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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문의 메시지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마 6:9-13)

작성자야베스|작성시간25.08.31|조회수237 목록 댓글 0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6:9-13)

 

우리는 지금 주기도문을 통해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에 있어 살펴보고 있습니다. 기도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기도의 대상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기도의 대상이 누구입니까? 자녀된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앞에 나아가 대화하는 것입니다. 지극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와의 대화입니다. 하늘에 계시다는 말은 초월적인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그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기도의 내용은 지금까지 살펴본 세 가지 기도제목은,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기도제목이기도 하지만 신앙생활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난 다음 구할 것은 바로 우리의 필요입니다. 오늘 그 첫번째가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제목은 우리 자신을 위한 기도가운데 첫번째 간구입니다. 이는 가장 기본적인 우리의 필요를 구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이를 새번역성경으로 읽으면,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내려 주시고”(6:11)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매우 절박한 기도였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이스라엘은 본래가 농작물이 번창하는 곡창지대가 아니었을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로마의 식민지였으니까 수확된 것을 대부분 수탈을 당하던 때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먹을 양식의 문제는 그들에게 생존이 걸려 있던 매우 중요한 기도제목 중에 하나였지요. 때문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일용할 양식에 대한 해석을 종교 개혁자 루터는 일용할 양식을 보다 더 광범위하게 해석을 했습니다. 그것은 단지 먹을 떡이나 양식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의복과 집, 건강과 기후, 평화와 국가 등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구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물론 이 기도만큼 우리의 삶에 절대적인 것은 없을 것입니다. 먹는 것은 하루도 거를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생명이 유지되는 한 우리는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먹어야 삽니다.

 

지금 우리는 먹는 것이 있으니까 별로 중요한 것 같지 않지만 먹는 것이 없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예전에 먹을 것이 부족할 때 인사조차 "진지 잡수셨습니까? 식사하셨습니까?"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보리고개가 있었습니다. 주식이 보리일 때 겨울이 다가오면 먹을 것이 거의 떨어져 그 다음해 봄까지 먹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때 굶는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이처럼 가난하고 굶주릴 때 이 기도는 정말 가슴깊이 다가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전에나 지금도 변함없이 우리의 필요는 일용할 양식입니다. 이 양식은 저절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물이요 은혜의 증거입니다. 우리는 일용할 양식을 먹을 때마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일용할 양식의 공급자가 "하나님"이십니다.

먹을 것은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노력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농부들이 농사를 짓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밭을 가꾸고 씨를 뿌리고 돌보는 일은 사람이 하지만, 생명이 자라고 비가 내리고 햇빛이 비치고 땅이 영양을 공급하는 과정에는 하나님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씨앗 속에 생명이 있습니다. 땅이라는 생명의 보고가 있습니다. 그리고 햇빛과 기후와 공기와 물과 같은 환경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먹을 양식이 우리에게 오기까지의 모든 과정속에 하나님의 손길이 숨어 있습니다. 농부들의 땀과 노력이 더해집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는 바로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주님의 교훈이 담겨 있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우리에게 매일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우리의 고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진정한 공급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실 뿐 만 아니라 우리를 보살피시기 위해 매일 공급하시는 주권자이십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그것은 믿으십니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하는 기도는 내가 살아가는 생존의 원인이 하나님께 있다는 근본적인 신앙고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우리들이 이 땅에서 삶을 영위해 가는 동안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공급해 주시기를 원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7:7-8)“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그래서 우리가 배가 고프거나, 몸이 병들었거나, 좋은 인간관계를 원하거나, 우리들 삶의 그 어떤 필요이든 간에, 우리는 기도할 수 있고, 또 기도해야 하고, 기도할 때, 응답해 주시는 하늘 아버지의 사랑과 기적의 손길을 체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사는데, 나에게 영육간에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주신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이 양식을 날마다 아낌없이 우리들에게 공급해 주시고 싶어 하십니다.

 

(4:19)“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그러므로 이 기도는 하나님이 너의 생명을 유지시켜주고 있는 공급자이심을 믿고 있느냐고 묻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6: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또 예수님께서 6:28-30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연만물도 입히시고 돌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공급자이십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세상의 물질만을 의지하는 자세는 분명히 잘못된 것입니다. 물질을 많이 비축해 두면 안심이 되고 모든 것이 잘 될 거라는 생각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2장에서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12:16-20)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여기 한 부자의 착각이 무엇입니까? 세 가지입니다. 1)잘 되고 있으니 넉넉하게 쌓아 두리라. 2)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3)자기 생명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부자의 착각이 어리석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역사의 주인이시며 공급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나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공급자이심을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일상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것을 깨닫고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오늘일용할 양식을 구하라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오늘"에 해당하는 헬라어 세메론은 '지금 시대를 나타내는 오늘날'을 의미할 수도 있지만 '오늘, 이날'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필요한 것을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3절에 보면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하며 "날마다"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치와 욕망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오늘 나에게 필요한 것을 구하라는 말입니다. 이처럼 오늘 우리에게 날마다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이후 광야에서 40년동안 날마다 먹었던 양식은 만나였습니다. 광야를 여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을 것을 구할 수 없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하늘의 문을 열어 날마다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때에 일주일 분이나 한달 분이 아니라 아침마다 그날에 필요한 만나를 거두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16:18) “오멜로 되어 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고 하였습니다. 백성들은 매일 아침마다 바구니를 들고 나아가서 오늘 필요한 양식을 거두어 왔습니다. 그야말로 일용할 양식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와서 기도하는 데 매일매일 그날그날 필요한 양식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하라는 말속에 하나님께 날마다 베풀어 주시겠다는 약속이 담겨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매일매일 하나님앞에 나아와 일용한 양식을 구하고 있습니까? 사실 양식은 필요한 분량 외에는 필요치 않습니다. 그야말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런데 일용할 양식은 육신만이 아니라 영적인 양식도 필요합니다. 오늘 하루를 사는데, 영혼의 양식을 먹어야 영혼이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영혼이 죽은 사람은 영혼의 양식을 먹지 않아도 아무런 느낌이 없습니다.

 

그러나 영혼이 살아있는 성도는 반드시 영혼의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영혼의 양식으로 먹는다는 것입니다. 읽고 듣고 묵상하고 암송하고 적용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내 삶속에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자동차에 기름을 주유하듯이,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날마다 주님의 말씀을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10:17)“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영혼의 양식을 먹는다는 것은, 새벽마다, 경건의 시간마다, 깊은 기도 가운데,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내 안에 성령님이 역사하셔서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6: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이 영적 양식을 날마다 아낌없이 우리들에게 공급해 주시고 싶어하십니다. 육신의 양식을 날마다 먹는 것처럼 영혼의 양식도 날마다 먹어야 영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강조하는 말씀묵상은 날마다 말씀을 영혼의 양식으로 먹어야 건강한 신앙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주일 예배시간에 들은 말씀으로는 우리가 건강한 삶을 살기에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이 내게만 주시는 영혼의 양식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앞에 엎드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을 영혼의 양식으로 먹어야 영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은 성경을 이전에 많이 읽었다고, 지금은 더 이상 읽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신앙은 언제나 현재가 중요합니다. 현재 나의 영적인 상태가 중요한 것 아닙니다. "전에는 배불렀는데 지금은 배고프다" 지금 괴로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필요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식량문제에 관해서 만은 남아도는 것도 또는 부족한 것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나치게 많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물질을 더 의지하는 유혹에 빠지기 쉽습니다. 또 너무 부족하면 물질에 대한 염려와 근심으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과 관심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잠언서 기자는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잠언 30:8-9)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9)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고 하였습니다.

 

"나로 가난하게 마옵시고"라는 기도 앞에 여러분은 "아멘"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계속해서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라는 기도에도 "아멘"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하나님은 그날의 양식을, 오늘날 일용할 양식을, 오직 필요한 양식을 약속하고 계십니다. 사실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먹고 마시는 문제가 가장 필수적인 것입니다. 하루라도 먹지 않는다면 건강을 유지하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이미 준비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하나님을 신뢰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날마다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인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이란 우리가 날마다 먹고 마시는 문제, 즉 경제적인 문제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우리에게 '일주일분의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가르치지 않았으며, 혹은 '한달 분의 양식, 또는 평생에 먹을 양식을 주옵소서'라고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을 때 매일 하늘에서 일용할 양식을 주셨는데 어떤 사람들은 내일을 염려하여 그 다음 날 아침까지 남겨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벌레가 생기고 냄새가 났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고 베풀어주실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하루의 양식을 위하여 매일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학자들이 이 기도의 내용을 좀 더 확대해서 해석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 하루를 살기 위해 우리에게 꼭 필요한 생활필수품 전반을 일용할 양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루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시고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면서 오늘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시겠다는 확실한 약속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인간의 탐욕과 눈에 보이는 재물이라는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스스로 벗지 못하는 무거운 짐이 되었습니다. 오늘을 우리에게 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우리에게 다가오는 내일 역시 하나님의 것입니다. 사실상 내일은 내 영역에 아직 있지 않습니다. 내일은 주님이 주셔야 오늘이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오늘을 주시고, 오늘을 잊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오늘에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날마다 공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먹고 마시며 살아간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불평하고 원망하면서 불신앙으로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믿습니까? 그렇다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이 베푸시는 날마다의 은혜, 일용할 양식을 공급받으면서 그 은혜를 헤아리고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우리에게일용할 양식을 구하라.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나의 필요가 아니라 우리의 필요라는 사실입니다. 항상 우리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만족하니까 더 이상 필요없어가 아니라 내가 배부르기 전에 이웃을 한 번 돌아보는 긍휼이 필요합니다. 이웃의 갈급함, 이웃의 눈물, 이웃의 고통을 돌아보고 함께 공유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받은 은혜를 나누는 것입니다. 받은 말씀을 나누고 다른 사람에게 증거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진정한 사랑의 실천이 있는 것입니다.

 

항상 우리는 나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선택하여 부르시고 영생을 주시고 사명을 주셔서 세상에 보내어진 자들입니다. 세상을 구원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사명이 분명한 자는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웃을 생각합니다. 이웃을 생각하는 만큼 그 사람의 그릇이 커졌다고 생각합니다. 전에는 자기만 보았습니다. 조금 더 성장하니까 영적으로 자기 가족을 보았고 자기 이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더 넓게 교회와 세상을 보면서 생각이 폭이 커졌습니다. 기도의 폭도 커졌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분량입니다. 예수님은 12명의 제자들을 3년동안 양육시켜 놓고 예루살렘, 온 유대, 사마리아, 땅끝까지를 품을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랬던 것처럼 이웃을 위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교회안에서도 언제나 우리를 생각합시다. 나혼자가 아니라 교회 전체, 우리를 생각하고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나는 우리 속에 하나의 지체일 뿐입니다.

 

우리를 통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자랑되어지고, 높여지고, 증거되어질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사명을 다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벌에게서 교훈을 받습니다. 벌은 6개월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면서도 열심히 일합니다. 벌통에 있는 잘 먹지 못하는 유충이 있으면 동료 벌이 꿀을 먹었다가 다시 토해서 이 유충에게 먹인다고 합니다. 그리고 먹이가 한정되어 있고 먹이를 더 구해 오지 못하면, 지금 남아있는 먹이를 똑같이 나누어 먹다가 함께 죽는다고 합니다. 또한 벌통 안에 적이 침입하면 동료들을 살리기 위해 적에게 침을 쏘고 자신은 죽는 것입니다.

 

어느 면에서 벌은 인간보다 더 훌륭한 공동체 생활을 하고있는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보다 더 많은 것을 주셨다면 이것은 우리에게 있어 필요하기 때문에 내게 더 주셨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나누기 위해서 더 주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일용할 양식 외에는 더 필요가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 혼자 신앙생활 잘한다고 되는 것 아닙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이기 때문에 다같이 잘해야 교회가 성숙해집니다.

 

어제 생명의 샘가의 말씀을 보면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초청해서 식사를 대접합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11:39)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지금의 저들의 모습이 외모는 깨끗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중심을 보십니다. 그 중심에 무엇이 가득하다고 하셨습니까?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다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외식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시기에 우리의 중심과 폐부를 살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가르쳐 주십니다. (11:41)”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구제하라는 말씀은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이웃과 나누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고 함께 나누라는 말씀입니다.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를 넘어서 이웃을 생각하고 공동체를 생각해서 자기 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도 선교비로 장학구제비로 이웃에게 나누고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업에 참여하는 것이 실제로 사랑을 실천하는 길이요 모든 것에서 깨끗하게 되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시지만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저들도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이야말로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는 비결인 것입니다. 여러분,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가정속에서 교회속에서 직장안에서 우리입니다. 그러므로 나를 넘어서 우리를 생각하는 마음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농부가 한 해동안의 농사를 지으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가 지금 먹는 것을 추수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농사를 잘 지어도 태풍 한번 맞으면 다 소용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하나님의 주신 자연의 힘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절대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시면, 아무리 인간이 노력한다 할지라도 쌀 한 톨도 만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하루 한 시간도 제대로 살 수 없습니다. 우리의 생존, 우리의 건강, 우리의 미래도 하나님 없이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은 나만을 위해 먹고 살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나를 넘어서 이웃을 생각하고 이웃과 함께 사랑을 실천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새계명은 오직 한 가지 밖에 없습니다.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이렇게 나를 넘어서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 사랑을 입으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실천하여 진정한 우리를 누리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일용한 양식은 구하라는 것은 오늘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는 공급자이십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우리의 필요한 것을 믿음으로 구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나의 필요만이 아니라 우리의 필요입니다. 우리를 기억하고 넓은 가슴으로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이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라도 날마다 쉬지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땅에 이루어지고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항상 깨어서 정신을 차리고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라는 기도를 진정으로 드릴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뿐 만 아니라 일용할 양식을 먹을 때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리며 진심으로 감사하는 기도를 드려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감사하며 기도로 나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소그룹 나눔을 위한 적용 질문

1. 하나님이 나의 공급자이심을 신뢰하고 있습니까? 혹시 물질이나 사람을 더 의지하지는 않습니까?

2. 하나님께서 주시는 양식이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라 하셨는데, 최근에 받은 은혜를 이웃과 어떻게 나누었습니까?

3. 나는 매일 영혼의 양식(말씀과 기도)을 얼마나 꾸준히 먹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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