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의로움, 체다카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로마서 3장에 이 세상 아무도 의로운 자가 없다고 했고, 예수님도 오직 하나님 한 분 만이 선하시다고 하셨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하나님은 다른 거짓 신들과 달리 의로우신 것인가? 하나님의 의는 어디에서 비롯되며, 무엇이 하나님을 의롭게 하는 것일까?
‘의로움’이라는 단어 그 자체는 추상적이기 때문에 사람 마다 서로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기 쉽다. 서로 극단적으로 대립하여 싸우는 두 사람 혹은 두 집단이 서로 자기가 정의의 편에 있다고 서슴없이 주장할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히브리어가 갖는 놀라운 장점 중에 하나는 그 의미를 혼동하여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히브리어 단어는 각각 뜻이 분명한 기본적인 어근(root word)으로부터 파생되어 있기 때문에 그 원초적 의미가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으며 또한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그 의미가 변질되기 어렵다.
의로움을 뜻하는 히브리어는 ‘체덱 또는 세덱’이다. 예를 들어 창세기 14장에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였던 ‘멜기세덱’의 이름은 바로 ‘의(세덱)의 왕(멜기)’을 뜻한다. 이 ‘체덱’과 어근이 같으면서 또한 성경에서 같은 의미로 쓰이는 단어가 ‘체다카’이다. 그런데 ‘체다카’의 의미는 다름 아니라 자선(charity)이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체다카’는 ‘선한 행위’, 자선, 기부, 특히 가난한 자를 도와주는 행위를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유대인 가정에서는 어린 아이부터 어른까지 작은 돈을 저금통에 모았다가, 그것이 차면 깨뜨려서 맛있는 것을 사먹는 다든지 아니면 가족 생일 선물 사는데 쓰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이웃을 돕기 위한 기부금으로 보낸다. 바로 그 저금통을 또한 ‘체다카’라고 부른다.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수입의 십분의 일을 자선사업에 기부한다고 하는데, 그들은 가난한 친족을 돌보는 것은 물론 이웃과 지역사회 및 타민족에게 까지 너그럽게 자선을 베푼다. 지난 연말 동남아시아에 해일의 재앙이 닥치자 가장 먼저 구호물자와 의료진을 파견한 나라는 엄청난 오일 머니를 소유한 아랍의 이슬람 형제나라가 아니라 바로 이스라엘이었으며, 그들이 보낸 기부금 액수도 인구 일인당 세계에서 가장 많았다.
유대인들이 이해하는 의로움은 이렇게 구체적인 행위를 의미한다. 자신의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인간을 인간이기 때문에 사랑하고 긍휼을 베풀며 어려운 자를 도와주는 자가 진정으로 의로운 자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기만 잘되려고 눈을 부릅뜨고 남들로부터 빼앗는 자가 아니라 너그럽게 베푸는 자가 의인인 것이다. 시편 112장은 의인에 대하여 이렇게 노래한다.
“은혜를 베풀며 꾸이는 자는 잘되나니 그 일을 공의로 하리로다 저가 영영히 요동치 아니함이여 의인은 영원히 기념하게 되리로다 . . . 저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에게 주었으니 그 의가 영원히 있고 그 뿔이 영화로이 들리리로다” (시편 112:5-6,9).
하나님의 의는 바로 이러한 사랑의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 도다” (시편 34:18). 곤궁에 처한 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해 주시고 구원해 주시는 그의 사랑이 바로 그의 의의 본질인 동시에 그 근원인 것이다. 하나님은 율법을 통하여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고(레위기 19:18) 과부와 고아와 이방인을 도와줄 것을 가르치셨으며, 유대인들이 사랑의 율법을 저버리고 타락했을 때는 노하시고 예언자들을 보내어 훈계하셨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미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피차에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남을 해하려 심중에 도모하지 말라 하였으나 . . . ” (스가랴 7:9-11).
그러데 그 뿐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되었을 때 예수님을 보내시어 우리가 진 죄의 값을 치르게 하셨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우리 모두를 의인으로 만드셨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린도후서 5:21).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사랑으로 큰 의의 행위, ‘체다카’, 즉, 그의 아들 예수의 생명을 우리를 위해 베푸셨고, 그럼으로써 그의 공의를 이루셨다. 여기에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진리가 있다. ‘체다카’의 베품이 없이는 어떤 의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기 것을 희생하여 사랑을 행함이 없이 이룰 수 있는 공의는 아무 것도 없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의 의로 만드셨다고 했다. 의인은 두려움없이 사랑을 베풀고 줄 수 있는 사람이다.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1:17)
우리의 의는 어디서 오는가? 우리의 의는 바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온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전능하심과 의로우심을 믿는 믿음 때문에 우리도 아무 걱정이나 두려움 없이 우리의 생명을 베풀고 의를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글을 읽는 여러분 모두 이와 같은 ‘체다카’의 계시와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