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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문의 메시지

성령의 열매(1)-사랑,희락,화평(갈 5:22-23)

작성자야베스|작성시간26.02.08|조회수205 목록 댓글 0

성령의 열매(1)-사랑,희락,화평(5:22-23)

 

그리스도인은 성령님을 내안에 모시고 사는 성령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몸을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라고까지 부릅니다. 이것은 신비로운 일입니다. 어찌 나같이 연약하고 죄많은 존재 안에 하나님을 모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또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해주신 구원자이십니다. 그리고 필요한 것을 때마다 공급하시는 공급자이십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을 우리 안에 모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안에 계신 성령님은 가만히 계시는 분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는 결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인이 되셔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이끌어 주십니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시기에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또 성령님은 우리를 변화시켜 주십니다.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해 계속적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마지막으로 성령님은 우리에게 능력을 주셔서 영적전쟁에서 승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십니다. 생명을 살리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된 삶을 살게 하십니다. 말과 행동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게 하시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살펴본 말씀,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이렇게 성령이 역사하실 때 우리가 믿고 순종하면 다시말하면 성령을 따라 행하면 육체의 소욕을 이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을 따라 살면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이 기뻐하십니다. 그 결과는 바로 우리의 성품이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 증거가 바로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맺을 수 있는 열매를 크게 두 종류로 구분하였습니다. 그 하나는 육체의 열매이고 또 하나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육체의 열매는 이렇습니다.

 

(5:19-21)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육체를 따라 살면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우리는 성령이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육체의 열매는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는 죄성에 의해서 자연적으로 맺게 되는 열매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우리가 성령을 따라 행함으로 우리의 내적 성품이 주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내 안에 계신 주님의 성품이 나를 통해서 드러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입니다. 이 열매를 맺는 것은 가지가 아니라 그 나무인데 가지가 나무에 연결될 때만 열매를 맺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없고,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또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열매를 만들어 주셔야 열매 맺을 수 있습니다.

 

또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말씀하는데 열매라는 헬라어는 복수가 아니라 단수로 쓰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홉 가지 열매가 각기 따로 맺는 것이 아니고 한 성령의 열매라는 사실입니다. 한 가지 열매를 맺으면 다른 여덟 가지도 맺게 됩니다. 그런데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는 세 가지씩 세 개로 구분됩니다. 첫째 세 개(사랑, 희락, 화평)는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맺는 열매이고, 두 번째 세 개(오래참음, 자비, 양선)는 이웃과의 관계에서 맺는 열매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세 개(충성, 온유, 절제)는 자신의 내면에서 맺는 열매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우리 안에 내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의 표현입니다. 온전한 성령의 열매는 하나님과 이웃은 물론 자신의 내면속에서도 동시에 열매를 맺습니다. 오늘은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맺어지는 세 가지 열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1. 성령의 열매는 사랑입니다.

먼저, 우리가 성령안에서 맺어야 될 열매는 사랑의 열매입니다. 사도바울은 고전13장에서 사랑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소개하였습니다. (고전 13:1-3)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아무리 성령의 은사를 많이 소유하고, 모든 지식과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고 온갖 구제를 한다고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대표적인 속성입니다. 사랑의 사도인 사도요한은 이렇게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요일 4:7,8)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인데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전부입니다. 사랑은 우리 신앙의 전부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입니다. 사랑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떠한 사랑을 하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기적인 사랑, 자기중심적인 사랑을 합니다. 그래서 누가 나에게 잘해주면 그 사람을 잘 대해주고 사랑하는 이러한 조건적인 사랑을 합니다. 그런데 그가 나에게 잘해주다가도 피해를 입히고, 나를 힘들게 하면 그 사랑이 변하여 미움이 됩니다. 친구가 변하여서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인간적인 사랑에 머물러있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랑, 아가페 사랑에 머물러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조건을 따지지 아니하고 무조건적으로 용서하고 사랑하는 위대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에 용서받을 수 없고, 사랑을 받을만한 아무런 자격이 없는 데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무조건적으로 우리를 사랑하고, 용서하고, 구원하신 그 놀라운 사랑입니다. 로마서 58절은 설명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이 사랑 안에 머물러있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한번 우리를 사랑하시면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을 하시는 그 자리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얼마 있지 않아서 그 밤이 지나기 전에 본인을 배반하고 다 도망할 것을 알았지만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그들을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요한복음 131절은 설명합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사람들은 좀 사랑하다가 싫증이 나면 돌아서기도 하고, 오해가 생기면 다투고 멀어지기도 하고, 또 자주 못 보면 관계가 소원해지기도 하지만 우리 주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부족해도, 못났어도, 때때로 주님을 섭섭하게 해도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고, 용서하시고, 우리와 함께 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 사랑에 힘입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요한복음 316절에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놀라운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 이 위대한 사랑, 변함없는 사랑에 대하여 감사, 감격하며 살아가는 주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 놀라운 사랑에 감사하여 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우리 주님을 사랑하기 원합니다. 사랑의 고백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 2237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여야 하고, 그다음 우리 이웃을 그렇게 사랑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을 위해서도 예수님이 죽으셨기 때문에, 그 사람도 하나님이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 기준으로 남을 사랑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기준에 의해서 우리 이웃을 사랑해야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239절은 설명합니다.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요한일서 420,21절은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서 형제는 구원받은 형제자매를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 어떤 경우에도, 믿는 사람들끼리 다투고, 싸우고, 나누어지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님 안에서 다 형제자매인 것입니다. 형제들끼리 조금 다투어도 그것 금방 잊어버리고, 서로가 사랑하고, 서로 도와줍니다. 왜 그렇습니까? 형제이기 때문에. 형제는 잠시 잠깐 섭섭한 것 있고 오해가 있어도,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금방 풀어집니다.

 

더군다나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서 구원받은 주님의 형제자매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이웃을, 우리 형제를 사랑하며 살아야 됩니다. 기준이 내몸처럼 사랑하라, 내가 내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라고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이 없다면 그 사람은 지금 하나님이 없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충만은 사랑충만입니다. 여러분, 이 교회는 살아계신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이 교회를 사랑하시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시는 것이고 여러분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교회를 사랑하십시오. 그것이 결국은 여러분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안에 성령이 충만하면 그 증거가 바로 우리를 삶을 통해 사랑이 흘러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의 풍성한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2. 성령의 열매는 희락(기쁨)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기쁨의 열매를 맺습니다. 기쁨은 우리에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제공합니다. 인생 가운데 진정 기뻐할 수 있는 시간은 3%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나머지 97%가 괴롭고 슬퍼도 이 3%의 기쁨이 우리를 살게합니다. 사람이 기쁨을 잃으면 불행합니다. 그래서 기쁨은 곧 행복입니다. 우리 주님도 우리가 기쁘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15: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하여 살전 5:16, “항상 기뻐하라!”를 비롯하여! 450회 이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령의 열매인 기쁨은 조건적 상황에 따라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뻐할 상황에서 기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열매는 아닙니다. 성령의 열매로서 희락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기쁨을 말씀합니다. 당장 고통스러운 일들이 다가와도, 슬프지 않고 기뻐합니다. 인상을 찌푸릴만한 일이지만 도리어 미소를 보입니다.

 

가장된 미소가 아닙니다. 정신이상으로 실성한 미소도 아닙니다. 인간적으로 기뻐할 수 없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언제든지 기뻐하는 진실한 기쁨입니다. 빌립보서에는 기쁨이란 말이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빌립보서를 기쁨의 편지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빌립보서는 바로 사도 바울의 옥중서신입니다. 사도 바울과 빌립보 교회가 말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도 서로 기뻐했습니다.

 

바울이 자신의 고난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를 가져왔다고 하며.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이 기쁨이 바로 kara, 주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주시는 영원한 기쁨입니다. 세속적이고 일시적인 기쁨이 아닙니다. 이 기쁨은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기뻐할 수 있게 했습니다. 로마서 5:3, “우리가 환난 중에서도 즐거워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통하여 우리가 핍박을 당할 때, (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도 성령충만한 가운데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으로 인해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열매가 희락인 반면 악령의 열매는 분을 냅니다. 참지 못하고 노여움을 거침없이 거칠게 나타내며 열과 성을 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기쁨의 열매를 회복해야 합니다. 어떻게 우리가 기쁨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성령충만하면 기쁨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하면 주님이 주신 기쁨, 영혼의 기쁨이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 사랑을 회복하면 내 안에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참된 신앙으로 그 마음속에 주님의 기쁨, 하늘의 기쁨으로 가득함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 모두가 성령충만해서 하늘의 기쁨, 영혼의 기쁨의 열매가 맺히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성령의 열매는 화평입니다.

성령을 따라 살았더니 하나님 사랑이 내안에 들어와 내 마음을 변화시켰습니다. 그러자 내 마음에 기쁨이 충만해졌습니다. 기쁨이 충만하다는 것은 내 마음에 화평이 이루어졌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2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주님이 주시는 샬롬, 이 평화는 마음 깊은 곳에서 자리잡은 평안함입니다. 환란의 풍파가 몰아닥치고, 어려움이 다가와도 절대 요동하지 않는 평안함입니다. 깊은 바다는 동요하는 법이 없습니다. 해변가가 찰랑거리지, 깊은 바다는 늘 고요한 것입니다. 화평은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 몸을 성전삼고 임재해 계십니다. 그 하나님과 연합하였는데 무슨 두려움과 염려가 있겠습니까?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평안입니다.

 

여러분, 깊은 바다속같은 신앙으로 그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평안함이 넘쳐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후 두려워 떨며 숨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부활의 날, 저들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요한복음 2019절입니다.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주여, 이 평강이 우리 마음 가운데 넘쳐나게 하여주시옵소서! 진짜 주님이 주시는 평안함은 극한 절망에서도 낙심하거나 슬퍼하지 아니하고 주님 주시는 은혜로 그것을 이겨내는 평안함입니다. 찬송가 413, ‘내 평생에 가는 길을 작사한 호레이시오 스패포드씨의 간증으로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시카고의 저명한 변호사이자, 법리학 교수요, 신학교 이사요, 운영 위원이었고, 무엇보다도 무디부흥사를 도와서 교회를 열심히 섬기는 주님의 일꾼이었습니다.

 

그런데 1871, 시카고에 대화재가 나서 교회가 다 불타게 되고 그의 큰 저택도 불이 나서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낙심하지 않고 주님만 바라봅니다. 오히려 자기 집이 불탄 것보다 교회가 불탄 것을 걱정해서 교회를 다시 재건하는 일에 앞장서서 헌신한 귀한 분입니다. 그런데 그의 부인 안나 스패포드 여사는 몸이 약해져 휴식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네명의 딸과 함께 영국에 잠깐 가서 좀 쉬고 오도록 했습니다. 원래 같이 가려고 했는데, 본인은 일 처리할 것이 많아서 먼저 떠나보내고 다음에 따라가려고 했는데, 이 배가 대서양을 항해하던 중 18731115일 새벽 2, 영국 범선과 충돌해서 가라앉습니다. 이 사고로 226명의 승객이 목숨을 잃습니다. 의식을 잃은 부인은 구조원에 의해서 구조되었지만 네명의 딸은 이미 모두 목숨을 잃고 다시는 그 딸들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영국 웨일즈에 도착한 부인이 남편에게 전보를 보냅니다. ‘혼자 살아남았음전보를 받고 너무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랑하는 네명의 딸을 한꺼번에 잃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비보를 듣고 달려온 친구들에게 말합니다. “내게 어떤 희생이 닥쳐와도 주님을 의지하게 되어 매우 평안합니다.” 주님의 평안함이 있었습니다.

 

부인을 데리러 배를 타고 영국으로 가는데, 선장이 어느 지점을 지날 때 와서 말합니다. ‘이곳이 배가 충돌해서 가라앉은 곳입니다.’ 그의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선실로 돌아와서 눈물로 기도합니다. “주님, 왜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밤새 눈물로 기도할 때, 새벽 동이 터오는데 성경 말씀이 그의 마음 가운데 떠올랐습니다. (왕하 4:26) “너는 달려가서 그를 맞아 이르기를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 하라 하였더니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 하고

 

지금 이 여인은 자기 아이가 죽었습니다. 그런데도 평안하냐고 물었을 때 평안합니다.” 이 말씀이 큰 위로가 되어서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찬송가 가사를 적어 내려갔습니다. (1)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파도가 치고 달려오는 모습을 보면서 2절을 지었습니다. (2) 저 마귀는 우리를 삼키려고/ 입 벌리고 달려와도/ 주 예수는 우리의 대장 되니/ 끝내 싸워서 이기리라!

 

자기 자신을 바라보니 너무나 주님 앞에 죄짓고 부끄러운 모습이라 이렇게 고백합니다.

(3)내 지은 죄 주홍빛 같더라도/ 주 예수께 다 아뢰면/ 그 십자가 피로써 다 씻으사/ 흰 눈보다 더 정하리라! 하늘을 바라보니 뭉게구름이 피어있는데 천국 가 있는 딸들이 손을 흔드는 것 같아요. 그래서 4절은 그가 이렇게 작사했습니다. 저 공중에 구름이 일어나며/ 큰 나팔이 울릴 때에/ 주 오셔서 세상을 심판해도/ 나의 영혼은 겁 없으리/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그는 그 이후 다시 얻은 두 자녀와 함께 이스라엘에 건너가서 고아와 가난한 사람들을 평생 돌보며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어떤 시련이 다가와도 어떤 문제와 어려움과 고통이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주님 주시는 평안함으로 모든 어려움을 넉넉히 이기고, 주님께서 맡긴 사명을 잘 감당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 모두 성령 충만히 받아서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통해 주시는 세가지 성령의 열매, 사랑과 희락과 화평이 여러분 마음 속에 넘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넘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사랑이 지금 우리 마음속에 가득합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으로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영혼의 기쁨입니다. 그 기쁨이 여러분의 삶속에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화평입니다. 세상의 창조주요, 이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평안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속에 이루어지는 이 세 가지 성령의 열매, 사랑과 희락과 화평의 열매가 여러분의 삶속에 풍성히 맺어서 세상을 이기고 나자신의 육신의 소욕을 이기고 마귀를 이김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날마다 성령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눔이야기-------------------------------------------------------

1. (사랑) 내가 하는 사랑과 주님이 주시는 사랑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2. (희락) 환경을 초월하여 하나님 때문에 기뻐했던 순간이 있나요?

3. (화평) 내 마음의 풍랑을 잠재우시는 주님의 '샬롬'을 경험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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