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축복을 위한 선한 싸움을 싸우라
저자 프랭크 D. 하몬드 목사 부부 공저 역자 홍원팔
미국에서 마귀론에 관한 권위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책은 하몬드 목사 내외가 성경에 나타난 축귀 사역을 근거로 하여 그들이 경험한 사례들을 쉽게 설명해 놓은 것이다. 포스트모던의 혼란한 시대에 살고 있는 크리스천들에게 영적 분별력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차 례
1. 안방 속의 돼지들 2. 우리의 영적인 적들 3. 선한 싸움을 싸우라 4. 마귀는 어떻게 들어오는가? 5. 축사(逐邪)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일곱가지 징조들 6. 축사(逐邪)의 일곱단계 7. 축사(逐邪)의 상태를 유지하는 일곱단계 8. 예수 그리스도로 집을 채우라 9. 마귀 출현의 현상들 10. 축사(逐邪)의 사역 | 11. 스스로 마귀를 쫓아낼 수 있다. 12. 중보 기도를 통한 축사 사역 13. 어린이들에 대한 사역 14. 매는 것과 푸는 것 15. 축사(逐邪)의 테크닉과 방법 16. 축사(逐邪) 사역팀 17. 축사(逐邪) 사역자가 갖추어야 할 자세 18. 축사(逐邪) 사역자를 위한 실제적 제안들 19. 마귀의 집단들 20. 일문일답 21. 최후의 싸움 |
1 안방 속의 돼지들
마귀의 영들은 인간의 육체에 침범해 들어와 거주할 수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다. 인간의 몸 속에 내주할 때 그들은 외부에서 일할 때보다 그 사람을 조종하기가 훨씬 쉽다. 마귀가 인간의 몸 안에 거주할 때 그 사람은 악한 영에 “들렸다”(have), 귀신에 “사로 잡혔다”(possessed) 등으로 표현되어진다(막9:17 ; 눅4:33 ; 막1:23 ; 5:2 ; 마 4:24). 「흠정역성서」(King James version)에서 “possessed"로 번역되어진 단어는 헬라어로 “다이모니조마이”이다. 많은 헬라어 권위자들은 이것이 정확한 번역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은 “귀신들이 씌운(demonized)"이나 ”귀신이 들린 (have demons)"으로 번역되어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possessed"라는 단어를 사용한 결과 많은 오해들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 단어는 전적인 소유권을 암시하고 있다. 그런데 크리스천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소유물이지 마귀에 소한 소유물일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마귀에게 ”possessed" 되었다라는 말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라는 것이다.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벧전1:18,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6:19, 20)
크리스천은 내주하는 마귀를 항상 불필요하고도 바람직하지 못한 침입자로 간주해야만 한다. 침입자란 다른 사람의 영토를 불법적으로 은밀히 숨어 들어가는 사람을 말한다. 침입자들은 소유자가 법적인 권리에 기조해서 고소할 때까지 그들의 불법적인 활동을 계속한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보혈로 크리스천들을 사시고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삶에 대한 청지기로 삼으셨다. 마귀는 그에 대하여 아무런 법적인 권한이 없다. 그의 권리를 지키는 것은 크리스천의 책임이다. 크리스천이 진정으로 마귀를 내쫓기를 원한다면 그 어떤 마귀도 남아 있을 수가 없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4:7b).
마귀들은 자기들이 거주하는 사람의 몸을 그들의 “집”이라고 생각한다. (마12:43, 44a)
마귀가 자신이 점령하고 있는 사람을 통해서 말을 하는 것은 많이 볼 수 있는 현상이다(막1:23,24). 나는 악한 영들이 “이것은 내집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자주 들었다. 그들은 그 사람의 육체에 대한 소유를 주장하여 그 사람과 목사를 속여서 자기들이 그 육체에 대해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도록 만들려 한다. 그러나 그 어떤 마귀도 그와 같은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모든 마귀들은 거짓말쟁이요 사기꾼들이다. 마귀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함을 받은 육체들에 대해서 아무런 권리가 없다.
마귀들은 어떤 사람에게서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마치 점유 기간이 그 사람의 육체에 대한 그들의 권리를 인정해 주기나 하듯이 “나는 여기에 오랫동안 살고 있었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크리스천에게는 그 어떤 마귀도 그의 육체에 내주할 법적인 권한이 없다는 사실을 확신해야만 한다.
신약성경에서 마귀는 스물다섯 번이나 “더러운 영”이라고 불려지고 있다. “더러운”이라는 단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을 수 없는 어떤 피조물들을 지칭하는데 사용되어지는 것과 같은 단어이다(행10:11~14). 돼지는 이와 같이 “더러운” 피조물들 중의 하나였다. 구약의 율법에 의하면 그런 것들은 먹거나 만져서는 안 되었다. 신약은 이러한 피조물들이 영적인 상징이라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이러한 금지를 해제했다.
영적인 상징으로서, 돼지가 육체적 영역에 속한다면, 마귀는 영적 영역에 속한다. 마치 유대인들이 열심히 돼지와 접촉하기를 금했던 것처럼, 크리스천인 우리도 악한 영들과 접촉하지 않도록 자신을 지켜야만 한다.
만약 더러운 돼지 떼가 당신의 안방 속에 들어와서 편안히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당신은 그런 일을 그냥 보고만 있을 것인가? 또는 당신은 그것들이 곧 자발적으로 떠나기를 바라면서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을 것인가? 혹은 그것들이 더럽힐때만 깨끗이 치우려고 할 것인가? 당신은 아마 이런 일들은 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발견 즉시 가능한한 빨리, 그리고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그것들을 쫓아낼 것이다! 그리고 마귀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이와 같이 분명해야 한다. 그들을 발견하자마자 쫓아내야만 한다.
마귀는 좋은 것은 절대로 가져다 주지 않는다. 단지 그들은 더럽힐 뿐이다. 가축과 새들과 돈 바꾸는 자들이 성전에서 자리잡을 수 없었던 것처럼 마귀가 우리 몸속에 자리잡지 못하게 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화하신 것과 같은 귄위를 가지고 우리들 자신에게서 더럽히는 악한 영들을 제거해야만 한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더럽히는 자들에게 연설을 하거나 토론하신 것이 아니라 다만 그들을 쫓아내셨다!
어떤 사람들은 축사(逐邪; 사악한 귀신을 쫓아내는일 - 역주)의 필요성을 받아들이기를 난처하게 여긴다. 그것은 그들이 귀신에 들렸기 때문이라기 보다 오히려 신속하게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은 어떤 영들과 너무나도 오랫동안 화합하는 가운데서 지내왔기 때문에 변화를 원하지 않는다. 모든 크리스천들이 다 순결하게 살기를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아니다. 돼지들을 친구로 삼는 자들이 바로 그러한 자들이다. 그러나 돼지들과 함께 있던 탕자조차도 정신을 차리고 자신을 구별하여 자기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인 돼지들과 동거하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보다 나은 삶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을 쫓아내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우리는 우리의 안방 속에 돼지가 들어오는 것을 조금도 원하지 않는다.
2 우리의 영적인 적들
에베소서 6장 12절은 우리들에게 우리의 영적인 적에 관하여 네 가지의 중요한 사실들을 말해주고 있다. 첫째로, 우리는 정사(政事, principalities)와 싸우고 있다고 말한다. 정사를 뜻하는 헬라어 단어 “아르카스”는 지도자들, 통치자들, 행정관들 등과 같이 위계질서를 묘사하는데 사용되어진다. 따라서 “일련의” 지도자들이나 통치자들은 그들의 서열과 조직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정사”라는 단어는 사탄의 왕국이 매우 조직적이라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사탄의 군대는, 대통령을 최고 사령관으로 삼고 그 뒤를 이어 장군들, 대령들, 소령들, 대위들, 중위들, 그리고 그 아래로 병사들에 이르기까지 구성되어 있는 미국의 군대만큼이나 조직적이다. 사탄은 그의 나라에게 우두머리이다. 그리고 자기 아래에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악령들을 거느리고 있는데 그들도 궁극적으로는 사탄에게 복종하고 있다.
“정사(principality)"란 영어 단어는 “왕의 영토나 관할구역, 또는 왕에게 소유권이 주어진 나라”로 정의되어져 있다(Webster).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지배적 위치에 있는 영들에게 나라들이나 도시들과 같은 지역이 할당되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다니엘 10장의 기사에 의해서 증명된다.
그는 이 땅의 왕을 말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하늘의 사자를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천사가 말한 바사국 국은 마귀를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사탄이 자기의 악한 목적을 실행하기 위하여 나라들과 도시들에 지배적인 마귀의 영들을 배치했음이 분명하다.
적군은 철저하게 조직적이고 악한 계획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가정과 지역사회와 나라의 행복을 위하여 철저히 싸워야만 한다.
둘째, 우리의 전쟁은 권세들(powers)에 대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권세들”로 번역되어진 헬라어 단어 “엑수시아스”는 정확하게 번역하면 “권한들”(authorities)이다. 이 단어는 여러 지역이나 영토에 배치된 마귀들에게는 어떤 명령이 하달되더라도 그것을 실행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그리스도의 군사는 자기와 직면한 적들이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낙심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크리스천은 더 큰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예수님의 이름”이라는 더 큰 권한이다.
셋째, 우리는 이 세상의 어두움의 주관자들과 싸우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세상 주관자들을 뜻하는 헬라어 단어는 “코스모크라토라스”이다. 그 단어는 “세상의 지배자들”이나 “이 시대의 군주들”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원수 마귀에 대한 이러한 칭호는 지배하려는 그의 의도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사탄은 성경에서 “이 세상의 신”이라고 표현되어 있다(고후4:4). 아담이 그의 죄 때문에 쓰러졌을 때 사탄이 세상에 대한 지배권을 얻었다. 예수님께서도 광야에서 시험을 당하실 동안에 사탄의 주장을 부정하지 않으셨다.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4:8,9)
사탄은 패배할 적이라는 사실을 반드시 인식해야만 한다. 그는 그의 권능과 그의 나라를 빼앗길 것이다. 우리는 그를 침입자로 간주할 권리를 갖고 있다.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더 강한 자가 와서 저를 이길 때에는 저의 믿던 무장을 빼앗고 저의 재물을 나누느니라”(눅11:20~22).
사탄은 여전히 세상을 지배하고자 한다. 그리고 우리도 그가 상당히 진전을 했음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교회가 주어진 권능과 권한을 키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의 지체된 많은 교회가 그 적과 그의 영적인 무기와 힘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사탄과 그의 군대에 대하여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었다. 그러한 전투를 개시하는 크리스천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사탄은 더욱 큰 손실을 입게 될 것이다.
넷째로 성경은 우리가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과 싸우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 말의 중심어는 “사악(邪惡)”이다. 그 단어는 성격상 크게 유해하거나 파멸적인 것을 암시한다. 건은 우리권세들은 오직 한가지리가 , 즉은 우리가 만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빛의 천사처럼 나타난다. 그리고 그들의 속임수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파멸의 덫에 걸려든다.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로써 그들의 사악우리가 하늘폭로하셨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요10:10).
「National Enquirer」지는 빌리 그래함 목사의 말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다. “크리스천의 사역에 참여하는 우리들 모두는, 우리가 초자연적인 세력과 권세들과 전투를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인식해야만 한다.…영적인 사역에 참여하는 우리들 모두는 사람들이 귀신에 들릴 수도 있고, 귀신에 시달리고 지배를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만 한다. 더욱 많은 목사들이 이처럼 끔직하게 귀신에 들린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권능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워야만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영적인 무기를 들고 나아갈 강력한 군대를 양성하신다. 그 결과는 매우 감동적이다! 구원의 사역을 통하여 수많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마귀의 영들이 가져다 주는 고통으로부터 자유를 얻고 있다.
3 선한 싸움을 싸우라
자신을 위한 전투
모든 사람들이 축사를 필요로 하는가? 개인적으로 나는 어떠한 예외도 발견하지 못했다. 우리가 무지와 어두움 속에서 행하고 있을 때 그 적은 성공적으로 우리들 각자에게 침입해 들어왔다. 우리는 그 적들을 내쫓는 방법과 그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마귀에게 큰 소리로 말하라! 당신이 그것에 대해서 익숙해질 때까지 이것은 어리석고도 어색하게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영적인 전투에 있어서 효과적이고도 반드시 필요한 전략이다. 마귀를 추방할 때에 큰 소리로 명령해야만 한다. 우리는 또한 외부에서 공격하는 마귀에게도 큰 소리로 말해야 한다. 예를 들자면 마귀가 마음 속으로 당신에게 “어떤 사람이 당신을 멍청하다고 생각하고 있어”라고 말했다고 가정해 보자. 마귀는 이와 같이 우리들에게 속삭이고 있다. 이것이 바로 마귀가 분노와 의심의 씨앗을 뿌리는 방법이다. 당신은 자기 자신의 생각인지 하나님의 생각인지 또는 사탄의 생각인지 구별하는 방법을 곧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마귀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게 될 것이다. “거짓말쟁이 마귀야, 나는 내 친구에 대한 그런 생각을 거부한다. 나의 생각은 예수님의 보혈의 보호 아래에 있다. 나는 네가 내 생각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겠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하노니 나에게서 떠나라”
이것이 마귀에게 저항하는 본보기이다.
당신이 어떤 말을 사용하든지 간에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큰 소리로 말하고, 예수님의 이름과 그 피를 사용하여 마귀에게 저항하라 마귀들은 침입자들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저항할 때에 반드시 도망갈 것이다. 한 번만 말하고 멈추지 말라. 마귀들은 완악하다. 따라서 마음에 평화를 얻을 때까지 계속해서 저항하라.
축사의 필요성을 결정하는 일곱 가지 방법들을 주의깊게 연구하라(제6장 참조). 무엇보다 당신 자신에게 정직하라. 마귀가 어디에서 어떻게 침입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라.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과거의 죄나 과거에 있었던 불쾌한 일들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마귀들은 죄와 생활환경을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라는 것이다. 그러한 침입자를 쫓아내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문을 굳게 닫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만 한다.
설교와 교육과 병고침은 교회의 사역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사역들 수행하시고 교회에게 그러한 사역을 계속하라는 사명을 주셨다.
자신에 대한 축사의 사역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하라. 마귀들이 당신을 괴롭히고 있는 생활의 분야를 선택하라.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나가라고 명령하라. 당신이 절대적으로 그들을 거절하며 믿음 가운데서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에 마귀들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아무런 도전도 하지 아니하고 그들을 그냥 지낼 수 있게 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14:17). 이것이 바로 지금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유산이다!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당신에게 달려 있다.
4 마귀는 어떻게 들어오는가?
마귀들은 사악한 존재들이며, 그들은 영적인 존재들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사람의 적들이다. 인간에 대한 그들의 목적은 시험하고, 속이고, 비난하고, 저주하고, 압박하고, 더럽히고, 저항하고, 반대하고 지배하고, 훔치고, 괴롭히고, 죽이고, 파멸시키는 것이다.
마귀는 “열려진 문들”을 통해서 들어온다. 그들에게는 반드시 기회가 주어져야만 들어올 수 있다. 열려진 문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어떤 사람이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마귀를 만나게 되지는 않으며, 또 “집”을 찾고 있는 마귀와 우연히 마주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탄의 나라의 조직은 우리들 각자를 개인적으로 공격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짜여 있다. 이 땅 위에서 마귀의 눈길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는 각자를 파멸시키고 파괴할 수 있는 계획을 갖고 있다. 당신과 나는 사탄의 계략의 분명한 타깃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방법을 통해 들어오고 있는가?
죄를 통하여
마귀가 들어오는 문은 실행해야 할 일을 하지 않거나 직접 범한 죄를 통하여 스스로 열어 주기도 한다. 사도행전 5장에서 우리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에 대해서 읽어 볼 수 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을 팔아서 그 모든 수입을 교회를 위해 내놓으려 했다. 그러나 그들은 탐욕이 생겨서 그 돈의 일부를 자신들을 위해 남겨놓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의 행위를 은폐하기 위하여 거짓말을 하는 죄를 범하였다. 그러나 베드로는 성령의 은사로 그들의 잘못을 알고 있었다. 베드로는 아나니아에게 왜 마귀에게 문을 열어 주었는지 물었다.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행5:3)
그들의 죄 때문에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스스로 문을 열어 탐욕과 거짓말과 속이는 영들로 가득 차게 만들었다. 의도적으로 죄를 범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와 같은 일이 생길 수 있다.
갈라디아서5장에서 우리는 열 일곱 가지의 “육체의 일”의 목록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육체의 일과 마귀의 일의 상관관계는 어떻게 되는가? 사람이 유혹에 굴복할 때에 그는 육체의 죄를 짓는 것이다. 그와 같은 죄를 통하여 마귀가 침입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려진다. 불이행의 죄로 인해 마귀에게 문을 열어준 전형적인 사례는 용서하지 않는 죄이다. 불의한 청지기의 경우에 있어서(마18장), 그는 자신이 주인에게 용서를 받은 후에도 그의 동관을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에 “옥졸들”에게 넘겨졌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용서를 체험하고도 다른 사람을 용서하기를 거부하는 모든 사람들을 옥졸들에게 넘겨질 것이라고 경고하신다. 우리는 마귀의 영을 가리키는 명칭들 중에서 “옥졸들”이라는 명칭보다도 더욱 분명한 명칭을 발견할 수 있는가? 용서하지 아니하는 마음은 분노와 증오, 그리고 또 그와 관련된 영들에게 문을 열어주게 될 것이다.
생활환경을 이용하여
악한 영들은 공정성이 전혀 없다. 그들은 사람의 일생 가운데서 연약한 시기를 최대한 이용하는 데 결코 망설이지 않는다. 물론 일생 중 가장 연약한 시기는 어린 아이 때이다. 어린 아이는 보호를 받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사역현장에서 만난 대부분의 마귀들은 어린 아이 때에 그 사람들에게 들어갔다. 크리스천 부모들은 자기의 자녀들에게서 마귀를 쫓아내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자녀들을 보호할 책임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예비 상담 중에 하게 되는 첫 번째 질문들 중의 하나는 “당신은 어렸을 때에 부모와의 관계가 어떠했습니까?”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이 질문은 부모들이 비난을 받아야 할 슬픈 일들의 목록으로 열거할 수 있다. 나는 자주 “나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라는 것과 같이 유사한 대답들을 들었다. 그들은 가정 내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관련된 여러 가지 두려움들을 말하곤 했다. 이런 경우 아버지들은 술값으로 가산을 낭비하여 가족을 부양할 수 없게 되므로 항상 불안정하고 가난했다. 그와 같은 가정에서 성장한 어린 아이는 나이을 들수록 의기소침해진다. 답들을 들었올 수 있도록 열려진 문이 어떤 것인가를 이해하는 데에 가장 빠른 방법은 그 사람의 어린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유전을 이용하여
악한 영들이 유전의 계략을 통하여 사람들 속에 내주하게 된 사례들은 많이 발견되어진다. 만약에 어린 아이가 자기의 부모를 닮았다는 말을 듣고 그들의 약점을 물려받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면 그는 쉽게 상처를 받게 될 것이다.
만약에 우리가 허용한다면 마귀는 우리에게 유전에 대한 염려를 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하나님에 대하여 “우리를 위하여 기업을 택하시나니”(시47:4)라고 말했다. 나는 나처럼 다른 많은 사람들도 마귀가 제시한 거짓말과 두려움을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많은 사람들이 정신병의 공포 때문에 허물어지고 있다. 부모가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마귀는 “이것은 너에게도 유전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런 사람은 정신병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혀 결국에는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사실을 알아야 한다. 물론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특별한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어지는 것도 보았다. 나는 마귀가 행하는 유전을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주 예수님의 치료와 건강을 받아들일 뿐이다.
5 축사(逐邪)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일곱 가지 징조들
악한 영들의 존재와 본질은 두 가지 원칙적인 방법들을 통해서 알 수가 있다.
첫째는 영분별 능력이다. 고린도전서 12장 10절은 성령의 아홉가지 초자연적인 은사들 중의 하나로 “영분별의 은사”를 열거하고 있다.
둘째, 간파 능력이다. 간파는 악한 영들의 존재와 본질을 알 수 있는 두 번째 방법이다. ‘간파’란 단순히 악한 영들이 사람에게 무슨 일을 하는지 관찰하는 것이다.
마귀가 내주한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 가장 흔한 징조들은 다음과 같다.
감정적인 문제들
지속적이거나 재발할 가능성이 있는 감정적인 혼란이다. 가장 흔한 혼란들 중의 몇 가지는 분개, 증오, 분노, 공포, 거절(원하지 않거나 사랑하지 아니하는 감정), 자기연민, 질투, 우울증, 걱정, 열등감, 불안감 등이다.
정신적 문제들
정신적인 고통, 정신 지체, 우유부단, 타협, 혼란, 의심, 합리화, 기억상실증 등과 같은 혼란이다.
언어상의 문제들
걷잡을 수 없이 말이 튀어나오거나 혀를 통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거짓말, 저주, 신성모독, 비평, 조롱, 악담, 험담 등이 포함되어져 있다.
성적인 문제들
성과 관련된 부정한 생각이나 행동들이다. 여기에는 공상적인 성경험, 자위 행위, 정욕, 변태, 동성연애, 호색, 간음, 근친상간, 흥분제 사용, 매춘 등이 포함되어져 있다.
중독증
가장 흔한 중독증세들은 니코친, 알코올, 마약, 약물, 카페인, 음식등이다.
육체적인 질병들
많은 질병들과 육체적인 고통은 질병의 영들 때문에 생긴다(눅13:11). 질병의 마귀를 쫓아낼 때는 어떤 해가 따르더라도 치료를 받기 위하여 기도할 필요가 있다. 축사와 치유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종교적 오류
어떤 정도로든지 종교적 오류를 범하게 되면 마귀에게 문을 열어주는 것이다. 종교적 오류를 내포한 곳에서 나온 물건들이나 서적들은 마귀를 집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거짓 종교들 : 예를 들자면 동방 종교들, 이방종교들, 철학들, 정신과학 등이다. 여기에는 이방 종교와 뗄 수 없는 관계를 지니고 있는 요가와 가라데 등과 같은 인기있는 활동들도 포함되어져 있다.
기독교 이단들 : 예를 들자면 몰몬교, 여호와의 증인, 크리스천 사이언스, 장미 십자회, 접신론, 통일교 등이다. 이와 같은 이단들은 죄를 대속해 주며 구원을 가져다 주는 길이신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부인하거나 혼란시키고 있다.
신비주의와 강신술 : 예를 들자면 강신술을 위한 회합들, 마법, 마술, 영응반(ouijaboards), 공중부양, 수상술, 필체분석, 자동필기, 제 육감의 인식, 최면술, 점성술, 점 등이다.
거짓 교리 : 디모데전서 4장 1절은 말세에 속이고 미혹하는 영들이 가져다주는 교리적 오류들이 크게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그와 같은 교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공격하기 위한 것이며, 성경의 영감을 부인하기 위한 것이다. 또한 금욕주의와 채식주의를 통해서 육체적인 활동을 영적인 것에 이르는 통로로 미혹하기 위한 것이다.
6 축사(逐邪)의 일곱 단계
정직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축사의 축복을 받기를 기대한다면 그는 자기 자신과 하나님에게 정직해야만 한다. 정직하지 못하면 생활의 모든 분야들이 어둠의 지배를 받을 것이다. 마귀의 영들은 그와 같은 어두움 속에서 번창한다. 정직은 사람들을 빛으로 인도해 준다. 고백하지 아니하거나 또는 회개하지 아니한 죄는 마귀에게 그대로 남아 있을 “법적인 권한”을 제공해 준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보시듯이 자신을 볼 수 있게 도와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지 아니한 모든 어두움에 빛을 비추어 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겸손
이것은 사람이 축사(逐邪)를 위하여 하나님과 그의 예비하심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자세를 말한다. 이것은 또한 축사의 사역을 하는 하나님의 종들에게 완전하게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함을 의미한다.
회개
회개는 죄와 사탄으로부터 돌아설 수 있는 결정적인 전환점이다. 사람은 자기의 생활 속에서 모든 악을 미워해야만 하며 악과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느냐?”(암3:3)한 것과 같이 우리는 자기의 죄를 증오해야만 한다.
축사는 문제로부터 해방되어지기 위해서만 사용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모든 것에 대하여 순종함으로써 예수님을 더욱 닮기 위한 것이다. 회개란 영적인 성장, 사역, 그리고 성도의 교제를 방해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돌아서는 것이다. 회개는 모든 죄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고백할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마귀의 영들의 법적인 권한을 제거해 버리기 때문이다.
죄의 근절
죄의 근절이란 악을 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회개의 결과로써 나타나는 행동이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단순한 말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회개를 증명하는 것이다. 사람이 진실로 자기가 죄에서 돌아섰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사람이 진실로 자기가 죄에서 돌아섰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만약에 어떤 사람이 정욕에 대해서 회개했다면 그는 도색영화 자료들을 없애야만 할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종교적 오류에 대해 회개했다면 그것과 관련된 모든 서적들과 물건들을 파괴함으로써 그것을 완전히 제거해야 할 것이다.
죄의 근절은 사탄과 그의 모든 역사에 대하여 깨끗이 단절하는 것을 의미한다.
용서
하나님께서는 자기들의 죄를 고백하고 그의 아들을 통하여 용서를 구하는 모든 사람들을 값없이 용서해 주신다(요일1:9).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어떤 식으로든 우리에게 잘못을 저지른 다른 사람을 용서해 주기를 기대하신다.
기꺼이 용서하는 마음은 축사(逐邪)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마18:21~35). 만약에 지원자가 하나님의 조건에 응하지 못한다면 그 어떤 사역자도 축사의 사역을 행할 수 없을 것이다.
기도
하나님께 당신을 구원해 주실 것과 예수님의 이름으로 자유롭게 해달라고 간구하라.
영적전투
기도와 전투는 서로 구별되어지는 별개의 활동들이다. 기도는 하나님에 대한 것이고 전투는 마귀에 대한 것이다. 마귀의 권세에 대한 우리의 전투는 육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다(엡6:10~12; 고후10:3~5). 하나님에 대한 복종,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보혈, 하나님의 말씀, 크리스천으로서의 간증 등과 같은 무기를 사용하라 (약4:7 ; 계12:11 ; 엡6:17). 악한 영들의 정체를 밝히고 단호하게 그 이름을 직접적으로 부르라. 그리고 믿음 가운데서 예수의 이름으로 나가라고 명하라.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그러한 전투에 임하라. 그리스도께서는 실패하실 수가 없다! 그는 구세주이시다!
7 축사(逐邪)의 상태를 유지하는 일곱단계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크리스천의 영적인 무장은 에베소서 6장 10절에서 18절에 잘 나타나 있다. 그 무장은 일곱 가지로 구성되어져 있다. ① 진리의 허리 때, ② 의의 흉배, ③ 평안의 복음을 위한 예비한 신, ④ 믿음의 방패, ⑤ 구원의 투구, ⑥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 ⑦ 성령 안에서 기도 등이다.
당신의 정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구원의 투구”에 대해서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라 다시 들어올 방법을 찾고 있는 대부분의 마귀들은 생각을 공략한다. 부정적이라고 여겨지는 생각들에 대해서 경계하라. 그것들은 마귀가 가져다 주는 것이다. 마귀의 생각과 당신의 생각을 구별하라. 그들이 당신에게 주입하는 생각을 거부하고 긍정적이고 영적인 생각으로 대체시켜라. (빌4:8). 죄의 공격 징조가 보일 때에 마귀에게 저항하라.
긍정적으로 고백하라
부정적인 고백은 마귀의 영향을 받고 있는 증거이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고백은 표현되어진 믿음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있는 것을 고백하라. 그 외의 다른 고백은 마귀들에게 문을 열어줄 뿐이다.
성경안에 거하라
예수님께서는 성경말씀을 인용하여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다. 말씀은 영혼을 비추어주는 거울이며(약1:22~25), 갈 길을 인도해 주는 등불이다(시119:105). 또한 말씀은 깨끗케 해주는 중재자이며(엡5:25,26), 좌우에 날선 검이다(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마음의 생각을 감찰하시며(시4:12) 그것은 영의 양식이다(벧전2:2 ; 마4:4). 그 어떤 사람도 그의 생활 속에서 주된 요인인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오랫동안 축사(逐邪)의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으라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눅9:23). 악한 영들과 관련된 옛 습관들을 버려라. 만약에 육체적인 욕망과 정욕을 십자가에 못박지 못했다면 마귀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된다(갈5:19~21, 24).
계속적인 찬양과 기도의 시간을 유지하라
찬양은 원수를 침묵시킨다. 찬양은 마음의 자세가 아니다. 찬양은 말로, 노래로, 외침으로, 춤으로, 뜀으로, 악기를 연주함으로, 손뼉을 침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흠모와 기쁨을 표현하는 것이다. 성령으로(방언으로) 기도하라. 그리고 이해할 수 있는 말로도 기도하라(고전14:14).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
교제와 영적인 사역의 생활을 유지하라
양떼를 떠나서 방황하는 양은 가장 위험한 상태에 있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안에서 당신이 할 일을 찾아 행하고, 교회 안에서 신령한 은사들을 간구하고, 항상 권위 아래 복종하라. (고전12:7~14)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헌신하라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이 그리스도의 성품을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에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될 것이다. 마귀의 영은 성령의 열매를 방해하는 적이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이 마귀의 거짓말에 대항하는 가장 큰 무기이다. (엡6:16)
요약
이러한 일곱 가지 일을 행할 때에 당신의 집(생활)은 깨끗케 되고 하나님의 은총이 충만해질 것이다. 그 어떤 마귀도 되돌아올 수 없을 것이며, 더구나 다른 마귀들도 데리고 올 수 없을 것이다. 만약 마귀가 당신을 속이고 다시 들어오려 한다면 당신 자신이나 다른 신자의 도움으로 가능한 한 빨리 쫓아내라. 당신의 생활 속에서 마귀가 활동하는 다른 분야도 밝혀진다면 즉시 쫓아내려고 노력하라. 예수님께서 마귀를 완전히 쫓아내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주셨다. 날마다 축사의 사역 가운데서 행하라. 그리고 다른 어떤 것으로도 만족하지 말라.
8 예수 그리스도로 집을 채우라
우리는 무엇으로 집을 채울 것인가?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다! 예수님으로 채워진다는 것은 정결함과 권능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단어로 그의 인격을 요약할 수 있다. 우리의 정결함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또 그 결과로 생기는 성령의 열매를 통해서 찾아온다. 우리의 권능은 성령의 세례와 그 결과로 주어지는 성령의 은사를 통하여 찾아온다.
마귀를 쫓아내고 난 다음에는 성령의 은사와 열매로 대체시켜야만 한다. 이것은 마귀를 쫓아낸 사람이 반드시 해야할 책임이다. 축사(逐邪)의 사역을 행하는 목사는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집을 채울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강조해야만 한다.
성령의 권능으로 집을 채우라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말씀하신 것들 중의 하나는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5)는 것이었다. 우리는 사도행전2장에서 이 약속이 성취되어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오순절의 기사이다.
성령 세례의 목적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이것을 능력을 받는 것이라고 설명하셨다(행1:8). 오순절 날에 성령 세례가 임한 후에 어떤 권능이 나타났는가? 이것은 흥미로운 주제이기는 하지만 여기서 충분히 다룰 수가 없다. 그러나 제자들을 통하여 역사한 권능은 성령의 아홉 가지 초자연적인 은사를 통해서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은사들은 고린도전서 12장 7절에서 11절에 설명되어져 있다. 그것들은 ① 지혜의 말씀, ② 지식의 말씀, ③ 믿음, ④병고치는 은사, ⑤ 기적의 능력 행함, ⑥ 예언, ⑦ 영을 분별함, ⑧ 각종 방언을 말함, ⑨ 방언을 통역함 등이다.
사도행전 전체 내용은 성령의 권능이 이와 같은 성령의 은사를 통하여 어떻게 역사했는지 보여주고 있다. 베드로와 요한의 치유 은사로 앉은뱅이가 나음을 얻었다(행3장). 아나니아가 사울을 위하여 사역할 때에 지혜와 지식의 말씀이 그에게 찾아왔다(행9장). 바울은 영분별의 은사를 통하여 사역을 방해하는 처녀 속에 들어 있던 점치는 귀신을 쫓아냈다(행16장). 베드로가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믿음의 말씀을 말했을 때 그들의 죄로 인해 쓰러져 죽었다(행5장). 베드로를 통한 부활의 기적이 도르가에게 새 생명을 가져다 주었다(행9장). 베드로가 고넬료의 가정에서 설교하는 동안에 방언과 통역의 은사가 있었다(행10장). 아가보라는 제자를 통하여 교회는 예언을 통한 축복을 받았다(행11장).
마귀는 이러한 성령의 은사를 멸시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들을 멸시하게 만든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와 같은 초자연적인 권능의 은사가 마귀의 역사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존재와 계락은 영분별의 은사와 지식의 말씀을 통하여 폭로되어진다. 그리고 그들의 악은 지혜의 말씀, 믿음, 치유의 은사, 기적들에 의해서 파멸되어진다. 해악을 가져다 주려는 그들의 계획은 적절한 예언의 말씀이나 통력을 수반한 방언에 의해서 철저히 깨진다. 따라서 마귀들이 그토록 강력하게 성령의 은사를 반대하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와 같은 아홉 가지 은사들은 덕을 세우기 위해서 교회에 주어졌다. 사탄은 교회의 원수이며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것을 반대한다. 사탄은 은사들에 대서 강력하게 공격하는데 특별히 개별 신자의 덕을 세우는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방언에 대해서 공격한다(고전14:4).
만약 축사를 체험했으나 아직 성령 세례를 받지 못했다면 반드시 이 세례를 받아야만 하며 또한 성령의 은사들을 소망해야만 한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축사(逐邪) 사역의 절정에서 성령 세례를 받는 것을 보았다. 성령의 권능을 받는 것은 축사(逐邪)의 상태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요인이다.
이미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해야 한다(고전12:31).
성령의 열매로 집을 채우라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는 예수님의 성품을 상징한다.
크리스천의 생활속에서 성령의 열매가 생산되어질 때 그는 예수님의 성품을 닮게 된다. 마귀는 성격상 예수님과 정반대이다. 마귀는 그 사람을 통하여 자기들의 악한 본성을 투영하기 위하여 그 사람 속으로 들어간다. 따라서 우리는 축사를 통하여 마귀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게 해야만 한다. 그래서 예수님과 성령의 열매로 대체해야 한다. 만약에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또 그것을 분명한 목표로 삼지 못한다면 축사(逐邪)를 통하여 얻은 유익은 결국 상실하게 될 것이다.
요약
열매는 독자적인 행동이나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맺을 수 없다. 그것은 오직 포도나무에 붙어 있을 때에만 맺을 수 있다! 그러므로 중심어는 “붙어 있다”이다. 포도나무에 붙어 있다는 것은 예수님과 관련을 맺고 있음을 의미하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생명이 가지 속으로 흘러들어가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붙어 있을 수 있는가? 그 대답은 10절에 있다.
이 구절에서 “거하다”라는 말은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과 동의어이다. 그러면 우리가 순종 가운데 거함으로써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계속해서 읽어보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요15:11).
우리가 순종할 때에 우리는 주님과 교제를 나누고 또 그의 사랑과 기쁨과 화평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불순종할 때 하나님과의 교제는 깨어지고 사탄은 들어올 길을 얻게 될 것이다.
사랑이라는 열매
A씨는 약12년전에 신경쇠약증을 앓았다. 그는 광범위한 치료를 받은 후에도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축사에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찾아 왔다. 그의 감정적인 문제들을 야기시키는 마귀들을 쫓아냈다. 그는 또한 뇌의 치료를 받았을 때 전기 충격 요법으로 인해서 그의 기억에서 지워진 것들이 다시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기억이 되살아나자 그는 자기에게 가혹한 부당행위를 한 정신병원의 간호 조무사 이름을 기억해 냈다. 그는 자신이 그 사람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심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아무리 세월이 흘렀어도 그 사람을 찾아내어 주기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서 A씨는 또 한 번의 축사(逐邪)를 위하여 나에게 찾아왔다. 그래서 그에게 자신의 증오심에 대해서 회개하고 자신의 의지로 그 사람을 용서해야 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또 마태복음18장 32절에서 35절에 따라서 그가 그 사람을 기꺼이 용서하지 않는다면 “옥족들”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도 말해 주었다. 그러나 그는 나의 호소에 대해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적어도 5분 동안 그는 침묵을 지키고 앉아 있으면서 자시의 증오심을 계속해서 품고 있을 것인지 또는 축사(逐邪)를 위하여 하나님의 요구에 응할 것인지 결정하려고 노력했다. 그가 용기를 내어 마침내 “예수님의 도움으로 나는 그 사람을 용서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데에는 많은 힘이 들었다. 이와 같은 그의 의지적 행동으로 인해서 그는 축사(逐邪)를 향하여 탄탄대로를 달리게 되었다. (마6:14,15).
나는 축사의 사역을 통하여 이 사람만큼 많은 것을 얻은 사람을 거의 알지 못했다. 적개심, 증오심, 분개, 노여움, 폭력, 살인의 마귀들이 쫓겨났을 때 그는 즉시 예수님의 사랑으로 변화되었다. 즉 원수를 용서하는 사랑으로 대체되었다. 즉시 이 사람의 영적 생활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에게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진리와 생명을 전해주기 시작했다. 그의 영혼은 주님의 평화와 기쁨으로 넘쳤다. 그는 원수를 용서하라는 하나님의 계명에 복종하여 순종의 열매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증오심은 사랑으로 바뀌었다.
화평이라는 열매
B여사는 “형벌의 영”을 쫓아냈다. 그녀는 큰 공포로 말미암아 마귀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성경 말씀은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요일4:18)고 말씀하고 있다. 그녀는 때때로 매우 흥분된 감정이 자기를 엄습하여 완전히 자신을 지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때마다 그녀는 냉철하고도 침착한 태도로 행동하거나 생각할 수 없었다. 이와 같이 흥분된 상태에 있었을 때에 그녀는 “왜 내가 이렇게 행동하고 있지? 이것은 전혀 나답지 않은 행동이야.”라고 말하곤 했다. 형벌의 영이 활동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던 환경이 어느정도 감소되어졌을 때 그녀는 마귀의 영이 자기의 모든 감정들을 조종하고 있음을 알기 시작했다.
마귀의 영이 출현하고 난 후에는 매번 아픈 것을 느꼈다. 그 때마다 그녀는 자기 내부에서 감정이 심하게 동요되고 불타오르며 저주로 가득 찼음을 느꼈다. 성경 말씀은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롬12:18)고 말씀하고 있다. 이 형벌의 영은 그녀 자신 뿐만 아니라 가정의 불화를 가져왔다.
이 마귀의 영과 그 동반자들을 쫓아낸 뒤에 그녀는 큰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그 다음 날 그녀는 자신의 내적 자아 속에 평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귀의 영은 계속해서 그녀의 마음속에 공포심을 조장하려고 시도했다. 결국 마귀가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게 되었다. 그러나 마귀는 두 번씩이나 되돌아오는 일에 성공했지만 또다시 쫓겨나야만 했다. 그녀는 곧 마귀의 계략을 깨닫고 하나님 안에서 믿음과 신뢰로 문을 닫았다. 그녀는 이제 완전한 자유를 얻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 안에 있는 화평이라는 성령의 열매는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주게 되었다.
9 마귀 출현의 현상들
마귀들은 영적인 전투를 통해서 도전을 받고 압력을 받을 때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 사람을 통하여 마귀들의 본성들을 드러낸다. 이 악한 영들은 어두움의 피조물들이다. 그들은 빛 가운데로 나오는 것을 견딜 수 없어 한다. 그들의 존재와 계략이 폭로되어질 때 그들은 흥분하고 광란하게 된다. 그것들이 출현하는 모습은 천태만상이다.
우리는 여기서 그것들을 몇 가지 사례들로 제한할 것이다. 사탄과 그의 마귀들은 뱀과 동일시되어진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밞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눅10:1).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니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계12:9).
때때로 뱀과 같은 모습들이 목격되어지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한 모습들은 혀에서 나타난다. 마귀는 사람으로 하여금 혀를 내밀게 하거나 또는 마치 뱀의 혀와 같이 매우 빠른 속도로 혀를 들락날락하게 만든다. 그리고 눈은 뱀눈의 특징을 띠게 된다(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축사의 과정에 있는 사람은 눈을 감고 았다. 마귀는 사람의 눈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자기들의 존재를 더욱 확실하게 드러내 보여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다).
뱀의 또다른 모습은 코를 통하는 것이다. 마귀의 영에 씌인 사람은 “쉿!”하는 소리를 내면서 콧구멍으로 바람을 불어낸다. 나는 내주하는 마귀의 권세에 의하여 마루바닥에 쓰러져 마치 뱀처럼 몸부림치는 사람을 목격한 적이 있다.
보다 흔히 나타나는 모습은 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손이 마비되어지거나 욱신욱신 쑤시게 된다. 때로는 손가락들이 쭉 펴져서 뻣뻣하게 된다. 이와 같이 손을 통하여 나타나는 마귀들은 대개 정욕이나 자살이나 살인의 마귀들이다. 다른 형태의 악한 영들, 특별히 손의 오용과 관련된 악한 영들은 이와 같은 방식으로 나타난다. 때때로 그런 마귀를 쫓아내기 위해서는 손을 힘차게 흔드는 것도 도움이 된다.
관절염의 영들도 자주 손을 통해서 나타난다. 손이 뻣뻣해지고 손가락들이 비틀어진다. 이런 일들은 아직까지 관절염의 징조가 가시적으로 나타나지 아니하는 십대들과 젊은이들의 손에도 나타난다. 그러나 관절염의 마귀는 이미 장기 계획을 가지고 역사하고 있어서 관절염의 마귀에게 나가라고 명령하면 마치 수년 동안 관절염을 앓은 사람처럼 만든다. 마귀는 또한 육체적 고통과 몸부림을 통해서 나타나기도 한다. 축사(逐邪)의 사역은 영분별의 은사로 아직까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아니한 질병들을 몰아낼 때에 그와 같은 병들은 중단되어질 것이다.
죽음의 영은 매우 섬뜩한 모습으로 출현한다. 나는 사람들이 심각한 질병이나 수술이나 자살을 통해서 죽음에 가까이 이르게 된 경우에 죽음의 영이 존재하는 것을 발견했다. 물에 빠져서 죽음의 영에 들린 사람이 공식적으로 죽었다는 선언을 받았으나 의사의 적절한 치료에 의해서 생명을 되찾은 경우가 있다. 죽음의 영이 나타날 때에는 눈꺼풀이 열리고 눈동자는 위로 치켜진다. 그리고 피부는 마치 밀납같이 창백해진다.
악취는 마귀 출현의 또다른 형태이다. 나는 목사관에서 축사(逐邪)의 사역을 행하던 때를 기억하고 있다. 이 때 상황은 집안이 온통 불쾌한 냄새로 가득 찼었다. 그것은 마치 내가 싫어하는 양배추 요리 냄새 같았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무슨 요리를 하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 부엌으로 갔다.
나는 어떤 여인에게서 암의 마귀를 쫓아낼 때도 이와 유사한 경험을 했다. 그 마귀가 쫓겨날 때에 악취를 수반했는데 그것은 암 병원에서 맡을 수 있는 것과 같은 독특한 냄새였다.
또 어떤 때 마귀는 큰 소리로 부르짖는다(마8:29; 막1:23; 눅4:41 ; 행8:7). 열일곱 살 된 소녀가 찾아왔을 때 우리는 축사(逐邪)의 사역을 시작했다. 그녀는 자기가 복술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를 내 바로 앞에 앉게 했다. 나는 성경을 펴고 신명기 18장 9절에서 15절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성경에는 복술자나 그와 유사한 것들은 여호와께 가증한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15절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라는 말씀을 읽었을때에 그 소녀는 찌르는 듯한 비명소리를 질렀다. 내가 급히 쳐다보았을 때 그녀는 손을 마치 갈고리처럼 뻗쳐서 나의 성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내가 미쳐 저지하기도 전에 그녀는 긴 손톱으로 내가 방금 읽었던 그 성경 구절의 페이지를 찢어버렸다! 우리는 복술의 마귀들과 또 그와 관련된 악한 영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나가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그녀는 곧 마귀의 억압에서 자유롭게 되었다.
교만의 영은 몇 가지 방식으로 나타난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거만하게 팔짱을 끼고 바라보게 만든다. 또는 코를 높이 쳐들고 머리를 뒤로 젖히는 행동을 하게 한다. 나에게 자신은 말을 너무나 많이 한다고 고백한 어떤 젊은 목사가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대화에 참견하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을 억제하고 다른 사람들이 말할 수 있도록 참을성있게 듣고 있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하는 말이 토론이나 대화 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말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처럼 “오만의 영”이 그 속에 들어 있었다. 그 사람은 접는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마귀의 영이 그로 하여금 코를 높이 쳐들고 의자를 뒤로 기울이게 만들었다. 그 사람이 의자 위에서 뒤로 넘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그를 붙잡아야만 했다. 교만이나 오만의 영은 사람으로 하여금 “실제보다 자기 자신을 더욱 높이 생각하게 만든다.”
때때로 악한 영들은 무언극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와 본성을 드러낸다. 사전 면담을 하는 동안에 어떤 젊은 목사는 자신이 세속적인 춤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먹는 것보다 춤을 더 좋아한다고 말했다. 세속적인 춤의 마귀를 불러냈을 때 그 사람은 음율에 맞추어 무언극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몸을 자연스럽게 흔들기 시작했으며 손을 급격하게 앞뒤로 움직였고, 그리고 또 비록 소리는 나오지 않았을지라도 마치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입술을 움직였다. 마침내 마귀는 “나는 ‘보혈의 권능’을 노래하고 있다”라고 소리쳤다. 그런 다음 그 사람은 우리가 그의 얼굴을 닦는데 사용하던 젖은 수건을 집어들었다(바로 앞의 마귀는 토하면서 쫓겨났다). 그리고 박자에 맞추어 그 수건을 빙글빙글 돌리더니 그 수건을 던졌다. 그러자 그 수건은 천장에 부딪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자 마귀는 그것을 보면서 소름끼치게 웃어댔다.
때로는 율동과 춤의 영들이 몸동작, 특히 엉덩이를 흔들면서 나타나기도 한다. 율동의 영이 나타날 때 온 몸을 떨던 젊은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치유된 후에 자기가 직업 무용수였으며 얼마동안 댄싱 걸로 일했다고 고백했다. 이 영은 그녀의 내부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마귀는 좋고 올바른 것들을 악용하기도 한다.
축사(逐邪)의 사역을 행하는 동안에 목격할 수 있는 또다른 모습들은 팔다리의 경련, 구역질, 울부짖음, 웃음 등이다. 특히, 웃음은 자주 축사의 사역을 경시하려는 조롱의 영의 짓이다. 축귀 사역에 경험이 없는 사역자는 사역을 받는 사람이 진지성이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웃음은 그 사람 자신의 감정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다.
내가 보기에 우리가 사역한 사람들 중에서 열두 명 중의 한 명 꼴로 마귀가 말을 하는 것 같다. 만약에 우리가 그들에게 말을 시킨다면 평균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그들은 보통 몇 가지 특징적인 말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떠나지 않겠다고 도전적으로 말한다거나 이 사람은 자기들을 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는 만약 자기들을 쫓아낸다면 다시 돌아오겠다고 위협한다. 때로는 쫓아내지 말아달라고 애원하기도 하며 자기들이 하는 일이나 자기들에게 생길 일에 대하여 동정심을 구하기도 한다. 마귀들은 분명히 예수의 보혈이나 또는 그들 앞에 놓여 있는 영원 영원명에 관해서 들으면 괴로워한다. 내주하는 마귀들은 서열상 자기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마귀들에 대하여 명백하게 두려워하고 있다. 그들의 말은 축사(逐邪) 사역자를 혼란시키거나 그를 두렵게 만들기 위 영술수이다. 예를 들자면 마귀는 “나는 당신에 대해서 어떤 것을 알고 있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지금 이 자리에서 그것을 말하기를 원하는가?” 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단지 위협과 고발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결코 그들의 위협에 대한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는다. 결국 마귀가 하는 말은 지연전술이며 쫓겨나기를 회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마귀의 영들이 쫓겨날 때 그들은 대개 입이나 코를 통하여 쫓겨난다. 영들은 호흡과 관련이 있다. 히브리어 뿐만 아니라 헬라어도 하나의 단어로 영과 호흡을 나타내고 있다. 헬라어 단어는 “프뉴마”이다. 성령도 호흡과 관련이 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그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요20:22)라고 말씀하셨다. 많은 기독교 찬송가들도 “하나님의 호흡이시여, 나에게 호흡하소서”, “성령이여, 나에게 호흡하소서”등과 같은 찬송을 포함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성령을 들이마시고 악한 영들을 내쉰다는 것을 발견하게 해준다.
악한 영들이 떠날 때 우리는 대개 입이나 코를 통하여 어떤 징조가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가장 흔한 징조는 기침이다. 그 기침은 마른 기침이지만 자주 가래를 수반한다. 엄청난 양의 가래가 올라온다. 토하는 것, 콧물, 침뱉는 것, 거품을 내는 것 등을 통해서 유사한 물질이 올라온다. 식사를 한 직후에 축사(逐邪)의 사역을 받은 사람들은 격렬하게 구역질을 하면서 토하는 것을 관찰할 수 없다. 드물게는 위에서 음식물이 올라오는 것도 볼 수 있다. 희귀하게 적은 양의 피도 나타난다. 한 시간 이상 정도 이와 같은 물질들을 토해내는 것은 희귀한 일이 아니다.
입을 통한 또다른 출현은 울부짖음, 비명, 한숨, 으르렁거림, 트림, 하품 등을 포함하고 있다. 코를 통하여 바람을 불어내거나, 잠시 동안 마치 많은 양의 배설물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계속적으로 코를 푼다. 이와 같은 출현들은 매우 온화한 것으로부터 매우 심한 것에 이르기까지 그 강도는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출현의정도가 그 축사(逐邪)의 사역의 효과의 정도를 판단하는 기준은 아니다. 하품이나 한숨을 통해서 마귀를 쫓아낸 사람들이나 격렬한 현상을 보인 사람들도 똑같은 사역을 받는다.
10 축사(逐邪)의 사역
개인과 단체, 사적인 것과 공적인 사역
개인적 사역
축사(逐邪)는 정규적인 교회 사역의 일부분으로 행해질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공개적으로, 그리고 예배와 교육의 장소에서 마귀를 쫓아내는 일을 주저하지 않으셨다.
나도 이와같은 사역을 한 적이 있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그 자리에 있으면 마귀의 영들은 반응을 보이며 울부짖거나 큰 소리로 말을 한다. 예배도중 방해받는 시점에 따라 그 대처 방식은 달라진다. 때로는 마귀의 영들에게 메시지의 선포가 끝날 때까지 조용히 있으라고 명령한다. 그럴 때 마귀들은 한 동안 결박되어져 있다가 적당한 때가 되면 쫓겨나게 될 것이다.
어떤 때는 즉시 마귀를 쫓아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집례하고 있던 예배중에도 이런 일이 한 번 일어난 적이 있었다. 설교가 끝나자마자 마귀의 영이 어떤 남자와 그의 아내에게 덮쳤다. 그들은 크리스천들이었지만 성령 세례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그들은 “오순절주의자들”을 조롱하고 놀릴 의도로 예배에 참석했다. 그러나 예배 도중에 그들은 깨닫게 되었다. 설교 내용은 예수님의 보혈의 권능을 강조한 것이었다. 먼저 부인이 격렬하게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그녀를 위하여 기도하기 시작했을 때 마귀가 그녀를 통하여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 남편이 무엇을 도울 수 있을까 알아보기 위하여 그쪽으로 걸어갔을 때 그 사람안에 있던 마귀들도 비명을 지르며 발작하기 시작했다. 교인들은 계속해서 찬송가를 불렀으며 우리들 중에서 몇 사람은 교회의 복도에서 그 사람과 그 아내에게 축사(逐邪)의 사역을 시행했는데 결국 그들은 마귀의 손아귀에서 자유를 얻게 되었다. 그러자 두 사람은 성령 세례를 받기 위하여 기도했다. 잠시 후 그들은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다른 많은 마귀의 영들 뿐만 아니라 알코올과 니코틴의 마귀들로부터도 벗어나게 되었다. 그들은 큰 열심과 기쁨으로 성령 충만한 생활을 계속했다.
지금까지 나의 사역은 대부분 개별적인 면담의 형태를 통한 축사 사역이었다. 우리의 축사팀은 먼저 어떤 교회나 지역 사회를 찾아가고 마귀론과 축사(逐邪)에 관해서 몇 번에 걸친 교육을 한다. 우리는 마치 의사들처럼 사람들에게 약속 시간을 정하게 한다. 개인적으로 약 2시간씩 할당되어진다. 우리는 부모와 모든 연령층의 자녀들이 다같이 참여 할 수 있는 가족 전체를 위한 사역을 강력히 권하고 있다. 약 30분 내지 45분 동안 면담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축사의 사역을 한다. 이와 같은 축사의 방법은 몇 가지 강점들이 있다. 특히, 개별적인 면담은 마귀가 그 사람의 생활 속에 들어오게 된 시기와 방법에 관해서 알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여러 가지 마귀들이 어떻게 역사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 이러한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마귀들을 쫓아낸 후에 그들이 문을 닫는 데에 큰 도움을 준다. 따라서 마귀들은 또다시 들어올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마귀들은 대화를 듣고 자기들의 존재가 발각되어지고 그들의 악행이 드러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것은 마귀의 영들을 당황하게 만들어서 당신이 축사의 사역을 준비할 시점에는 마귀들은 항상 표면에 나타나고 보다 쉽게 정체를 드러낼 것이다. 반면, 면담 형태의 사역은 시간이 많이 소비된다는 불리한 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공적이나 단체적인 축사의 사역보다 더욱 철저하다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은 보다 많은 일꾼들을 찾고 계신다. 마태복음10장에서 예수님은 가르치고, 설교하고, 치유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하셨다.
단체적 사역
단체적인 사역은 한 번에 두 사람 이상의 사람들로부터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말한다. 그 단체의 규모는 두 사람부터 수많은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와 같은 일들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축사(逐邪)의 사역을 행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여러 번 증명되어졌다. 축사의 사역을 행하는 목사는 마귀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나가라고 명령한다. 그러면 마귀들은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백 명 이상의 큰 그룹에서는, 개별적으로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지식을 가진 사역자들을 충분하게 확보하지 못한다면,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이 필요로 하는 사역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단체 사역의 단점은, 어떤 사람들은 매우 적절한 축사의 사역을 받을 수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필요한 만큼 받을 수 없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전혀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적인 사역과 공적인 사역
때때로 우리들은 이 두 가지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해야만 할 때가 있다. 우리는 반드시 공적인 축사 사역이나 사적인 축사 사역 중에서 한 가지만을 선택해야 하는가? 성령께서는 그 두 가지 경우 모두에 있어서 역사하셨다. 크리스천들은 각자 주님께서 보여주신 방법대로 행하면 된다.
마귀들은 숨겨지고 고백되지 아니한 죄악 가운데서 번창한다. 그들은 크리스천의 영적인 성장과 증거를 방해하기 위하여 죄의식과 무가치한 느낌을 가져다 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것들을 축사의 사역자들에게 고백함으로써 평안함을 느끼게 된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게 된다. 즉 과거를 다시 파헤치는 것은 마귀가 들어온 경로를 밝혀내어 다시는 들어오지 못하도록 그러한 문들을 영원히 걸어 잠그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때때로 축사(逐邪)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교육과 격려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영적 전투의 기술을 재빨리 이해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배우는 속도가 더디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생활 가운데서, 특별히 가정에서 가족들을 통하여 마귀에게 공격을 받기 쉽다. 목사는 개별적 경우의 중요성을 느끼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최선을 다하여 사역을 받은 사람이 계속해서 승리 가운데 축사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11 스스로 마귀를 쫓아낼 수 있다
나는 자주 “사람이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서 마귀를 쫓아낼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는다. 나의 대답은 “예스”이다. 사람이 스스로 축사(逐邪)의 차원 가운데서 행하기 전에는 결코 마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다.
그러면 어떻게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서 마귀를 쫓아낼 수 있는가? 믿는 사람들은 축사의 사역을 행하는 크리스천과 동일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 즉, 예수의 이름이라는 권위를 가지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분명하게 약속해 주셨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막16:17).
사람들은 스스로 마귀를 쫓아내는 방법에 대하여 배울 필요가 있다. 경험이 많은 목사에게 최초의 축사(逐邪)를 경험한 사람은 그 후 스스로 축사의 사역을 실행할 수 있다.
우리는 축사(逐邪)가 하나의 “과정”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만 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내주하는 모든 마귀들을 쫓아내고 나머지 생애 동안에 그들에 관해서 잊어버릴 수만 있다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 중에서 완전한 자유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만약 우리가 생각이나 말이나 행동으로 결코 죄를 짓지 않는다면 우리에게는 더 이상 축사의 필요성이 없을 것이다. 죄는 마귀가 들어올 수 있게 문을 열어준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이 죄를 지을 때마다 마귀가 들어온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죄는 스스로 문을 개방하게 하여 마귀들이 그 통로를 통해 쉽게 들어오게 만든다.
스스로 마귀를 쫓아내고자 하는 사람이 직면하게 되는 가장 큰 문제는 영들을 정확하게 분별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의 생활 속에서 나타나는 마귀의 활동들을 단순히 인격적인 표현으로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영에 대해서 분별하고 난 다음에 “오, 나는 그것이 단지 나 자신이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반응한다. 자기 고집대로 행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생활 속에인 표진 죄에 관해서 알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 마귀를 쫓아내는 일을 시작하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안일을 시작하성경 말씀은 우리들에게 우리의 죄를 속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고 가르쳐준다. 미혹하는 영이 강력하게 사람을 지배하여 그가 자신 속에 들어 있는 잘못을 볼 수 없게 만드는 지경에까지 이른 경우들도 있다. 그와 같은 경우, 그 사람은 자기 자신에 관하여 올바른 판단을 할 수가 없다.
사람이 항상 마귀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예수님과, 그리고 또 진실하고, 정직하고, 순수하고, 사랑스럽고, 좋은 평판을 듣는 것들에 관해서 우리의 생각을 집중시켜야 한다. 그러나 악한 마귀로부터 주어진 환난이 찾아왔을 때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밝혀내고 또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제공해 주신 권위로 그것을 처리하는 데에 주저해서는 안 된다. 마귀를 처리하는 목적은 우리의 영적인 교제와 사역의 방해물을 제거하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 행하는 축사(逐邪)의 사역도 다른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경우와 동일한 방법으로 체험되어진다. 유일한 차이점은 사역을 행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이라는 것 뿐이다. 그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자신이 마귀의 일부가 되기를 원하지도 않으며 주님께 자신에게 자유를 달라고 고백해야 한다. 그 다음 마귀의 이름을 하나씩 부른다. 자신이 예수의 이름으로 어떤 특정한 마귀에게 나가라고 몇 번 명령하고 나면 잠시 동안 강력하게 숨을 내쉬거나 또는 가능한 한 깊은 곳에서부터 기침을 하기 시작할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 마귀가 출현하는 모습은 다양하기 때문에 간단하게 설명할 수는 없다. 다른 축사 사역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경우에도 마귀의 영이 떠날 때에 매우 다양한 현상들이 수반되어진다. 나 자신의 경험에 의하면 내가 마귀에게 명하자마자 목에 압박감을 느꼈으며 그 후에 기침이 나오고 가래가 올라왔다. 그리고 곧 그 마귀가 쫓겨난 것을 알 수 있었으며 편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확신적이며 공격적으로 이 일을 수행할 수 있다.
12 중보기도를 통한 축사 사역
분명히 축사(逐邪)의 사역을 필요로 하면서도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자주 이런 질문을 받는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 사람의 상태가 어떠한가? 그는 거듭났는가? 그는 타락했는가? 우리는 구원이 해방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그것은 사람의 영적인 해방이다. 구원이 찾아오기 전에 사람은 자신의 허물과 죄악들 가운데서 죽어 있었다(엡2:1).
그러나 그의 영은 죽은 것이다. 그는 영적인 것들에 관해서는 이해하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다. 사람이 영을 소생시키는 데에는 성령의 권능이 필요하다. 그는 다시 태어날 필요가 있다(요3:3).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고 그 사람의 믿음을 통해서 가능해진다(엡2:8). 그리고 믿음은 들음에서 나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롬10:17). 구원을 뜻하는 헬라어 단어 “소테리아”는 해방을 의미한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어떠한 것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한다. 따라서 영의 구원은 축사(逐邪)의 첫 단계이며 그 다음 단계의 기초가 된다. 따라서 축사(逐邪)의 사역에 있어서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로 인도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만약 그가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이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영적인 복지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은 중보 기도로써 그 간격을 채워야만 한다. 그의 영적인 무지가 사라지도록 기도해야만 한다. 타락한 사람은 사탄의 권세에 의해서 눈이 멀기 때문이다.
중보기도
중보 기도는 구원받은 사람에게도 필요하다. 축사(逐邪)에 필요한 주님의 구원을 거부하는 사람은 미혹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축사의 사역을 거부하기 위하여 어떤 변명을 하든지간에 그것은 어떤 형태로든 미혹을 당하고 있음을 스스로 증명해 줄 뿐이다. 미혹하는 자인 사탄은 교활한 방법을 동원해 사람을 속박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서로를 위하여 중보 기도를 하여 마귀의 덫에서 벗어나라고 가르치셨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우리로 하여금 시험에 들지 말게 하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이것을 문자 그대로 직역하면 “우리를 악한 자들에게서 구하옵소서”이다. “우리”라는 대명사에 주목하라. 축사(逐邪)를 위한 우리의 간구 속에 다른 사람들도 포함시켜야 함을 깨달을 수 있다.
영적인 전투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축사(逐邪)의 사역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마음의 문을 열지 아니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영적인 전투를 수행하게 하신다. 그 사람들의 의지는 마귀의 세력에 유린되어 주어진 도움에 응할 수 없다. 그 어떤 합리적인 설명이나 설득도 그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의 문을 열게 할 수 없다. 그들의 의지는 원수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결박당한 사람을 지배하고 있는 권세들은 “공중 권세 잡은 자”가 앉아 있는 하늘에 본부를 두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교회들에게 사탄을 결박할 수 있는 권능을 주셨다. 우리는 사탄의 세력들이 영원한 무저갱 속에 갇힐 때까지 그 전투를 수행해야 하며 사탄이 꾸민 전략을 전복시켜야만 한다.
여기서 “매다”와 “풀다”라는 동사는 완료 수동형 분사이다. 그것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은 의미이다. 즉 “우리가 땅에서 매거나 푸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늘에서도 매거나 풀어진 상태에 있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이 땅에서 무엇을 매거나 풀기 위해서는 먼저 영적인 영역에 있는 것들을 매거나 풀어야 한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일이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의지를 지배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한다. 영적인 전투는 사람의 의지를 해방시킨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주님께 직접적으로 반응하며 하나님께서 그에게 제공해 주신 도움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 사람이 자기 자신의 자유 의지의 결정에 의해서 죄와 사탄에게 속박되어져 있는 경우에 그는 스스로 그 길을 선택한 것이다. 따라서 마귀를 결박해도 그를 변화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마귀의 권세가 속박되어졌을 때 그는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되찾게 될 것이다.
여기서 분명히 경고해야 할 일이 있다! 중보 기도의 사역이라는 이름으로 어리석고도 위험한 일들이 자행되고 있다. 즉, 중보 기도자가 축사의 사역을 원치 않는 사람을 위해 대신해서 마귀가 자신에게 들어오도록 동의하는 어처구니 없는 경우이다. 그러나 이것은 중보기도자 자신이 쉽게 마귀를 쫓을 수 있을 것이라는 오판에서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사탄은 이러한 게임을 할 태세를 늘 갖추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 그 어디에도 마귀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암시되어져 있는 곳은 없다. 마귀를 받아들이기로 동의하여 악한 영들이 유입되도록 문을 열어주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 마귀들이 그에게서 반드시 떠날 것이라는 그 어떤 보장도 없기 때문이다. 교활한 미혹의 마귀는 그러한 방법을 통해서 또다시 승리를 얻게 됨을 명심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마귀를 받아들이는 일에 참여한 사람에게 들어와 있는 수많은 악한 영들을 쫓아내는데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직접적인 사역을 받을 수도 있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마귀들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와 같은 어리석은 사역을 지지해주는 성경적인 근거는 전혀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바이다.
사랑이라는 무기
직접적인 사역을 거부하는 사람을 설득하는 데 있어서 사랑이라는 무기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사람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사랑을 받아야 할 필요성이 자리 잡고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지 그는 마음에 상처를 받았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랑의 눈길은 그 사람의 진정한 자아(증오와 반역과 의심을 드러내 보여주며, 그리고 또 그 사람으로 하여금 축사의 사역을 거부하게 만드는)와 내주하는 마귀들을 구별할 수 있다. 그와 같이 “분별력 있는 사랑”은 그 사람과 가까워지고 그 사람을 사랑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사람의 불안정한 인격으로 말미암아 생긴 폭풍에 의해서도 결코 쓰러지지 않게 만든다. 그 사람이 우리가 제공한 사랑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반응을 보이지 않을 때에도 사랑은 어두움의 권세들에게 압력을 가하는 영적인 수단이라는 사실을 확신해야만 한다.
악한 영들은 호흡이나 바람과 동일시되어진다. 영을 뜻하는 헬라어 단어 “프뉴마”는 호흡이나 바람을 의미한다. 일산화탄소가 우리의 호흡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듯이 사랑도 악한 영들에게 치명적이다. 악한 영은 사랑으로 포위되어졌을 때 더 이상 존재하거나 힘을 쓸 수 없다. 우리의 아가페적 사랑은 다른 사람들의 생활 가운데서 비사랑적 권세들을 쓰러뜨리는 무기를 만들어준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가르치신 이유이다. 아가페적 사랑은 그들의 정신을 정화시켜준다.
사실상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과 꼭 같은 방식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전혀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없을 때에도 우리를 사랑하셨다(롬5:8). 그의 사랑이 장벽을 허무셨다. 사랑은 모든 장벽을 무너뜨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랑은 노련한 영적 전사의 손에 들려 있는 강력한 무기이다.
성경말씀으로 기도하라
우리가 중보 기도의 전투를 행할 때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만 한다. 성령께서는 기도의 전사를 특별한 성경 구절로 인도하실 것이다. 이러한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기도하라. 당신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주님을 믿지 않는 남편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 아내는 다음과 같은 바울의 형식으로 기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그 기도를 개인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골1:9~11 참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라
우리는 지금까지 중보 기도를 통한 축사 사역에서 따라야만 할 몇 가지 영적인 원리들에 대해서 설명했다. 각각의 상황은 그 자체적으로 독특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성령께서는 모든 형편들과 처지들을 알고 계신다. 성령께서는 당신이 따라야 할 올바른 행동의 길을 마련해 주실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전투는 영적인 것이다. 그것은 육적으로는 이길 수 없고 인간의 재능으로도 그에 합당한 전략을 세울 수가 없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자.
13 어린이들에 대한 사역
마귀의 영들이 태아와 어린이들에게도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말한 바 있다. 따라서 그들에게도 축사(逐邪)의 사역이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어린이들의 경우에도 어른들의 경우와 동일한 방식으로 마귀들을 쫓아낼 수 있다. 마귀의 영들은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입과 코를 통하여 떠나게 될 것이다.
대개 어린이들의 경우에는 아주 쉽게 마귀를 쫓아낼 수 있다. 마귀의 영들이 그 곳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육체 속에 깊이 새겨져 있지 않다.
어린이들에게는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당신이 무슨 일을 할 것인지에 관하여 간단한 설명을 해주어야 한다. 그 아이들에게 당신이 그들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속에 있는 것이 아들에게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릴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것이 아들에게 하는 말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받있다는놀랄 수도 있다. 어린이들은 대개 매우 협조적이다. 어린이들은 부모와 함께 있을 아들욱 평걈이 마음을 느끼기 때문에 사역을 하는 동안에 부모들이 어린이를 붙잡고 있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축사(逐邪)의 사역자는 어린이 속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들의 반응을 분별해야만 한다. 것이 아들은 어린이로 하여금 붙잡는 것을 거부하게 만들 수도 있다. 어린이는 소리를 지르있다는비명을 지르몈, 또 크게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마귀들은 그것이 어린이가 다치있다는또는 잘못있는지고 있다고 생각하도록 만들기 위하여 여러 가지 계락들을 사용할 것이다. 그래서 목사와 부모들이 어린이를 동정하여 그 사역을 중단시키게 하고 마귀로 하여금 계속 그 곳에 머물러 있도록 허용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특히 어린이에 대한 사역에 있어서 마귀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은 큰 소리로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보혈의 권위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린이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조용하고도 사무적으로 명령을 해야 한다.
유아나 어린이들은 자기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없다. 그렇다면 그들에게서 마귀를 쫓아낸 후에 그들은 어떻게 자신을 마귀로부터 지킬 수 있는가? 그것은 어린이의 책임이 아니라 부모나 보호자의 책임이다. 성경을 보면 예수께서 어린이들에게 사역하셨을 때에 그곳에 부모들이 같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녀들의 영적인 보호자는 부모들이다.
14 매는 것과 푸는 것
하나님께서는 현재의 삶에서 우리로 하여금 왕처럼 다스리게 하시고 통치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우리가 마귀의 권세를 묶고 마귀에 포로된 자들을 풀어 줄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매고 푸는 권한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이다. 크리스천들은 상상하는 것보다 더욱 큰 권한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기도만이 아니다. 우리가 “오, 하나님이시여, 오셔서 나에게 이토록 어려운 시기를 가져다주고 있는 이 무서운 마귀를 어떻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부르짖을 일이 아니다.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로 일어나서 마귀에게 대항해야 할 때이다.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는 구절의 의미는 무엇인가? 성경 번역자인 윌리암스(Williams)는 우리들에게 여기서 사용된 동사가 완료 수동태 분사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즉 이 말은 이미 허용되어지거나 또는 금지된 상태에 있는 것을 가리키고 있다. 이것은 크리스천이 매거나 푸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늘에서”, 즉 주님 자신에 의해서 이미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시행되어진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면 주님께서 이미 매셨는데도 불구하고 또다시 우리에게 매는 권세를 주셨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치셨다.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늑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늑탈하리라”(마12:29)
이 구절 바로 앞 내용에서 예수님은 마귀들을 쫓아내셨다. 그러자 종교지도자들이 그렇게 하신 권한에 대하여 도전했다. 그들은 마귀의 권세로 그 일을 행했다고 비난했다. 예수님은 마귀의 영들을 통제할 수 있으며, 당신이 이미 강한 자, 즉 사탄을 결박했기 때문에 그들을 자기에게 순종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설명하셨다. 마귀들이 예수님께 순종한다는 사실은 사탄이 결박되어졌다는 증거이다. 사탄은 이미 “하늘에서”, 즉 하늘의 권능으로 결박되어졌다. 그의 권세는 깨뜨졌다. 하늘의 열쇠는 우리에게 주어졌다. 따라서 우리도 결박할 수 있는 권세를 갖게 되었다. 아멘!
앞 구절에서 “매다”를 뜻하는 헬라어 단어는 “데오”이다. 이것은 묶거나 결박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쇠사슬로 묶어서 도망가지 못하게 짐승을 결박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다! 사탄이 결박되어졌을 때 그는 역사할 수가 없다. 그는 우리에게 역사할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우리에게는 “천국 열쇠”가 주어졌다. 어둠의 권세를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우리는 그것을 얻기 위하여 기도할 필요가 없다. 하늘에서 그 전투는 승리했고 하늘에서 이미 결박되어진 것을 우리는 이 땅에서 결박하면 된다.
그러면 푼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푼다는 것은 포로를 해방시키는 것이다. 축사의 사역을 통하여, 포로된 자들이 사탄의 노예라는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눅13:11~12)
안식일 날에 예수님께서 축사(逐邪)의 사역을 하심에 회당장이 분노할 때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눅13:15~16)
본문 말씀에서 “풀다”를 뜻하는 헬라어 단어는 “루오”이다. 사전에 보면 그것은 다음과 같다. “묶이거나 결박되어진 어떤 것을 푸는 것, 결박되어진 자를 푸는 것, 석방시키는 것, 해방시키는 것, 감옥에서 석방시키는 것, 건강을 회복시킴으로써(사탄에 의한) 속박이나 질병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으로 정의되어 있다. 마귀의 영들에 대한 승리는 이미 예수님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하늘에 관한 한 모든 포로들은 풀려졌다! 그 원리는 구원의 원리와 동일하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길을 예비해 주셨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을 받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 피를 개인적으로 적용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그 피를 바르는 모든 사람들은 구원을 얻는다. 그러나 그 피를 바르기를 거부하거나 무시하는 자들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축사(逐邪)의 사역도 제공해 주셨다. 하늘에 관한 한 그것은 이미 이루어졌기 때문에 포로를 풀어주는 열쇠는 크리스천에게 주어졌다. 그는 이 땅에서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풀어줄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하늘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반복해서 말하자면 묶는다는 것은 사탄과 마귀에 대한 것이며 푼다는 것은 어두움의 권세에 결박되어져 있던 사람에 대한 것이다. 사탄은 결박되어졌고 그 희생물은 해방되어졌다! 이것은 효과적인 축사(逐邪)사역의 결과로 생기는 것이다.
15 축사(逐邪)의 테크닉과 방법
비록 내가 당신에게 어떤 지침을 제공해 주길 원할지라도 이 축사(逐邪)의 사역은 항상 성령의 직접적인 인도를 받아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고지하기를 원하는 바이다. 크리스천들 중에는 영적인 사역들에 있어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의존하기 보다는 어떤 적절한 공식을 찾는 경향이 있다.
자는 성령께서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들을 사용하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우리는 어떤 테크닉을 사용하든지 간에 성령께 의존해야함을 깨달아야 한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그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백성들에게 줄 물을 구하기 위하여 반석을 치라고 말씀하셨을 때나, 또는 단물을 만들기 위해서 마라의 쓴 물에 나무를 던져 넣으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모세에게 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또한 예수님께서 땅에 침을 뱉으시고 진흙을 만드셔서 눈먼 사람을 치유하기 위하여 그의 눈에 바르신 것도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결과가 나타난다면 하나님께서 어떤 테크닉을 선택하시든지 그것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안수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는 동안에 결코 안수를 하지 않았다고 주창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와 반대의 사실을 나타내 주는 사례들이 적어도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베드로의 장모를 치유하신 사건이다. 누가복음 4장 39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병을 꾸짖으셨다”라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은 열병을 하나의 인격체로 취급하셨다. 이것은 그 열병이 마귀에 의한 것임을 가르치고 있다. 마태복음 8:15의 병행기사는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라고 말하고 있다. 귀신을 쫓아내기 위하여 사람에게 안수한 두 번째 사례는 질병의 영에 의해서 허리가 꼬부라진 여인의 경우였다. (눅13:11~13)
그러나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실 때에 사람에게 안수한 몇 가지 사례들이 기록되어져 있기 때문에 안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려서도 안 된다.
한번은 우리가 열여섯 살 된 소년에게서 마귀들을 쫓아낸 적이 있었다. 우리가 불러낸 첫 번째 마귀는 두려움이었다. 그 소년은 마귀의 영에 사로잡혀서 마루바닥에 쓰러졌다. 그 자리에 있던 다섯명의 남자들이 그를 육체적으로 억제하려고 노력했지만 단지 부분적으로 성공했을 뿐이다. 다른 일곱 마귀들도 불려 나와서 격렬한 모습들을 보여주었다. 그러자 성령께서 그런 모습들은 폭력의 영 때문이라는 지식의 말씀을 제공해 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그 소년에게 마귀가 그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라고 가르쳤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성령 안에서 싸울 것을 권고했다. 즉 계속적으로 마귀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가라고 명령하라고 말했다. 폭력의 영은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하고 쫓겨났다. 다른 많은 마귀들이 쫓겨날 때에 더 이상 폭력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 사역을 통해 사람에게 들어 있는 한 마귀는 다른 마귀의 영들을 불러낼 때에 동시에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 이러한 사실은 마귀에 대해서 이해하는 데 매우 유익한 것임이 입증되었다. 그 후에 있었던 다른 많은 사역들에 있어서 사람이 폭력적인 행동을 할 때 폭력의 마귀를 쫓아내면 그러한 모습들은 완전히 진정되었다.
마귀들은 사람의 육체의 어떤 부분에서도 거주가 가능하다.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부분들 중의 하나는 하복부인 것같다. 사역중에 이 부분에 안수할 때 마귀들이 더욱 신속히 입을 통해서 쫓겨나가는 경우가 많이 있다. 축사(逐邪)의 사역 현장에 남성들과 여성들을 입회시키는 것이 지혤곱고 유익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여성들은 여성들에게 안수하고 남성들은 남성들에게 안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축사(逐邪)의 사역을 할 때에 안수를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유들 중의 몇 가지는 두려움에 근거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악한 영이 자기들에게 공격할까봐 두려워했다. 나는 어떤 사람들이 축사(逐邪)의 사역을 하는 동안에 안수를 할 때 악한 영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자기의 손과 팔을 통하여 자기 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와 같은 체험을 한 적이 없다. 나는 수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에게 안수를 했으나 그와 같은 육체적 접촉의 결과로 마귀의 공격을 받은 적은 결코 없다.
원리는 다음과 같다. 즉 우리가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면 그 어떤 마귀도 우리를 공격하거나 우리에게 들어올 수 없다. 그런데 두려움은 그와 같은 입구를 제공해 줄 수 있다. 만약 사역하는 사람이 마귀가 자기를 공격할 것을 두려워한다면 그는 마귀에게 필요한 입구를 제공해 준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라”(딤전5:22)고 말한 성경 구절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석해야만 하는가? 나는 개인적으로 이 구절은 단지 임직식 때의 안수에 관해서 말하고 있으며 치유나 성령 세례나 축사(逐邪)등과 같은 다른 목적으로 안수하는 것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 비록 그 구절이 축사(逐邪)의 사역에 적용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안수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조급하게 안수하는 것에 대하여 주의를 주는 것이다. 두려움은 원수의 매우 흔한 전략이다. 따라서 자기가 진실로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마음속으로 확신해야만 한다. 원수는 이미 예수님께 패배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 앞에서 “모두 다 무릎을 끓을 수밖에 없다”(빌 2:10).
마귀와의 대화
축사(逐邪)의 사역을 할 때 마귀들을 다루는 과정에서 그들이 말하는 것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그들은 때때로 사전경고도 없이 말을 내뱉는다. 그들은 예수님께도 그렇게 했다. 그러면 그들이 말하고 싶도 할 때에 우리는 그들과 대화를 해야만 하는가? 나는 이 문제야만 하는가매우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만약에 성령께서 어떤 특별한 목적으로 지시하지 않으신다면 마귀와 더불어 대화를 해서는 안 된다.
거라사인의 광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실 때에 예수님은 “네 이름이 무엇이냐?”(막5:9)라고 물으심으로 귀신에게 말하도록 명령하셨다. 귀신에게 이름을 말하라고 명령함으로써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경험적으로 볼 때 귀신의 권세는 그 정체가 드러날 때에 더욱 쉽게 좌절되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어떤 귀신들은 다른 귀신들보다 더욱 완고하거나 완강하다.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완고한 귀신에게 이름을 말하라고 강요할 때에 그것은 밖으로 나오게 된다. 그리고 그 권세도 좌절되어진다.
그러나 마귀의 영들과 대화를 하는 데에는 위험이 따른다. 지식을 얻기 위해서 마귀와 대화를 해서는 결코 안 된다. 성경은 마귀와 교통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신18:10,11). 크리스천은 지식과 지혜와 인도하심의 원천으로 성령을 모시고 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진실을 말하라고 명령할 때에도 마귀들은 때때로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저항을 분쇄하기 위한 목적에서 성령께서 당신으로 하여금 어떤 마귀에게 다른 내주하는 귀신들의 이름을 말하도록 강요하게 하시는 경우도 있다. 그때 이것이 영분별의 은사를 대신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성령을 통해서 정보를 얻어야 하며 악한 영들의 거짓말하는 입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내가 처음 축사(逐邪)의 사역을 시작했을 때 나는 귀신들에게 말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머지 않아 그들이 동일한 사실에 대하여 말하며 또 작은 진실을 거짓말과 혼합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신참자들은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듣기를 원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곧 그것이 불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우게 될 것이다. 마귀들은 대화를 계속하고 있는 한 떠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만큼 영리하다. 그들이 진정으로 듣기 싫어하는 것은 “입을 닥쳐라. 그리고 나오라!” 는 말이다. 그들의 말은 항상 지연전술일 뿐이다.(막1:23~26)
마귀들이 사람을 통하여 말을 하지 않을 때에는 마귀들에게 질문하는 것은 효과적이다.
사역을 방해하는 것들
축사(逐邪)의 사역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져야만 한다. 경험을 통해서 자신감이 증가하고 또 긴장하지 않고 사역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사역자는 자기가 주 예수의 종이며 자기에게 주어진 권세와 권한으로 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한다. 마귀의 권세가 아니라 그가 그 상황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사역은 연장되어질 수도 있다. 몇 시간 동안 연장될 수도 있다. 축사(逐邪)의 사역자 뿐만 아니라 사역을 받는 자도 몇 분 동안 휴식을 취할 필요가 있다. 한 무리의 귀신들을 쫓아낸 후에 사역을 일시 중단하는 것이 편리하다. 그러나 휴식 시간을 가질 때 당면한 문제를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당신이 중단했던 것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라. 사역을 하는 도중에 마귀들이 침입한 다른 분야가 생각나거나 또는 성령께서 어떤 관련된 정보를 알려주시는 경우도 있다. 그럴 경우에는 사역을 중단하고 그러한 문제를 다루는 것도 괜찮다.
그러나 원수의 계략에 대해서는 매우 조심해야만 한다. 사역을 받던 사람들이 “물 좀 마시게 해주십시오.” 하거나 또는 그 방을 떠나기 위해서 다른 어떤 변명을 할 수도 있다. 때때로 이런 것이 그 사람 자신이 아니라 마귀의 말일 수도 있다. 마귀는 그 사람을 데려가기를 원한다.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다면 그와 같은 계략에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이 얼마나 깊이 귀신에 들렸는가? 눈길은 이글거리는가 아니면 고정되어져 있는가? 음성은 그 사람 자신의 음성인가? 당신 자신의 영은 무엇이라 말하는가를 늘 분별해야 한다.
몸의자세
마귀들은 주로 입이나 코를 통하여 추방되어지고 또 점액이나 가래를 수반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현상에 대비할 수 있는 자세로 지원자를 앉히는 것이 좋을 것이다. 가장 좋은 자세들 중의 하나는 지원자가 등받이 의자에 앉아서 허리를 앞으로 굽히고 양 손을 무릎 위에 얹게 하는 것이다. 보다 짧은 사역을 할 때에는 지원지가 서 있을 수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지원자가 마루바닥에 엎드리거나 또는 무릎을 꿇고 앉기를 원할 수도 있다. 자세는 마귀가 출현하는 방식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다. 대개 사람들은 어떤 특별한 가르침을 주지 않아도 가장 좋은 자세를 취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인가 하는 것이다.
16 축사(逐邪) 사역팀
규모와 구성
축사(逐邪) 사역팀은 몇 명으로 구성하는 것이 이상적인가? 개인에 대한 사역의 경우에는 두 명 내지 여섯 명으로 구성된 팀이 적당할 것이다. 그리고 그 팀은 반드시 남성들과 여성들로 구성되어야 한다. 이 사역의 특수성 때문에 남성이 혼자서 여성에게 사역해서는 안 되며 여성도 혼자서 남성에게 사역해서는 안 된다. 가장 이상적인 구성은 가능하다면 부부가 함께 사역하는 것이다.
비록 우리가 육이나 혈과 싸우는 것은 아닐지라도 마귀들은 때때로 폭력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따라서 축사(逐邪)를 체험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하여 억제 되어져야만 한다.
팀으로서의 단결
축사(逐邪)사역팀에게 있어서 단결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사탄은 불화를 이용할 것이다. 사탄은 악한 방법을 통해서 불화를 야기시키려고 할 것이다. 이와 같은 계략에 대하여 끊임없이 경계해야 한다.
함께 사역하는 팀은 성령의 권위를 입고 서로 신뢰하는 방법을 배워야만 한다. 여러분들이 마귀의 권세와 뜨거운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에는 여러분들 사이의 차이점들을 조정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만약에 팀의 구성원들 중에서 한 사람이 영을 분별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을 증거해 주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러한 분별력의 정확성에 대해서는 토론하는 것보다도 분별된 영을 향하여 나아가 도전하는 것이 더 낫다. 때로는 영을 분별하는 데 있어서 실수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전반적인 사역을 망치지는 않을 것이다.
구성원의 기능
팀의 구성원 각자가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하여 민감하고도 순종적이어야 한다. 오직 한두 사람이 귀신들에게 명령하는 것이 가장 좋다. 다른 사람들은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찬양을 하거나 찬송을 부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예수의 보혈을 강조하는 찬송가는 특별히 효과적이고 적합할 것이다. 만약에 그 사역이 한 시간 이상 연장되어진다면 인도자를 가끔씩 바꾸어 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와 같이 인도자를 교체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게 이루어져야만 한다.
당신은 V자 형태로 무리를 지어 날아가는 기러기 떼를 본 적이 있는가? 당신은 그 기러기들이 지도적 책임을 서로 바꾸어 가면서 날아가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지도적 위치에 있던 새가 수분 동안에 바람의 저항과 싸우다가 기류에 대한 정봐를 가지고 휴식을 취하기 위하여 뒤쪽으로 처질 것이다. 그 동안에 다른 기러기가 그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하여 지도적인 위치로 나아갈 것이다. 축사(逐邪) 사역팀도 이와 유사한 벙법으로 협동할 수 있다. 목적은 포로된 자를 해방시키고 예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누가 그 전투를 지휘하든지 간에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 팀의 속한 모든 위치가 다 중요하다.
17 축사(逐邪) 사역자가 갖추어야 할 자세
당신은 왜 축사(逐邪) 사역자가 되었습니까? 나는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다. 확실하게 말하자면 그것은 내가 바라거나 추구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자주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에 당신이 창밖으로 땅바닥을 내다 본다면 내가 이 사역을 하기 위해서 끌려다닐 때 나의 발가락들로 인해서 생긴 고랑들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나를 이 특별한 사역에 그냥 부르신 것이 아니라 나를 억지로 그 속으로 밀어넣으셨다! 마태복음 9장 38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 추수하는 주인에게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직역하자면 그가 일꾼들을 “밀어내다”또는 “강요하다”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그 부르심”을 체험한 방법이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묻지 아니하시고 명령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동일하시다”(히13:8)라는 사실을 안다는 것은 놀라운 발견이었다. 내가 성령 세례를 체험했을 때 기적은 열두 사도들이 죽었을 때나 정경이 완성되어졌을 때 끝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기적들은 오늘날을 위한 것이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
우리는 마귀를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정복하셨기 때문이다. 두려움 없이 악한 정사와 권세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사탄들에게는 실질적으로 아무런 힘도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탄은 거짓말쟁이요, 속이는 자요, 강탈하는 자요, 침입하는 자요, 도둑이다. 예수께서는 이미 그에게 심판하셨다(요16:11). 이제는 그러한 심판을 행하는 것은 교회의 책임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의 권위와 그가 흘리신 보혈의 권능으로 마귀들에게 대항할 때에 그들은 항복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무장이 해제된 적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눅11:22). 그는 이제 자신을 방어할 수도 없다. 크리스천이 두려워해야 할 유일한 것은 두려움 그 자체이다.
사역자에게 개인적으로 요구되는 것들
시간 : 축사(逐邪)는 매우 시간이 소비되는 사역이다. 이것은 한 사람에게 소비되어지는 시간의 양과 또한 한 사역자가 감당해야 할 많은 수의 사람들을 생각할 때 분명해지는 사실이다. 오늘날 축사(逐邪) 사역을 위하여 이와 같은 많은 시간이 요구되어지기 때문에 이러한 사역에 헌신하고자 하는 사람은 예수님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 이유를 곧 이해하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막7:24)
정력 : 때로는 축사(逐邪)사역자는 오랜 시간 동안에 사역을 해야만 한다. 우리 팀은 수도 없이 한밤중까지 사역을 했으며 그래도 우리를 만나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때때로 우리는 일주일 이상 하루에 열여섯 시간씩 사역을 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추가적인 힘을 받았다. 그러나 축사(逐邪) 사역자들도 예수님이나 그의 제자들과 같이 휴식을 취해야만 한다. (막6:31)
인내 : 항상 자기들의 축사(逐邪)의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매우는 데도 더디고 반복적으로 가르치고 격려해 주어야만 한다. 그럴 때에는 보다 장래성이 보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시간을 소비하고 싶은 유혹이 생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더디 배우는 자들에게도 인내심을 가지라고 말씀하셨다.
사역자는 헌신적이어야 한다
이미 이러한 사역에 참여하고 있거나 또는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완전한 헌신을 목표로 삼고 있어야 한다. 자신을 그리스도와 다른 사람에게 헌신해야 한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미친 소년을 마귀에게서 구출하려는 시도에 실패했을 때 그들은 자기들의 실패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그들에게 해답을 제시해 주셨다.
“…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다”(마17:17)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믿음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 단어는 문자적으로 신실하지 못하거나 끈기가 없음을 의미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에게 완전하게 헌신하지 못했다는 책망을 받았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그들을 “패역한 세대”라고 부르셨다. “패역”이라는 단어는 여기서 올바른 길에서 벗어났다는 의미이다. 제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보다도 다른 일들에 관해서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마가복음의 병행기사에서 우리는 제자들이 그들 중에서 누가 가장 큰자인지 논쟁한 사실을 읽어볼 수가 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신실하지 못하고 올바른 길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신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능력이 없었던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사랑과 지혜
사역자는 또한 다른 사람들을 진정으로 동정해야 한다. 축사(逐邪)사역자는 사랑의 진실을 보여줄 수 있는 많은 기회들을 갖게 될 것이다. 그는 기꺼이 십 리를 더 가고 왼 빰을 돌려대야만 한다. 사람들로 하여금 적절한 사역을 체험하게 하기 위해서 때로는 그들을 오랜 기간 동안 우리의 가정에서 머무르도록 초대해야만 할 필요도 있다. 이것은 사랑과 지혜를 필요로 한다. 사람에 대한 사랑을 마귀의 압력에 대한 복종으로 표현해서는 안 된다. 그 사람에게서 마귀가 떠나가고 난 후에 그는 그 자신의 인격과 마귀들을 구별해 주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감사할 것이다.
비난받을 일이 없어야 한다
축사(逐邪) 사역자는 먼저 자신이 마귀로부터 자유로와야만 한다. 만약에 그가 스스로 필요한 축사의 상태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그는 내적인 거부와 갈등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이 그의 효능을 심각하게 방해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짐을 지라
축사(逐邪) 사역자는 사악한 행동과 자세들에 관한 많은 나쁜 이야기들을 듣게 된다. 그는 교회 내에서 존경받는 지도자들과 그리고 또 자기들의 내적 갈등이나 실패들을 결코 다른 사람들에게 말한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사역하게 된다. 이럴 때에 그는 자신감과 사랑 가운데서 사역해야 하며 다른 사람의 짐을 대신 지고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해야 한다. 자기가 들은 말이 그 사람과의 인간관계에 영향을 주게 해서는 안 된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용서하신 죄악들을 기억해서는 안 되며 축사(逐邪)를 통해서 깨끗해진 흉칙함에 대해서 생각해서도 안 된다.
기도와 금식
예수님께서는 어떤 형태의 마귀들은 다른 마귀들보다 더욱 강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셨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 이런 유(類)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막9:29)
제자들은 젊은이에게서 벙어리 귀신을 쫓아내는 데 실패했다. 본질적으로 예수님은 그들의 실패를 영적인 헌신의 부족 탓으로 돌렸다. 우리도 역시 동일한 이유로 실패할 수 있다. 예수님은 그들의 영적인 상태의 치료책으로 기도와 금식을 권하셨다. 오늘날 교회에 금식의 개념이 회복되어지고 있다. 금식은 하나님의 권능을 기도하는 방법이 아니라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아, 이 땅 위에 있는 것들이 아니라 위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게 하는 방법이다. 금식과 기도없이는 모든 적들에게 대응할 수 있는 영적인 힘을 개발할 수 없다.
축복과 유익
축사(逐邪) 사역자는 항상 어려움을 당하고 희생적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말아야만 한다. 그러나 그에게도 많은 축복과 유익들이 있다. 기쁨을 느끼는 경우도 많이 있다. 축사(逐邪) 사역 그 자체가 예배와 찬양을 드릴 수 있는 기회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두드러진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적을 찌르는 “성령의 검”이기 때문이다. 가르치고, 바로잡고, 훈계하고, 권고하는 데에 많은 성경 구절들이 사용되어진다. 그리고 지혜 가운데 기도하고 성령 안에서 기도해애 한다. 간구의 기도, 중보의 기도, 감사와 찬양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그리스도와 그의 희생을 칭송하는 노래를 부르고 찬양의 노래를 불러야 한다. 포로들이 해방되어지는 기쁨이 있고 점점 높아지는 찬양의 소리 가운데서 승리의 감정이 이루어질 때 적의 저항을 분쇄하는 힘이 생긴다. 예수님은 더욱 높아지고 주의 종들은 힘을 얻고 신념을 갖게 된다.
사역을 통해 얻은 영적 통찰력은 나에게 찾아온 가장 큰 축복들중의 하나이다. 나는 빛과 어두움의 영역 사이에 날카로운 경계선을 발견했다. 사탄의 계략을 더욱 쉽게 분별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 앞에서 의의 길이 이전보다 더욱 분명해졌다. 다른 사람들과 육적인 갈등을 피하고 하늘의 전투를 하는 것이 더욱 쉬워졌다.
18 축사(逐邪) 사역자를 위한 실제적 제안들
어떻게 하면 실제적으로 사람을 마귀의 영들로부터 구출할 수 있는가? 이것은 축사(逐邪)의 실제적인 측면이다. 본 장에서 제시되어진 제안들은 궁극적인 것이 아니다. 연구와 계시와 체험을 통해서 얻은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다. 우리는 축사(逐邪) 사역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의 가르침과 인도하심에 대해서 마음의 문을 열라고 촉구하는 바이다.
사역을 위한 장소와 장비
미리 사역을 위하여 계획을 세울 때 적당한 장소를 찾아야만 한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방해를 하거나 소음이 들리지 않는 곳이어야 한다. 또한 사역자가 외부인들에게 방해를 받지 아니하는 장소에 있어야만 한다. 참석한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의자를 준비해야만 한다. 지원자를 위해서는 팔걸이가 없는 등받이 의자가 가장 적합할 것이다. 의자는 다른 사람들이 둘러 설 수 있도록 그 장소 가운데 놓여져야만 한다. 때로는 마귀들이 토하거나 가래를 뱉으면서 나오기 때문에 그런 우발적인 사건에 대비할 수 있는 장비도 필요하다. 쓰레기통이나 물통 등과 같은 플라스틱 용기를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이다. 화장지나 두루마리 휴지를 준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기록을 위하여 노트와 펜도 필요하다.
사전 면담
사역을 받으려는 지원자는 가족이나 친구들의 강요에 의해서 찾아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사역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러므로 정직과 겸손이 효과적인 사역의 열쇠라는 사실을 설명해 주어야 한다. 그 사람이 나눈 모든 이야기들은 신뢰 가운데서 이루어져야 하며 그의 ‘이야기’ 가 결코 누설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면담의 목적은 악한 영들의 존재를 간파하고 그들의 본성을 밝혀내는 데 있다. 이것은 지원자의 생활 가운데서 무엇이 문제인지 그 원인을 밝혀냄으로서 이루어진다(“축사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일곱 가지 징조들”에 관한 장을 보라). 마귀들은 열려진 문을 통하여 우리의 생활 속으로 들어온다. 면담의 목적은 언제 어떻게 그와 같은 문들이 열려졌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축사(逐邪)팀 중에 어떤 사람은 서기로 활동해야 한다. 페이지의 첫 머리에 그 사람의 이름과 주소와 사역을 한 날자를 노트에 기록하는 목적은 세 가지이다. ① 축사팀으로 하여금 질서 있게 진행하여 철저한 사역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② 사역을 받는 사람은 보통 그 노트의 사본을 얻기를 원하는데 그것은 자신의 사역 가운데 어떤 마귀들이 다루어졌으며 그들의 집단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축사(逐邪)의 상태를 계속해서 유지하기 위해서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③ 그 기록은 또한 축사(逐邪)팀에 의해서도 보존되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 이후의 사역을 위해서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 팀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역할 때에 이 모든 정보들을 기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역에 대한 기록은 꼭 필요하다.
마귀들이 들어오게 문을 열어준 초기의 배경을 기억하게 함으로써 시작하라. 사람들에게 있어서 현재의 문제점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예를 들자면 남편과 아내 사이에 긴장과 다툼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은 아내가 소녀였을 때 그녀에게 들어온 반항심의 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면담을 통해서 이와 같은 사실들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마귀가 간파되어졌을 때 그와 유사한 종류의 마귀들을 찾아야 한다(“마귀의 집단들”에 관한 장을 보라). 예를 들자면 어떤 사람이 소심한 성격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면 그것과 동반자적인 관계에 있는 악한 영들, 즉 불안, 열등감, 수치심, 자기 연민 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악한 영들의 집단을 간파했을 때 그들을 하나로 묶어서 그 무리를 한꺼번에 쫓아내야 한다. 만약에 어떠한 것이라도 남게 한다면 다른 악한 영들이 돌아올 수 있는 문을 열어주게 될 것이다.
사람으로 하여금 축사(逐邪)의 사역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가장 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이다. 죽은 사람이든 산 사람이든 간에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못한 자들은 마귀를 쫓아낼 수 없다. 그 이유는 마태복음 18장 21절에서 35절에 설명되어져 있다.
신비주의에 참여하는 것은 사역을 방해하는 두 번째 요소이다. 이러한 것들은 사탄의 나라에 속한 것들이며 하나님께 대한 심각한 범죄가 되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신비주의와 접촉하는 것은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이것은 적극적으로 버려야만 하며 하나님의 용서를 구해야만 한다. 이단 종파나 거짓 종교에 참여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사역을 방해하는 또다른 것은 낙태이다. 만일 어떤 여인이 낙태를 했다면 그녀는 그것을 살인죄로 고백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구해야 한다. 낙태에 관여한 남자도 역시 자신의 책임을 고백해야만 한다.
축사(逐邪)사역의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고백하지 않은 간음도 사역을 방해한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러한 죄는 상대편 배우자에게 고백해야만 한다. 즉 남편은 아내에게 자기의 신실하지 못함을 고백해야 하며 아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내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것은 축사(逐邪)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는 아니다. 왜냐하면 정욕과 간음의 마귀들은 배우자에게 자기의 죄를 고백하지 않은 사람들에게서도 쫓겨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축사(逐邪)의 사역을 하기 전에 어떤 형태의 죄든지 하나님에게 고백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이 자기의 배우자에게 간음죄를 고백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전적으로 주님의 지시를 따라야만 한다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상대편 배우자가 그와 같은 고백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에는 지혜가 필요하다. 죄를 고백하지 못하든지 또는 부적절한 시기에 고백하든지 간에 우리의 목적은 마귀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는 것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축사(逐邪)를 위한 기도
축사(逐邪)의 사역을 할 때에 특별히 기도가 필요하다. 우리는 글로 작성된 기도가 매우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팀의 구성원들은 성경책 뒤에 이 기도의 사본을 붙여놓는 것이 좋다. 특별히 우리가 사용한 기도문은 데렉 프린스(Derek Prince) 박사의 사역을 통해서 얻은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여 나는 당신이 나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부활하셨음을 믿나이다. 당신은 당신의 보혈로 나를 구속하셨나이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나는 당신을 위하여 살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알고 지은 죄나 모르고 지은 나의 모든 죄를 고백합니다. 나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해 속죄를 구합니다. 나는 그 모든 죄악들을 버렸나이다. 당신이 나를 용서해 주시기를 원하듯이 나도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겠나이다. 이제 나를 용서하시고 당신의 피로 나를 깨끗게 하소서. 지금 이 순간 나를 모든 죄에서 깨끗게 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하여 당신께 감사하나이다. 이제 나는 나의 구원자 되시는 당신께 나아가나이다. 당신은 내가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 계시나이다. 구속하는 것, 괴롭히는 것, 더럽히는 것, 악한 영들, 더러운 영들로부터 나를 구하옵소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당신의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나이다. 이제 나는 당신께 간구하오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를 구원하시고 내게 자유를 주시옵소서. 사탄아, 나는 너와 너의 모든 사역을 버리노라. 나는 예수의 이름으로 나 자신을 너에게서 해방시키노라. 그리고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지금 즉시 내게서 떠나라. 아멘!”
영적인 권세에 대하여 권위를 가지라.
마귀들에게 나가라고 명령하라
사역자들 중의 한 사람이 특별한 마귀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나가라고 명령하기 시작할 때 그 장소에 있는 다른 사람들은 기도하고, 찬양하고, 찬송을 부르고, 성경을 읽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일들은 조용한 음성으로 해야만 한다. 내가 축사(逐邪) 사역을 시작한 초기 단계에는 몇 시간 동안 나의 목소리를 혹사했다. 마귀로 하여금 두려워 떨고 복종하게 만드는 것은 큰 목소리가 아니라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권위라는 것을 기억하라.
이 때 지원자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협조해야만 한다. 즉 그는 찬양과 기도와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삼가야만 한다. 이러한 것들은 성령을 받아들이는 방법이다. 악한 영들이 떠날 수 있도록 입과 호흡을 자유롭게 내버려야만 한다. 그는 자신의 의지로 그 전투를 수행하라는 격려를 받아야만 한다. 즉 악한 영들에게 직접 명령하거나 자기가 더 이상 마귀의 편이 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마귀들이 떠나기를 바란다는 사실을 마귀에게 알려줄 수도 있다.
그 다음, 지원자는 몇 번 강력하게 숨을 내쉬어야 한다. 악한 영들은 호흡을 통하여 나가기 때문에 이것은 그들을 추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는 억지로라도 심한 기침을 할 수도 있다. 대개 이것은 그 사역을 더욱 용이하게 만들어 준다.
그러면 마귀들은 의식적인 노력이 없이 생긴 징조와 함께 떠나가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인위적으로 만든 징조가 사역 전반에 걸쳐서 이루어지는 것은 피해야 한다.
결과가 나타날 때까지 계속적으로 마귀들에게 명령해야 한다. 경험을 통해서 자신감은 증가될 것이다. 마귀들은 축사(逐邪) 사역자가 자신감이 결여되었는지 아닌지를 아는 것 같다. 믿음의 권위가 커지면 커질수록 마귀들은 보다 쉽게 반응할 것이다.
4분 내지 5분 이내에 악한 영들이 추방되지 않는다면 어떤 방해가 있는 것이다.
성경 말씀, 예수님의 보혈에 관한 찬송가 등에도 능력이 포함되어져 있다. 어떤 사람들은 피에 호소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은 “피”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말하거나 또는 “나는 피에 호소합니다”라는 말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피가 크리스천을 위하여 무슨 일을 해주었는지에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다. 피는 크리스천을 구속하고, 깨끗게 하고, 의롭게 하고 거룩하게 한다. 예수님의 보혈을 통해서 우리의 모든 죄악들이 용서되어졌다.
예수님의 피는 살아 있다! 그것이 바로 그의 혈관에서 흘러나온 그 시점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능력이 있는 이유이다. 그것은 대속의 피다. 대속은 “덮는다”는 의미이다. 마귀들은 예수님의 대속의 피에 의해서 패배했다. 아멘!
19 마귀의 집단들
마귀들의 특성은 그들의 본성으로 확인되어진다. 증오의 마귀는 “증오”라고 불려진다. 각각의 마귀들은 전문가들이다. 증오의 마귀는 정욕을 조장하지는 않는다. 그는 다만 증오심만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마귀들에게 이름을 말하라고 명령할 때에 그들은 항상 자신의 본성과 동일한 이름, 즉 반항, 저주, 무관심 등이라고 말할 것이다. 때때로 마귀들은 “짐”(Jim)이나 “셜리”(Shirley)등과 같은 사람의 이름을 제시하기도 할 것이다. 때로는 외국 이름을 제시하기도 할 것이다. 이것은 축사(逐邪) 사역자가 그들의 진정한 본성을 알지 못하도록 속이는 방법이다. 이 때 역자는 “마귀야, 너의 본성이 무엇이냐?” 라고 말함으로써 마귀들에게 그들의 본성을 드러내라고 명령해야만 한다.
내주하는 마귀들은 좀처럼 단독적으로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들은 집단적으로 함께 거하고 있다. 그러한 집단들은 무리, 패거리, 가족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첫 번째 마귀를 분별해 냈을 때 즉시 경계심을 가지고 그의 동료들도 찾아 보아야만 한다.
일단의 마귀들은 어떤 사람의 생활의 특정한 분야를 지배할 목적으로 함께 결속되어져 있다. 각각의 집단 내에는 반드시 “강한 자”, 즉 지배하는 영이 존재한다. 사역하는 도중에 특별히 지배하는 영이 확인되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반드시 축사(逐邪) 사역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 지배하는 영을 확인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와 같은 확인은 대개 한 두가지 목적을 위해서 이루어진다. 첫째로, 성령께서 모든 절차를 인도하시게 하기 위해서 이다. 축사 사역자는 주님께서 제시해 주신 전투계획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이고자 한다. 어떤 상황에서는 주님께서 먼저 지배하는 영을 처리하고 난 다음에 그의 동료들을 처리하라고 명령하신다. 또 어떤 때에는 주님께서 보다 낮은 영들을 먼저 쫓아 내고 마지막으로 지배하는 영을 쫓아내라고 인도하신다.
지배하는 영을 확인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축사(逐邪)사역을 받는 사람의 유익을 위해서이다. 수 많은 집회와 마귀의 집단들을 처리하면서 얻은 경험은, 어떤 분야에 최초로 침입한 영이 지배하는 영이 된다는 사실이다. 그가 최초로 들어왔기 때문에 지배자가 될 수 있다. 따라서 그는 다른 영들이 들어오는 길을 열어주는 열쇠가 된다. 마귀들을 쫓아낼 때 지배하는 영에게 “너의 모든 동료들을 데리고 나오라!” 또는 “너의 모든 뿌리들을 데리고 나오라!”고 명령하는 것은 그리 진귀한 일이 아니다. 만약에 그 집단 중에서 어떤 부분이 추방되지 않고 그냥 남아 있다면 그 집단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남겨 놓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해서 축사(逐邪)는 가능한 한 철저하게 이루어져야만 한다.
특정한 집단 내에서 두 가지 이상의 영들이 발견되어진다. 예를 들자면, 적개심의 집단은 원한의 마귀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어떤 형태의 마귀는 두 가지 이상의 집단에서 존재하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분노의 마귀는 적개심의 집단에서 발견되어지며, 또다른 분노의 마귀는 완벽주의 마귀의 집단에서 발견되어진다. 한 번의 축사 사역으로 몇 가지의 마귀 집단들이 추방된다. 각각의 집단에는 우울증의 영이 있다. 그와 같은 악한 영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는 오직 초자연적인 분별의 은사를 통해서만 알 수가 있다.
적개심
히브리서 12장 15절에 다음과 같은 경고의 말씀이 나온다.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라.”
쓴 뿌리, 즉 적개심은 많은 “괴로움”의 원인이다. 적개심이 일정한 시간 동안 가슴 속에 감추어져 있으면 마귀가 침입해 들어올 수 있는 문을 열어주게 된다. 아마 이것이 마귀가 활동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는 가장 흔한 방법일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적개심은 직계 가족 내에 있는 어떤 사람을 향하게 된다.
적개심의 영은 상처받은 사건들을 생생하게 기억하게 만든다. 수년 전에 생긴 일들이 마치 오늘 일어난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되어진다. 그래서 그 사람은 현재의 문제에 대처해야 할 뿐만 아니라 과거에 비축해 놓은 상처도 대처해야 하는 이중적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용서하지 아니하는 영은 상처들을 상세하게 기억하게 한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그 일들을 계속적으로 되새기게 한다. 아무리 작은 상처라도 결코 용서하거나 잊어버리지 않게 한다.
적개심의 마귀가 발견되어질 때 원한, 증오의 마귀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악한 영들의 쇠사슬이 계속적으로 같은 집단 속에 들어 있는 다른 마귀들을 이끌어 낸다.
반항
반항은 적그리스도의 영이다. 즉 권위에 대해서 불순종하고 멸시하게 만드는 영이다. 하나님께서는 가정과 교회와 정부에 권위를 세워주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최고의 권위시다. 하나님의 거룩한 질서 내에 있는 어떤 수준의 권위에 대해서 자기 고집을 내세우는 것은 반항의 영을 환대하는 것이다. 이 마귀들에게서 해방되어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세우신 모든 권위에 대해서 완전하게 복종하는 것이 필요하다.
통제
통제의 영들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 발견되어진다. ① 성장한 자녀들에 대해 부자연스러운 통제를 하는 부모, ② 배우자에게 권세를 부리는 남편이나 아내, ③ 목자라기 보다 독재자와 같은 목사, ④ 기도 그룹 내의 다른 구성원들을 통제하는 사람 등이다. 통제하는 방법은 잘못된 환상, 계시, 예언 등과 같은 것들이다. 그와 같은 통제는, 알고 하든 모르고 하든 간에, 악한 영들의 힘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들을 통제하려는 (즉 자기가 원하는대로 하도록 만드는) 마법사와 같다.
축사(逐邪) 사역자는 통제의 영의 희생자들도 돌보아 줄 준비를 해야만 한다. 만약에 지배를 받던 사람이 마귀의 통제에서 벗어난다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의 자유를 기초로 그가 속박에서 해방되어졌음을 선언하고, 더 이상의 통제를 거부하게 해야 한다. 자유를 얻은 사람은 자신의 의지를 발휘하고 자신이 결정을 하는 방법을 배워야만 한다. 그는 불안, 열등의식, 두려움의 영들로부터도 해방되어져야만 한다. 저주의 영은 그에게, 그토록 가깝던 다른 사람들을 해치고 있다는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 그는 그 사람과 그 사람속에 들어 있는 마귀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을 얻기 위해서 도움이 필요하다. 이 일이 완수되어졌을 때 그는 그 사역자를 사랑하고, 그를 통제하던 마귀를 미워하게 될 것이다.
복수
이 그룹은 항상 적개심이라는 뿌리에서 파생한다. 이 영들은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을 옹호한다. 어린 자녀들에게서 이러한 형태의 영들을 쫓아낼 때 흥미로운 현상이 관찰되어진다. 축사(逐邪) 사역을 하는 동안에 부모가 그 자녀를 붙잡고 있었을 때 그 아이가 부모를 꼬집고, 물어 뜯고, 때리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마귀들이 쫓겨나자 즉시 그 아이의 성질이 변했다. 어른들은 앙심을 품은 행동과 말을 통해서 복수하려는 경향이 더욱 크다.
거부
거부의 영이 들어오는 문은 흔히 어린 시절에 열려지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어머니의 태중에 있을 때에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 어린 아이를 원하지 않을 때 태아는 거부의 영이 들어 올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준다.
사탄은 아킬레스건을 찾고 또 인생의 가장 연약한 순간을 선택하기를 기뻐한다. 사람이 가장 방어하기 어려운 때가 언제인가? 그가 태어나기 이전과 유아기 때이다.
세례 요한이 태어나기 전에 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눅1:15b). 태어나기도 전에 성령이 세례 요한에게 들어갔기 때문에 우리는 태어나기 전에 귀신의 영이 사람에게 들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다.
축사(逐邪)사역자는 사역을 받기 위하여 찾아온 모든 사람들에게 거부의 영이 존재하고 있을 가능성에 관해서 질문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것은 지극히 흔한 일이며 또 그 영은 매우 강력하다. 입양된 대부분의 어린 아이들은 거부의 영을 지니고 있다. 그 아이의 입양을 필요로 하게 만든 환경이 거부의 영이 들어올 수 있는 문을 열어 주었을 것이다.
거부의 영은 항상 머리가 셋 달린 괴물이다. 기본적인 거부의 영 이외에, 거부에 대한 두려움의 영과 자기 거부의 영이 존재하고 있다. 이와 같은 마귀들의 존재는 그 사람이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게 하고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게 한다는 사실을 통해서 쉽게 입증되어진다. 그가 거부를 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또다시 마음의 상처를 입을까봐 친밀한 관계를 맺기를 두려워한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들이기를 두려워하며 홀로 지내게 된다. 그럴 때에 거부에 대한 두려움의 영이 들어 올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거부의 영이 찾아오면 고통을 가중시킨다. 다른 사람에 의해서 거부를 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는 점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그는 생각의 방향을 내부로 돌리며 자신을 미워하기 시작한다. 이것이 자기 거부이다.
우유부단
이것은 정신적인 영이다. 이것은 매우 흔하다. 사람은 문제가 되는 요인들을 검토하고 결단을 내릴 수가 있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이 영은 사람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결단을 내리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결단을 내릴 때마다 큰 위기를 느낀다. 그가 결단을 내릴 수 없을 때 뒤로 미룬다. 우유부단은 지연하게 만든다. 그가 어떤 문제에 대해서 신중히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더 혼란스러워진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이나 좌절감 속에서 타협하게 되고 결국 최선이 아닌 것으로 결정하게 된다. 또는 문제를 잊어버림으로써 결단의 책임을 회피한다.
자기 기만
“속은 자와 속이는 자가 다 그에게 속하였다”(욥12:16). 사람이 마귀들의 거짓말에 동의하지 않을 때 그는 축사(逐邪)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완벽주의
조직과 질서가 있을 때 일은 잘 진행된다. 완벽주의의 마귀는 이러한 속성을 이용하여 구속한다. 예를 들자면, 어떤 사람이 하루의 계획을 세운다. 그는 자기가 할 모든 일들을 경정하고 스케줄을 짠다. 그는 그 스케줄에 자신을 구속한다. 그는 변경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는다. 그것은 완벽한 계획이다. 그는 계획을 수립하고 또 그것을 잘 실천할 수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런데 어떤 일이나 사람이 그런 계획을 방해한다. 그는 화가 나기 시작한다. 이제 그는 그의 스케줄을 완수할 수가 없다. 그는 그러한 방해에 적응할 수 없다. 좌절감을 느낀다. 자기의 계획을 망쳐놓은 일이나 사람에 대해서 화가 치민다. 따라서 일단의 마귀들이 활동을 개시한다. 그 싸움은 내적 외적으로 계속된다.
흔히 완벽주의 뒤에는 거부의 영이 있다. 거부의 영이 든 사람은 존경과 인정을 얻기 위한 노력으로 완벽주의를 추구하게 된다. 다른 사례에서는 열등감에 대한 보상으로 완벽주의가 생긴다.
잘못된 부담감
마귀는 성도들이 지치게 만들기를 좋아한다. 마귀는 하나님과 달리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능력 이상으로 많은 짐을 지게 만든다. 예수님께서는 자기의 멍에는 쉽고 자기의 짐은 가볍다고 선언하셨다. 잘못된 부담감은 지기에 무겁고,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심지어 신앙적 동기에서 비롯된 짐도 사탄이 부과한 경우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목적 뿐만 아니라 시간과 방법도 가지고 계신다. 성령으로 충만할 때 그 모든 긴장을 제거할 수 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잘못된 부담감, 책임감, 동정심에서 해방되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 것들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다.
종교적 오류
종교적 오류란 거짓 종교, 기독교 이단, 신비주의, 잘못된 교리 등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명칭이다. 이러한 오류에 참여하는 것은 악한 영들에게 문을 열어줄 수 있다. 어떤 종류의 종교적 오류든지 참여한 크리스천은 반드시 그것을 버려야만 한다.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그를 압박감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축사(逐邪)의 사역이 필요하다. 종교적 오류의 마귀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을 야기시킨다. 즉 정신적 혼란, 정신적 구속, 이해력이 둔감해짐, 우울증, 두려움, 육체적 고통, 육체적 질병, 잘못된 교만, 교육 불능, 성경적 진리를 거역함, (기도, 성경읽기, 설교듣기, 성령의 은사, 믿음 등에 대한) 영적인 방해 등이다.
20 일문일답
어떻게 크리스천이 마귀에 들릴 수 있는가?
어떻게 마귀의 영이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몸에 동시에 거주할 수 있는가? 이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논리적인 것 같다. 그러나 모든 논리가 진리는 아니다. 어떤 논리는 잘못된 전제에 근거하고 있다.
우리는 본서에서 크리스천에게도 마귀가 거주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가능한지에 대한 설명은 주로 영과 혼 사이의 차이점에 관한 분명한 이해에 기초하고 있다. “영”을 뜻하는 신약적 단어는 “프뉴마”이다. 육적인 것, 즉 “혼”과 대조해 볼 때 “영”은 거룩한 것들을 파악하고 인식하는 능력을 가진 부분이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2:14)
“혼”을 뜻하는 단어는 “프슈케”이다. 이 단어는 생명 그 자체, 즉 감정과 지성과 의지를 정의하고 있다. 바울은 우리에게 사람이 삼중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5:23).
성경에서는 구원받기 이전의 사람은 “허물과 죄악 가운데 죽었다”고 가르치고 있다(엡2:1). 그와 같은 사람도 육체적으로는 죽지 않았다. 그의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다. 그러나 그는 영적으로 죽은 것이다. 그는 하나님과 교통하지 못한다. 그는 하나님의 신비를 인식하지도 못한다. 중생(구원)은 사람의 영적인 상태를 치유해 준다. 그의 영은 소생되어지고 생명을 얻게 된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심으로 말미암아 그것이 소생되어진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영에 들어오셔서 그의 생명을 가져다 주신다. (요일5:11~12)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우리는 성령께서 구원하실 때에 인간의 영 속에 내주하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마귀의 영은 크리스천의 혼과 육신에 국한되어져 있다. 마귀들은 크리스천의 영이 아니라 감정과 마음과 의지와 육체를 괴롭힌다.
축사(逐邪)의 목적은 혼과 육체로부터 침입자 마귀의 영들을 제거하고 예수님께서 이 분야에 대해서도 통치하실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온전한 인간을 이루기 위하여 적절한 처방을 해주신다. 그러나 다음의 성구가 보여주듯이 우리에게도 책임의 일부가 있다.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2:12~13)
크리스천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너희 안에서” 역사하신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러나 구원은 완수되지 않았다. 그것은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구절에서 “구원”을 나타내는 단어는 “소테리아”이다. 헬라어 사전은 이 단어의 기본적 의미를 “적의 간섭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이제 이 말씀은 분명해진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영을 사탄의 권세로부터 해방시켜 주셨다. 예수님은 지금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너희가 혼과 육체의 자유를 얻을 때까지 원의 간섭으로부터 해방을 이루라.”
비기독교인도 축사(逐邪)의 사역을 받을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분명한 대답은 “그렇다”이다. 마귀들은 예수님의 이름의 권위를 가진 사람에게 복종해야만 한다. 나는 불신자를 위하여 축사(逐邪)의 사역을 한 적은 없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마귀들이 반응을 하고 복종할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두 가지 이유로 인해서 그와 같은 사역이 과연 지혜로운 일인지 심각하게 의심하는 바이다. 첫째로 그럴 경우에 마귀들을 쫓아낸들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 그들이 곧 되돌아 오지 않겠는가?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마귀에게 저항해야 한다. 그리고 그가 주님께 복종하지 않는다면 이 일을 행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죄는 마귀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문그럴씠어준다. 그리고 자기의 죄를 회개하지 아니한, 회심하지 못한 죄인은 마귀의 공개적인 희생물이 된다. 두 번째로 성경에 따르면 그에게 유익보다 해를 더 많이 가져다 줄 수도 있다. 마태복음 12장 43절에서 45절에 의하면 더러운 귀신이 쫓겨났을 때 그는 되돌아 가려고 했다. 만약에 하나님의 것으로 빈곳을 채우지 못한다면 더러운 귀신이 되돌아 올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욱 악한 다른 귀신들도 데리고 와서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도 더 나빠질 수도 있다.”
사(逐邪)는 게임이 아니다. 그것은 심각한 일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교통하고자 하는 자들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비기독교인이 축사를 받을 수 있는가가 아니라 그가 과연 축사의 사역을 받아야만 하는가에 있다. 정상적으로는 먼저 그의 영이 중생을 통하여 구원을 받아야만 한다.
쫓겨나는 마귀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해서 많은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 주된 참고 구절은 마태복음 12장 43절이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우리의 문제는 이 구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에 있다. 마귀들은 영적인 존재인데 어떻게 그들이 광야나 사막에 의해서 영향을 받을 수 있는가? 아마 그 말은 비유적인 것 같다. 그것은 마귀들이 인간의 거주지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방황하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마귀는 인간의 몸 밖에서는 안식도 없고 만족도 없다. 마귀가 자신의 악한 욕망을 지속시킬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생명에 내주하고 통제하는 것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메마른 곳에서 방황하는 자들에 관한 가장 뛰어난 묘사는 욥기의 흥미로운 구절이다. 욥기는 사탄의 공격을 받은 사람에 대한 책이기 때문에 그 묘사는 더욱 의미심장하다. 축사(逐邪)의 사역을 행하는 동안에 나는 마귀들에게 이 구절을 사용했다. 나는 그들이 메마른곳에서 방황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마귀들은 그 구절을 듣고 분명히 괴로움을 느꼈다. 그들은 그것이 자기들이 직면하게 될 것을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보다도 더 잘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귀들에게 어디로 가라고 말해야 하는가?
이 문제는 앞의 문제와 관련되어져 있다. 추방된 마귀들이 “메마른 땅을 걸어다닌다”라는 사실을 말해 준 것 이외에 그들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에 관한 아무런 시사도 없다. 예수님이나 제자들이 마귀들을 지옥이나 무저갱 등과 같은 곳으로 보냄으로써 그들에게 어떤 심판을 가했다는 말도 들어볼 수 없다. 마귀들은 자기들의 최종적인 심판이 미래의 일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다. 그들이 거라사인의 광인을 통해서 말할 때에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여 우리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마8:29)
성경에는 우리에게 마귀들을 미리 괴롭힐 수 있는 권한에 대해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 시간은 하나님의 섭리로 정해져 있다.
그러면 우리는 그들을 어느 나라 또는 어느 지역으로 보낼 수 있는가? “군대(레기온)”로 자기 자신을 표현한 마귀는 예수님께 자기를 다른 곳으로 보내지 말아달라고 간청했다.
“자기를 이 지방에서 내어 보내지 마시기를 간절히 구하더니”(막5:10)
이로 미루어 볼 때 마귀들을 세상의 다른 지역으로 보낼 수 있는 것 같다. 이런 일은 모든 경우에 가능한가 아니면 단지 어떤 특별한 경우에만 가능한가? 때때로 나는 마귀들에게 세상의 특정한 나라로 가라고 명령하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다. 그와 같은 경우에 나는 마귀들이 격렬하게 항의하는 소리를 들었다. 어떤 마귀는 아프리카로 보내지 말라고 간구하면서 그 곳이 너무나도 뜨겁다고 불평했다. 어떤 이유로 인해서 그들은 분명히 어떤 특정한 지역에 머물기를 더 좋아한다.
거라사인의 광인에게 들어 있던 마귀들은 왜 돼지떼에게 들어가기를 원했는가? 그리고 왜 예수님께서 그것을 허락하셨는가? 분명히 예수님은 마귀들에게 어떤 동정을 베풀지는 않으셨다. 예수님은 마귀에 들렸던 사람의 복지에 근거해서 그렇게 하셨음이 분명하다. 쫓겨나기를 거부하는 영들에 의해서 그 사람은 심각한 해를 당할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이론이다(예수님도 마귀들이 쫓겨날 때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고자 하셨다). 마귀들에게 떠나갈 수 있는 확실한 장소가 허용되어졌을 때 그들은 저항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돼지들은 곧 파멸을 맞이하게 되었고 마귀들은 또다시 “집”을 잃게 되었다.
마귀들은 인간에게 거주하기를 더 좋아한다. 그들의 두 번째 선택은 동물이다. 마귀가 내 속에 거주할 수 없다면 그의 두 번째 선택은 돼지라는 사실을 안다는 것은 그리 큰 자랑거리가 되지 못한다. 마귀들은 동물들 속에 거할 수도 있다.
마귀들이 사람에게 다시 들어가는 것을 금할 수 있는가?
성경에서 단 한 번 예수님께서 마귀가 되돌아오는 것을 금하셨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이것은 그의 아버지가 예수님께 데려온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에 들린 소년의 경우였다.
“예수께서 무리의 달려 모인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가라사대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막9:25)
이것은 예외적인 절차인 것 같다. 우리가 마태복음 12장 43절에서 45절을 볼 때 마귀는 또다시 되돌아가려고 시도할 것이며 만약에 사람이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그 일에 성공할 것이다. 어린아이들 경우에는 부모가 영적인 보호자이다. 이 경우에 있어서 아버지는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말함으로써 믿음이 연약한 것을 보여주었다. 군중들이 모여들어서 방해를 받았을 때 예수님은 그 사람의 믿음을 붇돋아 주셨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아버지로부터 적절한 영적인 보호를 받지 못한 아이를 위해서 주권적으로 행하셨던 것 같다.
이 경우처럼 하나의 사례가 전례로 확립되기 위한 충분한 증거는 되지 못하는 것 같다. 만약에 우리가 모든 경우에 마귀들이 되돌아 오는 것을 금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면 그것은 축사(逐邪)의 사역을 매우 단순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즉, 그것은 크리스천의 믿음을 강화시켜주는 데 공헌하는, 해방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더 이상 하지 않게 할 것이다. 분명히 주님께서는 어떤 상황에서는 우리에게 지침을 주시는데, 그것은 마귀가 더 이상 사람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마귀의 활동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 대한 사탄의 권세를 제한하실 수 있다. 사탄이 욥에게 찾아오기 전에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야만 했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욥2:6)
만약에 하나님께서 지식의 말씀을 통하여 마귀가 또다시 사람에게 내주하는 것을 금하셨다는 사실을 보여주셨다면 사람은 마귀에게 “주 예수의 권위로 말하노니 다시는 그에게 들어가지 말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집안에 있는 악한 영들을 깨끗이 몰아내야 하는가?
축사(逐邪)의 사역을 통하여 마귀들과 많이 접해 보는 동안에 나는 집이나 사물과 관련된 마귀의 활동들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자주 집에 대해서도 마귀들을 쫓아내야 하는지 질문을 받는다. 사탄의 왕국과 관련된 책이나 사물들은 마귀들을 유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전 거주자의 사악한 활동 때문에 그 집을 깨끗이해야만 할 필요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집에서 음성이나 또는 어떤 소리를 들었다고 말했다. 그와 같은 현상은 “폴터가이스트(poltergeist)라고 불려지는데 독일어로 ”집안에서 이상한 소리를 내는 유령“이라는 뜻이다.
올빼미와 개구리에 대해서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이것들은 신명기 14장 17절부터 19절에서 부정하고 가증스러운 피조물로 분류되어져 있다. 그것들은 마귀의 영들의 상징이다. 나는 사역을 하기 위하여 여러 가정을 방문했다. 그리고 이러한 부정한 피조물들이 장식품으로 사용되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귀들은 분명히 거짓 종교, 이단, 신비주의, 심령술 등과 관련된 물건이나 서적에 의해서 집으로 유인되어진다. 그와 같은 물건들은 모두 다 불에 태우거나 파괴해야만 한다. 마귀가 들끊고 있다고 의심되어지는 집이나 건물은 예수의 이름의 권위로 깨끗하게 되어져야만 한다. 그와 같은 장소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보혈에 의지해야만 한다.
마귀들을 특정한 이름으로 불러내야 할 필요가 있는가?
마귀의 명칭들과 관련해서 축사(逐邪)의 사역을 행하는 과정에 어떤 흥미로운 일이 발생했다. 때로는 이름을 부르지 않아도 마귀들이 나왔다. 그와 같은 축사는 짧은 시간 내에 해결된다. 다른 상황에서는 그것과 반대로 나타났다. 즉 고유한 이름을 부르기 전에는 결코 어떠한 마귀도 나오지 않았다.
한 번은 축사(逐邪)의 사역을 하는 동안에 나는 거부의 마귀를 불러냈다. 나중에 거부에 대한 두려움의 마귀가 분별되어졌다. 그래서 나는 물었다. “왜 너는 아직 거기에 있느냐?
왜 내가 거부의 마귀를 불러냈을 때 너는 나오지 않았느냐?” 그러자 마귀가 대답했다. “당신이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거부의 영이 아니라 거부에 대한 두려움의 영이다.”
마귀들은 항상 그들이 저지르고 있는 일들에 대한 상세한 묘사에 대하여 반응을 한다. 예를 들자면 “이 사람으로 하여금 밤마다 나쁜 꿈을 꾸게 하는 마귀야!”라고 말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마귀들은 특정한 명칭 대신에 이와 같은 접근 방법을 받아들이고 밖으로 나올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마귀들이 특정한 명칭으로 불려지기를 고집하는 것은 지연전술이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나는 마귀들이 “그러나 그것은 나의 이름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나오기를 주저하는 것을 보았다. 그와 같은 경우에 나는 항상 “어쨌든 너는 나와야만 한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마귀들은 나왔다.
마귀들의 이름을 아는 것의 주된 목적은 축사(逐邪)의 사역을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슨 일이 이루어지는지 알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마귀들이 다시 되돌아오려고 할 때 어떤 마귀들이 쫓겨났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그 사람은 마귀가 다시 들어오지 못하도록 경계할 수 있다. 어떤 마귀들은 자랑하기를 매우 좋아한다. 그들은 자기들의 이름이 불려지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 그와 같은 마귀가 거만하게 “그가 떠나도 나는 그냥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와 같이 주장하는 한 그는 결코 쫓겨나지 않는다. 그는 계속해서 “나는 교만이다. 모든 교만이 나를 통해서 나온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마귀들도 이름을 불렀을 때 쫓겨나게 될 것이다.
21 최후의 싸움
우리는 성경의 역사 전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때때로 그의 종들에게 환상과 꿈을 통하여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오순절 날에 베드로는 다음과 같은 선지자 요엘의 말씀을 인용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는 꿈을 꾸리라”(행2:17)
결론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올바른 가정 생활에 대해서 강조하신다. 하나님은 우리 가정에 질서를 세우신다. 하나님께서는 가정 내에서 남편과 아버지에게 권위의 자리를 회복시켜 주신다. 가정은 영적 생활의 중심이 되고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질서이다. 가정에서 우리의 생활이 올바르지 못하다면 다른 어떤 관계에 있어서도 올바르게 될 수 없다. 마귀의 팀은 가정으로 빠른 볼과 커브 볼을 던지고 있다. 마귀는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의 가정에 대한 공격에서 실패를 해야만 한다. 가정의 구성원들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역할을 맡아야만 한다. (엡5:22,25 ; 6:1)
크리스천의 최초의 시험은 가정에서 찾아온다. 만약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성령의 사랑과 희락과 화평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사탄은 우리에게 승리를 거둔 것이다. 사탄이 이미 우리의 가정에서 준거점을 확보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을 때 영적인 전투를 위한 소집 명령이 떨어진다. 당신 자신의 생활과 가정에서 마귀를 물리치라. 그러면 당신은 다른 분야에서도 그 전투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티끌과 들보에 관한 비유에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비평하기 전에 먼저 우리 자신의 생활을 질서 있게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보여주셨다. 우리 자신의 안방에 돼지들이 우글거리게 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