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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2 - 강해 ( 계 11-22 장 )

작성자야베스|작성시간17.08.06|조회수485 목록 댓글 0
요한계시록 2 - 강해 ( 계 11-22장 )                                                                           


                                                                 

계 11:1

지팡이 같은 갈대 - 겔 40:3, 42:20 참조.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
을 척량하되 - "성전"이라는 말은, 헬라 원어로 나오스(* )니 지성소(至聖所)
를 의미한다. 그러면 여기 지성소와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은, 영적 성전
곧, 기독 교회를 가리키는 비유이다(Charles, Swete). "척량"은 무엇을 의미하는
가? 이것은, 소유의 회복이나 소유의 확보를 의미하는 상징적 행위이니(겔 40:2,
43:13), 하나님의 교회의 신약적 건설(新約的建設)을 통하여 택한 백성을 소집하는
일 곧, 복음으로 돌아올것을 비유한다고 한다.)



계 11:2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 이것은, 외부적으로 혹은 명목(名目
的)으로만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 특별히 예수님과 사도들 당시에, 유대인이라는
자세만 하고 복음은 받지 아니한 자들을 새로이 이스라엘 운동(복음 운동)에서 기
각(棄却)함이다(Swete). 외양으로 유대인 된것이 이스라엘 자손의 자격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함을 입어서 주님을 신앙하는 것 만이 이스라엘 자손의 자격이다(롬
9:6, 7).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 이것은, 유태인이 그 나라를 잃고 사방으로 흩어진 뒤
에, 이방인들이 그 땅을 주관하게 될 것을 가리키는데, 곧,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그
대로이다(눅 21:24). 그들이 복음을 배척한 죄로 과연 그렇게 되었다. 마흔 두달
동안 - 이것은, 단 - 9:24-27에 있는 말씀을 해석함으로 알 수 있는 기간인 둣하다.
다니엘서를 보면 "마흔 두달"은, 세계 종말의 최후 한 주간의 전반부(前半部)이다.
그 후반부(後半部)는 아주심독한 환난으로 가득할 터인데, 계시록 13장에 기록된 바와
같다. 그런데 위에 말한 전반부는 여자적 연수(如子的年數)가 아니고, 상징적 연수
로서 적그리스도가 최후 활동하기 전의 신약 시대 전부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이것
은, 복음서에 있는 이방인의 때를 가리킨다(눅 21:24).



                                     ( 두증인과 일곱번째 나팔심판 )

 

 

계 11:3

두증인 - 이 말씀에 대한 해석으로서 두 가지 의견이 있다. (1)촬스
(Charles)는, 이것이, 율법의 대표자 모세와 예언의 대표자 엘리야가 이세상 말기에
땅위에 다시 나타날 사실을 가리킨다 하였으나, (2) 다음 귀절에 있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란 말씀이, 슥4:14과 관련되어 있음을 보아서 여
기 "두 증인"은 교회를 가리킨다. 스가랴서 3,4장은,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예수살렘
성전 재건자 스룹바벧을 당시 교회의 대표자들로 취급하였다(느 7:5-7). 그러므로
그들은 당시의 교회를 표상(表象)하였다. 그처럼 계시록의 이 장절의 "두 증인도"
신약교회의 표상이다. 그러나 크레다너스(Greijdanus)는, "두 증인"을 가리켜서,
"주님의 증인들"이라고 하였으니(Zij worden in ons vers getuigen van den Heere
genoemd), 이는, 교회의 모든 참된 증인들을 가리킨다는 의미이다. 이 해석은, "두
증인"이 교회라는 해석과 다를 것 없다. 그 이유는, 계시록의 이 장절이 말하는 "두
증인"은, 복음을 증거하는 참된 교회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증인의 이수(二數)는,
증거상 신실(信實)을 성립시키는데 요구되는 수효이다(신 19:15). 예수님께서 제자
들을 전도하러 보내실때에 두 사람씩 보내신 것도 이뜻이다. 또한 성경에는 두 사
람을 가지고 협력의 의미로도 말한 바 있다(전 4:9, 12)
굵은 베옷을 입고 - 이것은 통회(通悔)의 비애(悲哀)를 상징한다(왕상 21:27: 마
11:21 참조). 이들의 통회의 슬픔은 자기들의 죄에 대해서 보다 세상 사람들의 죄에
대한 것이다. 예언자나 전도자는, 이렇게 남들의 죄에대하여 연대 책임(連帶責任)을
지고(히 11:17), 그들의 영혼 구원의 문제를 맡은 자들이다(겔 3:16 -21). 일천 이
백 육십일 - 앞에 2절의 42개월이란 말과 같은 뜻으로서 신약 시대를 가리킨다. 신
약 시대에는 이렇게 두 증인으로 상징된 교회가 복음을 증거한다.



계 11:4

두 감람 나무와 두 촛대 - 이말씀은, 위의 3절에서 말한, "두 증인"과 같은 뜻이
다. 스가랴서 4장에 의하면, "두 감람나무"는 기름을 촛대에 공급하는 것이므로, 성
령의 역사 있는 기관을 상징하는 것인 만큼, 교회를 가리킨다(호 14:6). 그리고 "두
촛대"는 복음의 빛을 발휘하는 것인 만큼, 역시 교회를 상징한다. 참된 교회는 복음
을 증거하는 증인의 일을 하는 것이니, 이 말씀이 복음 증인들을 의미 한다고 해도,
교회를 가리킨다는 해석과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계 11:5,6

이 귀절들의 말씀은, 일종의 상징 표현이니 여자적(如子的)으로 볼것은 아니다.
이것을 글자 대로 본다면,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란 엇구를 해득(解得)하기 어렵다.
이 귀절들은, 모세(출 7:20)와 엘리야(왕상 7:1:왕하 1:9-12)의 행적을 염두(念頭)에
두고 한 말씀이다. 이것은 신약 교회가 모세나 엘리야처럼 영능(靈能)이 있으리라는
의미인 듯하다. 신약 시대 교회의 사역자들이 할 위대한 일에 대하여는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다(마 21:21: 막 16:17,18: 요 14:12-14).



계 11:7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때에 - 하나님께서 세우신 참된 복음 증인은, 그일을 미완성
으로 두고 죽는 법이 없다. 루터(Luther)보다 100년 전에 종교 개혁을 부르짖은 영국
사람, 위클리프(Wycliff)는, 일개의 필부(匹夫)로서 로마의 교권(敎權)과 항쟁(抗爭)
하여 성공하였다. 그가 그렇게 싸우던 때에 세상 사람들은 생각하기를, 그는 그의 명
대로 살지 못하고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경륜대로 필경
늙어서 별세하였다. 무저갱으로 부터 올라오는 - 이것은, 그 짐승이 이때에 비로소
"무저갱(無低坑)"에서 온다는 것을 의미한다기 보다는 그 소속(所屬)이 어디임을밝히
는 것이다. 곧, 그 짐승은 무저갱에 속하는 것이니 지옥적(地獄的)인 잔인 무도한 자
라는 의미가 이문구에 표시된다. 이 짐승은, 적그리스도 나라를 의미하는데 이것이
옛날부터 여러번 일어났다가 멸망(무저갱에 들어감)하곤 하였다. 예컨대, 애굽, 바벧
론, 헬라 등이다. 그런데 본절이 말하는 "짐승", 곧, 적 그리스도 나라의 절정적(絶
頂的) 출현 기간(出現期間)은, 7년 기간의 후반부(後半部)이다. 단 9:27 참조. 저희
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 이것은, 13장의 사실을 미리 당겨 일부 나타냄이다
(13:5-7).



계 11:8

저희시체 - "시체"는, 헬라 원어로 프로-마( )이니, 집합체(集合體)를 가
리키는 단수 명사(單數名詞)이다. 이것을 보아도 위의 두 증인은 두 개인이 아니고
한 집합체 곧, 교회의 많은 사역자들의 집합체를 가리킨 듯하다. 말은 단수 명사이지
만 집합 명사(集合名詞)의 내용을 가진다. 큰 성 길에 있으리니 - 교회를 대적하는
세상 사람들은, 언제나 순교자들을 멸시하여 그들의 시체들을 거리에 밟아 굴린다.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 "소돔"은, 경건치 아니하고 또 도독이 부패하
였으므로(벧후 2:6,7), 하나님께서 그곳을 벌하셨고, "애굽"은 잔인하여 하나님의 택
한 백성을 몹시 핍박하였다. 불경건과 도덕 부패와 기독교 박해는 이 세상의 속성(屬
性)인데, 적그리스도 나라에서는 더욱 심하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저렇게 소돔 같고
애굽 같은 적그리스도 나라에서 수난(受難)하고,또 모욕을 당한다. 저희 주께서 십자
가에 못 박히신 곳 -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란 말은 영적(靈的)으로 사용
된 것이니, "골고다"라는 장소를 가리킴이 아니고 극악(極惡)한 세상을 의미한다. 이
세상은 그리스도를 잡아 죽인 곳이다. 그런데 이 세상이 어떤 때에는 신자에게도 꽤
좋아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눈가림으로만 그렇게 보이는것 뿐이다. 누구든지 이 세
상을 믿다가는 망한다.



계 11:9

백성, 족속, 방언, 나라 - 5:9의 참조.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 이것은, 적그리스도 나라가 있을동안(후 3년 반 동안) 성도 박해
(聖徒迫害)가 끊이지 않을 것을 암시한다. 하나님께서 복음 증인들의 시체가 욕보도
록 허락하시는 이유는, 그들에게 내세의 더 큰 영광을 입혀 주시려는 까닭이다.



계 11:10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고로 - 이것은, 그들이 진정한 예언
자들이었던 증표이다. 거짓 예언자는, 사람에게 아첨하며(렘 6:14, 8:11), 사람들의
죄를 바로 말해 주지 아니하며, 치료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진정한 예언자는, 사람들
이 듣든지 말든지 죄를 책망한다(겔 2;7 딤후 4:2). 그러므로 그들은, 세상 사람들에
게서 미움을 받는다. 요 15:18-21 참조



계 11:11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 이것은, 적 그리스도의
시대가 지난 후(그리스도 다시 오시므로) 주님을 위하다가죽은 참 신자들이 부활할 것
을 예언한 것인데, 20:5에 말할 것을 미리당기어 말한 듯하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인
생을 지으실 때에도 인생의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서 살게 하셨다. "생기"는 호흡(숨)
의 기운을 의미하지 않고, 신혼(身魂)의 결합 생존(結合生存)을 성립시키는 능력이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그 창조의 능력으로 나타내시는 것이다. 이 능력은 주로 그
가 인생을 창조하실 때와 부활시키실 때에 나타내신다. 이 생기를 받은 두 증인의 시
체가 회생(回生), 기립(起立)할 때에, "구경하는 자들이크게 두려워하더라" - 고 했으
니,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능력이 불가항적(不可抗的)으로 나타남을 본 까닭이다.
핍박자들이 성도를 두려워할 때가반드시 한번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필경 그들을
벌하시는 때이다.



계 11:13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며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 여기 10분의 1이란 수와
7,000이란 수는 계시록의 상징수(象徵數)니 인간의 통용수(通用數)로는 얼마인지 알기
어렵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영전(靈戰)의 승리를 주실 때에 그의 원수들
을 벌하시는 일이 반드시 있을 것을 우리에게 알게한다. 역사를 살펴 보면, 교회를
핍박하던 나라에 대하여 하나님의 징벌이 내렀던 것이다. "지진"은 정치적 동란(動
亂)을 상징 할 수도 있다. "십분의 일"은 이 세상의 일부분을 가리키고, "칠천"은 적
그리스도 나라 사람들의 잔재(殘滓)이다. 이들의 멸망은 적그리스도의 죄종적 청산이
데, 19장 끝의 일을 미리 당겨 말함이다. 이때에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
늘의 하나님께 돌리" - 었으니, 이것은, 세상 끝에 있을사람들이 회개할 사실을 가리
킨 듯하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시사 구원시기의 최종기(最終期)까지 구원 사업을 쉬
지 않으신다. 이 엇구 대로 보면, 그 때에는 멸망 받는 자들보다 회개하고 구원 받는
자들의 수효가 더 많은 듯하다.



계 11:15-18

여기서는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오셔서 심판하실 것과 성도들을구원하실 것을 내어
다 보고 말한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 (15절). 이
때까지는 이 세상을, 공중의 권세 잡은 자 곧, 사단이 다스리고 있었다(비록 하나님의
섭리적 통치는 잇었으나). 그러나 이제 부터는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그것을 다스리신
다. 이것은, 세상 끝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어 세계를 하나님께로 귀정(歸正)시키
실 때를 현실과같이 내다 보는 예언이다. 17절에 말하기를, "시방도 계신 주"라고 할
뿐 이고 "장차 오실 자"란 말은 없다. 그 이유는, 여기 이 말이 주님의 재림을 맞이
한 그때에 할 말이기 때문이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 (18절)란 말씀을 보면, 하
나님은 만유를 통치하시는 대주재(大主宰)이시다. 인간은 죽어도 그 행한 대로 갚음
을 받도록 찾아 붙잡힘이 되고야 만다. 죽은자들이 심판을 받는다고 했으니, 이는 그
들이 다시 살아나서 주님의 존전에서 판단 받게 됨을 가리킨다.



계 11:19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 "언약궤"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하
나님이 그들과 맺으신 계약(癸約)의 증표(證標)인데, 그 안에는 언약의 비석들이 들어
있다(히 9:4 출 25:22). 이것이 나타나 보임은,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에게 계약하신
말씀 대로 이제 완전히 실현하시겠다는 암시이다. 그런데 그 실현 방법은, "번개, 음
성, 뇌성, 지진, 큰 우박" - 으로 상징되어 나타났으니, 곧 위엄스런 심판을 상징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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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자와 용 )

 

 

계 12:1

큰 이적이 보이니 - "이적"이란 말은, 헬라 원어로 세마이온(* )이니
"표적"을 의미하는 바, 어떤 사리(事理)를 가리키는 상징이란 말과 유사(類似)하다.
여자 - 이것은 주님의 교화를 상징하는데, 구약 교회에 근거하고 나오는 신약 교회를
가리킨다고 한다. 이렇게 신약 교회가 구약 교회에 근거하고 나오는 점에 대하여는 다
음 몇 가지 사실들이 확증한다. (1) "열 두 별의 면류관" - 은 이스라엘 민족을 생각
케 함(창 37:9). (2)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2절)란 말은, 유대인
역사에 대한 것으로 보여짐. 유대인의 역사(歷史)는, 메시야의 오심을 목표하고 해산
의 고통을 하는 역사라고 성경은 말한다(미 5:2 사66:7,8). (3) 천사 미가엘이 천계
(天界)에서 사단으로 더불어 싸워 이긴 일은, 역시 유대민족(특히 구약 교회)과 어느
정도 관련된 것임. 미가엘은 유대 민족을 보호하는 천사라고 다니엘서에 말하였다(단
10:10:13, 21). 이렇게 유대 민족중에 있었던 구약 교회를 전신(前身)으로 하고 나오
는 신약 교회가, 우리 본문이 말하는 여자로 상징되었다. "여자"를 교회의 상징으로
생각한귀절은, 계 19:7, 21:9 호 2:1 요 3:29 엡 5:31, 32등이다.
후로스트(Henry W.Frost)는, 여기 "여자"란 말이 마리아를 가리키고, 마리아는 유
대인이면서 기독 신자였으니 만큼, 세상 끝날에 있을 유대인 기독 교회를 상징한다고
하였다 (Matthew Twenty Four and The Revelation, pp.219-220). 그러나 이 학설은
자연스럽지 않다.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 두 별의 면류
관을 썼더라 - "해를 입"음은 그리스도의 의를 입은 빛나는 영광이고(계 7:9), "달"을
"발 아래"둠은 승리의 표상이다(창 37:9,10:계 2:10, 4:4, 6:2). "열 두 별의 면류
관". 여기 "열 둘"이란 숫자는 하나님의 교회를 상징케한다. 구약 교회는 열 두 지
파를 기본으로 하였고, 신약 교회는 열 두 사도를 기본으로 하였다. 그리고 "별"은
진리를 전파하는 신자들을 상징한다(창 15:5 단 12:3 눅 16:8: 살전 5:5). 시 84:12:
사60:20: 말4:2 참조. 그러므로 "열 두별의 면류관"은 교회의 승리를 표상한다.
크레다너스(Greijdanus)는, "이 여인의 이와 같은 단장이, 교회의 천적 유래(天的
由來)와 주님의 은혜와 교제에 참여할 것과 및 온 세계 위의 주권 소유를 상징한다"라
고 하였다(En Zij wordt geknschetst naar hare hemelsche dfkomst, en voorgesteld,
zooals zIj mag deelen in de volle gemeenschap, en gunst, des Heeren,en bezitten
deheerschappij over de geheele wereld. -Openbaring, p. 250).



계 12:2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 여기 "아이"는 확실히 예수 그리스도를가리켰다고 한
다. 그 이유는, "해산한다"는 동사 테카인(* )이 과거사(過去詞)인 까닭
이다. 헬라어에서 과거사(Aorist)는 단번 행위(鄲番行爲)를 가리키는 것이다. 여기
이 문법은, 확실히 단회(單回)의 사건인 예수님의 탄생을 의미한다(Greijdanus).



계 12:3

이적 - 1절에 있는 같은 말 해석 참조. 붉은용 - 여기 "용"은 사단을 상징하는데
(계 12:9 창 3:1), 그것의 "붉은" 빛은 피의 빛이니 교회를 해하려는 살기(殺氣)의 표
상이다(계 6:4).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 "어린 양"(예수)은 일곱 뿔 일곱 눈
(5:6)인데, "붉은 용"(사단)은 일곱 머리와 열 뿔이다. "어린 양"의 "일곱 뿔 일곱
눈"은, 완전 무결(完全無缺)하신 하나님의 권세와 및 성령님을 가리키고(5:6), "붉은
용"의 "일곱 머리와 열 뿔"은, 이 세상의 일곱 적그리스도 나라와 열 왕을 상징한다
(계 17:9-12). 사단은, 땅 위의 왕권들을 통하여 교회를 해하려고하나, 그리스도께서
는 천계의 권세와 영능(靈綾)으로써 사단의 역사(役事)를 멸하신다. 살후 2:8 참조.
7수는 오직 하나님에게 속한 것인데, 사단은 이것을 도용(盜用)하여 제가 하나님인 듯
이 오만(傲慢)한 태도를 취한다. 10수는 이 세상의 속수(屬藪)니 하나님께 대한 이
세상 나라들의 극도의 반역을 상징한다고도 할수있다. 13:1, 17:9-12참조. 일곱면류
관 - 사단의 대리자인 짐승은 열 면류관을 썼는데,이것은 일곱을 썼으니 하나님의 영
광에 대한 거짓 모방이며, 자칭 왕(自稱王)이라 하고 자칭 하나님이라 하는 저놈의 참
람(僭濫)되 주장을 상징한다.




계 12:4,5

"꼬리" - 는 거짓말을 상징하고(사 9:15), "별" - 은 여기서는 천사들을 상징한다
(욥 38:7). 사단은 본래 천사였으나, 하나님께 범죄하고 마귀가 되었다(벧후 2:4 유
6). 그리고 저놈이 많은 다른 천사들을 유혹(誘惑)하여 타락케 하였다. "땅에 던지"
- 는 것은 타락시킨다는 의미이다.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
더니 - 사단이 "여자"를 해하기보다 먼저 "아이"(예수 그리스도)를 해하려 한 것은,
복음의 역사로 보아서 분명하다. 예수님의 일생은, 그 유아 시에 망명 생활로 시작하
여 모든 박해를 받으시다가, 나중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을 의미한다. 싸이스(Seiss)는, 이것이 성
도들이 부활하여 공중에 올라감(살전 4:16-17)을 가리킨다고 하나 자연스럽지 않고,
엘리카트(Ellicott)는, 이것이,콘스탄틴 대제의 로마 황제됨을 비유한다고 하나 역시
억해이다.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 사단은 예수 그리스도
를멸하지 못하고 말았으니,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 승천하셨다.




계 12:6

그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 이것은, 신약 교회의 세상 생활을 이스라엘의 광야 생
활에 비하여 말한 것이다. (1)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떠나 광야로 도망하여 거기
서 믿음의 연단을 받은 것이다. 그것은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필요한 것
이었다. 그와 같이, 교회도 이 세상에서 믿음의 연단을 받는다. (2)이 점에 있어서
우리가 또 한 가지 생각할 것이 있다. 곧,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였다는 것은,
구약 교회 운동의 연속으로 나온 신약 교회 운동이,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배척을
받아 이방(광야는 異邦을 상징함)에 가서 장성하게 됨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후로스트(Henry W. Frost)에 의하면, "여자"의 도망한 사건은 다음과 같은 뜻을 가진
다고 한다. 곧, 신약 시대의 말기(末期)에 유대인 기독 교회가 적그리스도의 핍박을
받아 팔레스틴에서 이방으로 흩어진 것을 상징한다고 한다(Matthew Twenty Four and
The Revelation, p.220). 그러나 이 해석은 자연스럽지 않다.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 이 세상은 광야와 같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교회를
기르시기 위하여 지혜롭게 예비하신 곳이 그곳이다. 일천 이백 육십일 - 이것은,
12:14의 "한때와 두 때와 반때"란 기간에 해당되는 것이다. 칼빈주의 주석가 크레다
너스(Greijdanus)는, 이것을 가리켜 신약 시대라고 한다(Openbaring, p. 255).



                               ( 하늘에서의 천사들의 전쟁 )

 

 

계 12:7-9

하늘에 전쟁 -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심에 따라 마귀는 천계에서아주 떨어지
게 된 사실을 가리킨다(눅 10:18). 저놈은 항상 하나님 앞에서 성도를 참소하였던 것
이다(욥 1:1-11, 2:4, 5). 이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부
활 승천하심으로, 저놈은 천계(天界)에서 아주 떨어져 쫓겨났다(눅 10:18: 요 12:30
참조).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셔서 승천하심으로 말미암아 사단은 하늘
에서 떨어졌다고 하였는데, 어찌하여 사도 바울은 사단이 신약 시대에도 하늘에서 역
사한다고 하였는가? 엡 6:12에 말하기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
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고 한다. 우리는, 바울의 이 말씀을 모순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렇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심으로인하여 사단이 성도를 하나님께 참소
하던 자리에서는 쫓겨났으나 아직도 시험하는 자리 (이곳도 어떤 의미에서는 하늘 곧,
공중임)에는 있다가 신약 시대의 종말에 이르러서 완전히 땅에까지 쫓겨 내려갈 처지
에 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루실 확실한 일에 대하여 말할때에 그것이 미래에 될
것이지만 벌서 완성된 것처럼 말한다. 구약의 선지자들도 그런 어투를 사용하였다.
그런데 여기 진술된 "하늘의 전쟁"이 미가엘과 용 사이에 벌어 진 것 으로 말했는
데,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하여 이것이 그리스도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사건과 관
련시키는가? 우리 본문은 그리스도에 대하여는 전연 관설한바 없고,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 만을 "용"과 싸운 자로관설하지 않는가? 그러나 이것을 문제삼을 것 없다.
그 이유는, (1)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은, 인간계에서도 사람들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예를 들면, 복음 전도와 같은 것이다. 이 복음 전도가 표면에서는 사람들로 말미암아
되어 가지만, 이면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이루신다. 그처럼 "하늘의 전쟁"도 그 이면에
서는 그리스도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으로 실행되었으나, 역시 형식상으로는 미가엘과
그사자들을 통하여 실현된다. (2) 우리는 특별히 이 부분에 관설된 "하늘에 전쟁"을,
10-12절에 진술된 하늘의 음성으로 해석해야한다(R.C.H. Lenski, The Interpretation
of St. John,s Revelation, p. 372). 그 이유는, 하늘의 음성이 이 전쟁 내용을 말해
주기 때문이다. 곧, 성도들을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다는 말씀(10절)은, 구약 시대에
마귀가 성도들을 참소하였으나 그리스도의 속죄로 말미암아 이제부터는 그 참소 행위
가 종식(終熄)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바로 성도들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11절에도 말하기를,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한다.
그러므로 "하늘에 전쟁"은 결국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다시 살아나심으로
승리하신 전쟁을 말함이다.
미가엘 - 이것은 히브리 원어(* )의 음역(音譯)인데, "누가 하나님과 같으
리요"라는 뜻이다. 이것을 보면, 그 천사는 하나님을 위하여 싸우는 자이다. 이 영
전(靈戰)으로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 승천하
심으로 그승리가 결정되었다. 옛 뱀 곧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 - 이 말에 대하여는 본장 설교(마귀를 이기라)를 참조하여라.
10-12 - 이 귀절들은,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심으로 획기적으로 구원 사업이 성
취된 사실을 가리킨다.



                   ( 하늘에서의 전쟁 : 미가엘이 용을 패배시키다)

 

 

계 12:10

구원, 능력, 나라, 권세 - "구원"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보혈로 속죄하신 것을
가리킨 듯하고(계 7:10), "능력"은,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심으로 오신 성령님의 영력을
의미하고(계 4:11, 5:12), "나라"는 천국이고, 그리스도의 "권세"는 하늘에 오르신 주
님께서 천지의 주재되시는 권세를 말함이다(마 28:18). 이 문구는, 그리스도께서 죽
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셔서 승천하심으로 사단을 완전히 이기신 결과에 대한 말씀이다.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 이 점에 있어서 문제되는 것은, 여기 이 말을 하는 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1)스웨터(Swete)는이것을 "24장로 중의 하나"라고 하나 이연
(犁然)치 않고, (2)크레다너스(Greijdanus)는 "천사들"이라 하고, (3)로마여
(Lohmeyer)는 "순교자들"이라 하고, 혹은 (4)이것을 "구약 시대의 성도를"이라고 한
다. "참소하던 자"는 사단을 가리키는데, 저놈이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을 걸어 하나님 앞에서 참소하였다(욥 1, 2장 참조).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
으셨다가 부활 승천하신 사실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칭의(稱義)하기 때문에, 이제
사단의 참소하는 일은 끝났다.




계 12:11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 여기 이겼다는 말
씀은, 실상 앞절의 사단의 참소의 종식에 따라서 성립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귀절
말씀은 앞절과 서로 통한다. 여기 "인하여"란 말은, 헬라 원어로 디아(* )니 "
때문에"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이 말이 여기서 목적격 명사(目的格名詞)앞세 놓인 고
로, 승리의 도구로서의 방편(方便)을 의미하지 않고, 승리자로 여겨 주도록 한 은공
(恩功)으로서의 원인을 가리킨다. 다시 말하면, 그들의 승리는 그들 자신이 잘하여
얻은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보혈(寶血)이 그들에게 그것을 은혜로 주었고, 또 그
증거하는 말씀이 그들로 하여금 그 승리에 참여하도록 만들어 주었다. 뒤에 있는 설
교(마귀를 이기라)를 참조하여라.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 계시
록이 말하는 기독교 신자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일률적(一律的)으로 순교자들이다.
그러면 이것은, 구원 얻을 자격이 순교란 말인가? 그것은 그렇지 않다. 계시록에서는
기독 신자를, "어린 양"(죽임을 당하셨던 예수)에게서 분리하여 보지 않는다(계 14:1,
17:14, 19:11,14).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순교하지 않은 기독신자도 그리스도 안에 있
는 한(限), 그리스도의 공로(功勞)로 인하여 "이긴 자"의 자격을 누리고 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세상과 원수된 자요, 세상에게서 수난한 자요, 세상을 이긴 자로 여겨진
다.
그러므로 그들은, 벌써 은혜의 복음을 믿음으로 영생을 받았으니만큼, 아무래도 죽
을 육체의 생명(롬 8:10)을 아낄 필요 없다(11 절). 생명을 자력(自力)으로 구원하려
하지 않고 그것을 그리스도에게 "의탁"(* )하는 것은, 우리의 신
앙 생활의 요점이다. 신자는 자신을 의지하는 마음을 포기하였다. 한 손으로는 자기
를 붙잡고 의지하며, 다른 한 손으로는 주님을 의지하는 방식으로써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그대로 그리스도께 맡겨서 그리스도의 것이 되어져야 한
다. 우리는 어떤 다른 사람을 의지해도 안된다. 베드로를 의지해도 안된다. 베드로
도, 내가 의지한 주님을 의지하여 구원을 받았다. 루터(Luther)는 말하기를, "나를
위하여 죽으셨던 분으로 하여금 내 영혼을 간수하게 하여라" 하였다(Let him that
died for my soul, see to the salvstion of it). 이미 말한 것과 같이, 신자는 그의
생명을 벌써 그리스도께 맡겨 놓았으므로 자기 생명을 잃을까 하여 두려워하지 않는
다.



계 12:12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 - 이들은 주님을 믿는 자로서 벌써 별세하여 천국에
간 자들이다. "땅과 바다" - 는 땅 위의 생존자들을 통칭(通稱)한다.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그리스도께서 장차 다시 오실 시기(시기)에, 마귀는 불못에
던지움이 된다. 저놈은 땅으로 쫓겨 내려오면서 그 비운(悲運)을 알고 더욱 발악한
다.



                                ( 독수리의 날개를 가진 여자 )

 

 

계 12:13

이 귀절들은 위의 제6절을 다시 해설한 것이다. 거기 있는 해석을 참조하여라.
큰 독수리의 두 날개 - 크레다너스(Greijdanus)는 말하기를 , 여기 "두 날개"는 신앙
과 계명인데, 신자와 교회의 힘은 이 두 가지를 소유함에 있다고 하였다(De sterkte
ven geloovige en gemeente ligt in deze twee). 그러나 이 해석은 추측(推測)에 불
과하다. "독수리의 두 날개"는, 하나님께서 그 택한 백성을 시련(詩鍊)의 방식으로
양육하심을 상징한다(신 32:11-12; 시 103:; 사 40:31). "독수리는 그 새끼를 시련하
기 위하여 그것을 그 둥지에서 떨어뜨려서 날기를 가르치다가, 그것이 땅에 떨어질 위
기를 당하면 곧 그 날개로 그것을 업는다. 하나님께서 그 택한 백성을 이 방식으로
시련시키시는 일이 많다(출 19:4).
광야 - 이것은 이 세상을 비유하나니, (1)광야가 쓸쓸함 같이, 이세상도 쓸쓸함(잠
21:19). (2)광야에서는 의식주(依食住)가 곤난함과 같이, 이 세상도 그러함(시
78:19). (3)그 밖에 이 세상 모든 조건들은 우리에게 고난을 줌. 고난이 우리에게
괴로운 것 같으나, 실상은 우리를 하나님께 바로 나가도록 하여 준다. 어떤 아이가
장난감 배를 가지고 강물에 띄우며 놀았다. 조금 후에 배가 강 복판으로 들어가므로
아이는 배를 잃을까 겁냈다. 그 때에 그의 옆에 있던 사람이 큰 돌을 배 건너편에 던
졌더니, 그 아이는 배가 부서진 줄 알고 울었다. 그러나 배는 그 던진 돌 때문에 생
긴 물결을 다라 점점 강 가로 밀려 나왔으므로, 그 아이는 배를 붙잡았다. 그와 같
이, 우리가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주님과 더욱 가까와진다.
한때와 두때와 반때 - 이것은 단 9:24에 있는 "칠십 이레" 중 마지막 "한 이레"의
반부(半部)곧 삼년 반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삼년 반이란 기간을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고 했을까? 이와 같은 표현법에는 반드시 상징적 의미도 내포한다.
영 박사(E.J. Young)에 의하면, 이것은 핍박자의 활동의 세 가지 단계를 가리키나니,
곧, 그 핍박 행위가 점점 강해지다가 끝나는 것을 보여준다. "한 때"는 하나님의 은
밀한 계획 가운데 끝을 가지고 있는 기간이고, "두 때"는 그 때("한 때")의 계속을 의
미한다(Calvin). 저렇게 핍박자가 한 때 권세를 얻고 그것이 점차 강화된다는 의미에
세 "두 때"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한 때"는 그 핍박 행위의 시작을 의미하고,
"두 때"는 그 핍박 행위가 절단(絶斷)되고 말 것을 상징한다. 환난에 대한 주님의 말
씀도 이와 같은 해석을 암시한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끝은 아직 아니니라...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라고 하신 다음에
(마 24:6-8), 많은 재앙을 말씀하시고,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
시리라"라고 하셨다(마 24:22). 마 24:6; 막 13:7; 눅 21:9참조. 예수님께서 말씀하
신대로 "날들을 감하시리라"란 것은, 계속되는 환난의 날들을 감하신다는 것을 의미한
다. 그런데, 여기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란 말이 시간적으로 어떤 기간을 말하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다. (1)칼빈주의 학자들에 의하면, 그 기간이 신약 시대인데 상
징적 표현인 "마흔 두달", 혹은 "일천 이백 육십일"(11:3)에 해당되는 기간일 것이다.
(2)세대주의 학자 후로스트(Henry W. Frost)의 해석에 의하면, 이 기간은 신약의 말기
에 일어날 유대인 기독교회가 핍박 받는 "후 삼년 반" 기간이라고 한다(Matthew
Twenty Four and The Revelation, pp. 219-224).그러나 이 해석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계 12:15

물을 강 같이 토하여 - 강수(江水)는 여기서 무수한 환난의 상징인 듯하다(사
43:2). 그러나 크레다너스(Greijdanus)는 말하기를,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에
게서 멀어지게 하는, 모든 이 세상주의 (世上主義 )의 생활인데 곧,염려, 탐심, 기타
여러가지 육체적 생활을 가리킨다(마 13:22)고 하였다(Openbaring, p. 263). 또 혹설
에, 이 토한 물은 침략군(侵略軍)들을 가리킨다고 한다.



계 12:16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 이것은, 사단의
모든 악한 계교가 하나님의 섭리적 행사로 인하여 실패되는 것을 가리킨다. 예컨데 사
울이 다윗을 잡으려고 열중하던 때에, 블레셋 군이 침입(侵入)하므로 다윗은 도망할
기회를 얻었던 것이다.



계 12:17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
어 싸우려고 - 이것은, 마귀가 신자들을 개인 개인 시혹(試惑)함이다. 사단은 단체인
교회를 없앨 수 없었다. 그러므로 저놈이 이제부터는 신자들을 개별적으로 유혹하여
서 멸망시키려고 한다. "섰더라" - 는 말은 헬라 원어로 에스타데(* )라
고 하는데, "그가(용이) 섰더라"는 뜻이다. 어떤 사본에는 에스타덴(*
)이라고 하였으니, 곧, "내가 섰다"라고 번역할 수 있는 말이다. 이것을 채택하는 경
우에 있어서, 17절은 다음과 같이 번역된다. 곧,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돌
아갔다. 그리고 나(요한)는 바다 모래 위에 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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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 )

 

계 13:1

바다 - 이것은 세계 각국을 총칭(總稱)하는 상징이다.
짐승 - 계 11:7 해석 참조. "짐승"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 해석이 구구하다.
(1) 촬스(Charles)는 이것을 로마 제국이라고 하였으나, 우리 본문은 그것이 전 인류
에게 주권(主權)을 가질 자로 말한다. (2) 어떤 학자들(Elliott, Barnes, Guinness)
은, 이것이 로마 교회의 상징이라 하나, 자연스럽지 않은 의견이다. (3) 즈안(Zahn)
은 이것이 이 세상 말기에 나타날 개인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단 7 장에 나타난 네
짐승은 개인이 아니고 국가를 가리켰다. (4) 또 다른 학자들(Alford, Benson, Moris,
Auberlen)은, 이것이 역사상 언제나 어디서나 교회를 박해하는 세속적 세력이라고 하
였다. 그러나 사도 요한이 여기서 그저 막연하게 일반적으로 세속적 세력을 의미한
것 같지 않고, 특정(特定)의 기독교 박해를 내어다 보면서 말한 것 같다. (5) 가장
이연(犁然)해 보이는 해석은 다음과 같은 해석이다. 여기 묘사된 "짐승"은, 다니엘서
7 장에 기록된 "네 짐승"의 혼합체(混合體)로서 이 세상 말기(末期)에 나타날 적그리
스도 왕국의 결정이다.
왜 이 괴이(怪異)한 적그리스도 왕국을 짐승으로 상징하는가? 그 이유는, 이 괴이
한 왕국이, 짐승처럼 무지하게 인류를 착취하며 세계를 황폐(荒廢)하게 만들겠기 때문
이다. 이것은 단 7:3, 8:3에도 묘사되어 있다. 이것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이 아래
해석을 참조하여라.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 이 짐승과 및 그 열 뿔, 일곱 머
리에 대하여는 17:9-13이 해설했다. 그 말씀 가운데,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요한의 시대)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17:8)라
고 했는데, 여기 전에 있었다 함은, 안티오코 에피파네(Antiochus Epiphanes)란 인물
에게 예표되어 나타났지만, 앞으로는 그것이 본격적으로 나타났다가 멸망하게 된다는
의미라고, 크레다너스는 해석한다. 그리고 거기 또 말하기를, "열 뿔은 열 왕이니"라
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요한의 시대) 다른 이는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
드시 잠깐 동안 계속하리라" 했다(17:9, 10). 그러면, 요한의 시대에 벌써 지나간 다
섯 왕국은, 혹설에 애굽, 앗수르, 바벧론, 메대바사, 헬라 라고 한다. 그리고 시방
(요한의 시대)있는 것은 로마요 장차 와서 잠깐 동안만 있을 왕국은 로마 이후 어느
나라를 가리키는지 우리는 알기 어렵다. 그런데 이 일곱이 다지나가고 최종(最終)으
로 나타날 것은 제 8왕국이다. 그것이, 바로 본장 상반부(上半部)에 묘사된 짐승 곧,
대 적그리스도(大敵基督)이다. 혹설에 그 "다섯"은 요한의 시대 이전에 있은 로마의
5대 정체(五大政體)는 이 세상 국가에 대하여 쓰는 만수(滿數)이다. 이 문구는, 이
큰 적그리스도 나라의 권세가 극도에 달할 것을 가리킨다.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
이것은, 적그리스도가 자칭 하나님이라고 하는, "참람"한 주장을 가리킨 말이다.
`



계 13:2

표범과 비슷하고 - 이것은 얼룩진 것이니(렘 13:23) 무섭게 보임이고, "곰의 발" -
은 무지하게 덮치는 것이며, "사자의 입" - 은 잔인하게 또는 힘차게 삼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종합(綜合)은, 단 7:3-8에 있는 네 짐승의 종합으로서 최후 적그리스도의
맹수성(猛獸性)을 역설(力說)한다.




계 13:3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 이
"상"했던 머리는 어느 나라인지 모르나, 제 7 왕국(17:10)인 듯하다. 그리고 이 "주
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라는 것은, 그 나라가 망할 번하다가 재흥한 것을 이름이다.
그런데, 최후의 적그리스도 나라는, 제 7 왕국이(17:10) 망했다가 재흥(再興)한 것
곧, 제 8 왕국이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 이것은 그것이 망할 번했
다가 재흥함에 대한 기이감(奇異感)을 이름이다. 그것이 죽어 가다가(아주 죽은 것이
아님) 나아 다시 일어난 것은,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위대한 사실에
대한 거짓 모방이다. 과연 이 최종의 적그리스도 나라는 사단으로 말마암아 보냄을
받은 자니, 그것은 죄악이 화육(化肉)한 것 같은 극히 가증한 것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도성인신(道成人身)하사,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
되신 사실에 대한 정반대적 대조(對照)이다.



계 13:4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 이 말씀을 보면, 적
그리스도는 전쟁에 의하여 권세를 얻는다.




계 13:5

큰 말과 참람된 말 - 단 7:8, 20, 11:36; 살후 2:4 참조. 이것은 자칭 하나님이라
고 하는 참람(僭濫)한 태도를 가리킨다. 마흔 두 달 - 이것은 단 9:27에 있는 후반부
(後半部)를 가리킨다. 단 9:24-27의 뜻을 참조하여라. 거기 았는 대로 천사 가브리
엘이 전한 말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의 장래에 대한 것이다. 어떤 해석가들은 그 귀
절들(단 9:24-27)을 다음과 같이 세 부분으로 설명하였으니 곧, (1) 69주일(7주일과
62주일)은, 고레스왕이 성전 재건이라고 발령(發令)한 해부터 그리스도의 세례 받으신
때에 이르는 기간이라 하고, 계산은 하루를 한 허의 비유로 알고 푼다. (2) 그리고 7
주일과 62주일 후 곧, 69주일 후에는 유대인의 왕통이 끊어져 이방인의 때가 이른다는
의미에서, 본문에 말하기를,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26절)라고 하였다 하고, 이 아무
도 없다는 시기에 이방 교회의 왕성시대 곧, 신약 시대의 전폭이 포함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칼빈(Calvin)은 여기에 신약 시대의 전폭을 삽입(揷入)시키지 않는다. (3) 또
그리고 마지막 1주간은 "왕(적그리스도)"이 이르러서 모든 악행을 하게 되는데, 계시
록 13장은, 그 후반부(3年半)에 적그리스도가 연출할 최악의 사행(事行)을 가리킨다고
한다(단 7:25, 9:27). 그러나 칼빈(Calvin)은, 그 1주간을 가리켜 신약 시대의 전폭
으로 보았다. 그렇다면 여기 1주일은 영적 의미의 시일이다.



계 13:6

하늘에 거하는 자 - 이는 교회를 의미했을 것이다. 적그리스도는 언제나 하나님을
멸시하며 교회를 핍박한다.




계 13:7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 11:710 해석 참조.



계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 "어린 양의 생명
책에 녹명 됨"은, (1) 어린 양 예수님께서 그 녹명(錄名)된 자를 피로 사서 소유로 만
드셨다는 의미이고, (2) 예수님께서 그를 지켜 보관하신다는 의미도 된다. 이 녹명이
"창세(創世) 이후"로 되어 있다 함은 무슨 뜻인가? 여기 "창세 이후"란 말은, 헬라 원
어로 아포 카타볼레스 코스무(* )라고 하는
데, "세상의 기초를 놓을 때부터"라는 뜻이다. 이것은, 택한 백성의 이름이 그 때부
터 비로서 오르기 시작 하였다는 의미가 아니다. 이것은, 세상의 기초를 놓기 전에
(영원 전에) 벌써 그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는데, 세상의 기초를 놓는 때부터 변함
없이 그대로 내려온 것을 가리킨다. 벧전 1:20; 엡 1:4 에는 역시 같은 뜻있는 말이,
"창세 전에"(* )라고 씌었다. 크레다너스
(Greijdanus)도 이와 같이 해석하였다(Dan wordt gezegd, dat dit boek reeds
geschreven was, toen de wereld geschapen werd, dus reeds van eeuwigheid de namen
van's Heeren gekochten bevat.-Openbaring, p. 274).
최후 적그리스도의 핍박은,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錄名)된 자만이 이긴다. 생
명책에 녹명된 자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가리킨다. 택한 백성은, (1) 하나님이 그
들로 하여금 이기도록 도와주시므로 이기고, (2) 그들이 자신의 택함 받은 줄을 알기
때문에 이길만한 든든한 마음을 가지므로 이긴다. 물론 이 든든한 마음도 하나님이
주신다. 택함 받은 줄 아는자는, * 신인 관계(神人關係)의 따뜻한 성격을 알게 됨.
* 용기와 안전 의식(意識)을 가짐. * 하나님의 자비를 찬양하며 자기의 교만을
버린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 헬라 원어 대로 자역(字譯)하면, "그를(짐승을) 경배하리
라"고 한다. 크레다너스(Greijdanus)는, 여기 "그(* )"라는 말이 목적격 대
명사(目的格代名詞)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 경배 행위는 단순한 외형으로만의 배례
(拜禮)가 아니고, 그 대상을 신(神)으로 여기는 종교적 경배(敬拜)를 의미한다고 하였
다(Vele handschriften hebben den datief maar de accusatief zal hier wel
oorspronkeijk zijn, en aangeven, dat niet enkel een lichamelijk neerknielen *
den antlchrist gemeend wordt, maar een vereeren van hem met Goddelijke
aanbidding.-Openbaring, p. 273). 사람이 우상을 신(神)으로 알지 않고 절해도 그것
은 잘못된 행동이다. 헬라어 문법에 있어서 일반적 배례(종교적이 아닌 배례) 관계로
절한다는 동사(動詞)를 받는 대명사(혹은 명사)는 여격(與格=Dative)을 가진다.



계 13:9

2:11 해석 참조.


계 13:10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 이 말씀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성도가 적그리
스도로 더불어 폭력전(暴力戰)의 승리를 바라지 못하여도 염려할 것은 없고, 하나님을
신앙할 뿐이다. 그 이유는, 사로잡는 자(적그리스도) 자신이 마침내 그리스도에게 사
로잡히울 것이기 때문이다. 계 19:20, 21; 마 26:52 참조.
11-17 - 이 귀절들은, 적그리스도 앞에서 활동하는 거짓 선지자의 종교 운동에 대
하여 말한다.



계 13:11

땅에서 올라오니 - "땅"은, 여기서 하늘과 대립되는 것으로서 죄악 세계를 상징하
나니, 이 짐승은, 거기서 나서 사람을 그리로 유인하는 거짓 선지자의 상징이다. 새
끼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 이것은 어린 양 예수를 간교히 모방하여서 사람을 속이려
는 것을 가리킨다. 거짓 선지자는 양의 옷을 입는 법이다(마 7:15). 용처럼 말하더
라 - "용"은 사단을 상징한다. 거짓 선지자가 전하는 말은 언제나 사단의 말이다.



계 13:12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보내심을 받아 땅에 오신 것처럼, 거짓 선지자는 적그리스도
의 파견을 받아 그 권세를 대신 행한다. 이것은, 사단, 첫째 짐승, 둘째 짐승의 일체
적(一體的) 행동에 속한 것으로서 또 다시 하나님의 삼위일체(三位一體)에 대한 마귀
의 거짓 모방이다. 마귀는 언제나 모방 전술을 쓴다. 마귀는, 사람들 앞에 사이비
(似而非)한 것을 내어 놓음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따르는데만 전심하지 못하
도록 만든다.



계 13:13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 오게 하고 - 여기 "사람들 앞에"서란 엇
구로써 거짓 선지자의 이적의 성격을 알 수 있으니 곧, 사람에게 보이려고 사람의 눈
에 보기에만 이적 같게 나타내는, 거짓 이적이다(살후 2:9).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옴"은 글자 대로의 의미로 보아도 가하지만, 상징적으로 모든 기괴(奇怪)하고 사
이비한 큰 능력들을 기리킨다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물론 엘리야를 모방함이다(왕
상 18:38; 왕하 1:10). 살후 2:9-12 참조.



계 13:14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 - 1절 해석 참조.



                                 ( 세마리의 짐승과 666 )

 

계 13:15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 이것도 진정한 이
적이 아니고, 사단의 사술(邪術)로 나오는 거짓 이적을 이름이다. 위의 13절 해석 참
조. 혹설에, 여기 "우상에게 생기를" 준다는 말은 곧, 생존(生存)한 우상(인간을 우
상화함)을 세움에 대하여 가리킨다고 한다. 세상의 종말에는 인간을 우상으로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현대의 과학 만능주의(科學萬能主義)는, 곧, 인간의 두뇌(頭腦)를 우
상화(偶像化)한 그릇된 사상이다. 옛날 근동 지방에 잡종교들이 요술법에 의하여 우
상으로 하여금 말하게 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Charles). 장래에도 이와 유사한 속
이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



계 13:16

오른 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 "오른 손"은 일하는 손이고 또 교제하는 손
이니, 거기 "표(증명서)"가 필요하게 된 것은, 그 국가가 사람의 모든 활동을 적그리
스도의 주의(主義) 아래 통제(統制)하였다는 의미이다. 그 나라 사람들은, 무슨 사업
이나 활동이든지 이 통제의 허가 증표(許可證標)를 가지고서야 하게 된다. "이마"는
사람의 신분(身分)을 상징한다. 그 때에는 적그리스도의 통제법에 부합하는 인격이
아닌 자는, 생존권과 인권을 상실한다.



계 13:17

그 이름의 수라 - 이것은 그 때 적그리스도의 성명 문자(姓名文字)들을 숫자로 푼
수치(數値)란 의미이다. 고대 히브리 풍속과 헬라 풍속에는 그 방언(邦言)의 문자(文
字)로 수치를 표시하는 일이 있었다.



계 13:18

그 수는 사람의 수 - 이것은, 천계(天)의 계숫법(計數法) 대로 계산한 것이 아니
고, 인간의 계산법(計算法) 대로 센 것이라는 의미이다. 육백 육십 육 - 이 숫자를
문자로 환원(還元)시켜 적그리스도의 이름을 알아 보려는 학설은 다음과 같다. (1)
흑이 말하기를, 이것이 헬라어 음 대로의 라타이노스(* - =30, =1,
=300, =5, =10, = 50, = 70, =200)이니 만큼, 적그리스도는 로마라 하고,
(2) 흑이 또 말하기를, 이것은, 네로 황제란 말을 히브리 어로 전서(轉書)한 것 곧,
네론 카살(* =666)이라 하고, (3) 크레다너스(Greijdanus)는, 여기
"육"이란 수를 가리켜 제 7일(안식일) 전(창 2:3)의 피조물 곧, 하나님의 거룩하게 하
심을 받기 전의 세계(世界) 곧, 하나님께 속하지 않은 이 세상을 상징하고, 666 곧, 6
수의 삼중복(三重複)은, 이 세상 국가 발전(國家發展)의 극단(極端)이라고 하였다
(Daarom stelt 666, met zijn drie zessen, de volheid der gansche wereld, in hare
hoogste ontwikkeling, volledige samenwerking, uiterste krachtnspanning,
voor.-Openbaring, p. 285). 이것은 한 재미로운 해석이다. 종교 개혁자들은 이 "짐
승"을 로마 교회로 보았고, 바빙크(Bavinck)는 이것을 죄악의 세력으로 보았다
(Gereformeerde Dogmatiek, vol. IV.p. 446). 우리는 성경 본문에 의지하여, 이것이
세상의 종말기에 접근하여 일어날 적그리스도 나라를 가리켰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즈안(Zahn)과 아브라함 카이퍼(A. Kuyper)는, 이것을 어떤 개인이라고 생각했으니 일
고(一考)를 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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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14:1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 "어린 양"은 예수님을 가리키는데, 그 뜻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대신 피흘려 죽으셨던 속죄의 제물이라는 것이다. 5:6참조. "시온
산"(* )은 하나님이 계신 곳을 상징하는 산 이름인데(시 50:2,
2:6) 그 부동성(不動性), 견고성(堅固性)(시 125:1)을 의미한다. 이것은, 이 지상의
시온산을 의미하지 않고 하늘에 있는 천성(天城)을 가리킨다. 아브라함 카이퍼
(Abraham Kuyper)는 이것이 땅이 아니고 하늘 세계인 사실을 지적하기 위하여 길게 말
하였다. 그의 이론 가운데 한 가지는, 여기 묘사된(3-5) 성도들의 자격이 땅 위의 투
쟁을 다 경과하고 환성된 것을 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The Revelation of St.
John, pp. 1154, 128).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 여기 "그와 함께"란 말은,
성도들의 구원을 성립시키는 중요한 조건이다. 그들은 어린 양과 연합한 까닭에 구원
을 얻는다(17:14). "십사만 사천"은 모든 구원 받은 성도들을 상징한다. 7:4 해석
참조. 이 계시는 땅 위에서 환난을 통과하고 천계에 구원되어 들어간 참된 교회를 미
리 보여준다. 땅 위의 많은 환난이 교회를 멸망 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이, 신자들의
마음을 위로한다.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
이들은 짐승(적그리스도)을 따르는 무리와 다르게, 예수님의 이름과 및 하나님의 이름
을 "그 이마"에 표하였으니,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소유요 또 하나님의 보호를 받
는다는 상징이다.



계 14:2,3

많은 물소리...큰 뇌성...거문고 타는것...새 노래 - 이것들은 저 십 사만 사천의
노래 소리니, 그 소리가 "물소리"나 "뇌성"같다 함은 그것의 성량(聲量)이 클 뿐 아니
라 승리자의 성격이 있음을 가리키고, "거문고"소리 같다 함은 그것이 무조화(無調和)
한 음성이 아니고 각종의 음색(音色)과 곡조를 가지고서 통일된 평화 만만(滿滿)한 성
가(聖歌)임을 가리킨다. "새노래"는 위에 말한 성가의 가사(歌詞)인데, 5:9, 10의 같
은 말 해석을 참조하여라.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 사만 사천이 밖에는 능히 이 노
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 "이 노래"는 구원을 체험한 영혼의 희락(희락) 그것이니, 구
원 받지 못한 자에게는 그런 희락이 없을 것이다. 구원의 즐거움은 인력(人力)으로
얻을 수 없다. 그 이유는, 구원 그것이 인력의 산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계 14:4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 여기 이른 바 "여자"(* )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을 직역(直譯)하면 "여자들"이라고 하는데 이 세상주의(主義)
의 강한 유혹을 상징한다(민 25:1, 31:16; 신 17:17). 이 문구는, 결혼 생활을 악시
(惡視)하는 독신주의(獨身主義)의 교훈을 포함하지 않는다. 모팟트(Moffatt)는 이 문
구를 글자대로 해석하고, 이것이 독신주의를 성별 생활(聖別生活)의 요소로 가르친다
고 한다. 그러나 이 해석은, 계시록의 상징주의(象徵主義)를 인정치 않으려는 불공정
한 의견이다. 신자가 혼인하는 것은 불가한 것 아니다. 마 8:14; 고전 9:5 참조.
정절이 있는 자라 - 여기 "정절"이란 말은, 헬라 원어로 팔데노이(*
) 라고 하는데 "처녀들"이란 말이다. 이것은, 신자가 그리스도에게 대하여 처녀처럼
정결히 수절(守節)하여 세상과 죄악을 섬기지 않아야 할 것을 가리킨다. 고후 11:2
참조.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는지 따라 가는 자며 - 여기 "어디로 인도하든지" 라
는 엇구는, 헬라 원어로 호푸 안 휘파게(* ) 라고 하는데, 그
지도 방향(指導方向)이 피지도자(被指導者)에게 미리 알려지지 않은 것을 암시하는 것
이다. 이렇게 방향이 불확실해 보이는 지도에도, 그들은 순종한다. 그것은 신앙의
행동이다. 그것은, 갈대아 지방을 떠난 아브라함(창 12:1-4; 히 11:8)의 자손의 특색
인 것이다.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 - "처음 익은 열매"(* )는 무엇을 의미
하는가? 이것은 (1) 제 1세기의 초대 신자들을 상징한다는 학설이 있고, (2) 전 인류
에 대하여 교회를 구별되이 일컫는 이름이라는 학설도 있으나, (3) 그 보다도 신자들
만은 하나님께 헌납(獻納)되었고 또 하나님의 것이되었다는 의미이다(출 22:29).



계 14:5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 - "거짓말"은, 요한의 사상으로 보아서 그
리스도의 복음을 믿지 않는 생활을 의미한다. 요일 2:22, 1:6,8 참조. 그러므로 "거
짓말이 없"는 생활은, 곧, (1)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믿고, (2) 진리를 믿는 신앙과
일치하는 사랑을 가지고, (3) 죄를 고하고 숨기지 않는 것이다(요일 1:9). "흠이 없
는 자"는 그 자신이 절대적으로 무죄한 자라는 의미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
음을 받아서 칭의(稱義)된 결과, 하나님 앞에 무흠자(無欠者)로 간주된 자를 가리킨
다.
6-13 - 세 천사의 전하는 소식.
클레포드(Kliefoth)는, 이 세 천사의 활동으로 나타나는 계시를, 위에 벌써 나온 일곱
인, 또는 일곱 나팔과 관련된 계시와 딴 종류의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6절 초두의
다른 천사란 말이 위에 있는 말과 연락을 끊는다고 할 것은 없다. 위(1-5)에 천사란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할지라도 그 우뢰소리 같은 찬송(2 절)이 천사들의 찬송도 포함한
것이다(Kuyper). 그러므로 6절에 있는, "다른 천사"란 말은 돌연한 것이 아니다.



계 14:6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 여기 천사의 전도는 어떤 것을 의미
하는가? (1) 교회사 학파(敎會史學派)의 학자들은 말하기를, "여기 말한 바 천사 전도
(天使傳道)는, 교회 사상(敎會史上)에 있는 모든 진정한 전도 운동들을 상징한다"라고
한다. (2) 혹자는, 심지어 여기 "천사"의 전도가 종교 개혁 운동을 상징한다고 하였
다. 그러나 (3) 이것은 세상의 종말기에 있을 전도 운동이다. 그 이유는, 사도 요한
이 여기서 종말기의 사건들을 염두에 두고 말하기 때문이다(8 절). 그러면 이 전도
운동은, 천사가 이 땅에 와서 사람들 앞에 나타나 전도한다는 말인가? 그것은 하필 그
렇게 생각될 것은 없다. 성경은 하나님의 은밀한 일들이 천사로 말미암아 집행되는
사실에 대하여 언제든지 말하고 있다(행 7:35; 히 2:2; 갈 3:19). 카이퍼(Kuyper)는
말하기를, "천사는 언제나 중간 역활을 하여 온다. 곧, 하나님의 주관하시는 섭리와
우리의 생활 사이에 연락을 지어 준다. ...세계의 종말이 가까울수록 사단의 공세(攻
勢)는 더 강하여 지는 고로 거룩한 천사들이 더욱 맹렬히 활동할 것은 확실하다"라고
하였다(Angels have always been the middleliks, if we may say so, which establish
the coherence between our life on earth and the over-ruling providence of God.
This being sol it goes without saying, that the more the Consummation draws
near, and with it the final conflict between God and Satan, the more these
demoniac attacks increase in malignant intensity. Naturally therefore in Rev.
14, with the transition of the trumpet to the vials, both the action of evil
angels and the counteraction of good angels are in greater evidence. It would
have been unnatural if, in that hour of greatest danger, the holy angels had not
done their utmost to avert the power of Evil.-The Revelation of St. John, p.
115-116). 여기 천사의 전도는, 천사가 땅 위에 직접 나타나 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하늘 위에서 하나님의 복음 전도 경륜을 실행 하는데 천사가 사역함을 이름이
다. 천사는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 그 사역을 통하여 복음 전도자들에게 연락할 것이
다. 따라서 전도는 인간들이 하게 될 것이다.
왜 복음을 "영원한" 복음이라고 하는가? 그 이유는, (1) 복음은 진리 이므로 세상
의 종말에도 원래(原來)의 것 그대로 전파되는 까닭이고, (2) 이 복음은 이처럼 하나
님께서 세상의 종말까지 쉬지 않고 전하시는 까닭인 듯하다. 여러 나라의 족속과 방
언과 백성 - 이것은, 전 세계를 가리키는 계시록의 엇법(語法)이다. 5:9의 같은 말 해
석 참조.



계 14:7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 이 말씀은, 인생의 본분(本分)을 지
적하는 전도이다. 하나님께서 인생을 창조하신 목적은 인생으로 하여금 그를 경외하
게 하며 영화롭게 하려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 경외의 구체적 방식은 말하지 않았
으나, 그것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이다. 혹설에, 여기 천사가 취급하는 복음
전도는, 택한 백성에게만 구원 소식이 되는(기쁜 소식이 되는). 심판 선포를 의미한다
고 하나 이연(理然)치 않다.



                                     ( 바벨론의 멸망 )

 

 

계 14:8

여기서부터 끝절까지는, 16-19 장 에 있는 세상 심판을 서론적으로 미리 당겨 보인
것이다. 바벧론 - 이것은, 17 장에 기록된대로 "큰 음녀"로도 상징되었으니, 11:8의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는 큰 성" 곧, 하나님을 배반하는 이 세상을 가리
킨다. 이것은 성도와 반대되는 것이며, 모든 나라 사람들로 이 세상 정신에 취하게
만든다. 크레다너스(Greijdanus)는 말하기를, "바벧론이란 이름은 세상 권세의 중심
점을 가리키는데, 그것이 시대를 따라서 여러가지 국가로 나타나는 바 하나님과 그리
스도와 교회를 거스리는 것이다"(시 2편) 라고 하였다(Daardoor werd deze naam
aanduiding van de wereldmacht, met haar centrum, die zich in den loop der eeuwen
in verschillende wereldrijken belichaamt, en tegen God, en zijne Christus, en
zijne gemeente, stelt, PS. 2.-Openbaring, p.290). 17:1의 "큰 음녀"에 대한 해석을
참조하여라. 무너졌도다 - 이것이 과거 동사(過去動詞)로 사용됐으나, 아직 무너진
것은 아니고 앞으로 그렇게 될 것을 확실히 내다 보고 말하는 예언이다.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 바벧론은 곧 이
세상이니, 그 자신이 하나님을 배반하여 큰 음녀(섬겨야 할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다
른 신과 자기 자신을 위하는 자)가 되었다. 그 뿐 아니라, 그것은, 강제적으로 혹은
미혹적으로 사람들(나라들)을 유인하여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한다. 이리하여 모든
나라들은 이 바벧론의 음행에 동참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하나님의
진노로 인하여 그들이 비틀거리며 넘어지니, 이는 취하게 하는 술을 마신 것 같음)를
마시게 되었다. 이같은 바벧론은 저만 범죄할 뿐 아니라 남들로 범죄케 하는 괴악한
자이다.
9-12 - 짐승(적그리스도 나라)과 구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처벌(處罰)함에 대
한 천사의 선고.



계 14:9

짐승 - 13:1-10 참조. 그의 우상 - 13:14-17 참조.



계 14:10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 8절 해석 참조.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 - 이것은 물 같은 것을 타지 아니한 강주(强酒)니, 하나님의 강한 진노를 상징
한다. 짐승에 속한 자들도 회개할 소망이 없는 극악한 자들이니 만큼, 하나님의 진노
그대로 받는다. 그러므로 그 무리가 받는 벌은, "대접"(계 16:2)에 담아 붓는 것으로
상징된다. "대접"으로 재앙을 내려 붓는 것은, 그것을 남김 없이 쏟는 것을 상징한다.



계 14: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 이것은, (1) 불로 소금치듯 하는 지옥
(地獄) 화형(火刑)의 영구한 계속을 가리키는 동시에(막 9:47-49), (2) 그 처벌 받은
자들의 당하는 영원한 황폐(荒廢)를 상징한다. 사 34:9,10 참조.



계 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 이것은 성도들을 주의시키는 문구이다. 위에 말한
바와 같이, 지옥의 형벌이 무서우니 만큼, 성도들은 모든 고난을 끝가지 참아 견디어
신앙을 놓지 않아야 된다.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 - "예수 믿음"이
라는 말이, 구역(舊譯)에는 "예수의 도리"라고 잘못 번역되었다. 하나님의 계명은 예
수를 믿음으로만 지키게 되어진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계명을 극력
(極力) 지키도록 힘쓴다. 그 이유는, 그가 성령님의 감화(感化)를 받기 때문이다.



계 14:13

본절은 윗절에 있는, 성도의 인내에 대한 하나님의 보수(報酬)에 대하여 말한다.
기록하라 - 하나님께서 성도의 고난을 갚아 주시는 원리는 영원 불변의 진리이므로 천
래의 음성은, 사도더러 이것을 기록하라고 말씀한다.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수난(受
難)하나, 내세에 그것에 대한 갚음을 받는다는 이법(理法)은, "기록된"진리 곧, 불변
의 진리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아는 그들은 난관을 당할 때에 더욱 용기와 인내로써
전진한다. 자금 이후 - 끝날 심판이 접근했으니 만큼, 주님을 믿고 죽은 자들이 구원
완성을 보게 될 시기는 멀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천래의 음성은 말하기를,
성도들의 내세적 축복이 이제부터 임한다고 한다. 일설에, "자금 이후"의 시대는 일
반 신약시대를 가리킨다 하고, 이 귀절이 신약시대에 예수 믿고 별세한 자가 받는 천
당 복을 의미한다고 한다. 주안에서 죽는자들 -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일생
을 마친 자들을 가리킨다.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헬라 원어로 호이 네크로이 호
이 엔 퀴리오-아포드네이스콘데스(*
)인데, 우리 개역(改譯)은 직역이다. 구역에, "주를 높이다가 죽
은자"라고 한 것은, 글자 대로의 역술(譯述)이 아니고 의역(意譯)이다. 이 엇구는, 그
리스도를 믿는다고 고백할 뿐 아니라, 그로 더불어 연합하여 교제하는 생활에 거하다
가 별세하는 자를 의미한다. 살전 4:14참조. 성령이 가라사대 - 이것은, 성도의 사
후 유복(死後有福)에 대한 제3확보이다. 제1확보는 예언자 자신이 하였고(12), 제 2
확보는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고 한 것이다(13절). 성도의 내세의
유복은 이렇게 견고히 삼중(三重)으로 확보되었으니, 그들은 이 세상에서 무슨 고난을
받든지 기쁘게 참아 나아갈만한 소망의 근거를 가졌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
이것은, 그들이 영광의 세계에 들어가서, 안식을 누릴 것을 가리킨다. 이는 - 헬라
원어로 가르(* )라고 하는데 안식의 이유를 보이는 이유 접속사(理由接續詞)이
다.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 그들이 "행한 일"은 그들의 자력(自力)의 산물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로 주신 의로운 행실들이다(19:8). 이런 의로운 행
실 때문에 그들은 하늘 상급을 받는다.
14-20 - 이 귀절들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두 가지 추수(秋收)로 나타난다.



계 14:14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 "흰구름"은 그리스
도의 순결과 및 그 장엄(莊嚴)한 영광의 표상이고, "사람의 아들과 같은이"는 예수 그
리스도를 가리킨다. 이 귀절은, 복음서에 있는 것과 같이, 구름 타고 오실 주님을 염
두에 두고 한 말이다.



계 14:15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
여기 "천사가 성전"에서 나온다고하였으니 만큼, 그는 독자적(獨自的) 권위(權威)를
가지고 그리스도에게 명령한 것이 아니고, 성전 안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전
달하는 것 뿐인 것이 명백하다.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 욜3:12,13참조. 이 곡물(穀物)추수에 있어서는 예수 그리
스도께서 친히 그 거두시는 일을 하신다. 그 이유는, 그수확의 대상이 그의 것 곧,
택하심을 입은 성도들이기 때문인 듯하다. 이 추수는, 그가 성도들을 영광의 나라로
데려 가심에 대한 상징이다(살전4:17).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 이것은 성도들의
수효가 찼다는 뜻이다.



계 14:18

포도송이 - 이것은 여기서 불경건(不敬虔)한 자들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 추수는
주님께서 친히 하시지 않고 천사를 시켜서 하실 것으로 표현된다(17,18). 그 이유는,
그 수확이 주님께 가까운 관계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어버림이 된 까닭인 듯하다(마
13:41,42). 포도가 익었느니라 - 이것은 죄악이 관영한 것을 비유한다.



계 14:19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 이것은, 저 악도(惡徒)들이 천벌(天罰)을 받아서
살륙 당하는 것이, 마치 포도가 그 즙 짜는 압착기(壓搾機)에 짜임 같이 되리라는 비
유이다.



계 14:20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 사 63:1-6참조. "성"은 천성을 이름이다. 그들은 들
어가지 못하고 그처럼 천벌을 받은 것이다(마8:12참조). 말 굴레까지 닿았고 - 이것
은, 전쟁으로 인하여 흘린 피가 그렇게 많을 것을 비유한 말씀이다. 그 이유는, 말은
전쟁의 상징인 까닭이다 흑설에 이것은 16:16에 있는 "아마겟돈"전쟁의 결과를 미리
당기어 보이는 상징 이라고 한다. 일천 육백 스다디온 - 이 숫자는 역시 상징적 의미
를 가진 듯하다. 1,600이란 수는 40을 제곱한 것이데, 40은 형벌을 상징하는 수량이
라는 학자들이 있다. "하스다디온"은, 606피-드 9인치(英尺)라고 한다.
클리에포드(Kliefoth)는 말하기를, "1,600이란 수효는, 4수를 제곱하여 다시 100으
로 곱한 것이다. 4를 제곱하는 것은, 온 천하를 가리키고, 100수는 10을 제곱한 것이
니 그것은 영원을 가리키는 바 성도의 원수가 받을 영벌(永罰)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러한 피가 "1,600스다디온에 퍼졌"다함은,끝날에 하나님의 벌이 온 천하적으로 성도
의 원수들에게 임하여 영원토록 그러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런 벌은, 영원히 풀릴
소망도 없고, 피할 수도 없이 사방의 모든 원수들에게 있을 것이다(a distress and an
eternal future misery which is in every direction and for all times would
consummate in doom.-A. Kuyper, The Revelation of St. John, p. 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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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5 - 강해 ( 계 15-18 장 ) 요한계시록 / 신약성경강해

2009.10.02. 19:15

복사 http://blog.naver.com/apectria/90383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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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15:1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 - 이 "이적"은, 헬라 원어로 세마이온(* )
인데, 표호(標號)를 의미하는 바 앞으로 있을 큰 일에 대한 징조를 가리킨다.


 

                           ( 불이섞인 유리바다에서의 찬양 )

계 15:2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 이 문구를 읽을 때에 우리가 주의할 것은, "같은
것"(* )이란 말이다. 요한이 본 것은, 유리 바다 같은 것(비유)이고, 글자 대로의
유리 바다는 아니다. "유리 바다"는 맑아서 어두움이 없는 하나님의 의(義)와 심판에
대한 비유이다. 그런데 거기 "불이 섞"였다 하였으니, 이는 진노의 심판을 상징한다.
우리는 이 아래 문맥을 보아서 옛날의 이스라엘과 애굽인과의 사이에 심판이 된 홍해
를 연상케 된다. 홍해는 이스라엘에게 구원의 길을 내어 주었고, 애굽인에게는 멸망
을 준 심판이었다(출 14장, 15장). 그처럼 세상 끝에 구원 받은 성도들이 심판의 건
너편에 서서 찬송을 한다.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 이 수효는 적그리스도의 이름
문자를 수치(數値)로 푼 것이니, 그것을 이마에나 오른손에 소유하지 않은 자는, 그
적그리스도 나라에서 생존권을 빼앗겼던 것이다(13:17). 이 성도들은, 그 생존권을
희생하면서도, 적그리스도의 가증한 이름표를 받지 않았던 것이다. 이들은 실제로 순
교한 자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승리의 신(요일 4:4)을 받은 거듭난 자들을 총칭
한다. 신자들의 승리는 그리스도와 성령에게 있으니, 그 승리의 실현이 원리적 으로
는 벌써 되어 있는 것이고, 세상에서 나타나기는 점차적으로 되어 가는 것이다. 하나
님의 거문고 - 이것은, 하나님께서 지어 주신 악기(樂器)인 동시에 하나님을 봉사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미이다.



계 15:3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 - "모세의 노래"는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는 후에 부
른 노래니, 하나님의 구원력(救援力)의 크심을 찬송한 갓이다(출 15장). "모세의 노
래"는, (1) 하나님의 능력을 찬송함(출 15:2, 3, 6)과 (2) 하나님의 왕권을 찬송함(출
15:18)과, (3) 하나님의 거룩을 찬송함(출 15:11)이다. "어린 양의 노래", 어린 양과
같으신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을 구원하셨으므로, 그들이 그 구원을 기뻐하며 부르게 되
는 노래란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대속하신 고로 그들에게 그런 노래가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일곱 대접재앙을 내리시므로 그 백성의 원수를 멸하시고 완
전히 그들의 구원을 이루실 것에 대한 예언적인 노래이다. "어린 양의 노래" 역시,
(1) 하나님의 능력을 찬송함(3절)과, (2) 하나님의 무상적 왕권(無上的王權)을 찬송함
(3절)이며, (3) 하나님의 거룩을 노래함(4절)이다. 그러므로 이 두 노래는, 하나님께
서 그 원수들을 멸절시키시고, 그의 성도들을 구원하시는 일에 나타난 삼대 속성(三大
屬性)을 찬송하는 노래이다.
크고 기이하시도다 - 1절 해석 참조.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 "주의 길"은
주님의 행사를 의미하고, "의롭다"함은, 주님의 심판하시는 공의, 곧, 죄를 벌하시지
아니치 못하시는 성품을 기리키고, "참되시다"함은 그가 약속하신 말씀 대로, 일일이
다 이행하신다는 의미이다.



계 15:4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 여기 "거룩하다"는 말은, 헬라 원어로 호시오스(*
)라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심판에 의하여 그의 피조물에게 대한 그의 관계 행위
를 흠 없이 완수하심을 의미한다(Swete).



계 15:5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린"다 함은, 하늘의
지성소(至聖所)가 열린다는 말이니,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언약이 최종적으로
실현될 것을 상징한다.



계 15:6

성전으로부터 나와 - 여기 "성전"이란 말은, 헬라 원어로 나오스(* )니 지
성소 곧, 하나님의 계신 곳을 가리킨다. 천사들이 하늘 지성소에서 나옴은 그들이 하
나님의 친임 사명(親任使命)을 가지고 나타남을 의미한다.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
고 - 이것은 그들의 성결을 상징한다. 심판은 하나님의 성결성의 발동으로 되는 것이
니, 그 실행과 결과가 전연 성결한 것이다. 이제 일곱 대접 재앙으로 나타날 심판을
집행하는 천사들은, 성결을 옷입듯한 자들이다. 가슴에 금 띠를 띠고 - 이것은, 왕적
위의(王的威儀)를 상징하는데, 심판자(왕)의 사신들은 불회개의 악도들 앞에 그런 위
엄을 가질 것이다.



계 15:8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인하여 성전에 연기가 차게 되매 - 사 6:1-4 참조. 여기
"영광"은 그의 성결의 광채요, "능력"은 그의 심판의 위력(威力)일 것이다. 이 둘은
주님의 거룩하신 진노의 기세(氣勢)인데, "연기"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마지막 심판의 재앙을 내리시는 때에 그 진노가 물가항적(不可抗的)으로 임하게 될
것을 가리킨다. 그 때에는, 아무라도 그에게 접근하여 그의 진노를 그치게 할 수 없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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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16:1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 -
"성전"은 하나님이 계신 장소이므로 거기서 "음성이 난"다 함은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
하심을 의미한다. 여기서도 "땅"에 임하는 심판이 하늘에서부터 발동된다는 사실이
알려진다.



                                          ( 일곱대접의 저주들 )

 

계 16:2

악하고 독한 헌데 - 이것은 애굽
에 내렸던 재앙인데(출 9:10), 세상 끝이 아주 가까운 때에 적그리스도 숭배자들에게
도 내린다. 11절을 보면 이것은 심히 아픈 헌데인데, 하나님께서 그 원수를 벌하시는
방편(方便) 중 하나이다(신 28:27, 35). 이런 재앙은 네로 황제의 시대에도 있었다고
한다(D* sterdiek). 적그리스도라고 할 수 있는, 안디오커스 에피파네(매코비 시대
에 유대인을 박해한 자)도 벌레가 창자를 먹어 죽게 되었고, 헤롯 안디바도 몸에 벌레
가 먹어 죽었으니(행 12:23), 그것 도 이와 비슷한 재앙이다.



계 16:3

바다 - 이것은 열국(列國)의 상징인데 그것이 피가 된다 함은, 인류가 죽어서 온
세계가 많은 죽음으로 뒤덮이게 될 것을 가리킨다. 혹설에 의하면, 이것은 글자 대로
의 의미를 가진다고 하는데, 바다의 물이 실제로 피가 되므로 어류(魚類)가 죽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 해석도 이연(理然)한 듯하다. 옛날 애굽에도 이런 재앙이 있었
다(출 7:17-21).



계 16:4-7

강과 물 근원에 쏟으매 피가 되더라 - 이것은 음료수(飮料水)를 마사지 못하게 만
드는 벌이다(시 78:44). 오늘날 인류는 음료수에 대하여 그렇게 귀한 줄 모른다. 그
이유는, 그것이 핍절(乏絶)하지 않고 흔한 까닭이다. 이 흔하던 물이 홀연히 피가 된
다면 인류는 다 죽을 수 밖에 없다.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거룩하신 이 - 이 문
구는 "장차 오실 자"란 말이 없는 이유는, 이 발언(發言)의 때가 최후의 심판 시기(주
님의 재림시기)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가리켜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이"라
함은, 영원 자존의 주재자 곧, 심판자라는 의미이고, "거룩하심"은 죄에 반대되는 하
나님의 성품(性稟)이니 곧, 심판자의 자격이다. 피를 흘렸으므로...피를 마시게 하신
것 -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 행위에 흔히 나타나는 비례식 보응법(比例式報應法)(시
18:24-27)이다. 극악(極惡)한 죄인들은 "네게서 난 것이 네게로 돌아간다(出乎爾者
反乎爾)"라는 원리대로 무섭고도 정확하게 보복(報復)을 받는다. 제단이 말하기를 -
6:9,10을 보면, 제단은 성도가 신원(伸寃)을 위하여 기도하던 곳이니, 이제는 그 기도
가 응답되어 거기서 그 신원의 지당성(至當性)을 언명(言明)한다. 6:9,10 해석을 참
조하여라. 참되시고 - 이 말은, 헬라 원어로 알레디나이(* )라고 하
는데 여기서는, 그 심판이 하나님의 말씀 대로 신실(信實)히 임하였을 뿐 아니라, 심
판의 이상(理想)과 내용이 완전히 실현(實現)됨을 가리킨다(Greijdanus, Het
beantwoordt ten volle niet enkel aan Gods uitspraken, maar ook aan de idee* n
van oordeelen of vonnissen.-Openbaring, p. 324).
의로우시도다 - 이것은 제단에서 나오는 말인데, 심판때에 하나님이 하실 일을 가
리킨다. 제단에서 속죄의 자비를 나타내는 일은 대심판 전까지 이다. 대심판 때부터
는 속죄의 제물을 드리는 일은 정지된다. 이런 의미에서 15:8에 성전은 닫히었다는
의미로 말씀한다.



                                         ( 일곱대접의 심판들 )

 

 

계 16:8,9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 이것은 8:12에 기록된 재앙과 대조된다.
거기서는 햇빛의 광도가 감해진 것을 말하고, 여기서는 그 열도(熱度)가 가해지는 재
앙에 대하여 말한다. 하나님은 있는 것을 없게도 하시고, 없는 것을 있게도 하신다.
자연계가 하나님의 은혜로운 간섭(干涉) 아래서는 인간에게 유조(有助)하나, 그의 진
노(震怒) 아래서는 인생에게 해로운 것이 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대하여 한
번 진노하시면 자연계의 천태만상(千態萬象)도 인생을 해롭게 해 수 있다.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하더라 - 하나님께서 인생에게
성령(聖靈)을 주시지 아니하시면, 그(인생)는 하나님의 사랑이나 벌을 아무리 받아도
회개하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을 저버린다. 인생은 전적 부패했으므로 거듭나기 전
에는, 그의 가장 정미로운 것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한다. 그의 사악(邪惡)한
근성(根性)은 재앙을 받는때에 특별히 드러난다. 크레다너스(Greijdanus)는 말하기
를, "이 귀절의 말씀을 보니 이 재앙의 목적 역시 죄인들에게 회개의 동기를 주시려는
데 있다"고 했다(Bekeering was ook nog het doel dezer plagen.-Openbaring, p.
325). 이 학설도 어느 정도 그럴 듯하다. 하나님은 과연 죄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시
지 아니하신다(겔 18:23; 벧후 3:4). 그가 마지못하여 극악한 죄인들을 벌하시되, 그
들이 회개하기를 희망하시나니 저희의 망하는 것을 유쾌히 여기시지 아니하신다.



계 16:10,11

짐승의 보좌에 쏟으니 - 이것은, 문자적 의미 대로 햇빛이 어두워지는 재앙을 가리
킨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적그리스도의 정치가 어두워지므로 그 백성이 그 어두운
정치에서 받는 고초(苦楚)를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다. 9:1-11에 있는 다섯째 나팔
재앙이 역시 이와 비슷한 흑암의 재앙이다.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 이
것은, 그들이 종기(腫氣)의 고통 중에 감감한 암흑을 당하므로, 견딜 수 없어 안타까
와 함이다. 죄는, 일시적 쾌락(一時的快樂)을 주지만, 그 결과는 영원히 안타까운 고
통을 가져 온다. 안타까운 고통은 죽음보다 불행한 것이다(계 9:5,6). 출 9:11 참
조. 회개치 아니하더라 - 위의 8,9절의 해석 참조.




계 16:12

유브라데 - 여섯째 나팔의 재앙에 있어서도 그리했지만, 여기 여섯째 대접의 재앙
도 유브라데강과 관계를 가진다. 그러므로 대접 재앙은, 나팔 재앙을 좀 다른 형식으
로 거듭 말한 것 뿐이라는 학설이 있다. 유브라데강은, 옛적 이스라엘의 이상적 국경
(창 15:18)인데 열국(列國)의 왕이 거기를 넘어 온다 함은, 적그리스도 나라와 및 그
연방(聯邦)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침략한다는 비유이다. 그러므로 유브라데강은, 글자
대로의 의미로보다 상징적 의미로 봄이 적당하다. 이 세상 끝날에 적그리스도 나라와
및 그 연방들의 위치가 세계의 어느 경역(境域)에 있든지, 모두 다 이 비유 안에 총괄
되었다. 이 전쟁이 17:12-14, 19:11-21에도 재설(再設)된 듯하니, 그 귀절들의 해석
을 참조하여라. 강물이 말라서 - 사 11:15, 16 참조. 이것도 비유니, 큰 강물이 마
를 듯한 대 경이(大驚異)의 사변(事變), 곧, 원방(遠方)의 국가들이 대군(大軍)을 가
져다가 전쟁하게 될 사변을 가리킨다. 오늘날의 과학적 운수(科學的運輸)는 하해(河
海)를 육지 같이 건너는 형편이 되었다.



계 16:13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 - "개구리"(* )는 떠듦과 추함을 그 특
징으로 하는 것인데 애굽에 내렸던 재앙 중 하나이다(출 8:6). 이것이 바사 종교에서
죽음과 재앙의 근원으로 인정되어 있는데(Charles), 이렇게 이방 종교에서도 그것을
흉물(凶物)로 알았다. 그러나 우리 본문에서 이것이 관설된 것은, 출 8:6과 관련되었
다. 이것은 사귀를 상징한다. 사귀의 운동은 평화롭지 않고 소요(騷擾)하며, 성결하
지 않고 추악하다. 소란을 일으키며, 추악한 짓을 일삼는 국가는, 이런 사귀의 충동
(衝動)을 받는 것이다.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 이것
은 사단과 짐승(적그리스도)과 선지자(13:11)의 삼위 일체(三位一體)임을 암시한다.
이 삼합 일체는, 부신(父神)과 자신(子神)과 성신(聖神)과의 삼위일체(三位一體)를 흉
내 내는 간교한 현상이다.



계 16:14

귀신의 영 - 이것은 헬라 원어로 프뉴-마타 다이모니온(*
)이니 직역(直譯)하면, "귀신들의 영들"이란 의미이다. 이적을 행하여 -
이것은 하나님의 이적과 달라서 그 목적은 악하고, 그 방법은 거짓되다(살후 2:4).



계 16:15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 어떤 사본(38, 47)에는, "그가 도적 같이 오리니"(*
라고 하였다. 그러나 사본(寫本)의 권위로 보아서 이
둘째 사구(寫句)를 받기 어렵다. 이것은, 주님께서 홀연히 뜻밖에 두려운 사변(事變)
으로 내림(來臨)하실 것을 가리킨다. 이 사변적 내림은 여기서 세계적 전쟁을 의미한
다. 이 전쟁이 광명한 자(참 신자)에게는 구원을 알게 하는 심판의 뜻으로 알려진다.
그 이유는, 이것이 암흑과 광명, 참신과 거짓 신을 나타내는 심판이기 때문이다. 이
전쟁하는 동안 어떤 신자들은 순교의 복된 기회를 얻고, 어떤 신자들은 하나님의 기이
(奇異)한 보호 밑에서 정절(貞節)을 지키면서, 흑암의 권세가 천벌(天罰)을 받아 망하
는 것을 본다. 그와 반면에, 어떤 의식자들은 이 때에 더욱 타락한다. 그러므로 이
때에 신자들의 복 받을 길은, 오직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 -
는 그것 뿐이다. "깨"는 것은 힘써 기도함이고(엡 6:18; 벧전 4:7; 마 26:41), "옷을
지킨"다 함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사죄 받고 새로워진 신앙 인격(信仰人格)을 보수(保
守)함이니, 이 보수는 신앙으로만 할 수 있다. "벌거벗고 다닌"다 함은 이 신앙을 버
리고 방종하게 그 때의 타락한 세상과 타협함이다.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 - 이것은 위의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함
"의 결과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공로(功勞)를 신앙으로 힘입으면 사죄를 받아 자
기의 수치(사람은 누구나 나면서부터 죄인이므로 그리스도 밖에서는 자기의 수치가 따
름)를 면한다.



계 16:16

아마겟돈 - 이것은 본래 하르 메깃도(* )인데, 거기서 바락과 드보라
가 가나안 왕을 멸하였고(삿 5:19), 또한 거기서 아하시야왕이 예후위 화살에 죽었고
(왕하 9:27), 거기서 바로느고가 유대 왕 요시야를 죽였다(왕하 23:29; 대하 35:22).
그곳은 유대인들이 국가적 슬픔을 표시할 때에 관설한다. 따라서 그곳은, 온 세상의
비애(悲哀)를 상징할 수 있는 곳이다. 다시 말하면, 그곳은, 세계 최후 전쟁의 명칭
으로 사용된다, 궁켈(Gunkel)과 부셋트(Bousset)는, 이 명칭이 어떤 옛날의 신화(神
話)에 근거한다고 하였다(Sch* pfung und Chaos, 263-266). 곧, 옛날에 어떤 산에서
신(神)들이 최후 전쟁을 하였다고 하는 신화에서 이 명칭이 왔다고 한다. 그러나 그
것은 억설이다(Swete). 사도 요한은, 일률적으로 구약 사상만 인용한다. 그러면, 이
명칭은, 세상 끝날에 하나님의 백성이 적그리스도 나라들을 이긴 전승지(戰勝地)에 대
한 상징적 명사(象徵的名詞)가 될 만하다.



계 16:17

공기 가운데 쏟으매 - 이것은 성경이 말한 대로 사단의 활동 근거지인 공중에 재앙
을 내림이다(엡 2:2). 하나님께서 사단의 근거지를 치시매, 사단의 힘에 의존하던 땅
위의 모든 조직체들(예컨데 바벧론과 및 모든 이 세상 국가들의 도시들)이 무너진다.
이 귀절들의 말씀은, 17-19장에 있는 말씀(바벧론과 적그리스도 나라들의 멸망에 대한
것)에 대한 머리말임에 틀림 없다. 되었다 - 천국의 원수들은 다 처분되고 구원은 완
성될 것이 아직 미래의 일이지만, 그것의 확실성을 표시하기 위하여 여기서 과거사(過
去事)로 말한다.




계 16:18

번개, 음성, 뇌성, 지진 - 이것은 대심판이 나타날 것을 시위(示威)하는 상징들이
다(4:5, 8:5의 해석 참조).




계 16:19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 여기 이른바 "큰 성"은 바벧론인데 17장에 해설된
다. 로마여(Lohmeyer)는 말하기를, 여기 이른바 "큰 성"은 예루살렘인데, 이것을 영
적으로 이해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 이름(固有名詞)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Die
grosse Stadt kann nur urspr* nglich Jerusalem sein; doch bekundet sich in dem
Fehlen des Eigennamens wohl das geistliche Verst* ndnis des
Sehers.-Offenbarung, p. 137-138). 그러나 이 해석은 마땅치 않다. "세 갈래로 갈
라짐"은 완전한 멸망을 가리킨다. 진노의 포도주잔 - 14:8 해석 참조.




계 16:21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 - 구역(舊譯)에서는 이것을 100근으로 환산하였다. 이
렇게 위로부터 이상한 포재(雹災)가 내려 타도(打倒)하고, 아래로부터 지진이 땅을 터
트리니(18절), 그 때에 죄인들은 피할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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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 17:1

많은 물 위에 앉은 - 본장 15절을 보면, "많은 물"은 열국(列國)을 상징하고, "큰
음녀" - 는 대도시(大都市)를 가리킨다고 한다. 혹이, "큰 음녀"란 말을 가리켜 로마
교회라고 하나, 그 해석은 18장 내용과 맞지 않는다. 18:11-20을 보면, 이것은 세계
적으로 모든 상품(商品)을 수입(輸入)한 자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님을 배반하는
이 세상과 및 거기 속한 것들을 총칭(總稱)한다. 이 세상은 이롸게 큰 음여로 나타나
서 앞에 나온 12장의 "해를 옷입듯한 여자" 곧, 교회와 대조된다. "큰 음녀"는 하나
님을 반역한 자이고, "해를 옷입은 듯한 여자"는 하나님 앞에 신실한 자이다. 17:16
을 보면, 적그리스도와 및 연방(聯邦)들이 이 음녀를 불사른다고 했으니, 그것은, 적
그리스도가 원인이 되어 일어난 세계 전쟁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과 및 거기 있는 것들
(하나님을 배반하는 것들)이 아주 파괴될 사실을 가리킨다. 적긔스도의 악사상(惡思
想)이 아니면, 이 큰 전쟁이 일지 않을 것인데, 그것으로 인하여 그 큰 전쟁은 일고
또 이 세상 문명은 파괴된다. 우리의 몸이 죽고야 영광의 부활을 받는 것처럼, 이 세
상도 종말에는 아주 죽는 것 같이 파괴되고, 새 예루살렘 세계가 나타난다.



계 17:2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 이것은, 땅위의 지도자들이 이 세상 주의
에 몰두(沒頭)하여 하나님을 신앙하지 아니함이다.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 이
세상주의(世上主義)는 술과 같아서 인간을 유혹(誘惑)하고, 또 거기 취한 자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여, 깨달으려고 하지도 않고 하나님을 배반한다.



                        ( 커다란 짐승을탄 바벨론 )

 

계 17:3

광야로 가니라 - 요한이, 새 예루살렘 곧, 영화롭게 된 교회(천국)는 산에서 보고
(21:10), 바벧론(하나님을 배반하는 이 세상)은 광야에서 본다. 크레다너스
(Greijdanus)는 말하기를, "공야는 메마르고 적막하고 죽은 무신론적 생활(無神論的生
活)을 상징한다"고 하였다(Deze woestijn verzinnebeelt het dorre doodsche, leege,
en woeste, van leven buiten God.-Openbaring, p. 338). 이 세상주의는 장차 광야처
럼 된다. 그것은, 제 18장이 자세히 묘사한다. 여자 - 1절 해석 참조. 붉은 빛 짐
승을 탔는데 - 여기 "붉은"이란 말은, 원어로 콩키논(* )이라고 하는
데 12:3에 있는 "붉은(* )이란 말과 다르다. 거기서 "붉은"이란 말은 살
기(殺氣)의 상징이고, 여기 "붉은"이란 말은 사치하고 호화로운 것을 표시한다. 큰
음녀 곧, 이 세상주의의 사치의 마력(魔力)을 띠고 나타난다. 그것이 짐승 곧, 적 그
리스도 국가를 타고 있음은, 그것이 적그리스도 나라 위에 건립(建立)되어있다는 표시
이다.



계 17:4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
금 하나님을 배반케 하는 마력(魔力)있는 사치한 외관(外觀)을 가리키는데, 이 세상주
의의 특색이다.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 이 "잔"은, 위(2절)의 포도주 잔이니 이 세
상주의로 사람을 유혹(誘惑)하는 수단을 상징한다.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
운 것들 - 이것들은 모든 인본주의 사상(人本主義思想)과 무신론 사상(無神論思想)을
기초로 한, 모든 제도 시설, 행위들을 상징한다. 그것들 중 가장 미려(美麗)하고 선
량하다는 것도 하나님 앞에서는 가장 가증(可憎)하다. 그 이유는, 그 가장 선미(善
美)하다는 것이 인생을 이 세상 주의에 유혹함에 있어서 더욱 유력한 까닭이다. 그것
들 가운데 고상한 듯한 종교나 도덕도 그것이 진정한 신본주의(神本主義)의 것이 아닌
한(限)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떠나 이 세상 주의에 고착(固着)하게 하는 유력한
무기(武器)가 될 뿐이다.



계 17:5

비밀이라 - 이것은 살후 2:7에 이른바, "불법의 비밀"이니, 곧, 노골적으로 하나님
을 훼방하는 적그리스도와 다르게 비밀히 인간을 이 세상주의로 꾀이는 것이다. 큰
바벧론 - 곧, 원(原) 바벧론(이 세상주의로 세운 도시)의 확대(擴大)요 절정(絶頂)이
란 의미인 듯하다.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 - 이것은, 모든 무신론과 배교
사상(背敎思想)의 발원지(發源地)라는 의미이다.



계 17:6,7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 이것은, 이세상 주의가 많은 그리
스도 신자들을 살해(殺害)한 사실을 가리킨다. 이 세상은 언제나 하나님을 반대한다.
야고보서에 말하기를,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
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
게 하는 것이니라"(약 4:2)라고 하였다.



계 17:8

전에 있었가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
"전에 있었다" 함은, 사도 요한 이전에 이 짐승 곧, 적그리스도가 있었다는 말이다.
크레다너스(Greijdanus)는 이것을 수리아의 안디오커스 에피파네(Antionchus
Epiphanes)라고 하였으나, 우리가 확신하기는 어려운 의견이다. 과거에 있엇던 적 그
리스도가 앞으로 다시 나타나리라 함은, 동일한 인물이 재생(再生)하여 나타난다 함이
아니고, 동일한 악행을 할 자가 나타나겠다는 의미이다.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옴"은
사단의 세력을 가지고 나타남을 가리킨다.



계 17:10,11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간 동안 계속하리라 - "다섯"은, 애굽, 앗수르, 바벧로, 메대바사, 헬라인 듯하고,
시방(요한의 때)있는 것은 로마요, 아직 이르지 아니한 것은 로마 이후 어느 나라인지
확실히 알기 어렵다.
여덟째 왕 - 이것은, 짐승의 본체(적그리스도 나라의 최후적 발악)의 출현이니,
13:1-10에 그것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있다. 이것은 칼에 상하였다가 나온 자라고 했
으니(13:3), 곧, 일시 패전하여 망했다가 재흥(再興)할국가이다. 그것은 어느 나라일
까? 그리스도 신자들이 아직까지 이것을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오기는 올 것이다



계 17:12,13

열 뿔은 열 왕이니...짐승올 더불어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동안 받으리라 - 위의 열
나라는 적그리스도를 맹주(盟主)로 삼는다.



계 17:14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 이것은, 16:12-16에 미리 당기어 말한 아
막겟돈 전쟁을 가리키는 듯한데 19:11-21에 다시 설명된다 그와 함께있는 자들 곧 부
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 이 귀절은, 성도들이 아마겟
돈 전쟁에서 승리의 영광에 참예케 되는 이유를 가리킨다. 그들은 직접 싸우지않고
단순히 택함 받고, 부름 받고, 주님을 믿음(진실함)의 삼대 은덕(三大恩德)에 의하여
승리의 영광에 참예한다. 부르심과 택하심과 믿게 됨은 모두 다 하나님의 주시는 은
혜로 되고 인간의 자력(自力)으로 될 수 없다.



계 17:16

적그리스도 나라와 그 맹방(盟邦)들은 싸움을 즐기는 나라들이데, 그 나라들이 아
마겟돈 전쟁(복음을 반항하는 전쟁)을 일으킨 결과, 이 세상은 아주 무너진다. 그러
므로 그들은 뜻하지 않은 가운데 바벧론(이 세상)을 미워한 것 같이 된 셈이다. 이
바벧론 붕괴(崩壞)는 18장에 다시 자세히 묘사(描寫)된다.



계 17:17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저희에게 주사 - 위의 열 나라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하여
그들의 소원 대로 그 맹주(盟主)인 적그리스도의 권세를 강화(强化)시킨다. 적그리스
도 국권(國權)의 강화는, 하나님 말씀 성취(적그리스도 나라가 붕괴되고 천국이 실현
됨)도중에 없을 수 없는 필요한 순서니만큼, 그것은 천국이 속히 올 징조이다.



계 17:18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 17:1의 해석 참조. 곧, 모든 임금들로 하여
금 하나님을 저버리게 하는 이 세상이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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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늘에서 내려오는 큰권세를가진 천사계시록 )

 

 

계 18:1-3

땅이 환하여 지더라 - 이 천사는 하나님의 대리(代理)로 땅에 왔으므로, 그가 입은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게 되었다. 오랫 동안 죄로 인하여 암흑해진 바벧론(이 세상)의
세계에 이렇게 나타난 천래(天來)의 광명은 그 암흑을 깨뜨려 버리는 반가운 심판의
선언이다.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 - 사 13:21,22, 34:14; 습
2:14에도 이와 비슷한 말씀이 있다. 이것은 영원한 황폐를 의미하는데 악귀들의 벌
받는 곳(지옥 같은 곳)이란 말이다. 다음 엇구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란 말을 보
아서 이것은 황막(荒漠)한 광야를 가리킨다. 크레다너스(Greijdanus)는 말하기를 "이
말씀은, 바벧론이란 말로 대표된 불경건한 세계에 한번 임할 지옥 같은 황폐를 상징한
다"고 하였다(Met dexe enkele trkken wordt de helsche ontbering en veschrikking,
geteekend, die over de wereld der goddelddzen, hierdoor Babylon vertegenwoordigd
eenmaal gewisselijk komen zal.-Openbaring,p.360).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 - 헬
라 원문에는 이 말씀 초두에 호티(* =왜 그런고 하면)라는 말이 있어서 그것이
윗 말씀의 이유임을 밝힌다. 바벧론 곧, 불경건한 이 세상이 황폐해질 이유로서 세
가지는, (1)그것이 그 음행(하나님을 배반하는 행위)으로 모든 나라들을 꾀어 하나님
의 진노를 당하게 한 것. 다시 말하면, 유사 이레(有史以來)로 모든 나라들이 이세상
주의의 유혹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배반하고 멸망하게 되었으니 이제는 이 세상 그 자
체가 처벌 받아야 한다. (2)그 뿐 아니라, 그것은 사치한 죄가 있기 때문에 그런 처
벌을 받음. 이 세상주의는, 이기주의를 위하여 재물을 과도히 저축하고 또 과도히 소
비한다. (3)그것의 세째 죄악은 본장 24절에 있으니, 곧, 성도를 죽인 죄악이다.



계 18:4,5

바벧론에서 택한 백성을 불러내심.
하나님께서는 그 택한 백성과 악도를 함께 멸하시지 않는다. 택한 백성도 악한 무
리와 함께 환난에 동참하는 일이 있다. 그것은 악도만을 목표한 것이 아닌 일반적 환
난이었기 때문이겠다. 일반적 환난에는 성도도 참가하므로 연단도 받으며 복음이 전
파되는 일이 있다. 그러나 여기 바벧론이 받는 화(禍)에서는 택한 백성들은 제외되기
때문에 그들은 거기서 불러내어져 구원된다.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 이것은,
죄가 너무 많으므로 그 분량이 하늘에까지 닿았다는 의미이다. 물론 이것은 비유의
말이다. 하나님께서 홍수로써 땅을 멸하실 때에는 죄가 땅에 가득하였던 정도이지만
(창 6:11), 이 때에는 하늘에까지 닿는다. 그러나 성경에 있는 이런 표현들에 대하여
너무 글자대로인 대조를 생각할 필요는 없다.



계 18:6,7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 옛날에 하나님께서 범죄한 나라들을 벌하실 때에 강
국 바벧론을 도구로 사용하신 일이 있었다. 그 때에 바벧론은 분정(分定)에 넘치게
잔인과 포학을 행하였다(사 10:5-1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바벧론 나라를 벌하셨다.
그 나라는 열국(列國)에 포학을 행한 대로 갚음을 받았다. 그처럼 우리 본문에 바벧
론으로 상징된 이 세상도 천벌을 받아서 멸망한다. 이 세상은, 옛날 바벧론처럼 하나
님 앞에 교만해져서 성도들을 살해하는 자가 되고 말았다. 그 죄 값으로 이 세상은
아주 멸망을 받게 된다. 그의 행위 대로 갑절을 갚아 주고 - "갑절을 갚아" 준다함은
심한 보응을 의미한다. 왜 이렇게 심한 보응이 그에게 미치는가? 그 이유는, 그가 한
일이 너무도 악하였기 때문이다(사 40:2; 렘 16:18 참조). 루트겔(Rutger)은 "갑절"
이란 말을 "그 만큼"이라고 번역하였으나(De Echtheid van het Tweede Gedeelte Van
Jesaija, p. 167), 이것은 신용되기 어려운 번역이다. 섞은 잔에도 - 이것은 하나님
의 진노가 쫓아오는 세상 죄악(하나님을 배반하게 하는 죄)의 잔이란 말과 같다. 이
세상은 모든 나라들에게 이런 무서운 죄악의 잔을 부어 먹여 준 것이다. 위의 3절에,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라는 것이 곧 그것이다. 이 세상주의를 받는 자는, 하나님
을 배반하고 영적 음행에 빠지어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다.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 이것은 바벧론이 벌 받게 되는 죄를 다시 말한다.
"자기를 영화롭게" 한 죄는, 곧, 3절의 "사치"란 죄에 포함된다. 그는 "여왕" - 처럼
자만하여 자기 영광을 구하므로 그렇게 사치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비례식 심판
(比例式審判)에 의하여 그만한 애통에 떨어진다.



계 18:8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 이것은 갑자기 멸망이 이를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물론 죄인의 멸망이 날마다 나타나 보이는 것이 아니고 한 날 한 때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죄인들은 자기의 멸망이 눈 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방심
(放心)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멸망의 한 때가 반드시 있음을 내어다 볼 줄 알아야 된
다. 사망과 애통과 흉년...불에 살라지리니 - 이것은 전쟁으로 말미암아 되어지는 재
앙들이다.
9-19. 이 귀절들이 말한대로 바벧론 멸망을 보고 애통하는 자들은, 왕들, 상인들,
선인(船人)들이다. 밀리간(Milligan)이란 학자는, 이 사실 때문에 이 예언이 옛날 두
로(Tyre)에 대한 예언과 유사하다고 생각한다(겔 26, 27장). 구약의 예언들을 보면,
"두로"를 "혼돈한 도시"(* . 킬야트로후)라고 하였다(사 24:10). 그러
므로 이 예언은, 이 세상이 바벧론처럼(사 13:19) 아주 없어지고, 두로처럼 멸망하게
될 것을 가리키는 비유이다. 세상에 속한 자들은 세상이 망할 때에 슬퍼한다. 그 이
유는, 그들의 영광이 세상에 있고 그들의 부요(富饒)가 거기에 달렸기 때문이다.



 

                          ( 방탕한 생활을하던 세상왕의 통곡)

 

계 18:9

왕들 - 겔 26:16 참조. 여기서 "왕들"은, 이 세상 영광을 탐하여 누리는 모든 사
람들을 상징한다. 이 세상에는 왕처럼, 명예, 지위, 권세 등을 좋아하고 또 스스로
교만한 자들이 많다. 그들은 이 세상이 망할 때에 함께 망한다.




계 18:10

일시간에 - 이것은, 돌연히 멸망하게 된 것을 가리키기 위한 표현이다. 8절 해석
참조.



계 18:11

땅의 상고들 - 이것은 왕족들을 가리킨다. 23절 참조.



계 18:12,13

이 세상이, 천국의 보물들을 생각하지 않고, 그 대신에 사모하고 구하고 매매하던
육체 본위의 물품들이 열거된다. 이 물품들을 분류하면, (1) 귀금속(貴金屬), (2) 의
복 재료(衣服材料), (3) 가구류(家具類), (4) 향속(香屬), (5) 식료품(食料品), (6)
가축(家畜), (7) 인류(人類)이다. 이 일곱 가지 사치품은 이 세상이 목표하고 찾는
것들이다. 다시 말하면, 이 사치품들은 이 세상의 영광을 자랑하는 물품이다. 세상
은 심지어 인류와 그 영혼까지 상품화(商品化) 한다. 예수님은 한 사람의 영혼이 천
하 보다 귀하다고 하셨는데, 이 세상은 사람의 영혼을 상품과 같이 취급한다.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 - 는 희귀한 광물(鑛物)이고,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
단과 붉은 옷감" - 은 포목계(布木界)의 사치품이고, "항목과 각종 상아 기명이요 값
진 나무와 진유와 철과 옥석으로 만든 각종 기명" - 은 귀중한 기구(器具)의 재료와
및 귀중한 기구이고,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 - 은 향속(香屬)의 극귀품(極
貴品)이고,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 - 은 극귀한 식료품이고, "소와 양
과 말과 수레" - 는 중요한 가축들과 및 승용물(承用物)이다.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 - 이 세상주의는, 사람들의 인권(人權)을 빼앗고 그들을
"종"으로 취급한다. 그리고 이 세상주의는, "사람의 영혼"을 상품으로 취급하여 무시
하기 때문에 복음도 무시한다.



계 18:14-17

여기서도 바벧론에 대한 탄식거리는, 물질과 물품과 보석과 같은, 이 세상 것들이
없어진 사실이라고 한다.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은, 실상 그것들 이상의 것을 모르며,
그것들에게만 소망을 붙인다. 그들은 그것들을 위하여 살고, 그것들 때문에 싸우고
죽기도 한다. 선객들과 선인들 - 이 운수(運輸)와 무역(貿易)하는 자들은, 이 세상에
있어서 부자되기를 목적하는 모든 사람들을 상징한다. 그들은 재물을 우상으로 삼고
그것에게 노예가 된다. 그러나 이 세상이 망할 때에는 그들도 망한다.



계 18:20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 이 말씀은 이 세상과 원수된 하늘에 속하
는 참된 신자들을 총칭(總稱)하여 부르는 말씀이다. 그것은 이 말씀 첫 머리에 "하
늘"이란 말이 나온 것을 보아 알 수 있다. 그를 인하여 즐거워하라 - 이들은 이 세상
주의 앞에 핍박을 당하였던 것이다. 이들이 핍박 받던 당시에는, 그 핍박자들을 위하
여 복을 빌고 화를 빌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 때에는 아직 심판 때가 아니고 회개
하기를 기다리는 시기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계시록 18장이 가리키는 그 시기는 최
후 심판의 시기이니 만큼, 그 때부터는 회개를 기다릴 자비의 때가 아니고 하나님의
지혜에 의지하여 심판 처분을 하게 되는 시기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심판하시는 행
위를 옳게 여기는 한(限), 그들의 그 심판 받는 바벧론(이 세상)을 인하여 슬퍼할 필
요는 없다. 만일 그들이 그 사건으로 인하여 슬퍼한다면 그것은, 심판하시는 하나님
께서 잘못하신다는 외람된 태도가 되어진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심판 사건으로 인하
여 즐거워해야 된다(요 1:20-22 참조).



계 18:21-24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가로되 큰 성 바벧론이 이같이 몹시 떨어져
다시 보이지 아니하로다 - 이것은 렘 51:63, 64의 말씀대로 나타낸 행동 설교이다.
"바벧론"은 남들로 하여금 범죄케 한 자니, 이렇게 심한 벌을 받아서 영멸되어야 한다
(막 9:42). 이렇게 영멸되므로, (1) 전에 그렇게 많이 있던 음악이 없어짐(22절).
이 세상주의의 문명은 음악 문명이었다. 향락을 위주하는 그 곳에 음란한 노래도 발
달하였던 것이다. (2) 전에 그렇게 성한 공업이 없어짐(22절). 이 문명은 역시 공업
문명이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바벧탑은 쌓는 인생들은, 물리학, 화학, 공학 등 모
든 과학 만능을 믿는다. 이런 과학이 약한 것은 아니지만, 인생들은 이것을 지나치게
믿고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이 잘못이다. (3) 전에있던 "맷돌 소리", "등불 빛", "신
랑과 신부의 음성"등이 끊어짐(22,23). 이 문명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이 세상 생활
에만 급급하던 것이었다. 이 세상주의자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활동은 꿈에도 생각지
않고, 육신의 생계를 위하는 소리와 빛을 낼 뿐이었고, 시집가고 장가가는(마 24:38)
세상 낙(樂)만 알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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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6 - 강해 ( 계 19-22 장 ) 요한계시록 / 신약성경강해

2009.10.02. 19:14

복사 http://blog.naver.com/apectria/90383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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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양의 잔치와 그 권세의 발현(계19장)



                         ( 만왕의 왕, 만유의 주 )

 

 

세상의 사단 권세인 바벨론의 멸망 직후 승리의 상징인 백마를 타신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사 사단의 앞잡이인 짐승(적그리스도)을 퇴치하신다. 이 내용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1) 어린양의 혼인잔치

큰 성 음녀 바벨론의 불탄 연기는 '세세토록'(계19:3) 올라간다. 이는 완전한 파멸을 의미한다. 그 직후 승리의 찬가와 함께 '어린양의 혼인기약'(계19:7)이 이르렀음이 선포된다. 이는 주께서 재림하사 교회와 완전한 연합을 이루시며, 그로 인한 성도들의 완전한 구원 획득을 의미한다. 주님은 승리한 자의 상징인 백마를 탄 충성되고 진실한 장군 모습으로 재림하사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인 '짐승'(계19:20)과 그 하수인들을 영원한 불못에 던져 버리신다. 이로써 사단으로 인해 타락한 지상 세계에 대한 섭리는 마무리가 되는 셈이다.



2) 어린양 혼인잔치에 참예할 자들

어린양 그리스도와의 혼인 잔치는 재림으로 인한 성도의 구원의 완성에 대한 상징적인 표현이다. 성도들은 성령과 진리로 거듭났으나 아직 온전히 구속받은 존재는 아니다. 이 땅에서 불신앙의 죄와 불의와 싸우며 자신의 신앙 정절을 지킨 성도만이 주님 재림 때 그분을 떳떳하게 맞을 수 있다.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계19:8)이라고 천사는 증언한다. 그분의 속죄 은총, 그분의 언약, 그분의 가르침, 그분의 인품을 따르는 성도가 그리스도의 참신부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시작은 끝을 향한 첫 걸음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종말의 심판과 주님의 재림과 영원한 상급과 형벌의 섭리도 반드시 실현될 날이 온다. 그날을 맞을 준비를 하며 사는 성도가 지혜로운 성도이다.


1. 적그리스도



예수님은 그의 감람산 강화에서 제자들에게 적그리스도의 선구자적인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신 적이 있다.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케 하리라"(마24:23,24). '거짓 그리스도들'이란 용어는 예수님이 여기서 묘사하고 있는 기만자들이 스스로를 그리스도라고 칭하게 될 것임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마24:5)는 상세한 설명은 바울이 말하고 있는 거짓 표적들과 기사들로 오는 적그리스도(살후2:9)와 일맥 상통하고 있다. 그러한 놀라운 기적들을 통하여 이 '거짓 그리스도들'은 모든 진실된 신자들을 미혹하여 참그리스도로부터 떠나게 할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러한 거짓 그리스도들이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전체 기간 동안에 활동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사실상 우리는 오늘날 그러한 예들을 쉽게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자들이 스스로를 그리스도라고 칭하는 한 그들은 분명히 '적그리스도들'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복수형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이 장차 올 최후의 적그리스도의 전임자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2. 신약의 적그리스도



적그리스도라는 용어는 오직 요한서신들에만 나타난다(요일2:18,22 ; 요일4:3 ; 요이1:7). 헬라어 접두어인 ajntvi의 원래 의미는 '…대신에', 혹은 '…를 대신하여'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적그리스도는 대리적 그리스도 혹은 경쟁적 그리스도를 뜻한다. 요일4:2,3에 '적그리스도'라는 용어는 분명히 비인격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요한이 그의 첫 번째 서신에서 싸우고 있는 주된 이단은 영지주의 발흥이었다. 이러한 초기 영지주의자들의 오류들 중 하나는 그리스도의 참된 성육신을 부인하는 것이었다. 물질은 약하다고 생각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께서 진정한 인간의 육체 속으로 들어올 수 없고 따라서 그리스도가 이 땅에 계실 동안 단지 육체를 입은 듯이 보였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요한의 눈에는 이러한 가르침이 극도의 이단이었고 복음의 심장을 절단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진정한 인간의 육체를 갖지 않으셨고 참된 인간성도 지니시지 않으셨다면 그 사람은 참된 중보자가 될 수도 없고 우리를 위한 구속도 이룰 수 없을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아직도 우리의 죄 안에 있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요한은 그리스도가 육신으로 오셨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적그리스도 영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 불못에 던져진 짐승과 거짓 선지자 )

 

 

3. 불법의 사람



살후2:1-12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이미 진행되기 시작했다고 생각하고 있던 그의 독자들에게 '주의 날'이 임하기 전 배도하는 '불법의 사람'이 출현할 것을 말한다.

① 불법의 사람은 큰 반격 혹은 배도 사건 후에 나타날 것이다. 살후2:3에서는 배도 사건과 불법의 사람의 출현과의 밀접한 관계를 표현하고 있다.

② 불법의 사람은 하나의 인격체일 것이다. 그는 대적하는 자이며 소위 신이라 불리우는 경배의 대상 위에 뛰어나 자기를 스스로 높이는 자이다(살후2:4). 그리스도 재림 전에 한명의 최종적 불법의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요한의 가르침 속에는 분명치 않았던 사실이 여기서는 분명해지고 있다.

③ 불법의 사람은 숭배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라고 불리는 그 어느 것에도 대적할 것이며 경배받는 그 무엇도 반대할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그는 '성전에 자리를 차지하고 스스로를 하나님이라고' 부를 것이다(살후2:4)

④ 불법의 사람은 자기의 대의 명분을 나타내기 위하여 속임수와 기적들(살후2:9)과 거짓 가르침(살후2:11)을 사용하게 될 것이다. 즉 이 점에 있어서 그는 예수님의 기적들을 모방하여 많은 사람들을 속임으로써 일종의 대리적 그리스도 혹은 경쟁적 그리스도로서 나타날 것이다.

⑤ 불법의 사람은 '막는 것'이 없어진 후에야 비로소 나타날 것이다. 여기서 막는 것이라고 표현된 것은 개인을 가리키는 말로도, 인간이 아닌 것을 가리키는 말로도 표현되고 있다.

천년왕국(계20장)
사도 요한은 이제 묵시록을 끝맺으려고 한다. 그리스도의 재림, 성도들의 천국 입성, 사단과 그 하수인들의 멸망과 신천신지의 도래가 21,22장의 내용이며 그로 인해 하나님의 종말 섭리는 마감된다. 본 20장은 그와 같은 신천신지의 세계 이전 이 땅에 '과도기적인 천국'이 이룩됨을 강조한다. 즉 천년 왕국설이 본 장에서 기인됐으며 계시록에서 가장 해석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이 천년 왕국에 대한 내용은 해석상 견해가 가장 분분한 종말 시대의 한 사건인 것이다.

 

                         

                           ( 큰쇠사슬을 가진 천사  20 : 1-2 )



 

 

                              (  쇠사슬에 묶인 용 )

 

 

1. 천년왕국의 개념(계20:1-4)



계20:4에는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강림하사 천년 동안 성도들과 왕 노릇하신다고 증거되어 있다. 이 내용이 천년 왕국설의 핵심이요, 요지다. 과연 이 천년 왕국의 개념은 무엇일까?



1) 현실적, 상징적 해석으로 인한 견해들

천년 왕국설에 대한 개념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즉 전천년 왕국설과 무천년 왕국설이 그것이다. 전자는 천년 왕국 전에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재림하사 실제로 천년 동안 왕권을 가지고 전세계를 다스릴 것이라는 개념이요, 후자는 천년 왕국을 상징으로 보고 그리스도의 초림부터 재림 때까지 이 세상의 교회가 누리는 의와 은혜의 권세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 외에도 후천년설이 있으나 이는 정통 보수 신학 계열과는 달리 세계가 복음화되고 인간의 심성과 과학과 교육과 제도의 발전으로 지상 천국이 이루어진다는 견해이기에 여기서 논의의 대상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천년 왕국에 대한 견해의 초점은 천년이라는 성경의 표현이 사실적인 것인지, 또는 다른 상징적인 용어처럼 상징적인 것인지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견해가 갈리는 것이다.



2) 모든 섭리에 대비해야 할 성도들

그렇다면 성도들은 어떤 견해를 받아들여야 옳을까? 전천년 왕국설, 또는 후천년 왕국설 둘 중 한 가지 견해만 진리라고 생각해야 할까? 그럴 필요는 없다. 두 가지 견해 모두 정통 보수 개혁 신앙교회에서 신봉하는 내용들이다. 즉 주님이 재림하사 이 땅에서 성도들과 더불어 천년동안 다스리는 것이라고 믿는 성도들도 과할 것이 없으며 천년 왕국이라는 표현을 상징적으로 보고 현재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고 있는 은혜의 권세를 천년 왕국 시대로 믿는 성도들도 잘못된 태도가 아니다. 확실한 것은 현재 모른다. 오직 그 대 주님만이 이루실 일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모든 섭리에 대비하는 신앙 자세를 지녀야 한다. 천년 왕국이 실제로 실현된다면 그 왕국에 참여할 수 있는 참성도가 되도록 노력해야 하며 혹 상징적인 내용이라면 현재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고 있는 구속의 은총에 더욱 감사드릴 수 있어야 한다.



2. 천년왕국 시대에 일어난 일들(계20:5,6)



본 서는 처음 부활과 천년 왕국 시대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상세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천년 왕국 동안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그 의미는 무엇일까?



1) 그리스도와 왕노릇할 성도들

먼저 죄악과 불의의 근원인 사단이 결박되는 일이 벌어진다(계20:1-3). 죄악은 더 이상 번성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 후 성도들이 '첫째 부활'(계20:5)이라고 불리는 부활 은총으로 살아나 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이 땅에서 왕 노릇하게 된다. 핍박이나 시험이나 괴로움이 없이 세상의 주인이 되어 천국 권세를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내용도 사실과 상징으로 해석됨을 유념하자. 다만 성도들은 사망과 악을 이기고 기필코 그리스도 예수와 더불어 영광과 존귀의 삶을 누리게 될 것이라는 성경 전체의 증언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2)현재의 고난과 미래의 영광

그러므로 성도들은 천년 왕국 시대에 이루어질 내용에 대해 너무 세세하고 확실한 지식을 얻고자 시간을 허비할 필요는 없다. 그 내용의 메시지는 이것이다. 즉 '너희 성도들아 너희가 지금 어떤 처지에 있든지 너희는 왕 같은 족속이요 택하신 백성이므로 이 땅에서도 영광과 존귀를 누리게 될 것임을 믿으라'는 것이 천년 왕국설이 메시지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현재 그리스도 안에서 당하는 애로와 괴로움과 희생으로 인해 실망해서는 온당치 못하다. 그 희생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보상을 그리스도의 재림 후에 얻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라고 사도 바울은 교훈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더욱 헌신하고 희생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 전쟁을위해, 나라들을위해 풀려진 용 20: 7- 8)



3. 천년왕국 후에 될 일들(계20:7-15)



천년 왕국은 영원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그 후에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 것이며 그 결과와 의미는 무엇일까?



1) 최후의 대심판이 시행됨

천년의 기간이 지나자 사단은 풀려나게 되며 그는 이 땅의 정치 권세를 모아 성도 공동체와 일대 격전을 벌인다. 그 결과 사단과 그 수하들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대패하고 영원한 심판의 불못에 던지움을 받게 된다. 또 유사 이래 죽은 모든 자들이 부활하여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되는 데 그 심판은 크고 흰 보좌에서 시행된다. 그리고 현재의 하늘과 땅은 사라지게 된다. 이로써 하나님의 지상에 대한 섭리는 마감하게 되며 새 하늘과 새 땅의 세계로 역사는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2) 천지의 대주재이신 성삼위 하나님

우리는 이와 같은 천년 왕국 전후와 관련된 내용을 통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재삼 확신해야 한다. 즉 하나님만이 하늘과 땅, 역사와 모든 가치, 생명과 사망을 주관하시는 유일한 통치자라는 진리가 그것이다. 사단의 권세가 아무리 크다 해도 그는 하나님의 손 안에서만 행동할 수 있다. 하나님이 가두시고 싶으면 가두시고 풀어 놓고 싶으시면 풀어 놓는 종속적인 존재다. 또 하나님은 사망과 생명의 주관자이시기도 하다. 성도들에게는 영생을 불순종하는 불신자들에게는 형벌을 인도하신다. 그 판결은 절대적이다. 그리고 하늘과 땅도 변혁시키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심을 본 장은 증언한다. 이와 같은 천지의 유일하신 주재이신 성삼위 하나님을 그리스도 안에서 섬기게 된 축복을 성도들은 무한 감사드려야 할 것이다.



천년 왕국이 실재적인 사건이 될 것인지 아니면 상징적인 교훈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성경의 말씀은 상징적으로 표현되었을지라도 그 사실성까지 부인될 수는 없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종말적 섭리 속에 천년왕국도 실현될 수 있음을 믿고 감사와 희망의 자세로 사모해야 한다.


1. 역사적 전천년설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구별하여 역사적 전천년설을 취급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이 두 사상 체계는 근본적인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먼저 간략하게 말하자면 전천년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사건이 전천년적임을 믿는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재림이 천년 왕국 직전에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 후 일 천년 동안 그리스도께서 이 땅위에서 왕 노릇하실 것이며 그 후에 최종의 상태가 도래한다고 생각한다. 아래에 전개될 내용은 역사적 전천년설의 중요한 특성들을 개괄하는 것이다. 물론 역사적 전천년설의 주장들사이에도 몇몇 자세한 내용들에서는 서로 이견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도 상기해야 할 것이다. 역사적 전천년설에 의하면 몇가지 사건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전에 발생해야 한다. 즉 온 민족들의 복음화, 대환난, 대반역과 배도하는 일의 발생, 적그리스도의 출현 등이다. 교회는 이 최후의 환난을 통과해야만 한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두 단계에 걸쳐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단일한 사건이다.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에 죽은 신자들은 부활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 이 두 그룹의 신자들은 변화받아 영화롭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때에 이 두 그룹의 신자들은 하늘에 들어올려 주심을 공중에서 맞이하게 될 거이다. 공중에서 이러한 일이 있은 후에 신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이 땅으로 내려오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내려오신 후에 적그리스도가 죽임을 당할 것이며, 적그리스도의 광포한 통치가 끝장날 것이다. 바로 이시기나 이 시기 직전에 살고 있던 대다수의 유대인들의 그들의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그들의 메시야로 믿게 되며 또한 구원을 얻게 된다. 이러한 유대민족의 개종은 이 세상을 위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축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천년 왕국을 세우시는데 이 왕국은 대략 천년 동안 지속될 것이다. 이때 예수님은 전세계를 가현적으로 통치하시며 그의 구속받은 백성들은 그와 함께 왕 노릇하게 된다. 여기서 구속받은 백성이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그 때 이방인들이 모여들게 된 후로 유대인들의 대부분이 개종하게 되지만 이 유대인들은 어떤 특정한 무리를 형성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오직 하나의 하나님의 백성만이 있게 된 것이기 때문이다. 천년 기간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하게 될 사람들은 그 때까지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한 신자들과 그리스도의 재림시에도 살고 있었던 신자들을 모두 포함한다. 그 때에 이 땅 위에 있는 모든 믿지 않는 나라들은 점검되고 그리스도의 철장 권세로 다스림을 받게 될 것이다. 천년은 최종 상태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천년 동안에는 계속해서 죄와 죽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은 엄청나게 제약을 받게 되며 의로움이 전무후무할 정도로 온 땅에 퍼질 것이다. 이때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정의의 시대이며 큰 평화가 번영의 때이기도 하다. 심지어 모든 자연 만물까지도 이 시대의 축복받은 상태를 반영하게 될 것인데 이는 이 땅이 유별나게도 많은 생산물을 낼 것이다. 그러나 천년이 끝날 무렵 이 기간 동안 결박되었던 사단이 풀림을 얻게 되어 밖으로 나와 나라들을 다시 한번 미혹하게 될 것이다. 사단은 곡과 마곡의 전쟁을 치루기 위하여 반역하는 나라들을 모아 그들을 이끌고 '성도들의 진'을 향해 공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단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불에 의해 소멸되어 다시 불못속으로 던져졌다. 천년이 끝난 후에 죽었던 불신자들의 부활이 있게 된다. 이제 대 백보좌 심판대 앞에서 최후의 심판이 있게 되는데 이때 모든 신자들과 불신자 전부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생명의 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은 영원한 생명으로 그 책에 이름이 없는 자들은 불못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 일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최종의 상태가 도래하게 된다. 즉 불신자들은 지옥에서 영원히 지내야만하고 반면에 하나님의 구속받은 백성들은 모든 아들이 제거된 새 땅에서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이다.

이런 역사적 전천년설에도 몇 가지 받아들일 것이 있다.

① 하나님은 두 개의 분리된 백성들을 독특한 운명을 지니게 하지 않으셨다.

② 하나님의 왕국은 현재적인 동시에 미래적이라는 것이다.

③ 이미 현 시대에 교회는 종말론적 축복들을 향유하고 있다.



                            ( 불못에 던져진 용 20 : 10 )

 

 

 

 

                            ( 크고흰 보좌 심판 20 : 11 - 13 )

 

 

 

 

                       ( 펼쳐진 책들 그리고 또한 생명책 20 : 12 - 13 )

 

 

 

                                     ( 불못 20 : 14 - 15 )

 

 

 

2. 계시록 20장의 전체적인 내용



본 장에서 요한은 사단이 하나님의 확고한 통치하에 있음을 본다(계20:1-3). 그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아닌 순교자들의 영혼들(박해를 받고 있던 초대교회에게는 이것이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이 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하기 위해서 부활한 것을 본다(계20:4-6). 그 마지막에는 악의 세력들이 모여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하나 사단과 그의 추종자들까지도 완전히 멸망하고 만다(계20:7-10). 전체적인 부활이 있은 후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 앞에 서서 각기 자기 자신의 기록에 따라 심판을 받는다. 여기서 생명을 얻은 자에게는 다시 죽음이 없을 것이다.


 

                  ( 정사각형의 도성, 새로운 예루살렘 21 : 10-21 )

 

 

 

                        ( 도성의 주춧돌  21: 12 -14 , 19- 20 )

 

 

 

 

새 하늘과 새 땅(계21,22장)
시작은 끝의 첫걸음이며 종말은 시작의 결과다. 드디어 사도 요한은 예언을 완결짓는다. 요한계시록 21,22장은 본 예언서의 완결편인 동시에 성경 전체의 결론이기도 하다. 그 내용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실현과 그 세계에서 누릴 성도들의 축복이 주류를 이룬다. 그리고 에필로그로 본 서의 예언 내용의 절대적 권위와 성도들의 믿음이 강조되고 있다. 함께 그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1. 새 하늘과 새 땅의 실현(계21:1-8)



악인과 선인에 대한 종말적인 심판, 사단의 멸망으로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의 섭리는 일단락된다. 그러나 그 섭리는 끝이 없다. 이제 영원무궁한 신천신지의 세계가 펼쳐진다. 과연 그 교훈은 무엇인가?



1) 하늘로서 주어지는 영원한 세계

사도 요한은 '새 예루살렘'으로 표현된 새로운 세계가 하늘로서 내려오는 웅장무비한 환상을 보게 된다. 그 모습은 결혼식을 앞둔 신부의 모습처럼 아름답고 고귀하다. 그 세계의 주인은 악마가 아닌 하나님이시며 한없는 위로의 은총을 성도들에게 내려주실 것이 강조된다. 그런데 그와 같은 영원하고 의와 화평의 신세계는 '하늘에서'(계21:2) 주어진다는 것을 사도 요한은 강조한다. 그렇다. 구원도 진리도 우리 인간들의 세계에서 산출되는 것이 아니라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약1:17)라고 한 것처럼 하나님의 선물인 것이다. 그 사실은 모든 세계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인간들은 상대적인 존재, 수혜적인 존재임을 교훈해 주는 진리가 담겨 있다.



2) 하늘에 초점을 맞춘 성도의 삶

새 예루살렘, 영원한 세계는 하늘로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다는 진리로써 성도들의 삶의 의식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 성도들은 이 땅에서 영원한 안식과 행복과 그리고 진리를 얻을 수 있다. 오직 '하늘'로서다. 그 이유는 성도 자신의 존재적 본질이 하늘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3:2-4)고 교훈한다. 성도의 꿈과 행복은 하늘 세계에 있다. 초점을 하늘에 맞추고 사는 존재가 되야 한다. 허망한 이 땅의 허영과 욕심과 어리석음을 피하고 영원한 것을 추구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2.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삶(계21:9-22:5)



21장 중반부터 22장 초반까지는 영원무궁한 새 예루살렘의 내용과 그 곳에서의 삶에 대한 환상이 펼쳐진다. 과연 그 내용과 의미는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1) 영광과 존귀를 누리를 성도들

천국의 내용을 소개하는 자는 바로 마지막 대재앙을 내렸던 '일곱 천사 중 하나'(히21:9)였다. 이와 같은 사실은 묘한 의미를 나타내준다. 이 불신 세계에 화를 내린 천사는 반대로 성도들에게는 영원한 축복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의 이중적 의미를 교훈해 준다(살전1:5-8). 천사가 보여준 새 예루살렘의 모습은 지극히 귀한 보석들로 표현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와 생명력이 넘친 세계다. 왜냐하면 모든 영광의 본체가 되시는 성삼위 하나님이 직접 임재하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성도들은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히21:26) 누리며 영생수와 영생 과실을 먹고 살게 된다(히22:1,2).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히22:5)고 사도 요한은 강조한다. 이와 같은 새 예루살렘의 내용은 모든 성도의 꿈이 이루어짐을 의미한다. 아니 모든 인류의 꿈이 현실로 실현될 것을 보여 준다. 죽음, 모순, 죄와 불의가 없고 영원한 사랑, 화평, 자유, 삶에 구현되는 곳 그곳이 나와 모든 성도들이 갈 새 하늘과 새 땅인 것이다. 그 세계는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 섭리의 열매이기도 하다. 태초에 창조하신 '에덴 동산'이 새 예루살렘으로 완성된 것이다.



              ( 그들의 이마에는 주님의 이름이  22 : 3 - 4 )

 

 

2) 영원한 기업이 예비된 성도들

몇 년 전 세계에서 온갖 '복권'을 만드는 사람들이 모여 '복권협회'를 만들고 총회를 연적이 있었다. 그 때 복권협회 사람들은 자신들이 온 인류에게 '꿈과 희망을 파는 자들'이라는 명분을 내세운 적이 있다. 사람들은 돈을 주고 복권을 산다. 내일에 대한 희망을 잠시 며칠간만이라도 얻으려는 목적 때문이다. 그러나 그 희망은 대게 허망으로 끝난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는 결코 허망스러운 미래는 없다. 썩지 않고 쇠하지 않는 하늘의 기업이 예비돼 있음을 알자. 성도들은 확실하게 보장된 '영원한 하늘 복권'을 지닌 존재들이다.



                  ( 알파요 오메가 이신 주님 22 : 13 )

 

 

3. 종말 예언의 마지막 강화(계22:6-21)



사도 요한은 마지막으로 본 서의 권위에 절대성 그 말씀에 대한 신앙적 자세를 강조한다. 그 옛날 요단 동편 모압 평지에서 모세가 행한 신명기의 결론을 상기시켜 준다. 그 내용과 교훈을 살펴보자.



1) 영원한 축복과 저주의 갈림길

사도 요한을 통해 주님은 본 서의 예언을 지키는 자가 얻을 축복과 본 서의 내용을 소홀하게 여기는 자들이 당할 영원한 저주를 선포하신다. 만일 본 서 예언을 경솔하게 여기는 자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 참예치 못하는 저주를 받게 될 것이다(히22:18,19). 이 경고는 본 서의 결론이자 온 성령의 결론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나님의 구체적인 자기 계시인 성경 말씀, 특히 계시록을 통해 보여 주신 종말과 그 후의 영원한 섭리를 불신하는 자들의 운명은 '영원한 멸망'일 수밖에 없다. 축복과 멸망의 길은 이제 온전히 인류와 교회 앞에 제시되있다. 그 길의 선택은 오직 자신에게 달려 있다. 지금 당신은 어느 길로 가고 있는가?



                              ( 신부의 초대 22: 17 )

 

 

 

2) 말씀을 지키는 생활을 해야 할 성도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계22:7). 이 말씀은 주님이 교회에 들려주시는 마지막 교훈이다. '지킨다'는 것은 진리를 믿고 사수한다는 뜻이다. 또 '지킨다'는 뜻은 행하며 실천한다는 뜻이다. 듣고 본대로 끝나면 의미없다. 영원한 심판과 축복에 대한 사실을 성도들은 듣고 알고 깨달았다. 아제 그 진리를 지키고 사수하고 실천하는 길만 남았으며 그 길은 저 영원한 새 예루살렘 성문으로 연결된 것이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라고 성경은 대단원의 막을 기도로 끝마친다. 주 예수그리스도는 반드시 오실 것이며 그분을 통해 언약하신 모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짐을 본 서와 모든 성경은 강조하는 것이다.


1. 예루살렘은 어떤 곳인가?



그곳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스라엘의 수도이다. 예루살렘이란 말 자체가 '하나님의 평강'이다. 이스라엘의 수도가 어떤 마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평강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성이기에 그 백성 중에 평강이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작은 고을이었던 한성이 하나님의 언약체를 안치함으로 이제는 예루살렘이란 칭호가 붙게 되었고,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 그 성에 평강이 있게 되었던 것이다. 다윗 성이라는 작은 성으로 다윗이 그 언약궤를 가지고 올 때 춤추었던 이유가 바로 하나님께서 이 다윗성에 거하시게 됨으로 다윗 성이란 이름 대신 예루살렘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이처럼 예루살렘이란 하나님께서 그 백성 가운데 계시므로 하나님의 통치에 의해서 그 백성들에게 평강이 넘친다는 실재적인 삶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지금 요한이 이 말씀을 기술하고 있는 시점에서 예루살렘이란 황폐화된 도시였다. 로마의 디도 장군의 손에 의해 주후 70년에 멸망하여 성전도 주님의 예언대로 돌 하나 남기지 않고 헐어져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요한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은 이런 황폐화 되어버린 예루살렘이 아니라 로마에 의해서나 그 누구의 손에 의해서도 황폐화될 수 없는 영원하며 이 세상의 그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는 찬란한 곳임을 강조하고 있다.



2. 왜 예루살렘을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기술하고 있는가?



원래 예루살렘의 성전은 하늘의 모형이었다. 예루살렘이라는 이름이 언약궤가 다윗 성에 안치된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언약궤는 바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으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 가운데 계심을 가시적으로 보여 주신 것이다. 물론 이런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통치가 이스라엘에 미친다는 것을 체계화시킨 것이 성전 제도이다. 히브리서 8,9장에서처럼 이 성전이 바로 하늘의 모형이다. 그러므로 성전 때문에 존재하는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것은 하늘이라는 참성전이 내려온다는 표현과 동일한 것이다.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는 계21:22에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성전이 전능하신 이와 어린양이 심을 본다. 이 말씀은 요2:13-22과 연결해 볼 때 해결된다. 즉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진정한 성전이심을 알 수 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이 하나님의 집을 짓는 일이며 이 집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으로 완성되었기에 이젠 그리스도의 나라를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견고케 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솔로몬은 그리스도의 예표로 성전을 지었을 뿐이지만 그리스도는 손으로가 아닌 하늘의 몸으로 지어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모든 사역을 완성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위해 새롭게 하신 영원한 새로운 피조 세계의 완성을 말하며, 그것이 하늘로부터 온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되었다는 뜻이며, 이 새로운 세계가 이 지구 위로 온다는 의미이다. 결국 새 예루살렘이란 그리스도의 재림을 뜻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강림하심으로 새로운 예루살렘이 이 지구위에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요한은 주님께서 하늘에 어떤 물질적인 예루살렘을 만들어서 가지고 오신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재림 때에 주님께서 하나님이시기에 이 세상을 새롭게 하시는 사역을 새 예루살렘이라는 관점에서 그 종말의 환상을 보고 기술한 것이다.



            ( 영원한 성문을 지나서 .... 할렐루야  )

 

 

 

3. 예루살렘을 보물로 묘사한 것은 무엇인가?



새 세계에서 예루살렘을 강조하는 이유는 영원한 세계를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나님의 보좌에서 다스리고 계심을 말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나아가 새 예루살렘을 보물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말하는 것은 당시의 사람이나 지금의 성도나 우리가 상상하는 최고의 단계 아니 그 이상의 것으로 천국을 말하며 이 세상의 불의한 것을 좇을 위험을 경고하고 긍정적으로 그 도래할 천국을 바라보며 살라는 권면이다. 또한 이 세상의 보물로 조성된 천국을 말함은 이 세상에 있는 참으로 가치있는 것들이 바로 새 세계에 영원토록 남는다는 것을 가르친다. 나아가 그곳은 이런 환경이 영원토록 변할 수 없는 곳으로 주님의 창조와 구속의 장엄함을 선포할 것이다.



4. 요한계시록의 맺는말



계22:6-21이 맺는 말로는 앞부분과 다소 연결이 잘 안될지 모르나 여전히 활기가 넘치고 있다. 맺는 말을 통해 요한은 그가 기록한 바의 진실성을 확인하고 있다. 그는 당시의 가장 엄중한 말로 그가 기록한 진리를 변경시키지 못하도록 경고하고 있다. 특히 그의 맺는 말은 역설로 가득 차 있으며 그가 서술한 일들이 속히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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