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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문의 메시지

너, 하나님의 사람아(딤전 6:9-12)

작성자야베스|작성시간22.02.20|조회수1,100 목록 댓글 0

너, 하나님의 사람아(딤전 6:9-12)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젊은 목회자 디모데에게 편지하면서 그를 이렇게 부릅니다."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11절a)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말에 주목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또 '하나님께 속한 자'라는 말입니다. 사도 요한도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요일 4:4)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안에 계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에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다'고 하시면서 '그렇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요 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하나님께 속한 자를 세상은 미워합니다.

 

세상에 살지만 도리어 그 세상에서 택하심을 받아 소속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세상에 속한 자로 살아가면 세상이 그를 미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은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사야선지자는 이렇게 말씀했습니다.(사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 우리를 구속하신 하나님, 우리를 지명하여 불러주시고 하나님의 소유로 삼으신 우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다시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속한 자가 되었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인 것입니다.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여러 권면을 하기에 앞서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부릅니다. 그 모든 것보다 정체성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구인지가 확실해야 세상의 유혹을 피할 수 있고, 주님을 온전히 따를 수 있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울 수 있습니다. "하늘에 속한 사람"의 저자 윈 형제가 중국 공안원들에게 잡혔을 때의 일입니다. 공안들이 "너는 누구냐? 이름을 대라!"고 윽박지르며 모진 고문을 하자 윈 형제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네, 저는 하늘에 속한 사람입니다." 지하교회 성도들을 숨겨 주기 위해 역설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고백한 것입니다.

 

맞습니다. '하늘에 속한 사람'이 그의 이름입니다. 사도 바울은 편지를 쓸 때마다 가장 먼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이라고 자신을 소개합니다. 베드로 역시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라고 말합니다. 스스로의 정체성이 분명한 사람은 삶의 문제에 쉽게 요동하지 않습니다. 어느 상황에서든 중심을 잃지 않고 당당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사소한 문제에도 쉽게 흥분하고 작은 손해에도 억울해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곤 합니다.

 

별것 아닌 일에 우울해지고 그 감정에 이리저리 휘둘리기도 합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바로 알아야 내 감정도, 내 삶 전체도 흔들리지 않고 바로 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선명한 정체성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답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당신은~)믿습니까?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향하여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라고 부른 다음, 하나님의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권면하였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피하라, 따르라, 싸우라, 취하라, 지키라'는 다섯 가지 덕목을 권면합니다. 이 다섯 개의 동사는 모두 군사용어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반드시 지키며 행해야 할 명령인 것입니다. 13절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내가 너를 명하노니”라고 말하고, 14절에서는 “이 명령을 지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명령과도 같은 이 권면을 반드시 지켜 행해야 합니다.

 

1. 이것들을 피하라고 하였습니다(11절)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11절). 바울은 하나님의 사람인 디모데에게 가장 먼저 이것들을 '피하라'고 말합니다. 성경에는 '음행을 피하라', '다툼을 피하라', '거짓 교훈을 피하라' 등 피하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장 먼저 '이것들을 피하라'고 명령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죄악을 이겨내는 최고의 방법은 피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음행을 피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만으로 이겨 낼 수 있습니까? 죄성이 충만한 우리 자신의 의지와 결단만으로는 죄의 유혹을 이겨내기란 불가능합니다. 딤전 6:3-10절에서 바울은 다른 교훈, 교만, 변론과 언쟁, 투기와 분쟁 등 피해야 할 많은 것들을 언급합니다. 그중 특히 강조한 것은 '돈에 대한 탐욕을 피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가장 피해야 할 것 중 하나가 돈에 대한 탐욕이기 때문입니다.

 

10절,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왜 그토록 무서운 탐욕입니까?

 

첫째, 일만 악의 뿌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죄의 뿌리에 돈이 있습니다. 온갖 부정과 부패, 타락과 살인, 미움, 갈등, 반목, 뇌물, 사치, 방종이 돈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돈 때문에 가정이 깨지고, 돈 때문에 형제자매를, 친구를, 이웃을 미워합니다. 가룟유다가 왜 예수님을 팔았습니까? 발람 선지자가 거짓 예언을 하려고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저주를 받아 죽었습니까? 돈에 대한 욕심 때문입니다.

 

둘째,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 자기 자신을 찌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돈을 가까이할수록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집니다. 돈에 파묻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영혼이 어두워집니다. 끝없는 욕심에 생각과 영혼이 묶여 점점 더한 근심과 고통에 빠져 버리고 결국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탐욕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부자가 되려고 애쓰는 자들에게 이렇게 경고합니다. (9절)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에 대한 탐욕을 피하지 않는 자는 시험과 올무와 해로운 욕심위에 떨어지고결국 파멸과 멸망에 빠지고 맙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돈을 사랑하는 자들의 말로입니다.

 

셋째, 돈은 사랑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돈은 생활의 수단일 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돈을 그 자체로 사랑합니다. 아니 사랑하다 못해 하나님처럼 섬기고 그것에 삶 전체를 맡깁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눅 16: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우리는 누가 우리의 주인인지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까, 돈입니까? 우리가 십일조를 드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물질이 내 인생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심을 선포하는 가장 확실한 신앙고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십시오. 돈 그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닙니다.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돈을 버십시오. 최선을 다해 정당한 방법으로 돈을 버십시오. 그러나 돈을 사랑하지는 마십시오. 그냥 사용하십시오.

 

돈이 여러분 인생의 주인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돈은 여러분의 운명과 영혼을 책임져 주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편리하게 해 줄 수는 있지만 여러분을 행복하게 해 주지는 못합니다. 한번은 테레사 수녀가 미국 순회 집회를 하는 도중에 굉장한 부자를 만났습니다. 그는 테레사 수녀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테레사수녀는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저에게는 예수님만 필요합니다. 주님만 필요합니다. 그분이면 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면 족합니다." 이것이 진짜 하나님께 속한 사람의 고백입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고백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은 돈때문에 만족하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주님때문에 만족하고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소유로 살지 않고 존재로 사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영접했다면, 누가 뭐라 해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간에, 누구를 만나든 간에 여러분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십시오. 썩어질 물질 앞에 영혼을 팔지 마십시오. 돈을 사랑하지 말고 돈에 대한 탐욕을 적극적으로 피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가십시오. 세상 앞에 굴복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2. 따르라고 하였습니다(11절)

신앙생활은 피할 것을 피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피한 다음에는 적극적이면서도 능동적으로 따라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11절,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의와 경건은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타나야 할 신앙의 덕목입니다. '의'는 법정에서 주로 사용되는 용어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주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의로운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의롭게 사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화평을 누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롬 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은 인간이 타락하기 이전, 죄를 범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는 담대히 하나님의 보좌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며,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그 영광의 빛 가운데 살 수 있습니다. 아들이 아빠에게 나아가듯, 어떤 두려움도 없이 언제든지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 관계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자 특권입니다. 또한 의롭게 산다는 것은 죄를 미워하며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내가 미워하고,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것을 나도 좋아하며 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하나님의 사람은 이것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경건'은 헬라어로 '유세베이아'입니다. 유세베이아는 '유'(좋은)와 '세베이아'(두려움)의 합성어로, '좋은 두려움', '바람직한 두려움'이라는 뜻입니다. 결국 경건이란 하나님이 무서워서 떠는 두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을 존경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갖는 거룩한 두려움, 좋은 두려움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경건, 경외입니다.

 

그러나 경건한 생활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딤전 4:7b)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고 권면합니다. 경건에 이르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경건은 훈련입니다. 경건을 훈련하지 않으면 말세의 사람들처럼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이 되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을 보십시오. 그들에게는 경건의 모양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삶의 중심에 경건의 능력은 없었습니다.

 

끊임없이 남을 판단하고 정죄했지만 정작 자신들은 말씀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사실 바리새인들의 삶은 일면 오늘 우리의 모습과 닮아있습니다. 우리는 그래도 열심히 예배 생활에 힘쓰고 시간을 들여 봉사합니다. 믿음의 말을 하면서 주의 일에 열심을 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을 향한 그 엄격함을 스스로에게는 적용하지 않습니다. 훈련은 단시간에 끝나지 않습니다. 경건에 이르기 위해서는 바울의 권면처럼 평생에 걸쳐 끊임없이 연단하고 훈련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따를 것은 믿음과 사랑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 자신을 맡기고 순종하는 것입니다.믿음은 하나님의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사도 바울은 (롬 1:17b)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합니다. 예수님도 누군가를 평가하실 때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평가 기준은 바로 믿음입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은 관계에 있어서의 신실함과 정직함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믿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사람이 하는 말이라면 신뢰할 수 있어"라는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진실하고 정직합니다. '사랑'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으로 사랑을 실천하여 다른 곳으로 흘려보내는 것을 말합니다.

 

로마서 5장 5절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됨이니”라고 말합니다. 우리 안에 성령께서 찾아오실 때 사랑도 같이 부어졌습니다. 하지만 그 사랑이 우리 안에서 흘러넘치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의 욕심이, 나의 이기적인 욕망이 너무나 강력하게 나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충만을 받아서 나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안에 이미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갈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말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어떻게 보여 줄 수 있습니까? 우리가 받은 그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면 됩니다. 그것이 세상이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교회에 나가 주일 예배를 드리는 일로 감동받지 않습니다. 그들로서는 알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통해 그들에게 흘러갈 때, 감동을 받고 하나님을 조금씩 알아가게 됩니다.

 

바울은 또한 인내와 온유를 따르라고 권면합니다. '인내'는 힘든 상황을 참아 내는 것입니다.

'온유'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조차 적대감을 품지 않고 오히려 사랑으로 대하는 마음과 태도를 말합니다. 이렇게 살아낸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늘 나만 손해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 삶이 스스로 용납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모든 것을 이기고 인내와 온유를 따르면, 순간순간은 힘들고 억울할지언정 하나님이 우리 인생 전체를 책임져 주십니다.

 

이삭을 보십시오. 창세기 26장 12절은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라고 말합니다. 블레셋 땅으로 들어온 이삭은 척박한 땅에서 농사를 지어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을 시기하여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을 막아 버립니다. 물을 마시지도 사용하지도 못하게 합니다. 심지어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창 26:16)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이삭은 싸우지 않습니다.

 

다른 곳으로 옮겨 또 다른 우물을 팝니다. 샘의 근원을 만나게 되자, 그랄 목자들이 또 다시 나타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창 26:20)며 빼앗습니다. 얼마나 억울하고 화가 치미는 일입니까? 하지만 이삭은 또 자리를 옮깁니다. 그리고 다시 다른 우물을 팝니다. 바보 같습니까? 답답합니까? 그러나 이것이 온유를 따르는 삶입니다. 이삭은 왜 이렇게 살았습니까?

 

하나님이 책임져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그들이 이삭을 향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창 26:28a).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창26:29b).이삭을 괴롭히던 자들은 마침내 하나님이 이삭과 함께 계심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인내하고 온유한 자가 누리는 복입니다.

 

3.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하였습니다(12절).

믿음의 선한 싸움이 무엇입니까? 믿음의 선한 싸움이란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 것입니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싸움은 싸움이되 선한 싸움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사람 디모데에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라고 권면합니다.

 

로마서에서도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말합니다.(롬 12:20-21)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진정한 선은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악을 이기는 것은,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살아 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삭이 그랬습니다. 자신의 우물을 빼앗고 끊임없이 괴롭혔던 블레셋 사람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창26:30-31) “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매 그들이 먹고 마시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서로 맹세한 후에 이삭이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평안히 갔더라”

 

사실 원수에 대해 복수심을 거두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그 원수를 적극적으로 사랑하여 선의를 베푼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누가 그 일을 하고 싶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이것을 싸움이라고 말합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은 싸움입니다.

 

나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내 안에 있는 정욕과의 싸움이고, 복수하고 싶은 본능과의 싸움입니다. 보이지 않는 미움의 영과의 싸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싸움을 하는 자에게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성경이 이 싸움을 '믿음의 선한 싸움'이라고 한 이유가 이것입니다. 선한 싸움을 하는자에게는 반드시 두 가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를 끊을 수 없다는 믿음입니다.

 

(롬8:35-39)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둘째는 내가 원수를 사랑하면 하나님이 친히 갚아 주시리라는 믿음입니다. (롬 12:19) “‥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이 믿음이야말로, 고통스러울 정도로 치열한 영적 싸움에서 우리를 승리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힘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누구도 함께하지 않는 외로운 전쟁터에서 홀로 분투하는 것 같을 때, 이 말씀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거짓말처럼 다시 일어서게 될 것입니다. 어차피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싸움입니다.

 

세상은 이 싸움을 이해할 수도 없고, 우리에게 힘을 줄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를 다시 일으킬 수 있는 것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 나의 모든 것을 갚아 주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에 대한 믿음뿐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이 믿음의 선한 싸움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도 주님을 만난 이후 선한 싸움을 싸우며 달려갈 길에 매진했습니다.

 

그리고 죽음이 임박한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딤후 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답게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하십시오.

 

4. 영생을 취하라고 하였습니다(12절).

“영생을 취하라”(12절a). '영생'은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얻게 된 영원한 생명을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생을 영원히 죽지 않고 사는 시간의 개념으로만 이해합니다. 장차 우리가 죽어서 천국에서 누리게 될 것으로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생은 영원히 사는 것만이 아니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된 생명을 말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영생을 취하라"고 말합니다. '취하라'는 말은 '자신의 소유를 만들기 위해 꼭 붙잡다'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영생을 취하라"는 말은 '하나님이 주신 영생을 빼앗기지 말고 누리며 살라'는 것입니다. 영생을 확실하게 붙잡고 있는 자가 영생을 누리며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이미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요5:24a)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영생을 소유한 것으로만 만족하지 마십시오. 그 영생을 최대한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 영생을 누리며 사는 것이 무엇일까요?

 

지금 이 땅에서 새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부모님이 물려준 옛 사람의 생명이 있고, 예수님이 내게 주신 새 생명이 있습니다. 새 생명은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된 생명을 말합니다. 이제 예수님의 생명, 즉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된 그 새 생명으로 살아야 합니다. 영생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죽음을 이긴 부활의 생명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너, 하나님의 사람아!" 하나님은 오늘 여러분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세상 속에서 우리를 구분하여 '나의 사람'이라고 부르십니다. 이것들을 피하라고 하였습니다. 죄악을 이겨내는 최고의 방법은 피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라고 하였습니다. 선한싸움을 싸우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싸우는 싸움은 세상의 것과 다릅니다. 세상의 싸움은 상대방을 무릎꿇게 만들지만, 선한 싸움은 상대방을 감동시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마음대로 싸우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싸우고,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를 얻어냅니다. 여러분이 상대해야 할 문제는 무엇입니까? 오랫동안 부둥켜 끌어안고 있는 문제들, 도무지 어찌할 수 없는 환경들, 어떻게 해도 풀리지 않는 관계들, 은밀하게 나를 괴롭히는 내 안의 죄성들‥‥부담스러우십니까? 두려우십니까? 피하고 싶으십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피하지 말고 싸우라"는 그 명령 앞에 또 한마디를 붙이십니다. 어쩌면 더 중요한 이 한마디, '너, 하나님의 사람아"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온 삶으로 부여잡고,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리한 전쟁을 두려워하며 주저하지 말고 담대히 싸워 승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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