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라와 이스라엘의 세 가지 법체계
토라(הרות)는 원래는 율법서를 가리키는 말이다. 히브리 구약 성경은 앞에서 설명하였지만 율법서인 הרות(토라)와 예언서인 םיאיבנ(네비임) 그리고 성문서인 םיבוּתכּ(케투빔)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책이 율법서인 토라이다. 토라는 곧 모세 오경인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다섯 권의 책을 의미한다.
그러나 토라라는 용어는 더 광의적으로 쓰이거나 더 협의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토라가 광의적 개념으로 사용될 때는 성경 말씀 전체로서 곧 구약 성경을 의미하기도 한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구약으로만 이루어진 성경을 ךנת(타나크)라고 부르기도 하고 그냥 토라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토라라는 용어가 아주 협 의적으로 사용될 때는 그냥 율법을 의미할 때도 있다. 이는 헬라어의 노모스(νόμος) 와 같은 말로서 영어로는 Law인 셈이다. 따라서 어떤 때는 단수로서의 개별 율법을 가리키기도 하나, 보통은 총체적인 율법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협의적 개념의 율법으로서 토라는 계명과 율례와 법도라는 세 가지 내용으로 구성된다. 계명은 ה(미츠와)인데, 명령하다라는 뜻의 동사 ה(차와)에서 온 말로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명령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음, 율례는 ק(호크) 또는 ה(후카)라는 말을 번역한 것인데, 원 뜻은 자르다라는 ה(하카)에서 온 말로서 절기와 관습 등의 종교적인 규례를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법도는 ט(미쉬파트)인데, 재판하다 또는 다스리다라는 뜻의 ט(솨파트) 동사에서 온 말로서 원래는 판결, 재판, 심판의 뜻이었으나 개념이 확대되어 ‘법(Law)’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되게 되었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계명과 율례와 법도라고 하는 용어들은 서로 간에 명확한 구분이 있어서, 유대인들은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사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그 의미들을 정확하게 구별하지 못하고 혼용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다시 말해서 계명(誡命), 명령(命令), 금령(禁令), 율례(律例), 규례(規例), 규정(規定), 정규(定規), 법도(法度), 법(法), 법령(法令), 공도(公度) 등의 단어들에 대하여 구별을 못하는 것이다. 이는 번역이 잘못되고, 또 정확하게 가르치지 않은데서 기인한다. 개역성경은 의미의 명확한 구분없이 혼역(混譯)을 하고 있으며, 또 보통은 그 정확한 의미를 알려고도 하지 않은채 적당히 해석하고 넘어가기가 일쑤이다. 개역 성경에서 이와 같이 세 종류의 히브리어 단어를 혼역하고 있는 것은 원어에 대한 정확한 지식의 결여와 함께 이스라엘 법 구조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법체계는 도덕법과 종교법 그리고 사회법이라는 세 종류의 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계명’ 즉 미츠와는 도덕법(Moral Law)의 핵심이 되고 있는데, 도덕법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및 인간들 서로간의 관계를 규명한 것으로서 사실상 법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명령(Commandments)인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에 나타나는 십계명(The Ten Commandments)에서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십계명은 율법을 집약한 토라의 대표적인 내용으로서 인간 행위의 옳고 그름을 인간 스스로 판별할 수 있게 하는 기준으로 계시되었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를 따름으로써 하나님께로부터 인정을 받고 생명을 얻을 길이 열리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인간 내부의 부패성은 도리어 계명으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사망으로 가게하고 말았다고 했다고 로마서는 가르치고 있다.
구약의 십계명이 신약에 와서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십계명은 내용상 하나님에 대한 것과 사람들간의 것으로 나누어지는데, 이를 주님께서는 마 22:35-40에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두 가지 큰 계명으로 집약하여 주셨다. 십계명은 또한 ‘하라’라고 하는 적극적 명령과 ‘하지 말라’라고 하는 소극적 명령으로 나누어지는데 ‘하라’라는 명령은 우리의 속 사람 곧 영이 마음으로 섬기고자 하는 ‘하나님의 법’을 말하며 ‘하지 말라’라고 하는 명령은 육신의 정욕이 좇고자 하므로 금지해야 하는 ‘죄의 법’을 뜻하는 것이다.
십계명을 포함해서 성경에 나타나는 계명은 모두 613 개이다. 이 중 ‘하지 말라’고 하는 계명은 일 년의 날수와 같은 365개이며 ‘하라’라고 하는 계명은 사람의 지체의 숫자와 같은 248개이다. 이에 대해 랍비들은 우리가 일년 내내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는가 하면 우리의 지체를 가지고 열심히 해야 할 것들이 있음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다음으로 ‘율례’를 뜻하는 호크 또는 후카는 이스라엘의 종교법(Religious Law) 즉 성막, 제사, 절기 등을 규정한 것이다. 십계명 중에서 처음 네 가지는 선민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나님을 섬길것인가에 관한 명령인데, 율례는 이에 대해 다시 구체적으로 규정하여 지키도록 명하신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을 주시기 전에 벌써 출애굽기 13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절기를 지킬 것을 명하셨다.
절기는 히브리어로는 ג(하그)라고 하고 헬라어로는 ἑορτή(헤오르테)라고 하는데 둘 다 축제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 뒤에 십계명을 주신 후에는 ן(미쉬칸)이라고 부르는 성막을 짓고 제사를 지내는 방법 등을 자세히 가르쳐 주셨다. 제사는 히브리어로는 ח(자바흐)라고 하고 헬라어로는 θυσία(뒤시아)라고 하는데 이것들이 바로 이스라엘의 지켜야 할 종교 법규가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법도’라는 뜻의 미쉬파트는 사회법(Social Law)을 이름인데 십계명 중에서 특히 인간들 상호간의 도덕적 규범을 삶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하도록 하기 위한 세부적인 법의 적용이라고 볼 수 있다. 미츠와와 호크 또는 후카가 이스라엘에만 적용되는 특수한 성격을 가졌다면, 미쉬파트는 이스라엘 뿐 아니라 고대의 국가들이 국가 존립을 위해 스스로 형성한 함무라비 법전 등과 같은 일반적 법체계와 어느 정도 유사한 점이 있다. 그러나 토라의 미쉬파트는 고대의 다른 법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있는데, 그것은 고대 법이 대개 귀족을 보호하기 위한 차별법의 성격을 띄고있는 반면, 미쉬파트는 법의 적용에 있어 차별이 없는 만민 평등의 정신과 생명 사랑의 원리가 바탕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보면, 토라의 세 가지 내용인 계명과 율례와 법도는 원어로써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법체계 상으로도 명확히 구별되는 개념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안유섭 교수/Archeacadem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