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배·예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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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배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공적인 행위다. 예배와 관련한 용어는 특별히 정제돼야 하며 |
| 일반사회에서 쓰는 용어와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
| 예배와 예식의 구분도 중요하다. 돌 회갑 졸업 결혼 등은 예배가 아닌 예식으로 표현해야 한다. |
| * 사회자→인도자(예배시:통합) 집례자(성결) |
| * 성가대→찬양대(성가대는 일본어 ‘세이카다이’에서 따온 말) |
| *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사용불가(설교시) |
| * 대예배→주일예배(통합) 주일낮예배(성결·대신) 주일공동예배(성결) 저녁예배(대신) |
| * 열린예배→열린집회(통합) 사용 불가(대신) |
| * 예배 봐준다→사용 불가 |
| * 준비찬송→사용 불가(통합) 예배전 찬송(성결·대신) |
| * 예배/예식/기도회→구별사용 |
| * 삼일예배→수요일 저녁예배 |
| * 결혼식→혼인예식 |
| * 헌금→봉헌 |
| * 축제→잔치(때에 따라 절기행사,축하행사) |
| * 하나님의 축복→하나님이 주신 복 |
| * 하나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하나님! 복을 주시옵소서 |
| * 룻기서 욥기서 잠언서 아가서→룻기 욥기 잠언 아가 |
| * 시편 ○장 ○절→시편 ○편 ○절 |
| * 사랑하시는 성도 여러분(설교용어)→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 * 사랑하시는 하나님(기도용어)→사랑하는 하나님 |
| * 주기도문 외우겠습니다→주님 가르쳐주신 대로 기도하겠습니다 |
| * 제사,제단,제물→예배,성단,예물 |
| * 영(0)시예배,자정예배→송구영신예배 |
| * 기도로 폐회합니다→기도로 예배를 마칩니다,기도로 기도회를 마칩니다 |
| * 예배의 시종을 의탁하옵고→주장하시고,인도하시고 |
| * 송영→찬송 |
| * 안식일→주일(성결·대신) |
| * 특송→찬송 |
| * 갈음합니다→그렇게 하시기를 권면합니다,진심으로 축하합니다 |
| * 받들어 봉독하겠습니다→받들어 읽겠습니다,봉독하겠습니다 |
| * 사도신경 외우겠습니다→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
| * 예배를 드려주다→사용불가 |
| * 예배보다→예배한다(대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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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자 → 인도자(예배시) |
| 예배를 주관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 |
| 사회(司會)라는 말은 회의나 의식을 진행하는 일이라는 뜻을 갖고 있으며, |
| 우리의 문화권에서는 사회자라고 하면 마땅히 일반 회의의 진행자를 의미한다. |
| 교회에서도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예배가 아닌 결혼예식이나 임직식 같은 인간 중심의 의식에서는 |
| 진행을 맡은 사람을 사회자라 부를 수 있다. |
|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현장에서 사회자라는 명칭은 경건성의 결여를 느끼게 하므로 |
| 단순한 사회자(presider)의 개념을 넘어 예배 인도자(Worship Leader)로 부름이 타당하다. |
| 인도(引導)의 사전적 의미는 “알려주며 이끄는 일”이므로 예배 인도라는 말을 회의에서의 사회와 |
| 구분지음이 타당하다고 본다. |
| 본 교단 1998년 총회에서 통과된 표준 예식서에는 모든 예배의 진행자는 인도자(引導者)로, |
| 성례전과 같은 예전의 경우는 집례자로 표기하였음을 밝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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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가대 → 찬양대 |
| 성가는 기독교인들이 신앙을 표현하는 노래이고, 성가를 예배에서 부르면 찬송 또는 찬양이다. |
| '찬양대원'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을 하는 예배위원이다. |
| 따라서 성가대라고 부를 것이 아니라 찬양대라고 불러야 한다. 성경(특히 시편)에도 보면 모두'찬양하라'고 하였다. |
| 한국교회는 1960년대 전까지'찬양대'라고 불렀었다. |
| 그러던 것이 출판사들이 흑인영가와 복음송을 합하여 출판하는 과정에서 |
| 일본의 세이카다이(성가대, 聖歌隊)를 그대로 직수입하여 표현한데서 영향을 받아 |
| 오늘날'성가대'라고 호칭하는 곳이 많아지게 되었는데 이것은 고쳐져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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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사용불가(설교시) |
|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는 한 인간이 특정한 개인이나 단체를 위하여 어떤 사실이나 바람을 주님의 |
| 이름으로 빌고 원하는 뜻을 표현한 말이다. 이러한 표현이 설교 가운데서 진행되는 것이 타당한가를 연구 |
| 검토시킨 바 있는 본 교단 총회는 1981년 65회 총회에서 다음과 같은 연구보고서를 채택한 바 있다. |
| 먼저,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하기에 설교에 인간의 기도식 기원이나 기도 등의 형식을 개입하는 것은 |
| 바람직하지 않다. 둘째, 설교는 설교대로, 기도는 기도대로, 축도는 축도대로 하는 것이 좋다. |
| 셋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의 사용은 회중에게 자극을 주고 흥분시켜 “아멘”으로 응답하지 않고는 |
| 안 되게 만들어 설교의 질서를 문란케 하고 미신적 기복 사상을 키워 줄 우려가 있다. |
| 넷째, 설교의 근본 목적이 흐려지고 회중들에게는 설교의 내용과는 관계없이 “아멘”을 하게 하는 식으로 |
| 유혹되기 쉽다. |
| 연구위원회는 이상과 같은 내용을 보고하면서 설교시에는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를 하지 않도록 |
| 건의하였고 총회는 이를 아무 이의 없이 통과시킨 바 있다. 이러한 결정은 매우 적절한 것으로서 한국교회의 |
| 설교 사역을 바로잡는 일이라 보아 설교시에 이 말의 사용을 억제함이 타당하다고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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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예배 → 주일 예배 |
| 예배는 하나님께서 창세 이후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구속의 크신 사랑을 깨달은 자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
| 감사함으로 응답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드리는데 있어서 큰 예배가 있고 |
| 작은 예배가 있을 수 없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놀라운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면서 |
| 하나님께 최상의 가치를 돌려드리는 응답의 행위가 예배일진대, 거기에 어떤 것은 크고 어떤 것은 작다고 말할 |
| 수 없다. 그런데 한국교회에서는 언제부터인지 주일 낮에 드리는 예배를 지칭하여 대예배라고 부르고 있다. |
| 이것은 아마도 많은 교회들이 주일 낮에 드리는 예배 때에 가장 많은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
| 자연스럽게 나온 말인 것 같다. 그러나 분명히 대예배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다. 논리적으로 대예배가 있다면 |
| 소예배도 있다는 말인데, 어떠한 예배도 하나님 앞에서 소예배일 수가 없다. 그 예배가 하나님 앞에 신령과 |
| 진리로 드리는 한에 있어서, 어떤 예배도 소예배일 수가 없다. 다만 예배일뿐이다. 물론 시간별로 예배를 |
| 구분할 수는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주일 예배라든지, 주일 저녁(오후) 찬양 예배라든지, 혹은 시간에 따라 |
| 1부 예배, 2부 예배라고 부르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대예배”라는 용어는 합당한 말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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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 예배 → 열린 집회 |
| 열린 예배라는 용어는 1990년대 이후에 한국 교회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
| 원래 이 예배는 “구도자 예배”(Seeker's Service)로 알려진 집회의 형태로, 서울의 한 대형교회를 통하여 |
| 소개되면서 한국 교회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
| 그러므로 본래 열린 예배라는 용어는 “구도자”라는 부자연스러운 번역 대신에 1990년대 초에 유행하던 |
| “열린”이라는 단어로 의역한 것으로 “구도자의 집회”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즉 열린 예배는 믿지 않는 |
| 사람들이 좀 더 쉽게 예배의 자리에 나아올 수 있도록 배려하는 형식과 접근 방법을 택한 구도자의 집회를 |
| 말한다. 그러므로 열린 예배가 교회에 처음 나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라면, 이것은 엄밀하게 따져서 |
| 예배라기보다는 “전도집회”이다. 왜냐하면 예배는 하나님의 구속 사건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
| 대한 응답이기 때문이다. 불신자들, 혹은 구도자들은 아직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은 사람들이요, |
|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무엇을 하셨는지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
| 그러므로 그들은 아직 예배드릴 자격도 없고, 예배드릴 마음도 없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예배드리기 위해서는 |
| 무엇보다 먼저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은 신령과 진리로 하나님의 구원의 |
| 은혜와 사랑에 응답하는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된다. 또 한 가지 예배의 기본 정신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
| 놀라우신 사랑과 은혜에 대해 감사로 응답하는 드림에 있지, 예배를 통해서 무엇을 받거나 추구하는 데 있지 |
| 않다. 그런데 이런 면에서 볼 때 열린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을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
| 문제가 있다.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응답의 행위여야 하지, 인간을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
| 만약에 예배가 회중지향적이 되고, 예배의 근본적인 목적이 드림에 있지 아니하고, 무엇인가 그 예배를 |
| 통해서 얻어내는데 목적이 있다면 --비록 그것이 영혼구원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인간을 위한 집회이지 |
|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아니다. 그러므로 열린 예배라는 용어는 차라리 “열린 집회”로 부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
| 그런데 1990년대 후반 이후에 많은 교회에서는 불신자들을 하나님께 인도하기 위한 “구도자의 집회”와는 별도로 |
| 신자 중심의 “열린 예배”를 드리고 있다. 즉 구도자를 중심으로 하는 전도 집회로서의 열린 예배의 개념보다는 |
| 기존 신자들에게 새로운 생동감을 주는 예배로서의 열린 예배가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
| 이런 예배는 주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기존의 형식적이고 딱딱한 전통적인 예배를 벗어나서 잔치적이고 시각적 |
| 이며 회중들의 능동적인 참여를 많이 격려하는 생동감 넘치는 예배인데, 이를 가리켜서 “열린 예배”라고 부르고 |
|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지적한대로 “열린 예배”라는 용어 자체가 몇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므로 가능하면 |
| “열린 예배”라는 용어의 사용은 삼가는 좋겠다. 의미상으로도 “열린 예배”가 있다면 “닫힌 예배”도 있다는 말인데, |
| 무엇이 열린 예배이고, 무엇이 닫힌 예배인가? 또 무엇에 대해서 열려있고, 무엇에 대해서 닫혀있다는 말인가? |
| 그러므로 굳이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활기 있는 예배를 드리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열린” 이라는 용어보다는 |
| “젊은이 예배” 혹은 “찬양 예배” 등으로 사용하고, 열린 예배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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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배 봐준다. → 함께 예배한다. |
| 구역예배와 같은 때에 오늘 목사님이 오셔서 예배 봐주기로 했다는 말을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이다. |
| 예배는 하나님의 구속의 은총을 받은 성도가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예물을 드리며 말씀을 듣고 헌신과 |
| 고백을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나를 누가 대신해서 예배를 봐 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
| 예배를 봐준다는 말 대신'함께 예배한다'라고 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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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준비 찬송하겠습니다. → 찬송하겠습니다. |
| 찬송은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영광과 사랑을 구체화하신 구속역사를 찬미하는 것이다. |
| 따라서 찬송은 어느 곡이든지, 언제 부르든지, 어디서 부르든지 그것은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이다. |
| 그런데'준비 찬송하겠습니다'하게 되면 그것은 찬송의 목적을'준비'로 한정하는 것이 된다. |
| 찬송이 마치 시간을 메우기 위해 하는 것처럼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이 말은 합당치 않다. |
| 찬송은 그 자체가 하나님께 대한 경배요 곡조 있는 기도이기 때문에 '준비 찬송'이라는 말을 쓰게 되면 |
| 찬송의 목적이 변질 된다. 따라서 예배를 시작하기 전에 찬송을 부르고자 할 때에는"예배를 시작하기에 앞서 |
| 찬송(몇곡)하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 좋다. |
| 예배시간에는 복음성가보다 찬송가를 부르는 것이 좋다. |
| 왜냐하면 복음성가는 예배의 의미보다는 신앙적 감성과 자기 치유적 기대심리가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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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배/예식/기도회 → 구별사용 |
| 한국교회는 어느 나라의 교회보다 모이기에 힘쓰는 교회이다. 그래서 예배와 각종 기도회로 한 주일에 여러 차례 |
| 모인다. 주일 낮을 비롯하여 주일 저녁, 수요일 저녁, 금요일 밤, 그리고 매일 새벽 등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의 열심은 |
| 세계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모임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혼란스럽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모든 모임에 예배라는 |
| 명칭을 붙여서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심지어는 돌, 회갑, 추모 등의 모임에도 예배라는 명칭을 붙임으로써 |
| 진정한 예배의 의미를 희석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예배와 예식과 기도회를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
| 예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신 창조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구속의 은총을 깨닫고 감격하여 드리는 |
| 하나님의 백성들의 응답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예배는 결코 인간을 위한 모임이거나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일이 |
| 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예배와 예식은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
| 예를 들어 돌, 회갑, 추도, 입학, 졸업, 결혼, 입당, 임직, 교회 창립 등의 행사를 할 경우에는 예식으로 표현하고, |
| 예배와 혼동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
| 그리고 기도를 목적으로 모이는 수요 저녁 모임과 금요 철야 혹은 심야 모임 그리고 매일 새벽 모임 등은 |
| 수요기도회, 금요기도회, 그리고 새벽기도회 등으로 명시해야 한다. |
| 이러한 현실을 바로잡기 위하여 본 교단 총회를 통과한 "표준예식서"의 정신을 따라 다음과 같이 정리함이 |
| 타당하다고 본다. |
| 주일예배, 주일 저녁 찬양예배, 주일학교 예배, 수요기도회, 철야기도회, 경건회(각종 회의 시작 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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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헌금 → 봉헌 |
| 한국 교회의 예배 순서 가운데 “헌금”이라는 용어를 쓰는 경우가 있다. |
| 이 순서는 원래 봉헌을 말하는 것이다. 기독교 예배 속에서 봉헌의 순서는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
| 역사적으로 볼 때 봉헌의 의미는 단순히 돈이나 예물을 드리는 행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
| 봉헌은 하나님의 은총 앞에 성도들이 드리는 응답적 행위를 총칭하는 말이다. |
| 즉 봉헌은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정성을 다하여 경청한 무리들이 스스로 우러나는 감사의 응답으로 |
| 내어놓는 모든 마음과 정성의 표현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순서를 “헌금”이라는 용어로, |
| 즉 단순히 돈을 바치는 행위로 지칭하는 것은 봉헌의 의미를 아주 축소시키는 것이다. |
| 그러므로 교회는 “헌금”이라는 용어보다는 “봉헌”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이 마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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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제 → 잔치 (때에 따라 절기행사, 축하행사...) |
| 우리말 큰 사전에서는 '축제'를 “축하하고 제사지냄”이라고 단순하게 풀이하여 실어 놓았으나 |
| 이가원과 임창순의 "東亞漢韓中辭典"에서는 "축제란 제사 이름이니, 묘문(廟門) 안과 밖에서 이틀에 걸쳐서 드리는 |
| 묘문제로서 조상을 사당 안에서 제사지내고, 그 다음날 사당 밖에서 지내는 제사이다“라고 정의해 놓았다. |
| 그리고 일본인들은 마을 제사를 영어의 Celebration 과 Festival 같은 축하행사를 보면서 자신들이 제사에서 마음 |
| 놓고 떠들고 소리지르면서 춤추는 고유한 행사와 모양새가 비슷함을 알고, 1928년에 '축제'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
| 그들의 사전에 도입한 바 있다. |
| 이상과 같은 축제의 문제점을 보면서 이제는 성경대로 잔치, 또는 때에 따라 절기행사, 축하행사 등으로 사용할 |
| 것을 권장한다. |
| 예를 들어 성령 축제→성령 잔치, 부활절 축제→부활절 절기 행사, 성탄 축제→성탄 축하 행사 등이다. |
| 참고로 공동번역에서는 57회, 표준 새번역에서는 13회에 걸쳐 무분별하게 축제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으나 개역 |
| 성경과 개역 개정판에서는 전혀 사용하지 않았음을 밝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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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양축제','체육축제','전야제'등의 표현은 옳지 않다. |
| '축제'라는 단어 자체가 이방종교의'제사'또는 제의적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
| 국어사전에도 보면 축제(祝祭)란,"축하하고 제사하는 것"을 말한다고 되어있다. |
| '축제'라는 말 대신에 '잔치', '대회', 또는 '축하행사'라는 말을 쓰는 것이 좋다. |
| 찬양축제는 성가대회로, 체육축제는 체육대회로, 전야제는 전야잔치로 하는 것이 옳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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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의 축복 → 하나님이 주신 복 |
| 하나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 하나님! 복 주시옵소서 |
| 한국 교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다음과 같은 복에 관한 표현들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
| "하나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축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저 사람은 축복 받은 사람이다" |
| "하나님의 축복된 성도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상과 같은 표현들을 볼 때 |
| 하나님이 인간을 위하여 복을 비는 존재로 간주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
| 그러나 여기서 유의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시라는 사실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점이다. |
| 다음의 성구에서는 하나님이 복을 비는[祝福] 분이 아니라 복을 주시는[降福] 분임을 잘 밝히고 있다. |
|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
|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 지라"(개역 한글판 창 12:3) |
| "그가(멜기세덱)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
| 복을 주옵소서"(개역 한글판 창 14:19) |
|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의 축복”은 “하나님이 주신 복”으로, “하나님! 축복하여 주시옵소서”는 |
| “하나님! 복 주시옵소서” 또는 “복 내려(베풀어) 주시옵소서"로 바로잡음이 타당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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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편 장 절 → 시편 편 절 |
| 몇 장과 몇 절은 산문에서 쓸 수 있다. 다른 모든 성경은 장 절이라고 함이 마땅하다. |
| 그러나 시편은 다르다. 시편의 경우는 몇 장, 몇 절이라고 하는 것이 옳지 않다. |
| 편 절이라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시편은 처음부터 각각 단편 형태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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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룻기서, 욥기서, 잠언서, 아가서 → 룻기, 욥기, 잠언, 아가 |
| 자체에 記, 言, 歌등이 이미 포함되어 있어 ‘書’자를 덧붙이는 것은 의미상 과잉표현이 되므로 그렇게 쓸 수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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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 같이 주기도문을 외우겠습니다. →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하겠습니다. |
| '다같이 주기도문을 외우겠습니다'라는 표현은 옳지 않다. |
| 왜냐하면 이런 암송은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주문으로 만들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
| 따라서 성도들은 단순히 주기도문을 외우고 예배를 끝내서는 안 된다. |
| 한 구절, 한 구절 뜻을 생각하며 간구할 수 있어야 한다. |
|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너무 빨리 끝내서도 안 되고, 무슨 모임이 끝났다는 표식처럼 되게 해서도 안 된다. |
| 또'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고 해야 하는 대목에서 아직도'시험에 들지 말게 마옵시고'라고 하는 이들이 많은데 |
| 이것도 고쳐야 한다. 사도신경 역시 진지하게 뜻을 생각하면서 신앙고백으로 토해 낼 수 있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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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시(0시)예배, 자정예배 → 송구영신예배 |
|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일을 가리켜 ‘송구영신’또는‘송영’이라 한다. |
| 이 의미가 예배의 성격 및 냉용과 일치하므로 ‘송구영신예배’라고 부르는 것이 좋겠다. |
| ‘송영’은 ‘송구영신’의 준말이지만, |
| 찬양에서의 ‘송영’과 동음이어서 혼란을 가져올 우려가 있으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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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도로 폐회합니다 → ...기도로 예배를 마칩니다, ...기도로 기도회를 마칩니다. |
| '폐회합니다'는 교회 안의각종 회의에서 끝날 무렵 사용하는 것으로 예배에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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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배의 시종을 의탁하옵고 → 주장하시고, 인도하시고 |
| 의탁은 ‘어떤 것에 몸이나 마음을 의지하여 맡긴다’는 의미이다. |
| 내가 주도적으로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할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서 거의 ‘그가 대신 한다’는 의미를 |
| 가지고 있다. |
| 우리가 예배 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나에게 베풀어주신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면서 하나님께 최상의 가치를 |
| 돌려드리는 응답의 행위인데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할 이 예배를 도리어 하나님께 |
| 맡기고 나는 방관자가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
| 그러므로 필요할 시는 “이 예배를 주장하시고”또는 “이 예배를 성령님께서 인도하시고”로 쓸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