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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의에 대한 유대인들의 무지(無知)2

작성자야베스|작성시간18.01.19|조회수143 목록 댓글 0

3. 믿음과 하나님의 은혜

 

1) 믿음은 들음에서 남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이란 무엇인가? 믿음은 하나님을 믿고자 하는 인간들의 신앙적 결단을 의미하는 것인가? 앞에서도 간간히 언급한 것처럼 우리는 믿음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이해해야 한다. 하나는 하나님의 선물로서의 믿음이다. 그것은 인간들의 종교적 감정이나 현상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특별히 주어진 것으로 모든 성도들의 삶속에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보물’ 이다.

 

물론 여기서 언급되는 믿음이 어떤 형체를 가지고 있거나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물질이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비록 눈과 손으로 그것을 보거나 만질 수 없다 할지라도 비실체가 아니라 실존히는 실제이다. 그 믿음은 성도들의 삶 가운데 항상 존재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들에게만 구별하여 선물로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항상그 믿음을 삶속에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그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와 직접적인 상관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는 마치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물건과도 같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주머니 안에 보석을 넣어두고 있다면 그것은 인식과 상관없이 그 자리에 존재한다. 즉 자기 주머니에 보석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 사실을 잊어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자기의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그 보석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상식적인 인간들은 자기 주머니 안에 보석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고 항상 주의를 기울여 그것을 간직한다. 그리고그것의 값어치를 충분히 알고 목적에 따라 잘 사용하고자 한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선물로 받아 소유하고 있는 믿음도 이와같다. 설령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때로잊어버리거나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할지라도 이미 소유하게 된 믿음이라면 그것은 여전히 우리의 삶속에 존재한다.

 

하지만 앞의 보석의 예화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것을 소중히 잘 간직하고 그 값어치를 따라 활용하며 살아가는 것은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히는 성도의 삶으로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다. 이 믿음이 우리가 말하고있는 두 번째 의미의 믿음이다. 그 믿음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올바르게 지키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성도들의 결단이 요구되며 신앙적인 이성과 감성이 동반된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 있는성도들에게 이러한 믿음에 대한 두가지 의미를 동시에 강조하고 있다. 그는 이사야 선지자가언급했던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사 53:1; 롬 10:16)라는 말씀을 인용하며 믿음은 말씀선포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즉 그것을 통해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선물로서 믿음이 주어진다는 것이다. 즉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말씀 선포를 통해 우리에게 믿음이 허락된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 17)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믿음이 나게 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란 기록된 계시인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이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믿음을 위한 유일한 근거가 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즉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된 성경말씀 없이 진정한 믿음이 발생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말은 매우 강력한 배타적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인간의 판단이나 감성 혹은 노력을 통해서는 결코믿음이 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은 오직 기록된 계시를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우리 시대에는 그에 대해 오해하는 자들이 종종 있다. 그들은 교회에서 목사가 하는 설교를 어떤 경우에도 거부하지 않고 잘 들음으로써 믿음이 생긴다고 가르친다. 물론 우리는 그점을 상당한 주의와 더불어깊이 상고하지 않으면 안된다.

 원리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그 말이 틀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목사는 공 예배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도록 교회에 의해 세워진 직분자이다. 그는 원래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선포해야 하며 종교적 인 취향에 따른 말을 해서는 안 된다 33)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대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설교하는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나 자기의 종교적 주장을 펼친다면 그것은 진정한 설교가 아니다.34) 그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귀한 시간에 자신의 종교적 주장을 늘어놓는 악행일 따름이다.

 

잘못된 설교를 통해서는 결코 참된 믿음이 생겨나지 않으며 오히려 오염되고 왜곡된 잘못된 믿음이 자라나게 된다. 그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이는 그렇게 생겨나는 왜곡된 믿음이 독버섯과 같은 역할을 할 우려가 있으며, 그 독은 누룩이 되어 자기뿐 아니라 주변의 이웃들에게 악한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간들의 이성과 경험 그리고 종교적 감정에 의해 참된 믿음이 발생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이해해야 한다. 올바른 믿음은 이미 기록되어 선포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생성된다.

그 믿음은 오직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할 뿐 다른 어떤 종교적인 행위들에도 근거를두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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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공예배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설교자는 자신의 ‘전제’ 를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가 가진 전제를교회 앞에 입증하기 위해서 설교를 한다면 그것은 결코 진정한 설교가 될 수 없다. 그것은 도리어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거짓 설교가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목사가 설교를 하기 위해 ‘사랑’ 이나 ‘교회 성장’ 등 특별한 주제를 정한다면 이미 그에 대한 전제를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기존에 자기가 생각하고 있던 것이 옳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성경 말씀을 인용하며 교인들을 설득하고자 하게 된다. 물론 연약한 우리는 자신이 가진 전제를 완전히 포기할수 없지만 그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가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설교자는 자기의 취향에 따른 종교적 주장을 펼칠 것이아니라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그대로 전하려는 자세를 가지지 않으면 안된다.

 

34) 우리는 교회가 세운 목사 즉 설교자를 교회의 교사라 칭한다. 교사는 자기 마음대로 무엇을 가르칠 수 없는 자를 의미하고 있다. 예를 들어 중고등학교 교사들을 생각하면 그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학교에서 영어나 수학,혹은사회,과학을 가르치는 교사들은 자기 마음대로 학생들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들은 교과서에 기록된 내용을 잘 풀어 가르쳐야 한다. 만일 교사가 교과서에 기록된 내용과 상반된 내용을 가르친다면 올바른 교사라 할 수 없다. 이처럼 교회의 교사인 목사는 자기 마음대로 성도들을 가르칠 수 없다.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잘 풀어 설명할 수 있을 따름이다. 목사의 설교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교회앞에 풀어 설명함으로써 선포하는 신령한 행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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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온 땅에 퍼진 복음

 

 

하나님의 복음은 온 세상에 선포되고 증거되었다. 그것은 결코 유대인들이 독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과거의유대인들 가운데는 여호와 하나님에 관련된 모든 것들이 저들의 전유물인 양 오해한 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하나님께서선하게 사용하시는 도구로서의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특권을 누리도록 선택받은 백성인 것으로 착각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기보다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종교를 이용했다. 그 목적 가운데는자신의 성공을 추구하며 종교적인 목적을 성취하고자 하는 욕망이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그것을 통해 자신의 멋진 인생을 누리고자 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복음은 원래부터 유대인들만을 위해 특별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지구상에 이스라엘 민족이 생겨나기 전에도 이미 하나님의 자녀들은 많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에 있던 아브라함을 부르시기 전에 셋,에녹,노아,셈 등을 중심으로 한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유대인들이 생성되기 전에 살았으므로 저들의혈통을 가지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우리는 이스라엘 민족이 차지히는 구속사적인 의미를 잘 알고 있다.

그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메시아가 이땅에 오셨다. 그가 십자가를 지고 죽었다가 부활, 승천하심으로써 하나님의 복음은 세상을 향해 완전히 개방된 것이다. 바울은 로마의 성도들에게 그점을 명확히 말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복음이 온 세상에 선포되고 그의 말씀이 땅끝까지 이르게 될 것을 예언했다(시 19:4). 그리고 모세는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나아오게 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기하여 노여움에 빠지게될 사실을 말했다t신32:21). 이는 세상을 향한 복음 선포의 개방성이 구약시대부터 이미 예언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이 모든 것들은 예수께서 이땅에 오심으로써 구체화 되었다. 십자가사역을 완성하신 주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그점을 분명히 언급하셨다. 그는 부활하여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유대인들을 넘어 온 세상에 흩어져 존재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복음이 전파되어야 하리라고 말씀 하셨던 것이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 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회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 18-20)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1:8)

 

예수님의 제자들은 더 이상 유대인의 왕국에 예속된 민족중심주의자가 될 수 없었다. 그들은 도리어 민족을 벗어난 세계주의 (cosmopolinism)자들이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특정 민족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의 말씀이었다. 하나님의뜻이 이땅에서 이루어져 가는 과정에서 저들이 감당해야 할 중요한 사명이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명령하셨다. 이는 세상에묻혀있는 성도들을위한 구원선포인 동시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의 선포이다. 그들을 통해 선포되는말씀에 영원한 생명과 사망이 들어있는것이다.

 

또한 주님께서는 세례를 받아 거룩한 성도의 대열에 참여하게 된 자들에게 자신의 말씀을 가르치도록 명령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는 말씀에는 인간의 이성과 경험을 배경으로 한 판단에 따른 가르침을 피하라는 메시지가 포함되어 있다.

 

이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역사 가운데 진행된다. 인간들의 종교적인 노력과 활동이 그 기초가 되지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겸손한 자세로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하나님의 놀라운 사역에 참여하게 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와 성도들은 주님의 재림 때까지 항상이 말씀들을 기억하고 있어야한다.

 

3) 전적인 하나님의 구원주권

 

 

인간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다. 그것을 위해 인간이 할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야말로 하나님께100% 달려 있으며 인간에게는 0%이다. 바울은 이점에 대해 강하게 말하고 있다.

 

이에 관한 내용은 모든 믿음의 선배들이 그동안 말해왔던 사실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사 65:1,2).

인간들이 하나님을 찾고 순종하는 마음을 보였기 때문에 구원을 베푼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자신을 찾지 않는 이방백성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셨다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내 이름을 부르지아니하던 나라에 내가 여기 있노라 내가 여기 있노라 하였노라 내가 종일 손을 펴서 자기 생각을 따라 옳지 않은 길을걸어가는 패역한 백성들을 불렀나니 곧 동산에서 제사하며 벽돌 위에서 분향하여 내 앞에서 항상 내 노를 일으키는 백성 이라" (사 65:1-3)

 

사도 바울은 이사야의 말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성도들이 자신을 올바르게 되돌아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롬 10:20,21). 즉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것은 우리에게 그럴 만한 훌륭한 조건이나 요소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나아가 세상의 악한 것을 미리 깨달아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즉 내가 열심히 하나님을 찾았기 때문에 돌아온 선한 결과가 아니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에 구원의 선물을 받은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자기에게 불순종하며 패역한 자들을 부르셨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계신다.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자들을 부른다고 하셨던 것이다. 바울은 이사야가 예언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며 우리가 곧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패역한 자였으며,내가 곧 하나님을 욕되게 한 우상숭배자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함을 말해준다.

 

“우리는 패역한 인간으로서 더러운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욕되게 하던 자들이었다. 나아가 하나님의 간절한 부르심에도 불구하고 악한 세계에서 빠져 나오지 않으려고 강력하게 저항하며 몸부림쳤다. 그러나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Irresistible Grace)로 말미암아 구출을 받게 되었다. 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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