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아 들으라(신 6:4-9)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했습니다. 매년 5월은 가정을 생각해 보는 달입니다. 오늘이 5월 첫 주일 이니까 어린이주일입니다. 어린이 주일이 되면 두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는 자녀양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고 또 하나는 부모의 역할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현대는 자녀교육이 참 힘든 시대입니다. 그러니까 부모역할이 아주 복잡한 시대입니다.
예전에 우리 부모들과는 비교가 알될 정도로 자녀교육이 힘들고 어려운 것같습니다. 아이들이 많지 않으니까 한 아이 한 아이에게 집중할 수 밖에 없습니다. 부모가 둘 다 직장생활하다 보니까 아이들 양육이 보통이 아닙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이를 돌보아야 되고 두세 살만 되도 어린이집에 보내고 조금만 더 크면 학원에 보낸다고 야단입니다. 물론 잘 키우려는 마음 때문이겠지만 과연 무엇이 잘하는 것인지 모를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자녀를 어떻게 양육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세상에는 자녀교육에 대한 좋은 방법론들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유명한 교육학자들이 만들어낸 교육 방법론도 많이 있습니다. 이론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오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자녀들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를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시작이 오늘 말씀의 제목과 같이 “이스라엘아, 들으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들으라’는 말이 바로 히브리어로 ‘쉐마’라는 말입니다. 이 쉐마가 바로 유대인들이 자녀교육의 헌장처럼 여기는 말씀입니다. 또 ‘쉐마’는 율법의 대강령입니다. 다시말하면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에 순종해야 함을 시사해 주는 말입니다. 그 말씀이 바로 오늘 우리가 살펴볼 말씀입니다.
신 6:4-9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유대인들의 가정에는 집집마다 “쉐마”라는 상자를 보관합니다. 이 상자는 가죽으로 만든 상자인데 그 상자속에 양의 가죽으로 만든 두루마리에 이 쉐마를 기록해서 보관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두루마리를 아침저녁으로 꺼내 읽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유대인들이 광야생활을 끝내고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모세가 백성들을 소집해 놓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전해준 말씀입니다. 앞으로 가나안에 들어가거든 영원히 자녀들을 가르쳐야 할 말씀으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그때 하나의 전통으로 이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때부터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쉐마라고 부르며 자손들을 가르쳤습니다. 그 내용은 세 가지입니다.
1. 하나님을 사랑하라(5절)
5절을 보면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성경의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신약에서도 마태복음 22장 35절이하에 보면 “그 중의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묻되 (36)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의 답변이 이것입니다.
마 22:37-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도 구약율법에서 가장 중요한 첫째되는 계명은 하나님 사랑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도 그와 같다고 말씀하시면서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 역시 율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경구절이 신명기 6장 5절부터의 말씀입니다. 이 구절을 이마에도 써 붙이고 손목에도 매고 미간에도 써 붙이고 집 문설주에도 써 붙입니다. 또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들에게 가르치되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항상 가르치라고 하는데, 바로 그 말씀의 핵심이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고, 영과 혼과 몸의 힘을 다해서 사랑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이도 있습니다. 저는 한마디로 온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이 참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산신령이다, 칠성신이다, 조상신이다 하며 섬기고 제사하는 것을 보면 온 정성을 다 기울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추운 겨울에도 얼음물에 목욕 재계하고 새 옷 갈아입고 제일 좋은 쌀과 음식으로 상 차려 놓고 손이 닳도록 밤새도록 비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로 값없이 구원받고 영생을 얻고 천국의 후사가 되었으면서도 정성없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하늘 가는 길은 정성의 길을 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매일매일 우리의 정성을 달아보시는 분입니다.
우리 옛말에도 “至性이면 感天”이란 말이 있듯이 정성이 지극하면 하나님도 감동하신다는 뜻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지극한 정성으로 하나님을 섬기다가 하나밖에 없는 가장 사랑하는 독자까지 드림으로 하나님이 크게 칭찬하시고 영육간에 큰 복을 받고 온 인류의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또 하나님을 모든 생활에서 최우선 순위에 두고 가장 존귀히 여기는 것이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첫 번째는 온전한 예배생활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 나의 마음과 나의 뜻과 나의 정성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시간입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을 다해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찬송도, 기도도, 말씀을 듣는 것도 다 하나님과의 만남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들을 소개하는 히브리서 11장에서 가장 먼저 소개한 믿음의 조상이 바로 아벨입니다. (히 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아벨이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고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해 증언하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것보다 먼저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해야 합니다. (마 6:33)“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라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일에 하나님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사무엘상 2장 29절에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지게 하느냐”라고 하시면서 제사장 엘리와 그 가정을 버리시고 제사장의 대가 끊어지게 했습니다.
그리고 삼상 2:30절에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가식과 형식으로 예배드려서는 안 됩니다. 찬송도 정성으로, 기도도 정성으로, 헌금도 정성으로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만사형통의 비결이며 최고의 복 받는 비결입니다.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삶의 우선순위에 두어야 합니다. 예배생활에 실패하면 신앙생활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실패하는 것은 여러분의 인생에 가장 소중한 하나님을 등지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예배생활을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예배생활에 성공하면 신앙생활에 성공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성공하는 것은 여러분의 인생을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다음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요일 5: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 계명을 지키려면 먼저 그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믿음은 말씀을 듣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한 주간동안 여러분은 얼마나 말씀을 듣고 있습니까?
날마다 성경을 펴서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면 여러분이 우리 교회가 함께 하는 생명의 샘가를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말씀을 묵상하다 보면 저의 권면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또 이 말씀은 부모가 세상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이 무엇인가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부모가 가장 먼저 할 일은 하나님을 진짜 사랑하는 좋은 신앙인이 되는 일입니다. 이것이 최고의 교육입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본 그대로 믿고 행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부모만한 교사가 없습니다. 그래서 링컨은 “하나님을 진실히 믿는 부모를 가졌다면 그는 부자다”라고 했습니다.
부모가 가장 좋은 교사라는 말입니다. 뉴욕 항구에 자유의 여인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 상은 프랑스 조각가 바르톨디(Bartholdi)가 조각한 것입니다. 바르톨디는 그 상을 조각할 때 여인상의 얼굴을 자유, 사랑, 평화를 나타내는 여성상으로 조각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런 모습을 나타낼 만한 여성모델을 찾아 한 동안 헤맸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런 얼굴을 찾지 못하게 되자 결국 자기 어머니의 얼굴을 새겨 넣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어머니의 모습에서 그는 진정한 자유와 사랑과 평화를 품은 여성상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소중한 교사입니까? 그리고 얼마나 좋은 교훈입니까? 그래서 링컨은 후에 어머니를 그리며 그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기도소리가 오막살이 통나무 집 구석구석에 깔려있는 것 같았다, 집안뿐 아니고 들에서 일할 때, 내가 성장한 후 가게에 나가 일할 때에도 어머니의 기도소리는 언제나 내 주변에서 사라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신앙적으로 굳게 세워진 자녀들은 많은 유산이 없어도 후에 잘 살아갑니다. 훌륭한 집을 물려주지 않아도 잘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물려주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좋은 신앙입니다. 그러면 그 정신의 유산이 자녀들의 앞날에 크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 부모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그 말씀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말씀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교육은 방법이 전부가 아닙니다. 부모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만 보아도 그 부모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 자라기만 해도 자녀들은 후에 그대로 따라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것이 가장 좋은 신앙교육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가 먼저 좋은 신앙의 부모가 되라”고 강조하십니다.
2. 이 말씀을 가르쳐라(6-7절)
쉐마의 두 번째 명령은 이 말씀을 자녀에게 가르치는 일입니다. 6-7절을 보면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고 했습니다. 세상에는 부모만한 교사가 없습니다. 부모는 가장 좋은 성경 교사입니다. 유니게는 자라나는 디모데에게 본문에 나와 있는 신명기의 토라를 숙지시켰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죠지 워싱턴은 “나의 최고의 교사는 어머니였으며 나의 아버지는 가장 존경스러운 하나님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슈바이처는 “나는 아버지 손을 잡고 주일날 예배에 참석하는 동안 경건이라는 것을 배웠다”고 했습니다. 후에 슈바이처는 자신이 아프리카에 가게 된 동기도 그 경건의 힘때문이었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러면 이 부모가 이 신앙을 가르치는 일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감리교를 세운 존 웨슬레의 어머니 수산나 웨슬레의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탄광촌에서 목회하는 가난한 목회자의 아내였습니다. 수산나는 19세에 결혼하여 21년 동안 모두 19명의 자녀를 출산했습니다. 존 웨슬레는 수산나에게 15번째 자녀이자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훌룡한 신앙인이라면 위대한 믿음의 가정을 만들어야 하고 믿음의 가정은 아이들에게 대한 가정교육에 달려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확고한 신앙교육의 원칙을 세워 실천했는데, 생활이 너무 어렵다보니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가정에 "가정학교"를 세우고 직접 교사가 되어 엄격한 가정교육과 신앙교육을 시켰습니다. 매일 가족성경공부와 기도회를 저녁 6시에서 9시까지 가졌고 어린 자녀가 걷기 시작할 때면 그들의 손을 잡고 감옥과 병원, 양로원을 함께 방문하여 이웃 사랑의 정신을 심어주었으며, 한주에 한 끼씩 금식하고 하루에 세번 씩 소리내어 기도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밤 9시에 경건기도회가 끝나면 아이들을 세워놓고 이렇게 문답을 하곤 했습니다. "애들아! 너희는 누구지." "우리는 위대한 어린아이들입니다. " "누가 너희를 위대하다 했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대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너희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지." "예, 우리는 지금 역사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그 일을 누가 하게 했지." "우리를 위대하게 쓰시기를 원하는 하나님이 하게 했습니다." 이 같은 문답이 끝나면 모두 "아멘"하고서야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수산나의 자녀교육 가운데 10계명은 특히 유명합니다.
1. 간식은 절대 금한다. 2. 모두 다 정해놓은 시간에 취침한다.
3. 개인의 의사는 존중한다. 4. 아이 전원을 하나님께 인도한다.
5. 말하기 시작하면 기도부터 가르친다. 6. 가정예배는 절대정숙한다.
7. 떼 쓸 때는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8. 잘못을 고백하면 무조건 용서하고 고백하지 않은 잘못은 반드시 징계한다. 9. 부모나 아이들이나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킨다.
10. 부모의 채찍을 두려워하며 부모의 훈계를 고맙게 여기게 한다.
오늘의 부모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해주는 교훈입니다. 성경 말씀도 보면 주의 교훈과 훈계로 가르치라고 했고(엡6:4),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고 사람의 본분이라고 했습니다(잠9:10, 전12:13).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교육은 세상 교육보다 먼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교육은 자녀들의 미래를 책임져주고 위대한 길로 이끌어줍니다.
요한 웨슬레처럼 신앙의 위대한 인물들은 어려서부터 철저한 신앙교육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아브라함 링컨도 어머니 낸시의 기도소리를 들으며 자라났고, 어머니의 유언 역시 "항상 성경을 읽고 성경에서 지혜를 구하라"는 말이었습니다. 부모들은 하나님이 주신 가장 귀한 선물인 자녀들을 주의 교훈과 훈계로 바르게 키우는 것이 부모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엄숙한 명령이라는 것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만한 교사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부모는 아주 책임있는 교사입니다. 이렇게 가르치면 건강한 가정이 될 것입니다. 가정이 건강하면 나라가 건강해지고 동시에 사회가 건강해 질 것입니다. 처칠은 “나라가 잘 되기를 원하는가? 그러면 가정에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먼저 시작할 일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일어날 때든지, 앉았을 때에든지, 언제나 이 말씀을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3. 이 말씀을 실천하라(8-9절)
쉐마의 세 번째 명령은 실천하라입니다. 8-9절,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여기서 손목은 하나님의 말씀을 행동하는 지체입니다. 그러므로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서 모든 행동의 지침으로 삼으라는 뜻입니다. 또 미간은 대개 인간의 지성과 사고를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사고와 판단의 기준으로 삼으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생활 곳곳에 깊이 스며들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하라’는 말씀은 들어오거나 나가거나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가정을 온전히 주관하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고대 근동의 여러 민족들 사이에서는 종교적, 도덕적 황금률을 적은 쪽지를 몸에 휴대하거나 아니면 집에 붙여두는 일종의 부적풍습이 일찍부터 성행했습니다.
특히 유대인들도 이러한 풍습에 영향을 받았기에 모세는 이를 이용하여 백성들에게 여호와 신앙을 고취시키는 기회로 삼았던 것입니다. 모세는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 삶의 현장에 적용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손목에 매고)하나님의 말씀을 모든 행동의 지침으로 삼고, (미간에 붙이고)모든 사고의 판단기준으로 삼으며, (문설주에 기록하고)우리 삶을 온통 지배하게하라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은 무엇보다 우리의 삶의 표준이 되고 삶을 통해 표현되어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것이듯이 생활에서 표현되지 않는 ‘하나님 사랑’은 위선이요 거짓입니다. 이는 향기없는 조화이며 비없는 구름에 불과합니다. 무늬만 그리스도인일 뿐입니다. 감동과 영향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실천하라는 말씀입니다. 교육에서 가장 큰 맹점이 말만 앞서고 실천이 안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부모에게 거역하는 것도 언제나 부모들이 말만 앞서고 실천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천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마음에 새기고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것만으로도 부족합니다. 부모가 먼저 행동으로 자녀들에게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온몸으로 쉐마를 구현하라는 겁니다. 문설주에도 기록해 놓고, 양피지에 써서 문옆 벽에 붙여 놓아 들어가며 나가며 입을 맞춥니다.
벤허 영화를 보면 벤허가 사지에서 돌아와 흉가가 된 자기 집에 들어서며 대문 우측 벽에 있는 쉐마를 꺼내 입을 맞춥니다. 쉐마가 내게 축복이 되려면 실제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말씀은 염불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배시간에 말씀을 듣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저 종교행위입니까? 지식을 넓히기 위한 수단입니까? 아닙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서 설교자를 통해 내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믿음의 사람은 말씀을 듣고 행동하기 위해 힘쓰는 것입니다.
쉐마는 그리스도인들의 실천강령입니다. 오늘 우리의 아이들이나 후배들이 앞서가는 저와 여러분을 보고 있습니다. 부모가 얼마나 말을 잘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삶을 사느냐가 걸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교회생활, 헌금생활, 봉사생활, 주일성수생활, 하나님 사랑하는 생활, 이웃사랑하는 생활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부모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보고 살피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살아간 모습 그대로 따라서 행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 아이들은 부모의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가 이기적으로 살면 아이들도 본 것이 그것뿐이기 때문에 이기적으로 살아갑니다. 아이들은 부모를 그대로 닮습니다. 부모가 술주정을 피우고 파괴하고 때리고 행패를 부리면 아이들은 자라면서 나는 절대로 저렇게 안하겠다고 맹세합니다. 그렇지만 그 아이가 자라면 그대로 행하며 살아갑니다. 참 무서운 일입니다. 본 그대로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청소년 때에 아이들이 탈선하고 방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부모는 진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며 기도합니다. 그렇다면 염려할 것 없습니다. 그 자녀들은 언젠가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본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모세를 부르십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거든 이 말씀을 앉으나 서나 집을 나설 때나 들어올 때나 길을 갈 때나 무엇을 할 때나 이 말씀을 읽고 가르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후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쉐마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가죽에 기록해서 상자 안에 보관하고 수시로 꺼내 읽고 가르쳤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1) 하나님을 사랑하라 2)이 말씀을 가르치라 3)이 말씀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간직하고 가르치고 실천함으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거룩한 가정을 만드시고 저와 여러분의 일상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