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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문의 메시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마 3:1-12)

작성자야베스|작성시간24.12.01|조회수456 목록 댓글 0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3:1-12)

 

저는 지난 주에 예수님이 처음으로 외쳤던 복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제목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처음 예수믿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말씀만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를 믿든 믿지 않든 꼭 듣고 실천해야 할 복음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을 듣고 어떤 결단을 했습니까? 그저 늘 듣던 말씀입니까? 여러분의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회개가 신앙회복의 근본열쇠라고 하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도 회개라고 말씀하시는데 여러분은 회개를 어떻게 하셨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주의 이름으로 많은 일을 행했다 할지라도 그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면 불법을 행하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불법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는 죄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 첫번째 메시지가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없이는 믿음도 실제가 아닙니다. 회개없이는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변함없이 죄를 등에 짊어지고 살면서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내가 주의 이름으로 교회 안에서 많은 일을 하는데 천국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품고 있다는 것입니다. 회개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회개하려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자백해야 합니다. 회개하려면 삶의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다시말하면 주권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자기가 주인되어 살아왔다면 이제 예수님을 내 마음의 중심에 모셔들이고 그분을 주님으로 인정하시면 삶의 변화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무엇을 하든지 주님께 물어야 합니다. “주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습관이 될 정도로 훈련해야 합니다. 이렇게 회개한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드디어 때가 되어서 세례 요한이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그의 주된 사역은 회개의 세례를 베풀면서 참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것이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3:1절의 그 때에라는 단어는 어떤 단순한 시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구원의 때를 의미합니다. 구약의 예언대로 인류 구원을 위해 오신 예수님이 드디어 메시야로서의 공적 사역을 시작하실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때가 되자 예수님에 앞서서 세례 요한이 활동을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왕이 행차하기 전에 수행원들이 먼저 가서 미리 준비하여 왕의 행차에 그 어떤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원한 왕이신 예수님이 드디어 메시야로서의 삶과 사역을 시작하시기에 앞서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와 같은 세례 요한을 보내셔서 길을 평탄케 하셨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메시지는 예수님의 메시지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는 메시지였습니다. 회개를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세례 요한은 이사야 선지자에 의해 예언되었던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 보냄받은 선지자였습니다. 본문 3절에서 그 점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3)“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이 예언의 말씀대로, 세례 요한은 실제적으로 광야에 살면서 사람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베풀면서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였습니다. 세례요한은 광야에서의 생활하면서 옷은 낙타 털옷을 입고 가죽 띠를 띠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메뚜기와 석청(들꿀)을 먹었다고 하였습니다. 그야말로 속세를 떠나 광야에서 살면서 하나님과 깊은 만남을 가진 선지자였습니다. 광야는 그야말로 사막과 같은 곳입니다. 사람도 그늘도 먹을 것도 없는 빈들입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광야는 바로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였습니다. 우리도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광야는 어렵고 힘든 여정이지만 거기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하나님앞에 엎드리게 됩니다. 세례 요한의 메시지와 사역은 너무나 분명했고 강렬했습니다. 회개하라는 말씀을 전했고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회개는 헬라어로 메타노이아인데 방향 전환, 방향을 고친다란 의미가 있습니다. 온전한 회개는 세 단계로 이루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죄를 깨닫고, 둘째는 입술로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 셋째는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회개는 마음으로 뉘우치고, 입술로 고백하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회개는 반드시 행동의 변화까지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회개하라고만 말씀하지 않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삭개오가 회개의 열매가 무엇인지 가장 잘 보여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에게 세례를 받기 위해 이스라엘 전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아왔는데, 3:7절에 보니, 특별히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은 세례를 받으러 나왔으면서도 요한에게 책망의 말씀을 들어야 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진심으로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회개의 열매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종교적 열심이 대단했던 사람들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율법 뿐 아니라 조상들이 만든 유전까지 철저하게 지키려고 힘썼던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교만과 자만에 빠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의 근본정신은 외면하고 형식만 붙잡은 율법주의자가 된 것입니다. 사두개인은 예수님 당시 제사장 그룹이 포함된 굉장히 정치적이고 실용적인 종교인들이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천사도 믿지 않고 부활도 믿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마음 속에 교만이 들어 있어서 하나님 앞에서 회개할 줄 몰랐습니다. 입술로는 회개한다고 하면서도 회개의 열매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삶의 변화가 전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그들에게 독설을 퍼부으면서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7-10절을 함께 다시한번 읽어봅니다.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요한의 메시지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아주 명확합니다. 과일나무가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기대하는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그러므로 반드시 좋은 열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런데 저들은 혈통적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모태 신앙이다, 성경을 지식적으로 많이 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외적인 것들만 자랑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자신이 베푸는 세례는 회개케 하기 위한 물세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베푸실 세례는 성령과 불로 베푸는 세례라고 했습니다. 11절입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오늘 우리교회도 세례식을 거행하는 데 우리가 받는 세례는 형식적으로 요한의 물세례와 같지만 내용면으로는 예수님의 성령 세례와 같습니다. 1차적인 세례의 의미는 죄를 씻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물로 더러운 것을 씻어내듯이 우리가 회개를 통해 죄를 씻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세례의 의미에 대해 단순히 죄를 씻는 것으로 보지 않고, 죄에 대해서는 죽고, 의에 대해서는 사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로마서 6:3-4절 말씀입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은 세례란 그리스도와 함께 내 죄의 몸이 죽었음의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죽고 있는 중이다또는 앞으로 죽을 것이다라는 것이 아니라 세례를 받은 사람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라는 것입니다. 시제가 현재완료입니다. 옛 사람이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을 입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독교 교리에서 이 세례의 의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라는 의미는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 생활의 핵심입니다.

 

이 의미를 깨닫지 못하면 결코 변화된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죄와 싸워서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자주 들었고 자주 하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을 것입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는 내가 죽어야 돼”, 교회를 위해서는 내 자아가 죽어야 돼라고 합니다. “죽지 않아서 문제야!”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말들을 잘 생각해보면, 어폐가 있습니다. 이미 죽었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아직 죽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사도 바울은 선포합니다.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이미 죽었다라는 것입니다. ‘죽을 것이라는 것이 아니라 죽었다라는 것입니다. 죽어야 한다라고 말하지도 않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라고 말합니다. 죽었다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심각한 문제가 무엇입니까?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다고 하면서 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죽는다고 말은 하면서 아주 죽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거의 죽는 것 같은데 아주 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합하여 이미 죽은 것입니다. 우리가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라고 믿는 것이 삶의 변화의 핵심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6:11말씀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가 예수믿고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다고 죄성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전히 욕심이 있고, 때로는 음란하고, 때로 혈기를 부리지만,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로 여겨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죄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죄의 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긴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경험 때문에 좌절할 때가 많습니다. “아직 옛 본성이 남아 있는데 왜 죽었다고 여기는가?”

 

그래서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아직 살아 있는 것 같지만 죽었다고 여겨야 하며 믿고 선포해야 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해서는 죽고, 하나님께 대해서는 산 자로 여기는 좋은 방법은 자주자주 그 믿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죽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는 성경 구절 갈라디아서 2:20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자신의 죽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이것은 사도 바울의 믿음의 고백입니다. 자신의 그리스도 안에서의 죽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고백해야 할 것은 나는 죽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습니다. 이제 내 안에는 그리스도께서 사십니다.”라는 고백인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세례를 받고 새 사람이 된다는 것은 옛 사람이 죽고 이제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인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우리는 세례 요한의 책망을 들었던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처럼 형식적인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은 하는데 변화된 삶을 살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회개를 하긴 하였지만 회개의 열매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나무에 비유하시길 좋아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주로 포도나무나 무화과 나무에 비유하곤 하셨습니다. 포도나무는 열매를 맺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포도나무는 열매가 없다면 아무 쓸 데가 없는 나무입니다. 집을 짓는데 쓸 수도 없고 재목으로 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열매없는 포도나무는 다만 밖에 버려지거나 아궁이의 땔감으로 밖에 쓸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영적인 이스라엘로서 포도나무나 무화과나무에 비유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좋은 열매를 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좋은 열매를 많이 맺을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이 맺기를 원하시는 대표적인 열매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저는 오늘 회개에 합당한 열매로서 그리스도인들이 맺어야 할 열매로 세 가지 제시하고 싶습니다.

 

1, 성령의 열매입니다.

(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죄사함을 받으면 그 증거로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변화되는 것은 전적인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깨닫게 하시고 변화시키시고 능력을 부어 주셔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거룩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성령님이 우리가운데 역사하실 때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게 되고 우리 자신의 죄악을 깨닫게 되고 진정으로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회개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큰 은혜는 죄사함입니다. 여러분, 죄사함을 받으면 성령을 선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때 성령의 열매가 맺히는 것입니다.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회개에 합당한 열매 첫번 째는 바로 성령의 열매인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모셔들이면 우리 심령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가 여러분의 심령속에 맺어져서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사랑의 열매입니다.

사랑은 성령의 열매 중에 첫번째 열매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대표적인 성품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독생자를 이땅에 보내주시고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십자가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증표입니다. 조건없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 사랑을 우리가운데 넘치도록 부어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 사랑이 없는 상태를 우리가 상상해보면 바로 사랑의 중요성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가정에 집도 있고, 자녀도 있고, 건강도 있는데, 부부 간에 사랑이 없다면, 부모와 자녀 간에 사랑이 없다면 어떻겠습니까? 교회에 건물도 있고, 교인도 많고, 조직도 잘 되어 있는데, 성도 간에 사랑이 없다면 어떻겠습니까? 사회가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도 발달했는데, 인정도 없고 사랑이 없어서 가난한 자들이 천시받고, 살인과 폭력, 음행이 난무한다면 어떻습니까? 누가 그런 사회에 살고 싶겠습니까?

 

그래서 사도바울이 사랑장인 고린도전서 13장에서 강조한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요일 4:8)“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은 사랑에 뿌리를 박고 무엇을 하든지 사랑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그 어떤 것도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신 것같이 우리도 풍성한 사랑의 열매를 맺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가정도, 교회도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서로 사랑하며 섬기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 전도의 열매입니다.

사도 바울은 전도의 열매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하였습니다. 1:13,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바울은 로마에 가려고 한 것은 관광을 원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선교의 열매를 위해 가길 원했습니다.

 

1:6,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얼마나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열매를 원하십니까? 주님이 재림을 늦추시는 유일한 이유가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회개에 이르기 위함입니다.(벧후3:9) 역사의 종말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전쟁과 지진과 같은 것이 아니라 선교입니다.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24:14)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천국을 예비하시고 회개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회개하면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게 됩니다. 성령을 선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다시말하면 하나님 자신이 선물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회개는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앞에 슬퍼하며 죄악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은 것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과 하나됨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근본적인 우리의 태도가 바로 회개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무엇입니까? 회개했다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가 성령의 열매입니다.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둘째는 사랑의 열매입니다. 그리스도의 증거는 사랑입니다. 사랑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입니다. 행동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내려놓고 이웃을 위해 자기를 희생할 줄 아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전도의 열매입니다. 내가 구원받았다면 구원의 복음이 나에게서 머물러 있어서는 안됩니다. 나로 인하여 내 사랑하는 가족들, 이웃들에게 이 복음을 전파하여 그들도 구원받고 천국백성이 되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기대하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풍성히 맺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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