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과 기도(강력기도)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인격적으로 은혜롭게 접근해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말씀의 약속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두려움없이 담담하게 하나님의 존전으로 나아갈수 있게 하신다(시 71:22)
웨스터 민스터 대요리 문답에서 기도를 위한 지침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체 말씀을 주셨다고 언급되어 있다.
5만번 기도응답을 받은 기도의 사람, 조지 뮬러도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하게 되면 기도를 바로 시작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자기가 올릴 기도의 내용이 성경의 어디에 약속되어 있는가를 꼭 찾은 다음에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기도를 하기 전에 며칠 동안 성경을 찾을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뮬러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가운데 기도의 동기가 나왔고 거기서 기도의 제목이 나왔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바로 볼수 있게 되었고 또한 하나님의 뜻을 잘 깨달을수 잇었다”라고 적고 있다
“영성과 목회”에서 오성춘 교수는 “말씀을 따라 구하고 말씀 자체가 기도가 되고 말씀을 뜻을 실천하기 위하여 기도하는 기도인 ‘말씀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구하든지 응답하는 만사형통의 기도이다“라고 말한다
말씀과 기도는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습니다
“너희가 내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15:7)
우리가 주님안에 거하고 주님의 말씀이 우리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으리라고 주님은 약속하십니다
주님안에 거한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주님안에 거한다는 것은 바로 주님의 말씀안에 거한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의 말씀안에 거하는 자는 바로 실존적으로 주님안에 거하는 자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우리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는 놀라운 역사가 있습니다. 바로 주님의 말씀이 우리안에 거할때 입니다
즉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믿음을 심으시고 우리의 기도의 문을 활짝 열어 주시는 것이다
존 스토트는 “우리에게 기도할 충분한 이유와 그 분이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주는 것은 오직 그 분의 약속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위에 기초하게 될 때에 우리는 참으로 담대하게 기도를 드릴수 있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앞으로 나아갈 때 겁을 먹으면 기도가 더럽혀지고 하나님의 이름이 손상을 입는다(눅 1:73-78) 하나님은 자기의 약속들 때문에 마치 자기가 우리에게 채무자이신 것처럼 우리 앞에 계심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시 119:58)
그래서 월리엄 거널은 다음과 같이 역설합니다
“ 약속의 말씀에 따라 당신의 기도의 응답을 강력히 요청하는 변론을 하나님께 드려라. 약속은 신앙의 근거로서 신앙이 강해지면, 열심도 더해지고 이러한 열심은 즉각 기도로 이어지고 그 기도는 항상 승리로 보상받을 것이다. 말씀으로 무장하여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기도의 역사도 더욱 강해지는 것이다“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라는 책에서 빌 하이벨스도 이렇게 역설합니다
“ 성경은 기도의 근거가 됩니다. 밑받침이 됩니다.
기도하기 전 ‘하나님이 이런 것까지…’, ‘하나님이 이 정도를…’이라고 한정하고 규정하는 때가 많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를 믿고 기도하십시오 “
그런 까닭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는 겸손과 경외를 불러일으키고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여 하나님의 뜻에 복종케하는 바로 그 말씀이 다른 한편으로는 듣고 순종하는 자들로 하여금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나아갈수 있도록 그들의 기도의 문을 열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하는 데 필요한 말들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성경의 약속들을 묵상할 것을 칼빈은 강권하며 성령에 대하여 기도의 형식들을 우리에게 주술해주는 분으로 이해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가 뜨겁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말씀을 집어넣어 주신다는 사실에 칼빈은 주목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간주하기를 성령께서 말씀을 가지고 기도의 형식들을 성도들의 입에 넣어주신다는 사실로 미루어 그러한 형식들을 사용하는 것은 무익하지 않다고 하였다
칼빈은 말씀을 기초로 한 믿음을 가리켜서 ‘기도의 어머니’라고 하고, 말씀에서 멀어지는 기도는 즉시 부패하게 된다고 강조하였다.
따라서 기도자는 먼저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그분의 뜻을 파악한 후에 기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기도가 아니고 하나의 독백이요 공념불에 지나지 않는다
기도가 하나님의 말씀위에 기초하여 시작되고 그 말씀에 의하여 성령께서 기도의 틀을 만들어 주시는 까닭에 말씀에 의하여 제한된다고 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선행하고 동기를 제공해야 할뿐만 아니라 우리의 기도는 그것을 방향과 세부적인 사항에서 바로 그 말씀에 의하여 지배되고 억제되어야 한다고 칼빈은 강조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우리의 욕구들을 절제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에 우리의 기도를 제한시키지 않으면 우리의 기도는 믿음으로 드리는 것이 될수 없다. 그러므로 기도를 위한 유일하고 안전한 법칙은 하나님의 말씀에 잘 비추어 보고 그가 명시한 것을 따라 우리의 기도를 구성하고 우리의 기도가 우리의 심령속에서 하나님의 역속들의 메아리가 되게 하며 그가 약속하신 것 이상을 구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이 교제는 인간적인 경건의 표현이 아니며, 이 간절한 마음은 오직 말씀의 능력 아래 있다. "내가 말씀 위에 서 있을 때 나는 기도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다"(칼빈)
중세와 고대 교회에서도 기도가 잊혀진 것은 아니었다. 교회사를 통하여 기도에 대해서 많은 글들이 쓰여졌다. 이 중에서도 우리는 거의 무시당하였으나, 칼빈이 언급한 바와 같이 기도가 지닌 계시의 성격을 살펴보려고 한다. 이 때 대개 기도는 계시된 말씀과 더불어 취급된다. 말씀은 하나님과의 교제인 기도를 통하여 기도 중에서 깨달아진다
기도는 우리 성경과 신앙을 풀어내는 패스워드입니다 기도해야 모든 신앙의 비밀이 벗겨집니다. 기도는 그런 의미에서 성경과 신앙의 패스워드(password)입니다.
모든 성경구절과 신앙에는 패스워드(비밀번호)가 걸려져 있습니다. 그 패스워드(비밀번호)는 기도입니다
조지 스위팅은 말합니다. “기도는 성경의 열쇠이다. 항상 하나님께 안내해 달라고 기도한 다음에 성경 읽기를 시작하라. 성경을 읽으면 당신의 궁금증이 풀릴 것이다.”
기도가 어쨌든 모든 신지식의 방편인 것처럼 기도는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지식의 방편이다." 복음 사역에 있어서 기도는 설교보다 결코 경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도들은 교중을 향해서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행 6:4)고 요청하였다. 고대교회에서는 신학이 기도로 흥왕하였고, 캅바도기아 신학자들이나 힐라리 및 어거스틴에게서 볼 수 있듯이, 신학은 묵상으로 수행되었다. "기도는 신앙의 시금석이요 기도의 신학은 모든 신학의 시금석이다."
칼빈에게 있어서는 <기도에는 대전제가 있어야 한다>는 기본입장이 있었다. 즉 인간은 기도를 하여야 할(기도를 절대 필요로 하는) 존재이나, 그러나, 기도의 보증인이시요 기도의 준비자이신 “그리스도의 대속적 피의 은혜”를 근거하지 않고는, 즉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기도자인 인간 사이의 중재자, 화해자가 되지 않고서는, 이를테면, 타락한 죄스러운 인간에게 있어서는 절대적 공포의 대상인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의 보좌를 그리스도의 대속적 중재에 의하여 은혜의 보좌로 만들기 전에는 기도의 가능성이 전혀 열려 있지 않은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고 하는 대 전제를 갖고 있었다. 이 “그리스도”는 또한 “성육(成肉)하시는 말씀”이시었다.
그러므로, “말씀”이 앞서지 않으면, 즉 말씀에 근거되지 않은 기도, 이를테면, 말씀과는 역행하면서라도 어떻게 해서든지 스스로를 독려하려고 하는 기도는 잘못된 기도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어진 “말씀”(로고스)에 대한 긍정과 신뢰에 기초한 “기도”는 성령의 도우심을 통하여 바르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기도의 “객관적 가능성”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그리고 그 말씀으로서의 그리스도에 대한 기도자의 신앙을 그 출발점으로 하는 기도의 “주관적 가능성”은 성령의 도우심에 의하여 성립되며 이 성령은 “기도의 효력”을 돕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철저히 기도가 필요한 존재이지만, 그러나, 또한 인간은 스스로 하나님께로 이를 수 없는 부패한 존재이기 때문에, 성서가 말하는 인간의 기도는 철저히 본질상 인간의 노력과 인간의 의도 및 인간의 공적에 의존해 있지 않는 것으로서 기도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며 따라서 기도의 응답은 어디까지나 이미 성서 속에 계시된 하나님의 약속의 실현일 뿐이고, 그러므로 인간의 기도는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에 동참할 수 있기를 요청하는 것 이외의 다른 것 일수는 결코 없다고 하겠다.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이 기도이고 이 기도는 또한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의 중보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 된다. 말하자면, 기도는 하나님이 이미 약속하신 것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기를 기원하는 것일 뿐, 이것이 아닌 그 어떤 다른 것 일수는 결코 없다는 말이 된다. 즉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기원하여서는 안된다
이 성자 예수는,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에게 오신 성육(成肉)하신 “말씀”(로고스)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 그것은 말씀을 믿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기도의 근거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은 우리의 기도의 근거가 하나님의 약속에 기초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의 기도는 말씀에 근거하고 있는가? 예수님께서 주기도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는 무엇인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이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원하는 기도이셨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기도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우리의 기도를 말씀으로 강력하게 재구성할 때 그러한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 땅위에서 온전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말씀을 떠난 기도는 하나님의 뜻과는 관계없는 기도인 것입니다