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속을 달리는 엘리야(왕상 18:41-46)
지난 주에 우리는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바알선지자 450, 아세라선지자 400 그러니까 850대 1의 결전에서 승리한 사건을 통해서 기도의 회복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그런데 오늘 본문말씀은 계속해서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기도함으로 막혔던 하늘 문을 열어 소낙비가 쏟아지는 놀라운 역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구약 성경에 가장 위대한 선지자로 불리운 것은 바로 엘리야의 기도 때문입니다.
먼저 엘리야는 갈멜산에 올라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와의 대결을 하였습니다. 아합 왕을 추종한 거짓 선지자들이 어떻게 기도했습니까? 송아지를 잡아 그들의 신에게 제물로 드리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꼭 같은 내용으로 "바알이여 응답하소서, 바알이여 응답하소서" 큰소리로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신은 아무런 대꾸도 못했습니다.
너무도 답답하니까 칼과 창을 들어 자기 몸을 자해하면서 “바알이여, 바알이여”라고 부르짖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엘리야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무너진 제단을 수축하였습니다. 그리고 온전한 제물을 하나님앞에 드렸습니다. 마지막으로 확신을 가지고 믿음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목숨을 건 기도를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38절입니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하나님의 불이 번제물을 태웠습니다. 나무, 돌, 흙, 도랑의 물을 마치 짐승의 혀로 핥아내듯이 깨끗하게 핥아버렸습니다. 엘리야의 하나님은 오늘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850:1의 갈멜산 결전이 끝났습니다. 엘리야가 믿는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심을 온 백성들에게 선포했습니다.
그의 승리는 하나님의 승리요, 교회의 승리요, 우리 모두의 승리인 것을 깨달을 때 감사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제 본문 42절을 보십시다. 42절 "아합이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아합 왕은 자기 눈으로 하나님의 불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섬기고 있는 바알 신이나 아세라 신이 거짓우상인 것을 목도했고 살아계신 하나님은 엘리야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아합왕은 이제 옷을 찢고 무릎을 꿇고 참회하면서 살아계신 하나님께 찬양을 돌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아합 왕이 어떻게 했습니까? “먹고 마시러 올라가니라” 무슨 뜻입니까? 아직도 회개할 줄을 몰랐다는 뜻입니다.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아니하는 가뭄 속에서 한 번도 아합 왕은 자기 백성을 위해서 염려하지를 아니했다는 말입니다.
"내가 먹고 마시면 그것으로 족하지 가물어서 백성이 곤욕을 치르는 것 나와 무슨 상관이라는 말이냐?" 아합의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증거가 불충분해서 아합이 하나님을 못 믿은 것 아닙니다. 믿을만한 증거가 있어도 믿음의 눈을 크게 뜨지 못한지라 아합은 회개하지를 못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아합같은 인생은 "회개하라. 회개하라" 백번을 외쳐도 우이독경(牛耳讀經)입니다. 소의 귀에 경읽기라는 말입니다.
흐르지 않는 물은 썩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아합 왕의 마음 가운데 물이 고여 있습니다. 새해를 맞이했어도 물이 고여있는 것 같은 기경되지 못한 굳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머리끝부터서 발바닥까지 상한 흔적뿐일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어떻게 했습니까? 42절 하반절,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라고 했습니다.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엘리야는 850:1의 격전에서 승리한 것을 생각하면서 감격할 수 있었고 그 일에 도취할 수 있었고 승리를 기념하는 향연을 베풀 수도 모든 일 이제는 쉬어서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곧장 기도하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이만큼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기도는 영혼의 호릅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역사의 통로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쉬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영적전쟁은 우리의 현실입니다.
(히 10:38-39)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영적전쟁하는 사람은 결코 뒤로 물러갈 수 가 없습니다. 이제 가장 큰 과제가 남았습니다. 그것은 하늘 문을 여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주에도 말씀을 드린 것처럼 북이스라엘이 바알 아세라 우상을 섬기는 바람에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하늘문이 닫혀 3년 6개월동안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현실은 지옥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떠난 것입니다. 비는 농경사회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상징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이어서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이 땅에 단비를 내리는 것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엘리야는 기도의 사람입니다. (약 5:17)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우리와 아무 것도 다른 것이 없었던 사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와는 분명 달랐던 사람', 하늘 문을 열고 닫았던 그 사람 엘리야는 우리와 무엇이 달랐습니까? 엘리야는 어떻게 그토록 멋진 신앙의 삶을 살 수 있었습니까? 성경은 엘리야를 말할 때에 그의 갈멜산에서의 그 영광스런 승리를 말하지 않고 엎드리어 기도한 것을 기억시킵니다. 엘리야는 기도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엘리야의 승리의 비결은 곧 기도에 있었습니다.
엘리야의 그 위대하고 강력한 능력이 바로 기도때문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분주한 세상살이에서 기도가 메말라 가는 우리들에게 생수같은 기도의 메시지를 던져 줍니다. 기도가 능력임을 가르쳐 줍니다. 기도가 문제 해결의 열쇠임을 가르쳐 줍니다.
그럼 어떻게 기도합니까? 엘리야의 기도는 어떤 기도였습니까?
1. 엘리야는 겸손하게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의 특징을 소개한다면 '겸손'이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겸손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태도입니다.
42절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라고 했습니다. 엘리야는 기도할 때 창조주 즉 내 인생을 지으신 하나님 앞에서 엎드렸습니다. 이 모습을 연상해 보십시오. 그야말로 땅바닥에 납작 엎드린 형상입니다. 매우 겸손한 모습입니다.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태도는 바로 이 겸손함입니다.
하나님은 겸비한 기도를 들으십니다. (대하 7:14)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계시록 4장 5장을 보면 보좌를 옹위하고 선 모든 그룹들이 또 24장로들, 천천만만의 천사들이 하나님의 어린 양 앞에서 엎드려 경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기들의 면류관을 벗어 보좌에 던졌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하나님의 그 엄위하신 영광 앞에서 자신이 너무도 보잘 것 없는 존재인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천사들이 겸손했다고 할진대 우리 인생들이야 두말할 것 없습니다. 겸손, 겸손 백 번을 겸손하면서 주님 앞에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엘리야가 그랬습니다. 무릎을 꿇고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하나님"하고 겸손한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간절한 기도를 했습니다. 엘리야가 이러한 이적을 만들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우리와 다른 어떤 재능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엘리야는 우리처럼 실수할 수도 있고 연약할 수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능력의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겸손한 자세로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었던 바로 이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엘리야처럼 땅에 엎드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이러한 기도를 드려보셨습니까?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안다면 우리는 당연히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취하신 예수님처럼 나를 십자가앞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제가 소개하고자 하는 기도문은 멜콤 L. 플레이브트라고 하는 분이 엮은 성 플란시스의 기도문 가운데서 어느 주일의 기도입니다.
『교회가기 전의 기도』 "오 하나님 겸손한 마음을 내게 주옵소서. 나눠지지 아니하는 마음으로 경배하게 하시고 순전한 마음으로 주님이 받으실만한 예배를 드리게 하옵소서. 아멘." 『교회를 위한 기도』 "주 예수 그리스도여 주님의 거룩한 교회를 깨끗케 하시고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 없도록 헌신과 용기의 처음 불꽃을 다시 사르게하소서. 그리고 주님의 평화의 선물로 모든 분열을 치유하여 주옵소서. 아멘“
『교회 사역자들을 위한 기도』 "주여 주님을 위해 일하는 모든 이들을 복되게 하시되 특히 교회를 위해 일하는 이들을 축복하옵소서. 그들이 사랑으로 일치하게 하시고 시기와 질투로 그들의 수고가 망쳐지지 않게 하옵소서"
『죄를 깨닫게 될 때의 기도』 "자비하신 하나님이시여 제가 주님을 실망시켜 드렸음을 아옵나니 제가 정녕 그릇 행하였음을 깨닫나이다. 오! 아버지 하나님, 나를 용서하여주세요. 새로운 소망과 믿음으로 다시 출발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주옵소서. 아멘.“
『예배 끝난 후의 기도』 "주여 저의 예배를 받으시기를 구하옵나니 저의 허물을 모두 용서하시고 주님의 축복으로 모든 것을 하게 하옵소서. 아멘."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주일을 맞이할 때마다 기도로 시작하고 마치는 주일 그리고 내 인생이 겸손해지는 주일이 될 수 있도록 힘을 써야 할 것입니다.
2. 엘리야는 끈질기게 기도했습니다.
43절,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우리 모두는 열심히 기도합니다. 그러나 너무 조급하게 기도응답을 기대합니다. 그래서 빨리 기도가 응답되지 아니할 때 "기도해 보았자 무슨 소용이 있어 에라 그만두자" 이렇게 낙심할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러한 우리라면 엘리야에게서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엘리야가 어떻게 했습니까?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한 후에 사환에게 무슨 변화가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사환의 말이 무엇입니까? "아무 것도 없나이다" 그런데 엘리야는 포기하지 아니했습니다. 끈질지게 계속해서 응답이 있을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엘리야의 기도의 싸인도 처음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몇 번까지 다시 가라 했습니까? 7번입니다.“다시말하면 응답의싸인이 올 때까지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끈질기게 기도했을 때에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하늘에 떠올랐습니다. 손바닥만한 작은 구름이 어떻게 소낙비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모든 큰 것은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습니까? 한 사람으로 시작해서 큰 대중을 이룹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산을 옮길만한 능력이었음을 믿어야합니다.
엘리야는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을 주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그 시기는 하나님이 정하신다. 나는 기도할 뿐이다.” 이러한 심정으로 끈질지게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사환을 향해서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고 분부했습니다. 참으로 끈질긴 기도가 아닙니까? 야곱도 이러한 기도를 했습니다. 얍복강에서 주의 천사와 더불어 씨름하는 기도를 할 때 "당신이 나를 축복하기 전까지는 내가 당신을 놓을 수 없나이다“
예수님께서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눅18장 1절이하를 보면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리고 나서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눅 18:6-8 “주께서 또 이르시되 불의한 재판장이 말한 것을 들으라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끈질기게 기도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인내가 믿음입니다. 기도는 응답이 있을 때까지 해야 합니다. 야곱이 그랬습니다. 엘리야가 이렇게 교훈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끈질진 기도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이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엘리야는 믿음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약속한바 있습니다. 열왕기상 18:1을 보면 “많은 날이 지나고 제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3년 6개월이 지나고 어느날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부르셔서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는 이 말씀을 믿고 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선지자 850대1로 싸울 때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한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주에 살펴 본 것처럼 엘리야의 기도는 3가지 였습니다. 왕상 18:36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호칭속에서도 엘리야는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 말씀의 하나님이심을 믿었습니다. 뿐 만 아니라 1)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2)내가 주의 종인 것과 3)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그렇습니다. 그는 지금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종으로써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신뢰하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하였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기도를 끝내고 그의 사환이 게하시에게 지시합니다.
43절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이는 그가 기도한 후 기도의 응답을 기대하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으므로 이 기도는 반드시 응답이 될 것이라고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 믿음으로 기도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약 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믿음으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환의 보고가 무엇입니까? "아무 것도 없나이다" 그러나 엘리야는 낙망하지 아니했습니다. 다시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지시했습니다.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응답을 기도하는 간절한 엘리야의 모습입니다. 시130:5-6, "나 곧 내 영혼이 여호와를 기다리며 내가 그 말씀을 바라는도다 파숫군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숫군의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군에 입대해서 보초를 밤새껏 서 본 성도는 체험했을 것입니다.
아침이 될 무렵에 교대하기를 얼마나 기다려지던가요. 엘리야는 마치 이러한 심정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며 기도하고 기도했습니다. 드디어 일곱 번째에 이르러서는 사환이 보고했습니다.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그때 엘리야는 사환에게 무엇을 하라고 지시합니까? "올라가 아합 왕이여 큰비가 내릴 것이니 마차를 타고 가소서" 얼마나 확신있는 선포입니까? 이렇게 전하라고 했습니다.
엘리야는 손바닥만한 구름 한 조각이지만 큰비에 대한 징조임을 깨달았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가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믿음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많습니다. 45절을 보십시오.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응답하실 때에 보다 풍성하게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가뭄과 같은 이 시대에 저와 여러분의 기도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삼년 6개월 만에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은혜의 소낙비입니다. 엘리야는 여기서 매우 특이한 능력을 보입니다. 아합은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향하고 있습니다. 갈멜 산에서 이스르엘까지는 대략 20km입니다. 이 거리를 엘리야가 앞서서 달립니다.
(46절)“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엘리야는 이 순간 슈퍼맨이 되어 있습니다. 빗속을 마차보다도 더 빨리 달리고 있는 엘리야를 상상해 보십시오. 저는 이 장면이 기뻐 뛰노는 엘리야의 마음을 무엇보다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갈멜산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 그토록 기다리던 비가 억수같이 오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너무 신났을 것입니다.
아합의 마차앞에서 달려가면서 엘리야는 모든 백성들에게 “우리 하나님이 참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 하늘문을 여시고 소낙비를 부어주셨습니다. 엘리야는 빗속을 달리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선포하는 것이었습니다. 요 14:2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하나님께서 부도내는 말씀을 주신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습니까? 특별히 오늘은 민족의 명절인 설날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모든 가족들, 믿지않는 가족들이 있다면, 정말 그들을 사랑한다면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의 기도를 통해서 막혔던 하늘문을 여신 것처럼 오늘 저와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늘문을 여셔셔 하나님이 진정으로 이 모든 역사의 주권자이신 것을 증거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온통 우상숭배자들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 엘리야, 850명대 1, 너무나 초라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외적인 모습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엘리야.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는 엘리야, 하나님의 종되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믿고 순종하는 기도하는 엘리야와 같은 사람 한 사람만 있으면 이 시대에도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엘리야의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처음 기도에는 비 한 방울 내릴 기미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일곱 번이나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손바닥만한 구름 조각이 떠올랐습니다. 그 구름이 점점 하늘을 덮더니 마침내 3년 6개월의 가뭄을 깨고 소낙비가 되어 장대처럼 쏟아지지 않았습니까? 왜 엘리야에게 이처럼 일곱 번까지 기다리도록 하셨습니까?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그래서 믿음을 키우고 인내를 키우고 그리고는 더 큰 기도가 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역경속에서도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끈질진 기도를 통해서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지는 것을 증거하고 우리가 하나님이 종된 것, 그래서 그 말씀대로 순종함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줌으로 하나님이 이 모든 역사의 주권자이심을 증거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