데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믿음으로 순종했을 때 여리고 성이 폭삭 주저앉았습니다. 만약 마지막 한 바퀴를 돌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여리고 성 함락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이것은 마치 적금 붓는 것과 같습니다. 마지막 회차까지 부어야 온전하게 탑니다. 그 전에 해약하면 손해입니다. 같은 이치입니다. 경우에 따라 다르지만, 하나님이 요구하는 ‘기도의 분량’이 있습니다.

 

그것을 가득 채울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인내의 기도가 중요한 겁니다. 끝장을 보겠다는 각오로 기도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엘리야가 기도가 그런 기도입니다. 본문 45절~46절을 보면 통쾌한 장면이 나옵니다.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아합 왕이 이스르엘 별궁으로 급히 돌아가는데, 달리는 마차앞에서 뛰어가는 엘리야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신이 났을까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마음껏 자랑하고 증거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엘리야는 우리와 똑같이 연약한 육체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그는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는 인내의 기도로 응답을 받을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엘리야는 태생이 우리와 다른 별종이 아닙니다. 별나다면 그의 믿음이 별난 겁니다. 그의 기도가 별난 겁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엘리야의 하나님이 누구의 하나님입니까?

 

나의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입니까? 인간 조건입니까? 환경입니까? 빽입니까? 아닙니다! 정직하게 말하면 믿음이 부족할 뿐입니다. 기도가 부족할 뿐입니다. 엘리야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신 것을 믿고 영적인 가뭄의 시대에 엘리야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닫혔던 하늘문을 열고 하나님의 살아계신 역사, 큰비의 소리를 들으면서 믿음으로 기도하고 응답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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